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한강 따라 걷기

한강 따라 걷기31(옥수역-여의도선착장-방화대교)

시인마뇽 2026. 3. 15. 22:30

탐방구간: 옥수역-여의도선착장-방화대교

탐방일자: 2026. 3. 14()

탐방코스: 옥수역-옥수선착장-압구정선착장-여의도선착장-당산철교

                -성산대교-가양대교-방화대교-방화역

탐방시간: 1022-177(6시간50)

동행       : 나 홀로

 

 

  18년 전인 2008년 여름에 경기도 파주의 반구정을 들렀을 때 임진강의 강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는 반구정에서 가까운 한강하구에서 바닷물이 밀려와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이번에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들른 안양천/한강합수부에서 안양천을 거슬러 밀려오는 한강물을 보았습니다. 이 또한 이곳에서 멀지 않은 한강하구에서 서해의 조류가 밀려오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18년 전에 반구정에서 보았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천의 하구부에서 밀물과 썰물의 영향으로 수위가 주기적으로 오르내리고 바닷물이 역류하는 구간을 감조구간(感潮區間)이라고 합니다. 이 구간에서는 강물의 담수(淡水)와 바닷물의 염수(鹽水)가 섞여 염분이 포함된 기수((汽水, brackish water)를 형성하기 때문에 독특한 생태계가 만들어집니다.

 

  최근 6년간 제가 따라 걸은 강은 낙동강, 한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과 한강의 제1지류인 임진강 등입니다. 이 강들 하구에 하굿둑이 축조되거나 보가 설치되기 전에는 모두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역류해 들어왔습니다. 강 하구에서 바닷물이 내륙으로 밀려 들어오는 지점까지의 감조구간은 낙동강은 삼량진까지, 한강은 노량진까지, 금강은 부여까지, 영산강은 영산포까지, 섬진강은 화개장터 인근까지, 임진강은 연천군의 군남까지였습니다.

 

  정부는 바닷물의 역류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고, 농경지의 염분 피해를 줄이고자 낙동강, 금강, 영산강 하구에 하굿둑을 쌓았습니다. 한강하구에는 하굿둑을 축조하지 않았으나 신곡과 잠실에 수중보를 세워 바닷물의 역류를 줄이고 한강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조구간의 변화가 없는 강은 댐이나 보가 감조구간 밖의 상류에 설치된 섬진강과 임진강 뿐입니다.

 

  섬진강을 따라 걸으며 하구에서 멀지 않은 하동의 강변에서 엄청 긴 모래사장을 볼 수 있는 것도 하구에 하굿둑을 쌓지 않아 모래사장이 물에 잠기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임진강의 감조구간에서 황복이 많이 잡히는 것도 이 구간의 강물은 담수와 염수가 섞여 있어 횡복이 자라기 좋아서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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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평일에 한강 따라 걷기에 나서 출근 시간을 피해 아침 9시에 산본 집을 출발했습니다. 산본역에서 1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옥수역에서 하차해 강변으로 내려갔습니다. 동호대교 아래 햇볕이 닿지 않는 그늘진 곳에 이르자 차디찬 강바람이 불어와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오전 1022분 옥수역을 출발했습니다. 옥수역에서 가양역까지 한강을 따라 걷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옥수역에서 여의도까지는 배를 타고가고, 여의도에서 가양대교를 지나 방화대교까지 한강을 따라 걷기로 하고 바로 아래 한강버스옥수선착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서울시의 안내에 따르면 한강버스란 서울시가 한강의 물길을 활용해 도입한 친환경 수상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출퇴근 정체 없이 한강 위를 가로지르며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교통 대안이자, 한강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관광 자원으로 기획된 한강버스는 마곡, 망원, 여의도, 옥수, 압구정, 뚝섬, 잠실 등 총 7개 선착장을 연결해 운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착장에 정차하는 일반 노선과 마곡-여의도-잠실 구간을 빠르게 연결하는 급행 노선이 있는데, 제가 이번에 승선한 것은 옥수역에서 여의도 구간을 운행하는 일반노선의 한강버스였습니다.

