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48
*대간구간:진고개-동대산-차돌바위-두로봉-신배령
*산행일자:2005. 11. 6일
*소재지 :강원 홍천/강릉
*산높이 :동대산1,434미터/두로봉1,422미터
*산행코스:j고개-동대산-차돌바위-신선목이-두로봉-신배령-
조개골-명개리매표소
*산행시간:10시23분-18시36분(8시간13분)
*동행 :송백산악회
올 들어 어느 해보다 계절의 변화를 더욱 짙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계절이 오고 감을 산에서 직접 지켜봐서입니다. 불과 3주전만 해도 너덜겅을 고생스럽게 통과해 올라선 마등령에서 한창 물오른 단풍이 만산홍엽을 이루고 있는 외설악을 바라보며 우리의 가을산하가 이리도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가 하고 감탄했었는데 어제는 j고개-두로봉-신배령의 대간 길을 밟으며 그 화사했던 단풍들이 떨어져 길 위에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고 온통 산색이 발가벗긴 나목들의 회색으로 바뀔 겨울날도 그리 멀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차대전 때 33 세로 전사한 미국의 시인 조이스킬머(Joyce Killmer)는 그의 시 “나무”를 이렇게 맺었습니다.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뿐.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만들고 키우신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이 숲이 하늘의 태양빛과 땅속의 물로 산소를 만들고, 하늘에서 내린 비를 머금고 있다가 필요할 때 뭇 생명체에 산소와 생명수를 공급해주기에 누가 뭐라 해도 저희들이 즐겨 오르는 산의 주인은 나무라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여름날을 이겨내고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가을을 맞는가 싶었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하며 미당서정주 님이 안타까워하는 겨울이 다가서고 있음을 능선 길의 벌거벗은 나무들을 보고 실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푸르른 잎과 화려한 꽃들에 주었던 시선을 거두어 줄기를 감싸고 있는 나무껍질 수피로 눈을 돌려야 하느님이 만들고 시인들이 칭송한 나무들의 겨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10시23분 해발 960미터의 j고개를 출발했습니다.
j고개에서 동대산까지 1.7키로 구간이 입산금지로 묶여 있어 고개 마루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대간 종주를 시작했는데 새벽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지 않은데다 입산통제로 이 구간을 종주하는 다른 분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10여분 후 진고개에서 오르는 정식 길과 만나 푸르른 산죽을 가르고 난 가파른 길을 따라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이미 내린 비로 길이 많이 지척댔고 가랑비가 계속 내려 희뿌연 안개가 산을 덮어버려 나뭇잎이 다 떨어져 나간 벌거벗은 나무들이 더욱 초라하게 보였고 조금은 스산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1시30분 해발1,434미터의 동대산에 올라섰습니다.
오대산 국립공원의 5대봉 중 하나인 동대산에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지 않아 이곳이 과연 정상인가 가름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 10월 오대산 대피소를 출발해 1시간 50분 걸려 이곳 동대산에 올랐을 때도 비가 내려 정상에 자리 잡은 헬기장에서 조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잠시 숨을 고르며 목을 축인 후 바로 차돌바위로 향했습니다. 된비알의 동대산을 힘들게 오른 터라 차돌바위까지 비교적 평평한 능선 길은 보너스로 받은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12시28분 해발1,230미터에 자리 잡은 차돌바위를 지났습니다.
강원도와 경북, 충북 일대의 석회암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바위는 거의 다가 회색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이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하얀 색의 규암인 차돌바위를 지나자 정말 신비롭게 느껴졌고, 어렸을 때 여름밤이면 개천에 나가 차돌을 서로 부대껴 누가 더 강하게 불빛을 내는 가를 내기했던 일들이 기억났습니다. 그냥 발 떼기를 아쉬워하는 몇 분들과 함께 차돌바위를 배경삼아 몇 커트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15분을 더 걸어 다다른 평평한 능선 길에서 점심을 들면서 20분가량 쉬었습니다.
13시32분 왼쪽산 밑의 신선골로 이어지는 안부 신선목이로 내려서자 그동안 숨어 지냈던 태양이 구름을 헤집고 나와 숲 속을 잠시 내비췄습니다. 이 햇살로 수피가 희어 일명 백화수로도 불리는 자작나무들의 희디 흰 살갗이 되살아나 1시간 전에 지나 온 차돌바위와 어느 누가 더 하얀 가 경쟁을 벌이는 듯싶었습니다.
살결이 흰 자작나무는 바이칼호에서 시작하여 알타이어족의 이동경로를 따라 우리나라까지 퍼져왔다 합니다. 우랄알타이어 계통의 우리민족이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온 자작나무들은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에서도 많이 자랐고, 또 김알지가 자작나무 숲에서 태어났다 하여 옛 일본에서는 신라를 백국으로 불렀다 합니다. (그러나 이유미 님의 “우리나무백가지”에는 남한에서는 자작나무가 자생하지 못하며 대부분이 자작나무과의 거제수와 혼동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3년 전 백두산의 서파능선을 종주하고자 나무숲을 가로지르는 중 쭉 뻗은 자작나무들이 임해를 이루고 있음을 보고 흐뭇했었습니다. 구한말 러시아공사를 통해 고종으로부터 이 백두산 숲의 채벌권을 확보한 러시아사람이 몇 해 전 타계한 미국의 영화배우 율브린너의 할아버지였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는 통에 그의 채벌계획이 무위로 그쳤다 합니다.
