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26년 2월 11일(수)
탐방지 : 경기도여주시소재 파사성
동행 : 나 홀로

우리나라 성곽을 처음 선보인 역사서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의 「조선전(朝鮮傳)」에 “한(漢)이 위만(衛滿)을 침공했을 때 왕검(王儉)에 이르니 우거(右渠)가 성을 지키고 있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기원전 2세기경에 이미 성곽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리지인 『팔도지리지』와 『동국지도』를 펴낸 세종 대의 문신 양성지(梁誠之, 1415-1482)는 저서『눌재집』에서 조선을 ‘성곽의 나라’ 라고 칭하면서 국방을 위해 성곽의 정비와 확충을 역설했습니다.
제가 AI에 물어 확인한 전국의 성터는 약 2,400여개로, 이 중 90% 이상이 산성(山城)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높은 산에 산성(山城)이, 야트막한 산에 토성(土城)이, 평지나 바닷가에 읍성(邑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성으로는 서울의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청주의 상당산성, 부산의 금정산성 등이, 토성으로는 서울의 풍납리토성과 몽촌토성 등이, 읍성으로는 홍성의 해미읍성, 승주의 낙안읍성과 고창의 고창읍성 등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주로 탐방한 성곽은 산성(山城)으로 백두대간과 9대 정맥 및 100대 명산을 산행하면서 둘러본 바 있습니다.
이번에 여주 땅을 흐르는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처음으로 탐방한 여주 파사성(婆娑城)은 그 규모가 작아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이번에 찾아간 파사성은 해발 230.4m의 파사산 정상부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안내판에 아래와 같이 소개되었습니다.
“이곳(파사성)은 한강의 수상 교통과 증부 내륙의 육상 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포대교 주변의 넓은 한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성의 둘레는 1,800m이고 최대 높이는 약 6.5m로 규모가 큰 편이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일부 구간은 최근에 복원했다.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주요 지점에는 치와 포루 터가 있으며, 동문과 남문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남문터에서는 문루의 팔각 주춧돌과 불에 탄 성문의 혼적이 확인되었다. 성안에서는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시기의 건물터가 확인되어 파사성이 오랜 기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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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30분에 여주역을 출발하는 상백리행 버스를 타려고 새벽부터 서둘렀습니다. 오전 6시경에 산본 집을 나서 판교역을 거쳐 여주역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여주역에서 961-2번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이동해 이번 한강 따라 걷기의 출발점인 상백1리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전9시5분 상백1리버스정류장을 출발해 찬우물나루터-이야기바위-상백교-계신리마애여래입상-강애산삼신당-이포보를 차례로 지난 후 이포보 공도교를 건너 13시38분 파사성연결 보도현수교 앞에 다다르기까지 4시간반 가량 여주의 한강인 여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13시40분경 여양로 위에 놓인 '파사성연결 보도현수교'를 건너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랜만에 산을 올라서인지 시멘트로 포장된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오르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보도현수교를 출발한 지 반 시간이 채 못되어 파사산성에 다다랐습니다.
파사산성은 개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석성에 세월의 때가 전혀 끼지 않아 외관이 깔끔해 보였습니다. 남문터를 지나 성안으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둥근 성곽이 보였습니다. 여기서 성곽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진행해, 동문터를 거쳐 파사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여주 파사성이 축성된 것은 6세기 중엽으로 추정됩니다. 여러 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발견된 유물이나 성벽의 쌓기 방식, 성문의 형태 등으로 볼 때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파사성은 신라 파사왕(婆娑王, 80~112년 재위)이 쌓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당시 이 지역이 백제 영역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름이 유사해 잘못 전해진 것 같습니다. 신라 파사왕 때 축성된 성곽은 여기 여주의 파사성이 아니고 신라의 왕궁인 경주의 월성(月城)입니다.
오늘의 파사성은 유성룡의 건의에 따라 승군 총섭 의엄이 승군을 동원하여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25)부터 3년에 걸쳐 개축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옹성과 장대, 군기소까지 갖춘 성곽으로 다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파사산 정상에 올라 저 아래 한강의 당낭리 섬과 '백로의 날개 위에 알을 올려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 이포보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성곽을 따라 남문터로 내려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개군면과 금사면 사이를 완만하게 S자를 그리며 흘러 내려가는 한강을 조망했습니다. 강 건너 금사리의 벌판은 금사천이 실어 나른 토사들이 커브를 그리며 흐르는 한강 물에 막혀 커브 안쪽의 양옆 강변에 쌓여 만들어진 전형적인 충적평야이다 싶어 눈여겨보았습니다. 남문터를 지나 보도현수교에 다다른 시각은 14시50분으로, 파사성을 다녀오는데 1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파사성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아름다워 고려 말의 이색과 조선 중기의 유성룡이 시를 지어 남겼다는데 시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보도현수교에서 한강 우안길로 내려가 한강 따라 걷기를 이어가는 것으로 여주 파사성 탐방을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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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파사성은 1977년 국가사적 제251호로 지정된 이래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총 8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발굴 조사를 통해 납작한 돌로 외벽과 내벽을 쌓고 그 사이를 길쭉한 돌로 채웠다는 것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 성문과 덧댄 성벽 등이 특징으로 확인되었다고 파사성 안내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성문이란 성벽으로 폐쇄되는 성 내부를 외부와 연결하는 시설로, 일반적으로 성에는 동서남북에 성문이 자리해 왔습니다. 파사성에는 동쪽과 남쪽의 문터 등 두 곳에 성문이 있는데, 동문터와 남문터는 조선시대에 개축된 것입니다. 원래 사다리를 이용해서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 성문이었던 남문은 조선시대에 다시 쌓으면서 성벽의 바깥쪽을 성문의 높이까지 흙을 쌓아 원만한 경사면을 만들어 성문의 출입이 한결 쉬워졌습니다. 성 내부에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지어진 건물터가 남아 있고,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주거지와 구들 시설, 몸을 저장하는 시설과 우물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성벽에 딸린 시설로는 동벽 남쪽과 남문터 서쪽, 북벽 서쪽의 성벽이 돌아가는 세 곳에 설치한 치와 포루터가 있습니다. 치(雉)는 곡성이라고도 하며 성벽에서 적의 접근을 관찰하고 전투 시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물리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킨 구조물을 말합니다. 반원형의 치는 경기도 지역에서는 파사성에서 최초로 확인되었습니다. 포루(砲樓)는 치 위에 누각을 두고 대포를 쓸 수 있게 만든 사설로 삼국 시대의 치를 조선시대에 포루로 다시 지은 것이라 합니다.
<팀방사진>
1)상백1리-이포나루터






2) 이포보-파사성-이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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