 

  선착장 안으로 들어가 한강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 어지러웠던 것은 선착장 건물이 강물위에 떠 있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10분가량 기다려 1041분에 옥수선착장을 출발하는 여의도행 한강버스에 승선했습니다. 승선정원이 199명인 제법 큰 한강버스가 압구정역선착장을 들러 여의도선착장에 다다르는데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배 안에서 내다보는 강변 풍경 중 눈길을 끈 것은 한강 북안의 한남동에 들어선 언덕 위의 하얀 집들입니다. 한강의 강폭이 넓어 이 집들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탁 트여 보여 세느 강변의 고택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시원해 보일 것 같습니다. 강 건너 반포대교 남단에 둥둥 떠 있는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 ‘세빛섬과 남쪽 멀리 보이는 관악산, 노들나루 언덕에 자리한 사육신 묘역, 육중한 교각의 한강대교와 한강철교는 카메라에 옮겨 담았지만, 조선 초기의 권신인 한명회(韓明澮)가 지은 누정 압구정(狎鷗亭)의 옛터는 어디인지 몰라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압구정선착장에서 조금 내려가자 한강남안의 노들나루 언덕에 조성된 사육신묘역의 의절사(義節祠)가 보였습니다. 조선 국왕 정조는 1795년 부친인 사도세자 묘소인 헌륭원에로 능행차를 위해 사육신 묘역 아래 노들나루에 배다리를 부설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우리 국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노들나루 근처의 한강대교를 폭파했습니다. 노들나루 언덕에 묻힌 사육신은 그 아래에서 일어난 배다리의 부설과 한강 대교의 폭파를 지켜보고, 역사적 의미를 새겼을 것입니다.

 

  1127분 여의도선착장에서 하선했습니다. 제가 여의도 땅을 처음 밟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65년 가을 월남에 파병되는 맹호부대 장병들의 무운을 비는 여의도 환송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후 1990년대 중반에 몇 년간 여의도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지금은 40대 후반의 두 아들이 은행과 증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여의도가 그다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여의도한강공원의 귀여운 두 어린이 조각상을 사진 찍고서 이번 탐방의 끝점인 방화대교로 향했습니다. 마포대교 아래를 출발해 서강대교를 지나자 국회의사당의 돔 지붕이 보였습니다. 여의도순환구조대 건물과 해양경찰 건물을 차례로 지나 버드나무 가지들이 연두색을 띠어 봄기운이 감도는 강변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강 건너 북쪽 멀리 북한산의 비봉이 보일 만큼 쾌청해 강북의 수변 풍경을 조망하기에 좋았습니다. 바다의 만(bay)처럼 움푹 파진 곳에 정박해 있는 요트들을 보노라니 한강은 윈드서핑뿐만 아니라 요트의 요람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사당의 바로 뒤를 지나 한강하구 전방36Km 지점에 이르자 당산철교가 바로 앞에 보였습니다.

 

  134분 당산철교를 지났습니다. 당산철교 건너 한강 북안의 절두산순교성지가 자리한 곳은 양화진입니다. 양화진의 절두산순교성지와 노량진의 사육신묘역은 의로운 죽음을 기린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사육신묘역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해 1456년 단종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이 묻힌 곳이고, 절두산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신자들의 목이 잘려 순교한 곳입니다. 저는 두 곳 다 방문해 참배했고, 절두산순교성지에서 지근 거리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도 작년 봄에 들렀습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다리 위 한강전망대 선유카페를 들러 따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여유를 즐겼을 텐데 그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선유도공원에 닿게 되는데, 이 공원은 9년 전 고교동창들과 함께 탐방해 우산을 펴 들고 빗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선유카페를 지나 다다른 양화선착장은 지은지가 오래 되어서인지 한강버스선착장만큼 깔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강하구 전방34Km 지점의 성산대교를 지나자 강 건너 상암구장이 잘 보였습니다. 2002FIFA월드컵 개최를 위해 건설된 상암구장은 축구전용구장으로, 정식 명칭은 서울월드컵경기장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이제껏 상암구장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만, 머지않아 인근의 박정희기념관을 탐방할 뜻이어서 그때 한번 들러볼까 합니다. 사장교인 월드컵대교 남단의 염창분기점을 지나자 비봉만 살짝 보여주었던 북한신이 온몸을 드러내 인수봉과 백운대도 잘 보였습니다.

