XI.강줄기 따라걷기/한강 따라 걷기

한강 따라 걷기30(덕소역-광진교-옥수역)

시인마뇽 2026. 3. 9. 21:15

탐방구간: 덕소역-광진교-옥수역

탐방일자: 2026. 3. 7()

탐방코스: 덕소역-수석리토성-왕숙천/한강합류점-구리시민한강공원-광진교-자양역-

                -광진교-자양역-중랑천/한강합수점-옥수역

탐방시간: 921-1756(8시간35)

동행       : 나 홀로

 

 

  이번 한강 따라 걷기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덕소역을 출발해 서울시성동구의 옥수역에서 끝냈습니다. 4년 전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한강 따라 걷기를 시작해 이번에 옥수역에 이르기까지 한강 탐방에 나선 것은 총 30회에 이르고, 물줄기를 따라 걸은 한강의 길이는 440Km가 조금 더 됩니다. 이제 한강하구까지 남은 거리는 50km에 조금 못 미쳐, 네 번만 더 나서면 김포시의 유도 앞에 이르러 한강 따라 걷기를 모두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따라 걷고 있는 한강의 본류는 유로연장 기준으로 494Km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것은 494Km의 한강 본류는 오로지 남한 땅만을 흐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다행인 가는 북한강의 남한 땅 최북단에 평화의 댐을 건설하고 임진강과 한탄강의 최북단에 군자댐과 한탄강댐을 설치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댐들은 오로지 이들 강 상류를 점하고 있는 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해 건설한 것이기에, 댐을 건설하고도 물을 담아 두어서는 안 되고 항상 비워두어야 해 관광 외에는 달리 쓸모가 없습니다.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마저 북한 땅에서 발원했다면 수도권의 상수원 확보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상의 물을 13-14Km3 규모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바닷물과 얼음등을 제외한다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은 전체의 0.39%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은 5백만Km3를 조금 상회합니다. 이처럼 물이 제한된 자원이라면 물은 국가가 나서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강이 여러 국가를 거쳐 흐른다면 강물의 사용을 두고 국가 간의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메콩강을 두고 중국과 베트남이 대립하고 북한강이나 임진강을 두고 남북이 갈등하는 것은 물은 무한정 쓸 수 있는 자유재가 아니고 대가를 지불하고 써야 하는 경제재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인 다뉴브강은 그 길이가 2,838Km에 이릅니다. 독일의 블랙 포리스트(Black Forest)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는 이 강이 흑해로 흘러들어가기까지 영향을 주는 나라는 18개국에 달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모든 강은 북한강과 임진강을 제외하고는 남한 땅에서 발원해 남한 땅 하구에서 바다로 흘러듭니다. 그러기에  북한을 제외하고는 강물을 둘러싸고 다른 나라와 분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북한만 해도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해 있고, 두만강 동쪽 끝은 러시아와 접해 있어 강물의 사용을 두고 분쟁이 있었을 것 같은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제껏 그런 뉴스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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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내린 비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벗어두었던 내복을 다시 꺼내 입고 한강 따라 걷기에 나섰습니다. 산본 집에서 이번 한강탐방의 출발점인 덕소역까지는 전철로 이동했습니다. 십수년전만 해도 덕소역은 운길산과 예봉산을 등산하노라 자주 들렀던 곳입니다.

 

  아침 921분 덕소역을 출발했습니다. 덕소역에서 하차해 한강 우안의 자전거 전용도로까지는 걸어서 5분이 걸렸습니다.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으며 처음 만난 다리는 남양주시의 덕소와 하남시의 미사리를 잇는 미사대교입니다. 미사대교를 지나 삼패공원의 자작나무 숲에 이르러 잠시 숲길을 걸었습니다. 한창 산에 빠져 백두대간과 정맥을 종주할 때 자주 보았던 자작나무를 강변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습니다.

 

  나무껍질에 기름 성분이 있어 수피를 태울 때 자작자작소리가 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자작나무는 사스레나무와 더불어 백두산의 대표적인 수종입니다. 백화목이라 불리기도 하는 자작나무는 우리 민족의 시원점인 바이칼호 주변에 자생하는 한대림의 수종입니다. 이 나무는 옛날 왜가 김알지 왕이 계림에서 백화목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하여 신라를 백국이라 칭했을 정도로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아주 친근한 나무로 알고 있습니다. 남한 땅 고산에서 자주 보았던 나무는 정확히 말해 자작나무가 아니고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인 거제수나무였습니다. 희미하나마 표피에서 붉은 기가 엿보이는 거제수나무는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 수피와 이른 봄에 채취하는 수액으로 잘 알려진 나무입니다.

