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조침령-북암령-단목령
*산행일자:2006. 2. 5일
*소재지 :강원 인제/양양
*산높이 ;무명봉1,136미터
*산행코스:쇠나드리삼거리-조침령-북암령-단목령-진동리포장길끝지점
*산행시간:5시22분-11시40분(6시간18분)
*동행 :송백산악회
강원도의 겨울 산은 역시 매서웠습니다.
주초에 날씨가 푹하여 이번에는 입춘 추위를 건너뛰겠다고 기대했는데 수요일 날 한반도를 엄습한 시베리아의 한랭기단이 그 나흘 후인 토요일 입춘 날에도 전혀 물러설 줄 모르고 기세가 등등해 기대와는 달리 올해도 여전히 이 땅의 입춘이 시베리아의 동장군을 그냥 비껴가지는 못했습니다. 장갑을 두 켤레나 낀 손가락이 시럽다 못해 아렸고 이내 잘라내는 듯 아파와 한손씩 바지주머니에 번갈아 넣고 체온으로 어는 손을 녹여가며 산행을 하는 중 태초의 추위가 아마도 대간 길에서 만난 이토록 냉혹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 카메라도 수성 펜도 몽땅 작동이 안 되어 당혹스러웠지만 제 머리 만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대로 가동되어 산행기 작성에 필요한 자료들을 머리 속에다 입력해 둘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새벽 5시22분 이러저러한 곡절 끝에 쇠나드리를 조금 지난 삼거리에서 하차해 조침령으로 이어지는 오른 쪽 큰 길로 들어섰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곡절의 강도와 받아들이는 수용도가 같지 않아 자칫 다른 목소리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미련 없이 이 곡절을 어둠 속으로 날려 보내고 묵묵히 조침령-단목령 종주 길에 나서는 것을 보고 이 산악회 특유의 단단한 응집력에 놀랐습니다. 지난주 이 지역에 제법 많은 눈이 내린 듯 대로에 쌓인 눈이 꽤 깊게 느껴져 이번 종주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감했습니다. 구룡령을 출발하여 갈전곡봉을 지나 조침령에서 대간 종주를 마친 후 해가 막지고 어둠이 갓 나래를 펴는 어름에 저 혼자 흥얼대며 이 길로 하산한 것이 불과 두 달 반전의 일이어서 아직 어둠이 전혀 가시지 않은 캄캄한 이 밤도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그 때의 제 기억을 어둠 속에 가둬두지는 못했습니다. 하늘에는 초롱초롱 별이 빛났고 땅에서도 이 별빛과 랜턴 빛을 받은 하얀 눈이 빛나 이내 무거웠던 마음도 가벼워지고 다시 뛰어보자는 의욕이 샘솟았습니다.
5시54분 조침령 들머리인 나무계단에 올라섰습니다.
이 이른 시간에 하산하는 세분을 만나 참으로 부지런한 분들이다 했는데 알고 보니 훨씬 이른 시간에 별도로 조침령을 출발하여 단목령으로 향하다가 눈과 추위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능선 길에서 회군한 일행 몇 분들이었습니다. 조침령 출발 30분이 조금 못되어 거리 표시가 없는 표지목이 세워진 900봉에 오르기까지 산 오름을 계속하는 동안 이렇다할 바람이 불지 않았고 장갑도 2켤레를 낀데다 가리개로 얼굴 대부분을 가려 그리 추운 줄 몰랐으며 이 정도라면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6시58분 943봉의 전망대를 지나기 조금 앞서부터 어둠이 가시고 동쪽 하늘이 붉게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900봉에서 943봉까지 철쭉능선 길을 지나는 동안 키가 낮은 나무의 잔가지들이 간혹 얼굴을 때렸지만 대체로 평평하여 여유로운 길일 터인데 어제는 달랐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 운행이 늦은 데다 본격적으로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해 손끝이 아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먼발치에 붉게 밝아오는 여명의 진풍경을 담아보고자 카메라를 꺼냈으나 바테리가 다했다는 메시지만 뜨고 작동이 되지 않아 끝내 사진 찍기에 실패했습니다. 겨울 들어 이제까지 카메라가 춥다고 가끔씩 태업을 해 살살 달래가며 찍어 왔는데 다른 날보다 유달리 추웠던 어제는 작심하고 완전파업에 돌입한 카메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 강선리 마을로 하산하기까지 단 한 장도 찍지 못했습니다. 이 추위에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린 분들을 보고 그 분들 같은 프로급의 진사들과 저 같은 아마츄어 급의 찍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943봉에서 왼쪽으로 확 방향을 틀어 내려가다 7시10분 경 헤드랜턴을 끄고 나서 얼마 후 1018봉 조금 못 미친 대간 길에서 해오름을 지켜보며 새 아침을 맞았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가슴을 활짝 펴고 해오름을 맞으며 그 장대한 아름다움에 발걸음을 멈춰 서서 몇 마디 읊조렸을 터인데 이번에는 어서 빨리 중천으로 떠올라 따뜻한 햇살로 냉기가 지배하는 대간 길을 고루고루 덥혀주기만을 갈망했습니다.
