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41
*대간구간:댓재-두타산-청옥산-연칠성령
*산행일자:2005. 9. 4일
*소재지 :강원삼척/동해
*산높이 :두타산 1,353미터/청옥산 1,404미터
*산행코스:댓재-통골재-두타산-청옥산-연칠성령-무릉계곡
*산행시간:11시47분-19시25분(7시간38분)
*동행 :송백산악회
댓재에서 시작된 대간 길을 가득 채웠던 운무가 연칠성령에서 대간 종주를 마치고 칠성폭포로 내려서자 점차 가시는 가 했더니 문간재를 넘어서부터 짙게 드린 어둠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확인하고 기록해야 성이 차는 제가 어제는 안개가 짙게 깔려 겨우 주요 지점을 통과한 시간만을 기록했기에 이번에는 산행기 쓰는 일이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얼굴의 전면에 위치한 눈이 양 측면에 자리한 귀보다 더한 대접을 받는 것은 자리 값이 다르기에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눈으로 한번 보는 것이 귀로 백번 듣는 것과 같다는 동양의 금언이나 같은 뜻의 “To see is to believe"라는 서양 속담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보다”로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행위를 확인하고자 할 때 뒤 끝에 ”보다“를 붙여 눈의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나봅니다. 들어보다, 느껴보다, 맛보다, 생각해보다 등은 실제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다”라는 단어를 붙여 형상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는 안개에 가려 두 눈으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대간 길의 두타산과 청옥산을 들어보고 느껴보고 맛보아 저 나름대로 형상화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를 이렇게 산행기로 올립니다.
어제는 강원도 동해와 삼척을 가름 짓는 두타산과 청옥산을 오르내렸습니다.
7-8월 중 진행해 온 속리산 이남의 대간 길 남하행진을 잠시 멈추고 안내산악회를 따라 댓재에서 다시 북진하기 시작했습니다. 6시 30분 경 잠실에 도착해 두 달 만에 만난 회원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버스에 올랐는데 성묘차량으로 고속도로가 밀려 11시 반을 훨씬 넘겨서야 해발 810미터의 댓재에 다다랐습니다.
11시47분 안개가 짙게 깔린 댓재를 출발했습니다.
산신각에서 대오를 정비하고 두타산으로 오르기 시작해 20분이 채 안되어 햇댓등에 이르자재 작년 7월 이 곳에서 곧바로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오르느라 한 시간 가까이 까먹어 두타산이 이름그대로 골 때리는 산이구나 하며 투정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햇댓등에서 왼쪽으로 급회전하여 통골재로 향하는 중 국립지리원에서 국가의 기준점인 삼각점을 세우고 GPS위성측량을 위하여 수신이 잘되도록 나무를 베어냈다고 안내판을 설치한 봉우리를 지나면서 최첨단의 기술로 쏘아 올린 위성에서 내 보내는 전파가 나무 잎을 제대로 투과하지 못해 나무를 베어버렸다 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졌습니다.
13시18분 통골재를 지났습니다.
댓재에서 통골재에 이르는 길은 질퍽거리기는 했지만 길이 넓고 오르내림이 완만하여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오른 쪽으로 동해가 잘 조망되고 동사면의 암벽이 빚어 낸 절경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가을에 선 뜻 자리를 내주기가 쉽사리 내키지 않는 여름의 마지막 심술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통골재에서 두타산까지 산 오름이 계속되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될 것이라는 회장분의 설명을 들은지라 무리하게 운행하지 않고 산 중턱에서 5-6분을 쉬며 목도 축이고 방울도마토로 요기를 했습니다.
14시18분 해발 1,353미터의 두타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불교에서 두타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을 일컫는다 합니다. 두타산 정상의 국유지를 점하고 있는 묘지를 이장하지 않으면 무연고묘로 인정, 임의로 이장을 하겠다는 삼척 국유림관리사무소장 명의의 이장공고문을 보고 죽은 사람의 주거를 걱정해야 하는 후손 들은 이 두타산 정상에서도 두타를 행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서 있는 정상은 막힘이 없어 전망이 일품입니다만, 어제는 안개가 시야를 가려 어느 무엇 하나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14시38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두타산을 출발했습니다.
20분 가까이 제법 가파른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키가 작은 산죽사이로 난 길로 다시 올라서는 중 적송에 기생하는 버섯을 보고 하도 신기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이제껏 저는 버섯은 부식토나 죽은 나무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산 소나무의 곧게 뻗은 줄기에 붙어 살아가는 것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버섯도 분명 여름 철 산을 이루는 한 식구임에 틀림없는데 시골에서 독버섯의 피해를 지켜본 저는 버섯의 아름다움을 교태로 간주하고 애써 무시해왔기에 그동안 제대로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습니다. 운무가 너무 짙게 들여 더 이상 살펴보는 것을 포기하고 두타산과 청옥산이 내는 소리를 듣고자 했으나 산 숲에서 노닐던 뭇 동물들이 산속 깊은 곳에서 숨죽이고 있어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나뭇잎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뿐이어서 제대로 듣지도, 느껴보지도, 맛보지도 못했습니다. 무릉계곡으로 갈리는 삼거리 박달령에서 40분 가까이 걸어 청옥산 정상 바로 밑의 샘터에 다다르자 바로 옆에 만개한 벌개미취 꽃 무리들이 안개 속에 함몰된 청옥산을 밝게 했습니다.
