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건의령-덕항산-황장산-댓재
*산행일자:2005. 10. 9일
*소재지 :태백시/삼척시
*산높이 :덕항산1,071미터/환선봉1,048미터/황장산1,059미터
*산행코스:상사미동-건의령-구부시령-덕항산-환선봉-큰재-황장산-댓재
*산행시간:6시50분-16시23분(9시간33분)
*동행 :나홀로
이 산하의 가을 유혹에 못 이겨 단풍나들이를 나선 분들로 모처럼 대간 길이 붐볐습니다. 한 여름에는 일요일에도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보지 못한 채 종주산행을 마친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어제는 대간 종주 후 처음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습니다. 대간 길을 다듬고자 나무토막을 지고 산을 오르는 몇 분들을 만났고, 새벽같이 댓재를 출발해 피재로 내닫는 한 산악회의 많은 회원들도 만났습니다. 아침 일찍 댓재를 향해 피재를 출발한 몇몇 대간꾼들이 덕항산에서 저를 따라 잡았고, 환선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이 환선굴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로 붐벼 활기가 가득 차 보였습니다. 이 많은 분들이 가을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고 돌아갈 수 있도록 단풍 세레머니를 펼쳐 준 우리의 산하가 고맙고 또 고마웠으며 큰 잔치를 치른 대간 길의 산들이 지금쯤 몸살이나 앓고 있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새벽2시반경 태백 역에 도착해 역 밖으로 나서자 부슬부슬 비가 내려 두 주전에 묵었던 인근의 여인숙에 들러 잠자리에 들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3시간가량의 단잠에서 깨어나 산행준비를 마치고 집밖으로 나서자 다행히도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셨고 내리던 비가 멈춰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는데 이에 더하여 기사식당에서 사 들은 백반이 하도 맛있어 하루 종일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논 뜰에 세워진 허수아비의 도움으로 참새에 쪼임을 당하지 않고 제대로 영글은 벼를 제때에 베어내서 탈곡한 다음 햇볕에 충분히 말렸다 찧은 햅쌀에 적량의 물을 넣어 전기밥솥으로 갓 지어 내놓은 찰기가 사르르 도는 쌀밥을 한 숟가락 들자 입안에서 절로 녹는 듯해 묵은 쌀을 찌어서 내놓는 일반 음식점의 쌀밥에 익숙해진 제 입에서 웬 떡인가 싶어 군침이 계속해 흘렀습니다.
아침 6시50분 상사미동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6시10분에 태백을 출발한 첫 버스가 오지의 시골마을 두 곳을 들렀다가 나오느라 20분 걸리는 길을 40분 만에 상사미동에 도착해 6시40분에 건의령을 출발하겠다는 제 계산이 빗나갔지만, 15분을 걸어올라 다다른 건의령에서 짬을 내어 지난번에 카메라를 집에 두고 와 못 찍은 사진을 몇 커트 찍었습니다.
7시4분 800미터대의 건의령에서 푯대봉으로 오르는 들머리로 들어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들머리에 세워진 안내판에서 약 14키로의 대간 길을 정비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나자 이번 산행에서는 길을 잘 못 들어 고생할 일은 없겠다 싶어 안심이 됐습니다. 아직 산속에는 안개가 드리워 있었고 햇살이 비치지 않아 어둠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멧돼지(?)의 발자국을 보자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지만 구절초의 청아한 함박웃음과 부지런한 몇 몇 새들의 기지개 펴는 소리가 바로 이 스산한 느낌을 지워버렸습니다. 건의령 출발 24분 후에 올라선 해발 1,010미터의 푯대봉에서 대간 길은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내림 길로 이어졌습니다. 푯대봉에서 1,162봉에 이르기 까지 고만고만한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고산의 아침정취를 즐겼습니다. 곧게 뻗은 훤칠한 적송들과 아름드리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강원도의 힘을 읽었습니다. 나뭇잎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길을 비치는 아침햇살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의 색상을 더욱 밝게 했고 잔잔하게 나무 잎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황적색 무늬의 까치만한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는 소리도 고즈넉한 가을 산속의 분위기를 돋우었습니다. 대간 길에 나무계단을 만드느라 고생하는 몇 분들을 만나기까지 얼마동안은 한 무더기의 똥을 싸놓아 흔적을 남긴 멧돼지(?)를 맞닥뜨릴까 보아 긴장되었습니다.