1018봉에 올랐다가 962봉을 거쳐 안부로 내려서자 왼쪽으로 양수발전소가 보였습니다. 하얀 눈이 댐을 덮고 있어 정확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으나 경기도 가평의 호명산 양수발전소보다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전이 총 9,324억원을 투입해 이곳 인제군의 진동리에 상부댐을, 그리고 양양군의 남대천 상류 후천에 하부댐을 축조한 대 공사여서 천성산 터널공사 이상으로 환경훼손과 인근 주민들의 재산피해가 불가피했을 터인데 당국이 이런 갈등을 슬기롭게 풀어나가서인지 천성산 공사처럼 단식을 하며 목숨 걸고 반대하는 분들이 없어 1996년에 착수한 공사가 무사히 끝났고 이제는 시운전단계에 있어 올 8월말 마지막 4호기까지 가동하게 되면 시설용량인 1백만KW 발전이 가능하다 하니 납세자로서 한정 없는 공사지연으로 인한 세금낭비가 없어 무척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아침 8시 1133봉에 오르는 중 7부 능선쯤에서 선채로 절편을 꺼내 들었습니다.
윗 층의 떡은 대부분 얼어 밑층의 반만 서둘러 먹고 나서 1133봉으로 향하기까지 겨우 5-6분 동안 쉬었을 뿐 추위에 쫓겨 다시 짐을 챙겨 산 오름을 이어갔습니다. 아직은 햇살이 제대로 퍼지지 않아 추위가 최고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이어서 연신해서 두 손을 번갈아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빼며 깊은 눈 속의 발자국을 따라 걷느라 자연 걸음이 뒤뚱댔고 더뎠습니다. 1133봉에서 1136봉에 이르는 능선 길에 키를 넘는 눈 언덕이 만든 칼날 능선의 독특한 자태를 카메라에 담아 오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8시50분 1136봉에 이르자 누군가가 쉬어가자는 한마디에 일행 모두가 힘들었던지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멈춰 섰습니다. 오른 쪽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바다를 바라다보며 똑 같이 하늘을 출발한 눈이라도 어디로 내려서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극명하게 갈림을 보았습니다. 이곳 대간 길에 착지한 눈은 차곡차곡 눈 언덕을 만들어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저 바다에 내려앉은 눈은 바닷물에 녹아 바로 스러져버림을 보고 저 또한 저 눈들처럼 이 세상에 던져져 실존하는 인간이기에 제가 한반도 남단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지 쉽게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9시30분 왼쪽으로 북암리, 오른쪽으로 설리곶으로 갈리는 십자안부인 해발 940미터의 북암령에서 제대로 쉬었습니다. 조침령에서 7키로를 걸어 이곳 북암령에 다다르자 햇살이 퍼져 추위도 어느 정도 가셨고 목적지인 단목령까지 불과 2.9키로 밖에 남아 있지 않아 고생스러웠던 이번 산행도 다 끝나간다 싶어 배낭 깊숙하게 처박아 둔 미니 펜을 찾아 꺼내 기억을 더듬으며 지나온 몇 곳의 통과시간과 단상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제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준 여성대장 한 분은 북암리로 바로 하산했고 저는 바로 1020봉으로 직진했습니다. 1020봉에서 조금 내려서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지났습니다. 1ha 넓이에 집단으로 분포되어 있는 물푸레나무는 평균 높이가 8미터라 하니 그리 큰 나무는 아니지만 워낙 질기고 단단해 시골에서 이 나무를 패다가 여러 번 도끼날을 분질러 먹은 일이 새삼 생각났습니다.
10시24분 875봉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현 위치가 점봉으로 단목령 1.3키로 전방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목을 지나자마자 다다른 875봉에서 정면으로 아주 가깝게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바로 설악산의 대청봉이었습니다. 왼쪽으로 확 꺾어 단목령으로 내려서는 중 반시간 가까이 눈 속에 파묻혀 반신만 삐죽 내민 산죽 밭을 걸었습니다. 나무 밑에는 산죽들이 그리고 나무 위에는 겨우살이들이 유난히 많이 포진해 있는 참나무 밭을 지나며 이 겨울에 산죽과 겨우살이들이 나누었을 대화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10시52분 해발855미터의 단목령에 도착해 조침령-단목령 구간의 9.9키로 대간 길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백두대장 장승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 왼쪽의 계곡을 따라 하산해 20분후에 삼거리로 들어섰습니다. 단목령에서 6.2키로 떨어진 점봉산을 오르기 위해서 조만간 다시 찾을 계곡 어귀의 삼거리에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진동리로 향했습니다.
11시40분 진동초교분교를 조금 지난 곳에서 하루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대기 중인 승합차에 올라 쇠나드리로 옮겨 산악회에서 준비해 놓은 점심을 들고 나서 12시40분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코스는 짧았지만 무박산행에 추위와 많은 눈으로 유난히 힘들게 산행을 마쳐서인지 일행 분들 거의다가 이내 잠에 빠져 들어 차안이 한결 조용했습니다.
시베리아로부터 혹한을 실고 남하해온 북서풍의 위력에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구루면서 이 바람을 다시 북으로 몰아 낼만한 봄의 징후를 찾아보고자 대간 길 여기저기를 둘러 봤습니다. 영국의 시인 셀리는 그의 시 “서풍부(Ode to the West Wind)”를 이렇게 맺었습니다.
The trumpet of prophecy! O Wind, 예언의 나팔이 되라! 오 바람이여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
그렇습니다. 어제의 매몰찬 북서풍은 머지않아 봄이 옴을 알리는 예언의 나팔이었습니다. 이 나팔소리를 듣고 나서 겨울이 오면 결코 봄이 멀 수 없겠다며 바짝 다가온 봄을 느끼고 나자 새삼 겨울 끝 무렵 대간 길에서 만난 강원도의 맹추위를 이겨낼 자신감이 생겼고 그 자신감에 힘입어 대간종주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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