 

  142분 안양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안양천합수부에 다다랐습니다. 월드컵대교에서 멀지 않은 안양천합수부는 6년 전인 2020년 가을에 안양천을 따라 걷는 길에 왔다 간 적이 있습니다. 의왕시의 지지대고개 아래에서 발원한 안양천은 30Km를 흘러 안양천합수부에 이르기까지 작은 지류들의 물을 모아 세를 불려 왔기에 서해의 바닷물에 밀리지 않고 버텨 여기 합수부에서 한강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안양천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밀려 얼마간 거꾸로 흐르는데 이번에도 그런 현상을 목도했습니다. 저 아래 한강 속에 신중수곡보가 설치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는 현상은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안양천 합수부를 지나 한강 남안의 강변 길을 따라 걸으며 자주 눈길을 준 것은 한강 북안의 난지도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형이 크게 변한 것을 일러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합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만큼 크게 변화된 것은 난지도가 아닌가 합니다. 난지도는 1978년부터 15년간 서울시의 쓰레기매립장이었다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기념해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서울시의 상상력과 집행력이 빼어나다는 것은 난지도의 쓰레기장을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등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가 힘들여 조성한 난지도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한국환경자원공사 환경사랑홍보교육관 건물을 사진찍어 왔습니다. 가양대교를 막 지나 한강하구전방30Km 지점에 이르자, 70대 중반의 나이에 한강을 따라 460Km를 묵묵히 혼자 걸어온 제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32분 한강버스마곡 선착장을 지났습니다. 한강공원의 공암나루에 이르러 안내판에 실린 우애 깊은 형제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 형제가 길을 같이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줍습니다. 공암나루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아우가 금덩이를 강물 속으로 던져버립니다. 형이 그 까닭을 묻자 아우는 금덩이를 주워 형님과 나눠 가진 뒤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생겼다고 답합니다. 이 답을 들은 형도 가지고 있는 금을 강물에 던져버립니다. 형제가 금을 던진 여기 가양2동 한강변의 공암나루 인근 여울을 투금탄(投金灘)이라 부르는 것은 형제가 금을 던진 여울이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안내문은 전하ㅣ고 있습니다.

 

  이런 설화가 아직도 교훈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주운 금덩어리는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했고,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팔아서 조성한 돈으로 농지를 구입하거나 사업을 일으켜 새롭게 부를 키워나가야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더할 수 없이 고귀한 자원인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 누구도 쓸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고액권의 지폐 몇 백장을 불 속에 던져 태워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형제애를 지키기 위해 남이 잃어버린 금덩어리를 주워 잃은 주인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강물로 던져버리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이 취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강버스마곡선착장을 지나자 가까이로는 행주산성이 들어선 해발 125m의 덕양산이, 멀리로는 북한산의 최고봉인 해발836m의 백운대가 잘 보였습니다. 인천국제공항철도의 마곡나루역과 디지털미디어역을 잇는 마곡대교를 지나며 이 다리 위를 전철이 다니는 것을 보고 마곡대교가 철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곡대교는 한강에 놓은 다리 중 가장 긴 다리로 그 길이가 무려 2.9Km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한강이 일본 도쿄의 수미타강이나 프랑스 파리의 세느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음을 말해주는 것인데, 이토록 넓은 한강이 강물로 가득 차 더욱 넓어 보였습니다.