8시38분 1162봉에서 첫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오른쪽 산 밑의 골짜기를 가득 메운 운해가 햇살에 밀려 서서히 사라지는 아침 정경을 지켜보며 10분 가까이 쉬다가 골바람의 냉기가 차갑게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나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잡목지대에서 싸리나무 숲을 지나느라 바지가랑이와 등산화는 물론 상의남방도 이슬에 다 젖었지만, 그래도 997봉에서 1055봉에 이르는 길은 제게는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가파른 1055봉에 올라 한참동안 숨을 골라야 했지만 조용한 아침 산길을 걸으며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어 한 달여 고생하고 있는 한 분이 하루 빨리 건강을 되찾아 다시 가게 문을 열 수 있도록 보살펴달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자비를 전해주는 듯싶었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평화로 충만한 길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9분 해발900미터대의 구부시령을 지났습니다.
오른 쪽 산 밑의 대기리에서 한 여인이 지아비들의 요절로 먼저 가 평생 동안 9명의 지아비를 섬기며 살았다 해서 붙여진 구부시령의 유래를 전해 듣고 혹시나 이 여인도 자식을 낳기 위해 수절하지 못하고 계속해 지아비를 바꿔가며 섬길 수밖에 없었던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또 다른 희생양이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가 구부시령이고 왼쪽 길로 내려서면 예수원에 간다고 적혀 있는 비닐 안내판을 너무 높은 나무 가지에 걸어 놓아 그 속의 안내문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성황당의 돌무덤이 이곳이 고개 마루임을 알려주었습니다.
10시43분 해발1,071미터의 덕항산 정상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정상에 접는 쇠 의자 한 개가 놓여있어 편하게 앉아 식사를 마치자 아침5시 반에 피재를 출발했다는 삼척의 사십대의 두 분이 당도해 인사를 나누었고 그 분들로부터 오른 쪽 한시 방향으로 먼발치의 아파트단지가 자리 잡은 곳이 동해시이고 그 너머가 동해바다임을 확인했습니다. 정상에서 10분가량 내려서자 환선굴에서 올라오는 계단 길이 나타났고, 환선봉이 1.4키로 남았다는 표지판이 세워진 바로 아래 안부의 쉼터에서 두 달 전 산행을 시작했다는 한분 및 그 친구 분을 만나 함께 환선봉을 올랐습니다. 멋모르고 이 산길이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졌다며 두타산의 석회석을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나중에 이분들이 시멘트회사에 다닌 다는 말씀을 듣고 공자님 앞에서 문자를 쓴 격이 되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12시24분 장암재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축였습니다.
반시간 전에 오른 해발 1,080미터의 환선봉에서 좌우 양쪽을 돌아보며 까까비탈의 암벽과 산들을 붉게 물들인 단풍들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바로 밑으로 환선굴 입구의 주차장이 보였고 그 옆을 지나는 계곡과 나란한 찻길이 분명하게 눈에 잡혔습니다. 환선봉에서 울창한 낙엽송 숲을 지나 내려선 안부에 풀들로 가려진 넓은 헬기장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헬기장에서 한 봉우리를 넘어 다다른 장암재에서 환선굴에서 올라 온 많은 분들이 숨을 고루고 있었습니다. 환선봉에서 1.6키로를 걸어 도착한 장암재에서 댓재까지 8.5키로 남아 있다하니 4시간이면 종주를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건의령에서 댓재까지 지도상에 8시간 반가량 걸리는 것으로 적혀있어 해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가 어렵겠다고 판단되어 산행을 서둘렀는데, 이제부터 좀 느긋하게 산행을 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장암재를 출발해 27분 후 고랭지채소단지를 지나기 까지 대간 길을 걸으며 더 이상 걷지 않고 주저앉고 싶었던 것은 환선굴에서 올라온 등산객들 모두가 환선봉으로 향해 댓재로 이어지는 대간 길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고 한창 가을이 무르익은 강원도의 산들을 뒤로 하고 하산하기가 너무도 아쉬울 것 같아서였습니다.