14시30분 해발1,422미터의 두로봉에 도착했습니다.
33년 전 북대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한 산형과 함께 두로봉을 올랐다가 길이 나있지 않아 동대산을 거쳐 월정사로 하산하겠다는 계획을 접고 다시 북대사로 돌아가 주지스님한테서 2시간가량 반가부좌를 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기억이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왼쪽 아래 군락지를 잠시 들러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나무 사진 몇 커트를 찍고 나서 두로봉에 돌아오자 아무도 보이지 않아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두로봉은 강원도의 계방산과 태기산을 세우고 경기도의 용문산을 일군 다음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두물머리에서 한강으로 침잠하는 한강기맥의 시발지이기에 늦어도 3년 안에 두로봉을 다시 찾아 한강기맥을 종주하고자 합니다.
14시42분 두로봉을 출발했습니다.
잠시 후 헬기장에 다다라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남쪽으로 동대산이 멀리 보였고 남동쪽으로 대관령의 풍력발전기 몇 기가 눈에 잡혔습니다. 오전 내내 눈을 가렸던 안개는 벌써 가셔 없어졌고 뒤이은 태양이 산등성이와 계곡을 속속들이 비추어 이곳 헬기장이 이번 산행의 최고의 전망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경사의 질펀한 흙길을 조심해 내려서자 하늘을 찌를 듯한 아름드리 교목들이 숲 속을 꽉 채웠습니다. 바람보다 먼저 누울 듯한 설악산 대청봉의 눈잣나무는 고산에서 드센 바람을 견뎌내고자 키를 잔뜩 낮추어 땅을 기고 있는데 여기 이 활엽수들은 어떻게 저리도 크게 자라 바람을 버텨낼 가 궁금했습니다.
15시19분 1234봉에서 대장 분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나 저와 여성 한분이 맨 후미에 있음을 모르고 신배령에서 조개골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안내하는 종이를 거두어 가버릴 까 염려되어 전화를 했었는데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그냥 내달렸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고 염려했던 잡목지대도 쉽게 통과할 만큼 길이 좋아 신배령까지 쉬지 않고 뛰느라 대간 종주 중 가장 광활한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아직은 산 밑에서 불어오는 산 바람이 시원하고 상쾌했습니다. 이 바람과 하나가 되고자 염원하는 여성분이 떠올린 것은 작은 바람에도 몸을 맡기는 모빌이었습니다.
16시10분 신배령에 도착했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서자 곧 바로 계곡물이 나타나 구룡령까지 내쳐 간다면 이곳에서 식수를 조달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편안한 등로는 끝났고 어슴푸레 난 길을 따라 계곡을 빠져 나가야 했기에 표지기를 유심히 살펴가며 조심스레 하산했습니다. 얼마 후 잎이 전혀 나지 않고 키가 4-50센티 가량 되는 푸르른 줄기만이 삐죽삐죽 나있는 속새 군락지에 다다르자 온 주위가 푸르고 상큼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지난 8월 영취산-육십령 구간을 지날 때 하늘을 가린 산죽이 사람 키를 훨씬 넘게 자라 무성했었는데, 잎은 하나도 없이 줄기만 가지런히 서있는 속새군락지를 보기는 어제가 처음이었고, 이 속새 군락지 주위를 산죽이 지키고 있어 산죽과 속새의 관계를 더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합수 점에 다다르기 얼마 전 만난 샛노란 동의나물 꽃이 야생화를 대표해 작별인사를 해와 잠시 멈춰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17시36분 왼쪽의 작은 지류와 합쳐지는 두 번째 합수점을 건너 어둠에 대비하고자 미리 헤드랜턴을 켰습니다. 오른쪽의 작은 계곡의 물을 받는 첫 번째 합수점을 지나자 수량이 많아지고 다리돌이 미끄러워 물에 빠질까 조심해서 계곡을 건너는 여성분이 보기가 안스러웠습니다. 두 번째 합수점부터는 계곡을 따라 난 길이 제법 넓어져 어두워지더라도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 계곡만 다시 건너지 않는다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밤을 뚫는 30분 남짓한 산행시간 중 딱 한 번 계곡을 더 건너 조리골을 빠져나왔습니다.
18시 20분 큰복내골과 만나는 명개교에 도착해 임도에 발을 들였습니다.
어둠을 헤치고 무사히 조개골을 빠져나왔음을 자축하고자 서로 하이파이브로 환호했습니다. 명개교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하산하는 저희들에 새롭게 길을 밝혀준 것은 남동쪽 하늘에서 막 떠오른 상현달이었습니다. 오대산 내면 매표소 가까이서 저희들의 안위를 걱정하여 찾아 나선 회장님 등 몇 분들을 만나 뵈자 고맙고 공연히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주목준락지를 들러보느라 십분 사이로 일행을 놓쳐 두로봉에서 매표소까지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중간에 한번도 쉬지 못하고 단숨에 내달려 온 동행분에도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18시36분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다다라 8시간 남짓한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대간 길 활엽수들은 나뭇잎이 따 떨어진 나무 끝에 물기를 머금고 있어 아름다운 상고대를 연출할 채비를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두주 후 다시 백두대간에 올라 하느님이 만드신 나무들의 살갗을 유심히 관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잎과 열매가 따 떨어져 나간 한 겨울에도 그들과의 대화를 계속해 이어가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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