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26. 3. 26일(목)
탐방지 : 경기도김포시 소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동행 : 나 홀로

전망대에 올라 북한 땅을 바라보노라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는 눈앞의 북녘땅이 지금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북한의 땅이지만 언제인가 남북이 통일되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우리의 산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고향 파주에서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는 오두산의 통일전망대가 있습니다. 임진강이 한강에 합류되는 합류점의 오두산에 자리한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북한 땅과 조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두산은 1963년 봄 제가 다닌 문산중학교의 2학년생과 서울의 경기여고 2학년 누나들이 함께 풍선에 꽃씨를 매달아 북한 땅으로 띄워 보내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 방문했었습니다. 그 당시 오두산은 민통선 안에 있어 외지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1992년 오두산통일전망대가 문을 연 후 에야 몇 번 들러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땅을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는 경기도 파주시의 오두산통일전망대 외에도 김포시의 애기봉전망대, 인천시 강화도의 평화전망대와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전망타워 등이 더 있습니다. 강화평화전망대는 2008년 가을에, 고성통일전망타워는 1998년 여름에 다녀왔으며, 남은 한 곳인 김포의 애기봉전망대는 이번에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들렀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애기봉전망대는 경기도 김포시의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 · 북 공동 이용수역(Free-zone)에 위치하여 평화와 화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잇기 위해 흐르는 조강과 같이 한강하구의 평화 의지를 잇는 공간이라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공원 안에 자리한 애기봉은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154고지입니다.
1978년에 설치되어 노후화된 기존의 애기봉 전망대를 철거하고 애기봉평화생태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해 개관한 것은 2021년10월7일의 일입니다. 이 공원에는 1.4Km 앞에 펼쳐진 북한 개풍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최단 거리 전망대인 ‘애기봉전망대’, 평화와 생태, 미래를 테마로 한 공간인 ‘평화생태전시관’, 다섯가지 테마야외정원으로 몸과 마음의 쉼을 통해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인 ‘주제정원’, 전시관과 전망대를 이어주는 탐방로로 다양한 각도에서 조강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뷰의 ‘생태탐방로’, 그리고 한국전쟁 순국해병대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해병대전적비’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한 건축물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평화가 가진 다양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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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산본 집을 나서 김포골드라인의 운양역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6시56분입니다. 운양역에서 하차해 전류리포구로 가는 버스를 탄 것은 ‘dmz평화의 길’의 3코스인 전류리포구-애기봉입구 구간의 한강을 따라 걷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전류리포구를 출발해 13시50분 ‘dmz평화의 길’ 3코스의 출발점인 애기봉입구에 다다르기까지 6시간20분이 걸렸습니다. 애기봉입구에서 5-6분을 더 걸어 애기봉평화공원 입구인 해병대검문소에 이르기까지 걸은 전류리포구 –석탄배수펌프장-사암2리마을회관-마근포-가금리-한재당-애기봉입구-애기봉 평화생태공원입구 코스의 길이는 약 17Km에 달합니다.
14시2분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입구의 해병대검문소를 출발했습니다. ‘dmz평화의 길’ 3구간이 시작되는 애기봉 입구에서 멀지 않은 애기봉생태공원입구의 사무소를 들러 인터넷으로 예약한 입장권을 표로 바꾸었습니다. 이 표를 검문소에 제시하고 애기봉생태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것으로 애기봉평화생태공원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나뭇가지에서 잎이 돋지 않아 검문소에서 평화생태전시관에 이르는 산책 길이 조금은 스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민통선 안의 고적한 길을 혼자서 걸으면서도 전혀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귀신 잡는 해병대’가 이 일대를 지켜주어서였습니다. 1.5Km를 걸어가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의 주차장에 도착해 해병대김포지구전적비로 향했습니다.
1)해병대 김포지구 전적비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이 공원의 서쪽 끝에 자리한 ‘해병대김포지구 전적비’입니다. 1988년11월1일 해병대사령부가 건립한 이 비가 6.25 전쟁 당시 김포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해병대용사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념비라는 것은 아래 비문을 읽고 바로 알았습니다.
“김포지구 전투에서 수도 서울을 수호한 해병제1연대3대대 장병의 빛나는 무훈과 조국수호의 영령으로 산화한 해병용사의 숭고한 넋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그날의 전승터가 보이는 이곳에 정성들여 세웁니다.”
전적비에 이르는 계단을 오르며 확인한 것은 6.25전쟁 때 참전한 나라의 국명, 참전연인원, 전사자와 부상자 인원입니다. 영국의 참전연인원은 81,084명이고 그중 전사자는 1,106명, 부상자는 2,674명이며, 태국의 참전연인원은 6,326명이고 그중 전사자는 136명, 부상자는 1,139명에 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나라 이름도 제대로 몰랐을 극동아시아의 이역만리 먼 나라인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한 16개국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에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저는 해병대에 자원했으나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했습니다만, 작은형님의 3대는 해병대를 제대했거나 현재 복무 중인 해병대 가족입니다.
2)평화생태 전시관