 

  삼패공원을 지나 홍릉천을 건너서는 시계반대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흘러 내려가는 한강과 헤어져 자전거 길을 따라 올라가 나지막한 구릉의 미음나루고개에 다다랐습니다.

 

  1052분 수석리토성을 둘러보았습니다. 미음나루고개에서 오른쪽 구릉 위로 올라가 조선조 최고의 성군인 세종의 정치적 스승 조말생(趙末生)의 묘지를 찾아갔으나, 녹색철조망으로 울타리가 쳐져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사지만 찍고 인근의 수석리토성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 수석리토성(水石里土城)은 통일신라말부터 고려 초기까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흙으로 쌓아 만든 군사 유적입니다. 서쪽으로 아차산과 남쪽으로 이성산이 보이는 수석리토성은 앞에 한강의 미음나루가 있어 예부터 교통에 있어 중요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산 보루 및 역촌토성과 함께 한강의 미음나루를 감싸고 있는 이 토성은 한강의 조운 시설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아 만든 보루 유적으로 보인다고 안내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석리토성을 출발해 수석한강공원에 이르자 파크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보였습니다. 낙동강과 달리 수변공원의 폭이 넓지 않은 한강을 따라 걸으며 파크골프장은 거의 보지 못해쑈습니다. 파크골프장이 들어선 수석한강공원을 지나 만난 하천은 한강의 제1지류인 왕숙천(王宿川)입니다.

 

  왕숙천은 한북정맥의 수원산에서 발원해 여기 구리시 토평동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전장 약37Km의 지방하천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상왕 시절 인근 팔아리 일대에서 여러 날 유숙해 이름 붙여진 왕숙천은 여기 합류점에서 남양주시와 구리시를 가르는 시계(市界)이기도 합니다.

 

  1236분 강동대교를 지났습니다. 왕숙천/한강의 합류점에서 왕숙천을 거슬러 올라가 합수머리 세월교를 건너자 우뚝 솟은 구리타워가 가까이 보였습니다. 합류점으로 돌아가 강동대교를 지나자 주탑에서 직접 비스듬히 뻗은 케이블로 교량 상판을 지탱하는 사장교인 고덕토평대교의 케이블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습니다. 한강이 국가하천임을 알리는 안내판에 적힌 기후환경에너지환경부는 작년 10월 정부조직개편으로 환경부에서 에너지정책기능을 이관받아 출범한 부서입니다. 영문명칭이 Ministry of Climate, Energy and Environment인 이 부서가 AI가 발전을 주도하는 미래사회에서 원활한 에너지공급 문제를 도맡아 해결해야 하는데, 환경과 기후를 다루는 부서에서 에너지문제를 함께 맡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는 두고보고자 합니다.

 

  넓게 터 잡은 구리한강시민공원을 지나는 동안 8호선전철 철교를 거쳐 구리암사대교에 이르렀습니다. 타원을 그리며 차량이 출입하는 구리시 쪽의 교차로는 현란해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구리암사대교를 지나 건넌 작은 하천은 지도에 유입수로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유입수로란 댐이나 저수지 구조물에서 저수지물을 조절부로 유도하는 수로를 이른다고 합니다. 이 유입수로와 이어지는 구리시수택동의 장자못은 인공호수로 한강 원수와 고도처리된 하수를 유입수로를 통해 공급받아 수량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시간이 넉넉지 못해 우각호였던 장천호수공원을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구리암사대교 아래 자전거쉼터에서 보온병의 따끈한 커피를 따라 마시며 잠시 쉬었습니다.

 

  1358분 광진구에 이르러 서울시에 첫 발을 들였습니다. 아천빗물펌프장을 거쳐 한강하구 60Km 전방지점을 막 지나 잠시 멈춰서서 이제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한낮의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눈 덮인 예봉산과 하얀(?) 케이블의 구리암사대교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강물이 유달리 파랗게 보이는 한강 우안의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 여기서부터는 서울특별시 광진구입니다.”라는 안내판을 보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총3 0회에 걸쳐 약440Km의 한강을 따라 걸어 서울시에 발을 들이기까지 제가 걸어서 지난 시() ()은 강원도의 태백시, 삼척시, 정선군, 평창군, 영월군, 충청북도의 단양군, 제천시와 충주시, 강원도의 원주시, 경기도의 여주시, 양평군, 남양주시, 구리시 등 3개도 13개시군(市郡)에 이릅니다.