16시 17분에 오른 해발 1,403미터의 청옥산은 두타산과 고적대와 더불어 해동3봉으로 불리는 고봉입니다만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고도가 50미터 낮은 두타산보다 전망이 훨씬 못한 곳입니다. 두타산이 암릉의 남성적인 산이라면 약초들이 자생하고 있고 청옥이 난다는 청옥산은 육산의 여성적인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9시에 백복령을 출발했다는 두 젊은 부부는 댓재까지 가서 묵겠다하니 저희 산악회에서 3구간으로 나누는 댓재-백복령 대간 길을 저 많은 짐을 지고 하루에 주파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주력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잠시 전 샘터에서 페트병에 물을 담느라 얼마고 쉬어 바로우측으로 꺾어 연칠성재로 내려갔습니다. 연칠성재에 이르기 전 눈괴불주머니 군락지를 지났습니다. 꽃은 작아도 무리를 지으니 아름다움이 배가되어 산객들을 잠시 멈춰가게 했습니다.
16시44분 연칠성재에서 대간 종주를 마치고 무릉계곡으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좀처럼 빠져 나가기 어렵다 해서 난출령으로도 불리는 연칠성령을 제법 큰 케룬이 옆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연칠성재에서 칠성폭포까지 하산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해 비 오는 날이나 안개가 짙게 깔린 날에는 길이 젖어 엉덩방아를 찧기가 일수입니다. 어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행 5-6분중 거의다가 한 두 번은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그 때마다 “땅을 샀다”고 웃으며 말해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했는데 엉덩방아를 찧은 것을 궁둥이로 땅을 찜해 놓았으니 땅을 샀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5시53분 칠성폭포를 조금 지나 텅 빈 대피소에서 잠시 쉬면서 목을 축였습니다.
그동안 숨죽였던 새들이 잠간 동안 노래를 불렀고 그동안 산자락을 에워쌌던 안개가 거의 다 걷혀 주위가 조금은 밝아 보였습니다. 대피소에서 내려서 만난 바른 골 계곡의 반석은 이곳을 처음 지나는 일행 한분이 하얀 모래로 착각할 정도로 바위장이 오랜 세월 동안 전혀 물 떼가 끼지 않은 듯 뽀얗고 깨끗했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려 이번에도 문간재에서 신선봉을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19시 정각 학소대폭포를 지났습니다.
폭포의 규모는 주왕산의 학소대를 훨씬 뛰어 넘었으나 학이 노닐기에는 어느 곳이 더 좋을지는 쉽게 가름되지 않았습니다. 캄캄한 밤길을 25분 더 걸어 주차장에 도착하기 까지 해마다 야생화의 초대를 받아 이산 저산을 찾아 나선다는 야생화 매니아 한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제는 원예작물로 키워지는 집 꽃에는 눈이 거의 안 간다는 그분의 말씀에 공감이 가는 것은 저도 산을 알고 나서부터는 다른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안 갔기 때문입니다.
19시25분 주차장에 도착해 산악회에서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들면서 8시간 가까운 종주산행을 마무리졌습니다. 귀경 길 버스에서 산을 극진히 아껴온 여성회원 한분과 산 이야기를 긴 시간 나누었습니다. 부군분과 자제분들만을 위한 삶에서 자신의 몫을 일정 부분 확보하고자 벌써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말씀을 듣고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과 흑”의 작가 스땅달은 소설은 거리의 거울이라 했습니다.
그 거울에 비쳐진 거리의 풍경은 바로 그 세태의 한 단면도이기에 소설이 재미있다기보다 거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던 것입니다. 저도 어제 대간 길을 비춰보고자, 그래서 대간 길을 무대로 살아가는 뭇 생명들의 삶을 그려보고자 거울을 가지고 두타와 청옥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거리와 사람들이 찾아 나선 산속은 달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져 까발려지는 것을 거부한 두 산이 제우스의 도움을 받아 운무로 스스로를 덮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낮 시간을 버티다 밤의 어둠에 자리를 이어주고자 저녁 늦게 야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래서 산행기는 결코 산의 거울일 수 없음을 제게 확실히 일러 주었습니다. 산속의 뭇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질서와 지혜는 인간들의 한낱 이야기 거리가 아님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가슴으로 산을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산이 신비롭게 보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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