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49(신배령-구룡령)

시인마뇽 2007. 1. 3. 11:23
                                           백두대간 종주기49

 

                           *대간구간:신배령-응복산-약수산-구룡령

                           *산행일자:2006. 3. 18일

                           *소재지  :강원 홍천/양양

                           *산높이  :응복산1,360미터/약수산1,306미터

                           *산행코스:구룡령-약수산-응복산-신배령-명개리

                           *산행시간:9시41분-17시21분(7시간40분)

                           *동행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길에 낙엽을 헤집고 조심스레 얼굴을 내보인 노랑꽃의 복수초를 만나 약동하는 봄을 느꼈습니다. 완연한 봄임에도 대간 길에서는 바람이 따스해지고 나뭇가지 끝에 물이 오른 것을 빼고는 이제껏 이렇다할 봄소식을 접하지 못했는데  신배령에서 명개리로 내려가는 조개골 골짜기에서 작지만 함박웃음을 져 보인 봄소식의 전령 복수초가 다소곳이 인사를 건네 와 반가웠습니다. 그 많은 산 꽃 중에서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운 식물이 튼실한 나무가 아니고 가녀린 야생초라니 이 풀들에 무슨 기운이 숨어 있어 피어난 꽃을 얼리지 않고 온존하게 지켜낼 수 있는가 궁금했고 그래서 야생화도감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친 것은 복수초는 태어난 그 해에 삶을 마감 짓는 한해살이풀이 아니고 몇 해고 삶을 복습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을 몸에 익힌 여러해살이풀임을 알고 나서였습니다. 물론 수명이야 나무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바람을 거역하고 곧추 서있는 나무와는 달리 바람보다 먼저 눕고, 또 나무가 매몰차게 내쳐버린 낙엽을 끌어 모아 한 겨울을 이겨내는 지혜가 나무를 앞선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봄꽃들과 같이 잎보다 먼저 피는 복수초의 노랑색 꽃잎이 한 낮에만 벌어지고 추운 밤에는 얼지 않도록 오므라드는 것도 여러해살이풀꽃의 학습효과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번 일요일이 마침 시골 조카가 장가가는 날이어서 신배령-응복산-구룡령 구간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송백산악회의 일요산행에 참가할 수 없게 되어 하루를 당겨 토요일 날 저 혼자서 역코스로 구간종주를 마치고 명개리로 하산했습니다. 작년 10월 건의령-황장산-댓재 구간을 혼자서 뛴 후 거의 반년 만에 번거롭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나홀로 종주에 다시 나선 것은 마지막 구간인 미시령-진부령 구간을 종주하는 오는 4월 2일에 대간 종주를 전부 마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룡령을 지나는 버스가 홍천에서는 아침 7시10분에, 양양에서는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딱 2대 밖에 없어 전 날 밤 홍천으로 와서  찜질 방에서 하루 밤을 묵었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30분가량 홍천 읍내를 흐르는 화양강의 뚝 길을 걸어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 오르자 승객이 저 혼자였습니다.  아침안개를 가르며 시골길을 달리느라 새벽잠을 설쳤을 기사분에 미안했고 혹시나 이 마저 버스노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습니다. 홍천을 출발한지 한 시간 반 후에 도착한 내면 정류장에서 반시간을 머물다가 다시 40분을 더 달려 홍천과 양양의 경계를 이루는 1013미터의 구룡령 고개마루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9시40분이었습니다.


  9시41분 잽싸게 생태다리의 철조망 울타리로 붙어 대간 길로 들어섰습니다.

혹시나 경방기간 중이어서 산림청 직원 중 누구라도 만나 입산을 금지 당하게 되면 더 할 수 없는 낭패이기에 눈에 띄지 않도록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습니다만 이 높은 곳에다 차린 산림전시관을 들러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키가 낮은 산죽사이로 낸 계단 길을 20분간 걸어 1218봉에 올라 나무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길가에서 조금 벗어나 십분 넘게 부글댄 속을 진정시켰습니다.