 

  177분 방화역에 도착해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마곡대교를 지나 한강전망데크에 오르자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줄을 이은 것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전망데크에서 내려가 복귀한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며 눈여겨 본 것은 강 건너 먼발치의 한북정맥과 그 지맥인 한북오두지맥입니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북한의 식계산 분수령에서 시작해 남한 땅 파주 교하의 장명산에서 끝나는 한강의 북쪽 둘레 산줄기로, 그 길이는 도상거리 기준으로 약220Km에 달합니다. 제가 두 차례 종주한 한북정맥은 남한 땅 대성산에서 장명산까지로 그 길이는 160Km가 조금 더 됩니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합류점의 오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한북정맥이 아니고 한북정맥의 한강봉과 챌봉 사이에서 분기해 오두산으로 뻗어나가는 도상거리 32Km의 한북오두지맥으로, 2005년에 한번 종주한 바 있습니다. 북한산과 노고산을 지나 북쪽으로 우뚝 솟은 산은 제가 태어난 파주 광탄의 고령산으로 한북오두지맥의 산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아 해발고도가 622m나 됩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한강의 북쪽 유역을 이루고 있는 둘레산줄기는 분수령-한강봉/챌봉 중간분기점까지는 한북정맥이고, 한강봉/챌봉 중간분기점-오두산까지는 한북오두지맥입니다.

 

  방화대교에 이르자 덕양산의 행주산성이 보다 가깝게 보였습니다. 강서한강공원에 다다라 잠시 쉰 후 정곡나들목으로 빠져나가 서울물재생시설공단서남센터를 지났습니다. 정곡초교를 지나 5호선 종점인 방화역에 도착해 영등포시장역으로 이동, 중학교동창을 만나 저녁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하루 여정을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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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회의 한강 탐방 중 이번이 가장 활기찼다고 생각한 것은 한강 위를 오가는 배들이 가장 많이 보여서입니다. 그 배들은 최근에 운항을 시작한 한강버스이거나, 아주 오래 전부터 한강을 오르내리기 시작한 유람선들입니다. 또 하나 다리 위로 전철이 강을 건너다니는 것은 서울의 한강이 아니고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어서 더욱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험난한 산곡(山谷)이 많은 육지에 도로를 내기가 쉽지 않아 수레로 운송할 만큼 육로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변남주 교수는 저서 영산강 뱃길과 포구연구에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고래로부터 육로보다는 해로가 교통의 중심이 되어 왔다고 밝혔습니다. 해로가 교통의 중심이었다면 나루와 포구가 발달했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입니다.

 

  수운을 주목적으로 하는 해선(海船) 도는 조운선(漕運船)을 강에서 운항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조수(潮水)의 감조구간(感潮區間)입니다. 감조구간이란 밀물과 썰물이 영향을 미치는 강의 구간을 뜻하는 것으로 배를 띄우는데 매우 중요한 강물의 깊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88년 김포의 신곡에 수중보를 설치하기 전에는 한강의 감조구간은 한강하구에서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오는 노량진까지였다고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우용객원교수는 논고 한강과 황해가 만난 역사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교하 하류부터 한강하구까지를 이르는 조강을 전라도 및 충청도에서 서울로 운반하는 세곡선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고 했습니다. 바닷길로 강화에 도착한 세곡선들은 통진에서부터 한강을 거슬러 운항하여 서강, 마포, 용산 등지의 강항에 도착했는데, 이 뱃길은 한반도에서 가장 긴 내륙 수로였다고 합니다. 조강을 거쳐 한양 남쪽구간인 경강에 이르는 강하선(江下船)과 충주와 원주에서 출발하여 경강에 이르는 강상선(江上船)의 돛대의 개수가 다른 것은 바닷물의 역류를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바람의 힘을 많이 이용해야 했던 강하선은 돛이 두 개였고, 주로 노의 힘을 빌렸던 강상선은 돛이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감조구간은 배의 운항에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양이 대도시가 되고 한강에 조운선과 상선의 왕래가 빈번해짐에 따라 경강상류부터 조강까지 송파진, 마포진, 조강진 등 20여개의 나루터가 있었다고 합니다.제가 이번에 걸은 옥수역-여의도선착장-방화대교에 이르는 구간의 한강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배들이 오갔을 조선시대가 훨씬 더 활기찼을 것 같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