12시59분 고랭지채소밭에 발을 들인 후 채소밭을 관통하기도 하고 밭길 옆으로 난 산길을 지나면서 50분 가까이 채소밭 일원을 걸었습니다. 가능하면 마루금을 놓치지 않고자 때로는 밭을 관통해야 하는 대간 꾼들과 채소밭을 밟지 말고 좀 벗어나더라도 경운기 길을 따라 걸어가 주었으면 하는 농민들과는 분명 갈등관계에 있지만 앞으로는 저도 북한산님의 글대로 채소경작을 생업으로 하는 그들을 위해 마루금을 벗어나더라도 농로를 택해 걷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광동댐 건설로 이곳으로 이주해온 농민들이 산을 일구어 밭을 개간하느라 힘들었겠다 싶은 것은 아직도 밭에는 돌이 많이 있어 옛날처럼 쟁기로 밭을 간다면 보습께나 잡아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농로를 걷던 중 붉은 기가 살짝 도는 석회암인 듯한 수려한 돌무더기를 만나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광활한 채소밭이 끝나는 곳에서 큰길로 내려서자 바로 삼거리 큰재에 닿았습니다.
13시53분 해발 1,062미터의 큰재에서 사과로 요기를 했습니다.
왼쪽 큰 길은 하장으로 난 길인 듯싶고 대간 길은 똑 바로 낙엽송 숲 속으로 이어졌는데 댓재까지 5키로가 남아 있는 것으로 표지판에 안내되었습니다. 10여분을 쉬자 등골이 써늘해와 짐을 챙겨 황장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산딸기가지들이 진행을 더디게 하는 잡목지대를 반시간 가까이 걸어 다다른 1059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다 지난 5월 선달산에서 만나 본 수피가 불그스레한 자작나무과의 훤칠한 거제수 한그루를 다시 만나보게 되자 반가웠습니다.
14시55분 1105봉에 올라섰습니다.
GPS 수신을 돕기 위해 국립지리원에서 정상의 나무들을 베어내 전망이 좋았습니다. 덕항산에서 동해시를 확인해준 두 분을 다시 만나 더 가까이에서 동해바다를 확인했습니다. 20여분을 더 걸어 다다른 무명봉에서 잠시 짐을 풀고 8분을 쉬는 동안 한분이 건네준 옥수수로 빈 배를 달랬습니다.
16시6분 해발1,060미터의 황장산에 다다르자 댓재 건너편에 우뚝 서있는 두타산의 위용이 만군의 바위를 거느리는 장군 같았고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을 물들인 단풍라인이 저녁 햇살에 더욱 붉게 보였습니다. 이산의 적송들도 황장목으로 불리는지 알 수 없으나 문경시 황장산의 황장목보다는 덜 실해 보였습니다. 댓재로 하산하는 중 고개이름 그대로 산죽들이 군락을 이루어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6시23분 해발 810미터의 댓재로 내려서 종주산행을 마무리졌습니다.
기다리는 삼척 행 버스가 18시40분에 이곳을 지난다고 해, 17시10분 거꾸로 삼척을 출발한 버스에 올라타 하장으로 갔습니다. 하장에서 17시40분에 출발하는 버스로 태백시로 나가서, 18시17분발 무궁화호 열차에 올라타 22시50분에 청량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나홀로 대간 종주를 마감 짓고자 합니다.
이번 종주로 천왕봉에서 이기령까지 전 구간을 빼놓지 않고 마쳤기에 해가 짧아져 해안에 산행을 마치기가 쉽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나머지 구간은 산악회와 함께 하고자 합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하장버스터미널에서 삼척 분으로부터 건네받은 옥수수를 맛있게 들면서 강원도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에 마냥 고마워했습니다.
IMF사태 이후 살아가기가 힘들어서인지 버스나 기차 안에서 술주정을 부리는 연세든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어제도 그러했습니다. 하장-태백 구간의 버스와 태백 -청량리간의 열차에서 술에 취한 노인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아무에게나 시비를 거는 모습을 보고 곱게 늙어 가는 것이 오래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나이 좀 들었다고 추한 모습을 너무 쉽게 보이는 저 분들이 결코 저의 자화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결심하고 사시사철 어느 때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제 자리를 지켜가며 품위를 잃지 않는 저 산들을 닮아가고자 노력하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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