  10시44분 표지판을 정수리에 앉혀 놓은 해발 1,306미터의 약수산을 올랐습니다.

아이젠을 차지 않았다면 계단 길을 덮은 얼음길을 또 눈길을 걸어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오르막길을 걸어서 약수산에 올라서자 한참을 휘돌아 다다를 동쪽의 응복산이 가깝게 보였고 구룡령 넘어 서쪽으로 넉 달 전에 오른 갈전곡봉이 한 눈에 들어와 갈전곡봉 너머로 멀리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점봉산일 테고 그 뒤로는 설악산으로 짐작해 보았습니다. 약수산은 그 정상이 날카로운 암봉이 아니고 평평한 평지여서 넉넉한 산이겠다 했는데 이내 암릉길로 이어졌습니다. 약수산에서 1280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얼마간의 암릉 길을 지나고 나서는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정상 출발 40분 후에 다다른 1280봉에서 뒤돌아본 약수산의 북동사면은 마치 겨울을 그대로 이어갈 듯이 흰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1280봉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3.4키로 남아있는 응복산을 향해 내달리는 동안 명개리 쪽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제법 드셌습니다. 1261봉에서 고도를 180미터 가량 낮추어 안부로 내려서기 까지 내리막길이 급해 미끄러웠습니다. 푹푹 빠지는 잔설이 길을 덮고 있어 오른 쪽으로 벗어나 눈이 녹아 없어진 곳을 찾아 마늘봉으로 올랐습니다.


  12시21분 해발 1,127미터의 마늘봉에서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며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편안한 길로 내려섰다가 1281봉으로 올라서는 길에 새벽4시에 진부령을 출발했다는 한 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구룡령에서 이곳까지 곳곳에 길을 덮은 잔설을 밟으며 올라오느라 힘들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이 팀들이 족적을 남겨 눈 덮인 길 찾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공기 중의 시꺼먼 미진들이 마루금의 눈 위에 내려 앉아 속세의 눈을 옮겨 놓은 듯 한 노추의 안타까움이 엿보이는  3월의 잔설은 더 이상 순백의 흰눈이 아니었습니다.


  13시25분 1,360미터의 응복산을 올랐습니다.

1281봉에서 잡목지대를 지나 올라선 정상에서 점심을 들며 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색색의 표지리봉을 보자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병 치료를 도맡아 했던 무당들의 굿 풀이가 떠올랐습니다. 무당들이 입었던 색색의 저 옷들은 어떻게 저토록 현란하고 저 현란한 색이 몸속에 들었던 나쁜 귀신을 내 쫓는데 얼마고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고 보면 귀신도 색맹은 아니겠다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제 와서 보니 우리 몸속에 숨어 있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바로 샤마니즘이다 싶었고 그래서 표지리봉이 저렇게 색색이다 싶었습니다. 물론 샤머니즘의 저 색들도 대간 시인 이성부님의 표현대로 우리의 산하에서 떠 온 것이기에 촌스러운 여러 색상의 표지리봉 들이 서로 어울려 자연스럽게 보이는 가 봅니다. 남쪽으로 가깝게는 두로봉이 또 먼발치로 동대산이 눈에 들어 왔고 그 사이로 여러 봉우리들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어 새삼 오대산의 그윽함이 느껴졌습니다. 응복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눈이 거의 다 녹아 걷기에 편했지만 간간히 겉의 흙만 녹아 여러 번을 미끄러질 뻔 했습니다. 안부로 내려서서 젊은 한 분을 만났는데 진고개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상당히 지친 듯해 구룡령 가는 길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따사로운 봄빛이 냉랭한 봄바람을 다스리는 최적의 날씨를 맞아 편안하게 마루 금을 밟아가는 동안 제 가슴에 전해진 것은 평화와 행복이었습니다. 