 

  머리 위로 워커힐 호텔이 보이는 한강북자전거길을 지나며 바라본 곳은 강 건너 수변공원입니다. 1968년 대학교에 들어가 맞는 첫 여름방학 때 고교 동기 및 선배 몇이 찾아가 수영을 했던 곳이 바로 지금은 수변공원이 들어선 광나루모래사장입니다. 그때 함께 마셨던 맥주가 난생 처음으로 마신 맥주여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나 봅니다.

 

  광진교, 8호선전철 철교, 천호대교를 차례로 지나자 한강 우안의 강변에 다소곳이 자리한 버드나무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직은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지 않아 새싹이 움트지 못한 버드나무들을 보노라니 저 나무들이 조만간 겨울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호대교를 지나 눈길을 끈 것은 올림픽대교입니다. 광진구 구의동과 송파구 풍납동을 연결하는 올림픽대교는 이름 그대로 1988년에 개최된 서울올린픽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다리입니다. 국내 최초의 콘크리트 사장교인 이 다리의 길이가 1,470m에 달한다는 것은 서울시를 흐르는 한강이 얼마나 넓은가를 일러주는 지표라 하겠습니다. 이 다리의 주탑 상부에 설치된 올림픽상징물인 영원한 불은 횃불 모양의 조형물입니다. 2001년 서울시의 요청으로 이 조형물을 설치하다 육군의 헬기가 충돌해 추락한 사고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영광 속에 가려진 헬기조종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 올림픽대교를 지나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롯데월드타워 건물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지상123, 지하 6층 등 총129층으로, 건물 높이가 555m에 이르는 롯데월드타워는 세계 6위의 초고층빌딩으로 서울시의 랜드마크라 하겠습니다.

 

  1513분 잠실대교를 다리 아래로 지났습니다. 얼핏 보아 발사를 기다리는 미사일처럼 보이는 롯데월드타워는 올림픽대교를 지나 잠실대교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위용에 압도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잠실대교 바로 아래에 설치된 잠실수중보는 신곡수중보와 더불어 한강에 설치된 단 두 개의 수중보 중 하나입니다. 이 수중보는 물속에 설치된 데다 강변 접근이 허용되지 않아 실물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986년에 완공된 잠실수중보는 총길이가 873m, 잠실에서 김포까지 약38Km 구간의 수위를 평균 2.5m로 유지하는 기능을 맡아 한다고 합니다. 수질오염을 우려해 철거를 약속한 진보 쪽의 서울시장이 시장에 당선된 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것은 한강 수중보의 순기능이 역기능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판단해서였을 것입니다.

 

  잠실대교를 지나 한강에서 윈드서핑(windsurfing)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보았습니다. 천리가 넘는 한강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조정이나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은 몇 차례 본 적이 있지만, 오직 보드 위에 세운 돛대로 바람을 받아 물 위를 이동하는 윈드서핑을 서울에 이르러서야 처음 본 것은 이 스포츠가 아직은 대중화되어 있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서울로 접어들어 한강의 양안에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것을 보아도 답답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은 것은 파리의 세느강처럼 도심을 흐르는 다른 나라의 어느 강보다 강폭이 넓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동대교를 지나 육지와 연결된 수상구조물인 동서 양쪽의 르엘캐슬갤러리의 외관이 모두 유리로 덮여 있어 독특해 보였습니다.

 

  청담대교가 지나는 자양역에서 한강 따라 걷기를 마치려는 계획을 바꾸어 5Km 가량 떨어진 옥수역까지 가보겠다고 결심하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1656분 성수대교를 지났습니다. 영동대교를 지나 성수대교에 이르자 32년 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생각났습니다. 19941021일 아침에 이 교량의 상부 트러스가 무너지면서 차량들이 강으로 추락해 등교길의 학생들과 출근길의 회사원들이 32명이나 사망한 성수대교붕괴사건은 시공사의 부실공사와 관계공무원의 감독부실이 빚어낸 후진국형의 대참사였습니다. 인근에 서울 숲이 조성되고 한강버스가 다니는 뚝섬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격세지감이 었습니다.

 

  성수대교를 지나 다다른 곳은 한북정맥이 지나는 양주의 불곡산에서 발원한 중랑천이 약35Km를 흘러 한강으로 흘러드는 중랑천/한강의 합류점입니다. 웬만한 강에 못지않게 하천 폭이 넓은 중랑천 위에 놓인 다리는 자전거길 전용의 중랑천교입니다. 이 다리가 살곶이다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살곶이다리가 이 부근의 살곶이벌에 세워진 것은 살곶이다리 안내판에 적힌 아래 안내문을 읽어보면 틀림없어 보입니다.