해병대김포지구전적비를 둘러본 후 찾아간 곳은 2층 건물의 평화생태전시관입니다. 이 전시관에는 애기봉과 조강에 괸한 역사를 담고 있는 영상을 상영하는 영상관, 평화관, 8살 눈높이로 조강과 북한을 볼 수 있는 평화관, 조강주변 생태조형물과 작품이 전시된 생태관, 4면 프로젝션 미디어 아트의 미래관, 개성의 유적을 돌아보는 가상 체험관인 VR체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침 일부 전시관이 내부 수리 중이어서 다소 어수선했습니다.
평화생태관을 둘러보며 눈여겨 본 것은 조강의 어제와 오늘을 테마로 한 영상과 전시물입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일컫는 조강(祖江)은 오두산통일전망대 바로 아래 두 강의 합류점에서 시작됩니다. 바다가 시작되는 원조의 강', 또는 여러 강물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으뜸 강'을 뜻한다는 조강은 김포의 서쪽 바다와 동쪽 강물을 연결해 주는 수운 통로로서, 경상 · 전라 · 충청 등 삼남 지방의 물자와 인력들이 이곳을 거쳐 한양도성으로 운송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강녕포와 조강포, 마근포에 형성된 포구마을들은 세곡선과 어선이 쉼 없이 드나들며 물류와 상업이 발달했던 풍요로운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조강의 포구는 수로를 거쳐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만큼 외세의 침입으로 크게 피해를 입기도 했고, 6 . 25전쟁 때는 남북의 치열한 전투로 커다란 희생을 치렀으며, 이후 민통선이 그어져 많은 사람들이 오랜 생활 터전을 잃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 조강의 품 안에 자리한 김포는 한반도의 중심으로 조강과 함께 역사, 문화, 자연의 가치를 차곡차곡 쌓아온 곳이라고 영상물과 전시물은 말해주었습니다.
조강의 좌안 길은 거의 다가 민통선 안에 있어 저 같은 외지인은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습니다. 전장 23Km의 ‘dmz평화의 길’ 2코스를 다 걸었는데도 조강을 따라 걸은 것이 약 1 Km에 불과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평화생태전시관을 둘러본 후 잠시 쉬어간 곳은 이 전시관 뒤편에 조성된 주제정원입니다. 인피니티미러폰드, 스텝가든, 컬러풀가든, 선큰가등, 워터가든 등 5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 주제정원은 잠시 벤치에 앉아 서해로 흐르는 저 아래 조강의 물 흐름을 조망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3) 생태탐방로

평화생태전시관과 애기봉전망대를 이어주는 생태탐방로는 흔들다리와 스카이포레스트가든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시관과 스카이포리스트가든을 잇는 112m의 흔들다리를 건너 흔들다리와 전망대를 잇는 크리스마스를 모티브로 한 800m의 지그재그모양의 산책로를 걸어 오르는 중 거동이 불편해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내려오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배려해 산책로를 조성했기에 휠체어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새삼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생태탐방로를 걸어 오르는 중 눈길이 멈춘 곳은 서쪽 먼발치의 작은 섬 유도(留島)입니다. 경기도김포시월곶면보구곶리 산1번지에 위치한 유도는 한강하구 중립 수역에서 임진강과 예성강의 물줄기가 하나로 모이는 조강의 한 가운데 떠 있는 작은 무인도입니다. 면적이 18만m2로 축구장의 3배 정도 크기의 이 섬은 6 . 25 전쟁 후 사람이 살 수 없게 됐지만, 예전 세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바다와 맞닿은 기수역(汽水域)으로 다양한 생물들이 머물고 새들이 쉬어가는 유도에서 북녘에서 떠내려온 ‘평화의 소’가 구출된 것은 1996년 여름의 일입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유도가 남과 북이 연결되는 생명과 평화의 섬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평화의 소’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역이 가장 넓은 한강의 발원지가 강원도태백시의 검룡소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이 강의 종점인 한강하구가 저기 보이는 유도의 31m봉 정상에서 남과 북으로 그은 선(線)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습니다.
4) 애기봉전망대