  14시15분 해발 1,281미터의 만월봉에 오르기까지 눈 속으로 깊이 빠진 두 발을 걷어 올리느라 힘들었습니다만, 주목들의 푸르름이 피로감을 덜어 주었습니다. 만월봉에 오르자 작은 새 몇 마리가 연신 지저귀고 조개골을 훑어 올라온 바람이 골짜기의 소리를 들려주는 동안 말보다 먼저 존재했을 자연의 저 소리를 듣고 이 세상의 시원을 찾아 나서고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월봉 출발 반시간 후 1210봉을 오른 쪽으로 옆찌르자 산죽 숲을 가르고 난 내림 길이 신배령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른 쪽으로 내려서는 신배령을 그냥 지나칠 까 보아 천천히 걸으며 산세를 관찰했습니다. 혹시 함몰지가 아닌가 할 정도로 삼면이 움푹 꺼져 만들어진 절벽 오른 쪽으로 난 마루금을 지나 편안한 안부 신배령으로 내려섰습니다.


  15시 정각에 신배령에 도착해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개골로 들어섰습니다.

블루님과 함께 맨 뒤로 쳐지는 바람에 캄캄해서 명개리에 도착해  일행 분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던 작년 11월6일보다 1시간 10분 일찍 신배령을 지났고 해도 한 시간은 길어져 해가 지기 전에 명개리에 닿는 것은 이번에는 문제없겠다 싶었습니다. 겨우 내내 길을 덮었을 눈이 다 녹아 없어지고 그 때 송백에서 걸어놓은 표지리봉이 길 안내를 잘 해주어 그때보다 20분을 단축해 1시간 50분 만에 조개골을 빠져나와 명개교에 도착했습니다. 작년 11월 어둡기 직전 한해 마지막으로 동의나물 꽃을 지켜보며 가을을 보낸 조개골에서  이번에는 복수꽃을 만나 봄을 열었습니다.  정신없이 내달았던 조개골 골짜기를 넉넉히 관조하며 여유롭게 지나는 동안 그 때 놓쳤던 얼음이 녹아 가운데가 뻥 뚫린 큼지막한 소와 키가 큰 갈대 밭 등의 절경들을 빛의 도움을 받아 복수꽃과 함께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7시21분 오대산 내면매표소에 도착해 7시간 40분 동안의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밤에 지난 명개교-매표소의 넓은 임도를 이번에는 저녁 햇살을 받아가며 반시간 가까이 천천히 걸으면서 내려갔습니다.  매표소관리인이 어데서 넘어왔냐고 물어와 구룡령에서 시작해 조개골로 하산했다고 이실직고를 하고 죄송하다 했더니 경방기간이라서 입산이 금지되었으니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달 안으로 단목령-점봉산-한계령 구간을 마저 종주해야 4월2일에 전 구간 대간 종주를 마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점봉산 구간은 경방기간이 끝나는 5월로 넘겨야 할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근 가게에서 맥주 1캔을 사들어 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쳤음을 자축하고 버스정류장으로 옮겼습니다.


  한데서 십 수분을 기다려 내면행 버스에 오르자 기사분이 손님이 한 사람도 없어 이곳 명개리를 들르지 않고 바로 내면으로 가려다 그래도 하고 들르기를 잘했다고 말씀해 와 고맙다는 제 뜻을 전했습니다. 내면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 올라 탄  버스도 저 혼자만을 실고 홍천으로 내달렸습니다. 강원도 골짜기 골짜기에 길은 시원하게 잘 뚫려 버스가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정작 이 버스를 타고 내릴 손님이 이렇게 없어서야 과연 얼마나 더 이 노선버스들을 굴릴 것인가 걱정이 되자 양극화해소를 당면한 문제들을 푸는 키워드로 삼고 있는 그 분들이 이 텅 빈 시골버스와 발 딛을 틈 없는 출퇴근 시의  도시 전철간의 양극화문제는 어떻게 진단하고 처방할 것인지 자못 궁금해졌습니다.


봄 꽃 들만큼이나 아름다운 시어들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나 홀로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