 

  “조선을 세운 태조는 막내아들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다섯째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임금이 되면서 태조와 태종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이 갈등 끝에 태조는 함흥으로 떠나지만, 결국 충신들의 말에 마음을 바꿔 한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중 나온 태종을 보고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 태조는 태종에게 화살을 쏘게 됩니다. 그런데 태종이 날렵하게 화살을 피하고, 태조는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며 태종을 왕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 후로 이곳을 화살이 꽂힌 벌판이라 하여 '살곶이벌'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중랑천교를 건너자 전철로 오가면서 숱하게 보았던 응봉의 바위들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1758분 옥수역에 도착해 서른 번째 한강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중랑천교를 건너 중랑천/한강의 합수머리에 이르자 처음 보는 새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어 놀랐습니다. 이 새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합수머리가 붐볐습니다. 강 위를 나는 새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갈매기 같은데,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들이 이 먼 곳까지 날아올 리가 없다고 생각해 다른 분께 여쭈어, 저 새는 갈매기의 일종으로 텃새가 아니고 철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울 시내 한강에 갈매기가 날아다닌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수천 마리의 갈매기가 서울의 한강에 머물며 겨울을 낸다는 것이 더욱 신기했습니다. 합수머리 강물 위에 일직선의 띠를 이루어 모여 있는 새가 재갈매기라는 것은 이곳에 서식하는 새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의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바다 갈매기보다 몸체가 작아 보이는 재갈매기도 흰색을 띠고 있어 강물 위에 모여 있는 모습이 보다 확연히 보였습니다.

 

  몇 번이고  사진 찍고서도 발걸음을 뗄 수 없어 한참 동안 재갈매기들을 응시했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청계천이 중랑천에 합류하는 곳에서 여기 중랑천 끝머리의 합류점까지 중랑천하류철새보호구역으로 선정해 관리하는 뜻이 이해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양평의 갈산에 세워진 삼연 김창흡의 시비 過葛山風日甚美(과갈산풍일심미)에 나오는 鳧鷺(부예)’를 오리와 갈매기로 번역한 것은 오역 같다고 지적했는데, 제 지적이 틀렸습니다. 겨울 철새 재갈매기가 양평보다 더 먼 한강 상류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김창흡의 시문에 나오는 ()는 바다 갈매기가 아닌 재갈매기인 것 같아 이에 오역일 것이라고 말한 제 지적을 삭제하고자 합니다.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 옥수역나들목에 도착해 지근거리의 옥수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이촌역으로 이동해 4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저녁 7시를 조금 넘어 산본 집에 도착해 5만보를 넘겨 걸은 것을 확인하고 나자 제게 건각을 물려주신 부모님이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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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 강으로 인해 발달했던 새로운 사업 중 가장 으뜸인 것은 뗏목을 이용해 떼돈을 벌었던 사업이라 하겠습니다과학저술가 이성규 님은 그의 논고 강과 뉴 비즈니스에서 한강을 이용해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어 한양으로 운송한 일을 아래와 같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는 대궐이나 반상가의 건축자재로 강원도 지역의 품질 좋은 소나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소나무의 통나무 도막 200개 정도를 엮으면 길이 30m, 4-5m 정도의 한 바닥이 되는데 뗏목은 보통 세 바닥을 이은 것이어서 그 길이가 100m를 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설악산, 대암산, 가리산, 방태상 등지에서 벌채한 원목은 인북천과 내린천에다 띄운 후 인제읍 합강에서 원목을 수거하여 뗏목으로 엮어 한양으로 보냈고, 정선에서 벌채한 원목은 동강 상류와 조양강을 거쳐 남한강을 통해 한양으로 보내졌습니다. 물살이 세고 위험한 여울이 많아 뗏목을 몰고 한양에 무사히 도착한 떼꾼들은 뗏목 사업으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 “떼돈 번다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뗏꾼들이 뗏목으로 떼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뗏목을 띄우는 강물이 다른 나라를 거치지 않고 한 나라만 흘러 가능했을 것입니다.

 

  노비에서 면천된 천재 시인 정초부(鄭樵夫, 1714-1789)는 양평의 월계에서 나무를 해다가 한양에 내다 팔았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100리 길의 한양까지 나뭇짐을 지고 걸어갔는가, 아니면 배에 싣고 갔는가입니다. 만약에 배에 싣고 갔다면 정초부 또한 한강을 이용해 삶을 꾸려간 것인데, 뱃삯이 만만치 않아 배로 실어 나르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틀 동안 꼬박 걸은 길을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한양으로 가서 얼마나 받았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