애기봉평화생태공원 탐방객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은 애기봉전망대입니다. 애기봉전망대가 들어선 해발 154m의 애기봉((愛妓峰)은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남북 접경지역인 조강 기슭 한가운데 솟아 있습니다. 원래 이름이 쑥갓머리산으로 알려진 애기봉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평안감사는 사랑하는 애기(愛妓)와 함께 건너편 조강 유역까지 쫓겨 내려왔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 평안감사는 적들에게 잡혀 북으로 올라가고 애기만 홀로 강을 건너오게 됐다. 이후 애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쑥갓머리봉에 올라 돌아오지 않는 감사를 간절히 기다렸다. 결국 병들어 죽게 된 애기는 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이 봉우리에 자신을 선 채로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66년 이곳을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사연을 듣고 "애기의 한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 면서 이곳에 친필로 ‘愛妓峰’이라 쓰고 비석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여기 애기봉은 6 . 25전쟁 때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격전지입니다. 남북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154고지가 바로 애기봉입니다..
산책로를 벗어나 애기봉전망대에 앞서 들른 곳은 야외공연장, 평화의 종, 애기봉비 및 망배단입니다. 최신 음향장비와 조명시설을 갖춘 85석 규모의 야외공연장, DMZ철조망과 6 . 25전쟁 탄피로 만든 9m 크기의 평화의 종, 애기봉전설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을 볼 수 있는 애기봉비 및 망배단 등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이번 탐방의 최종 목적지인 애기봉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애기봉전망대는 북한의 개풍군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최단 거리의 전망대로, 그 거리는 1.4Km에 불과합니다. 2층 건물의 애기봉전망대에는 평화교육관과 전망대카페가 있습니다. 야외의 애기봉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한강의 끝점인 유도, 북한초소가 있는 두 마리 말 모양의 땅인 쌍마고지, 북한의 선전용 민간인 마을인 해물선전마을, 김신조사건의 실제훈련지인 관산포 등을 조망했는데, 제 고향 파주의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기봉전망대에 올라 조감한 것은 조강의 물줄기와 그 주변 풍경입니다. 소설가 김훈은 저서 『자전거여행』에서 조강의 풍경을 아래와 같이 스케취했습니다.
“백중사리에 조강의 밀물은 산맥을 압박한다. 강 건너가 북한 땅 개풍군 조강마을이고 강 이쪽이 남한 땅 김포시 조강마을인데, 그 사이로 군사분계선이 지나가서 지금 조강은 무인지경이다. 노을은 바람과 밀물과 썰물이 이 인적 없는 강을 드나든다.”
위 글을 담담하게만 읽을 수 없었던 것은 조강의 승경(勝景)에 덧붙여진 남북분단의 서사(敍事)가 너무 서글퍼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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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최전방에 위치한 애기봉전망대에 올라 조강을 조망하면서 떠올린 인물은 기녀(妓女) 인 애기(愛妓)입니다. 기녀 애기는 병자호란 때 북으로 끌려간 평안감사를 간절히 기다리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타계한 비운의 조선 여인입니다.
조선시대 시문을 지어 사대부와 통할 수 있었던 여인들은 거의다가 기녀들이었습니다. 기녀를 해어화(解語花)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 모시는 사대부들과 말이 통해서 그리했을 것입니다. 해어화란 말을 알아듣는 꽃을 이르는 단어로 중국 당나라 때 현종이 양귀비를 해어화라고 칭한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기녀들이 알아들어야 할 사대부의 말은 구어(口語)인 말뿐만 아니라 문어(文語)인 한문을 다 포괄해서 이르는 것입니다. 조선의 여성들은 거의 다가 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양반댁 규수들도 언문인 한글은 깨우쳤지만 한문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양반 부녀층이 창작한 규방문학(閨房文學)의 주가 한시(漢詩)가 아닌 가사(歌辭)였던 것도 한문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의 기녀들이 한시와 시조를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해야 그들이 모시는 사대부들과 말이 통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기녀 중에 뛰어난 문인이 다수 배출된 것은 이들이 언문과 한문을 모두 깨우쳐 가능했습니다.
조선의 기녀 애기(愛妓)의 애틋한 개인적인 한(恨)을 일천만 이산가족의 공적인 한으로 끌어올린 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은 애기의 한이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면서 154m봉을‘愛妓峰’(애기봉)이라 명명하고 비석을 세워 애기와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함께 달랬습니다.
<탐방사진>
1)잔류리포구 - 애기봉입구









2)애기봉평화생태공원 입구



3)해병대 김포지구 전적비


4) 평화생태 전시관





6)애기봉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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