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대관령-선자령-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산행일자:2006. 1. 15일
*소재지 :강원 강릉/평창
*산높이 :소황병산1,328미터/노인봉1,338미터
*산행코스:대관령-선자령-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산행시간:10시-17시21분(7시간21분)
*동행 :송백산악회
눈과 바람이 함께 산에서 빚는 세상은 어떠할 까 궁금해 아침 일찍 잠실에서 대관령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눈 좋기로 이름 난 대관령은 북쪽의 소황병산과 제휴해 바람과 초원을 아끼는 산객들을 불러 모으고, 또 남쪽의 고루포기산과 손잡고 겨울 산을 오르고파 하는 산객들을 푹푹 빠지는 눈길로 안내해 이제 한반도 남단에서 한겨울 눈나들이의 최고의 명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듯싶습니다. 지난 해 12월 능선에 소북이 쌓인 눈길을 원 없이 걸어보고자 닭목재-고루포기산-대관령구간을 뛰었으나 달 반 넘게 지속된 가뭄으로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쉬웠었기에 이번 대관령-소황병산-진고개 구간의 대간 종주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이번 산행의 키워드는 바람과 눈입니다.
공기의 이동으로 생성되는 바람은 그 특성상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기에 풍향과 풍속이 중요한 지표가 되며 그래서 풍향에 따라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과 높새바람 등으로 나누고 풍속의 세기를 기준으로 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및 노대바람 등으로 세분합니다. 눈 또한 결정의 크기에 따라 진눈깨비, 싸락눈, 가루눈 및 함박눈 등으로 분류하며, 지표면에서 증발된 수증기가 대기 중에서 승화되어 만들어 진 결정이 눈이 되어 지상으로 하강하는 중 바람을 만나게 되면 눈보라가 일어 얼마간을 공중에서 난무하다가 지표면에 내려앉습니다. 그 후에도 종종 강한 바람이 지상에 착지한 눈을 뒤흔들어 다른 곳으로 옮겨놓기도 합니다.
10시정각에 선자령을 향해 대관령을 출발했습니다.
대관령-소황병산-진고개 구간의 대간 종주에 나선 송백회원들이 자그마치 150명이 넘어 이들의 검은 옷차림만으로도 요 며칠사이 내린 눈이 막 자리 잡은 하얀 산하와 만나 빚어내는 흑과 백의 오묘한 조화를 살피기에 충분했습니다. 샛길을 벗어나 자동차 도로를 만나자 대관령 특유의 바람이 되살아났습니다. 대관령 출발 24분 후 한국통신 중계탑을 지났고 그 10분후에 큰길을 벗어나 선자령 행 산길로 다시 들어섰다 빠져 나오는 등 매봉에 도착하기까지 이처럼 샛길과 찻길을 번갈아가며 산행하기를 한동안 더 계속했습니다. 약 10분 후 다다른 선자령 2.7키로 전방 갈림길에서 나지막한 봉우리를 오른 쪽으로 끼고 도는 보다 한적한 우회 길을 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루금은 이 길이 아니고 사람들이 붐빈다고 오르지 않은 봉우리로 나있었습니다. 나뭇가지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꽃들과 벗하면서 이 우회 길을 걷는 동안 지나온 계절에 온 산하를 수놓느라 고생한 가지각색의 꽃들을 전부 쉬게 하고 하얀 눈꽃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한 이 겨울의 마음 씀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11시27분 해발 1,157미터의 선자령에 올라 갓 세운 듯한 깨끗한 표지석을 확인하고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분명 선자령도 대관령과 마찬가지로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개임에 틀림없을 진데 왜 나지막한 안부에 있지 않고 산봉우리에 올라와 있을까 하고 궁금해 했던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통과한 선자령나즈목이 선자령과 곤신봉 사이의 안부를 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그 나즈목이 우리의 선조들이 넘나 든 원래의 선자령이고, 여기 표지석이 세워진 선자령은 최근 들어 경계측량을 목적으로 하거나 또는 관광객을 위한 이정표로 삼고자 이름 붙여진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 선자령에 올라서며 지나온 초지는 한일농장 목초지였고 이어서 시원스레 전개된 광활한 풀밭은 삼양축산의 목초지였습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조성된 두 곳의 목초지를 지나며 대간을 넘나드는 바람을 붙잡고 쉬어가기를 간청했을 나무들을 베어내고 초지로 개간한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을 읽었습니다.
선자령에서 내려선 큰 길을 따라 오르다 곤지봉을 오르지 않고 옆 질러 간 것은 첫 번째 풍력발전기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였습니다. 높이가 40미터인 풍력발전기가 팔 길이가 22미터인 3개의 바람개비를 돌리는 소리가 너무 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인 기소르망이 그의 저서 “진보와 그의 적들”에서 풍력발전은 그 소음공해로 원자력발전을 대체할 수 없다고 한 그의 지적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9월 태백의 매봉에서 만난 현지 공무원에 따르면 풍력발전기 1기가 20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데, 그 정도로는 천 수백기의 풍력발전기를 세워야 원자력발전소 한 곳을 가름할 수 있기에 소음공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에너지는 새로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오로지 보존되며 그 형태만 전환된다는 열역학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풍속에 비례하는 바람의 운동에너지가 바람개비를 돌리며 소리에너지로 바뀌고 나머지가 유용한 전기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풍력발전기의 소리를 줄이는 것은 소음공해를 줄임은 물론 에너지효율도 같이 높이는 것이기에 관광용이 아닌 발전용으로 풍력발전기를 세운다면 이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시 42분 해발 1,140미터의 일출전망대에서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았습니다.
어제는 한 겨울이라 이 바람이 냉랭하게 느껴졌지만 2-5월중 석 달 동안이나 산객의 발목을 묶어놓는 입산금지령을 발동하는 것도 알고 보면 고온다습한 바닷바람이 고산준령의 대간을 넘지 못하고 산 중턱에 비를 뿌려 비구름을 떨어내기에 막상 대간을 넘는 바람인 높새바람 또는 휀 바람은 건조할 대로 건조해져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도가 최고로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해 안에 진고개에 닿고자 전망대의 간이 찻집을 들르지 않고 소황병산으로 내달렸습니다. 일출전망대 출발 10분 후에 다다른 길섶에서 다른 회원들과 함께 점심을 들고 나서 다시 종주산행을 이어가 첫 번째 풍력발전기를 지나고 대략 1시간 후에 마지막 발전기를 지났습니다. 18기의 발전기를 한 줄로 배열하지 않고 “ㅗ ”자형으로 배치한 것은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던 항상 몇 기는 가동시키기 위한 것으로 짐작됐습니다.
13시26분 1173미터의 매봉에 올라 햇빛에 녹아떨어지는 눈꽃들을 근접 촬영했습니다.
차들이 다닌 대로의 얼음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찼지만 날씨는 푸근하여 양지바른 길을 지날 때면 그동안 쌓인 눈들이 녹아 흘러 대간 길이 질펀했고 나뭇가지에 자리를 튼 눈꽃들도 뚝뚝 길바닥으로 떨어져 이러다가 이 겨울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 가 했습니다. 목초지와 산림을 확연하게 경계 짓는 철조망 왼쪽의 대간 길을 얼마고 걷는 동안 광활한 목초지에 듬성듬성 서있는 그림 같은 저 소나무들이 한여름 땡볕에서 노닐고 있을 소들에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등이 가려운 소들에는 비벼댈 그루터기가 되어 줄 것이다 생각하자 소나무가 더욱 덕스럽게 보였습니다. 철조망 옆길을 벗어나 오른 쪽 산속으로 들어가 고즈넉한 눈길을 걸으며 모처럼 겨울산행의 여유를 감지했습니다.
15시03분 소황병산을 지났습니다.
이 산의 정확한 위치를 지나가는 몇 분들에 물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가 확실치 않아 저 나름대로 전봇대가 서있는 곳이 소황병산이 아닐까 짐작해보았습니다. 이 산에 오르기 35분전에 산 중턱에서 귤을 까먹으며 5분여 쉬어서인지 이번 산행에서 가장 된비알인 오름길을 반시간 가량 걸어 올랐어도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소황병산에 올라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총 18기의 풍력발전기가 한 눈에 들어 왔고 꽤 많은 사륜차들이 정차한 남서방향의 황병산 정상부근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대관령을 출발해 소황병산에 이르기 까지 5시간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목초지 사이를 걸으며 4년 전에 오른 백두산의 서파능선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을 생각했습니다. 대간 길만 백두산까지 이어진다면 내친 김에 장군봉에서 시작해 넓디넓은 초원의 서파능선을 다시 한번 타겠다는 욕망을 아직도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15시52분 육잠바위에 올라 20여분 후에 오를 노인봉을 조망했습니다.
오랜 시간 눈길을 주었던 목초지에서 눈을 돌려 진고개로 향하는 평범한 산길로 다시 발을 들인 후 50분 만에 육잠봉에 다다랐습니다. 소황병산에서 육잠바위에 이르는 동안 약간은 지친 듯한 아들을 앞에 세우고 천천히 산행하는 한 아버지를 잠시 뒤따라가며 그분의 자식사랑을 읽었습니다. 겨울산행의 볼거리로 눈꽃이 으뜸이라면 어제는 최고의 볼거리를 카메라에 담느라 손놀림이 바빴던 하루였습니다. 응달진 나무에 피어 있는 눈꽃은 나름대로 실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좋았고, 양지바른 곳의 녹아내리는 눈꽃이 마지막 저녁햇살에 반사되어 내는 빛깔을 보고 대간시인 이 성부님이 읊은 대로 이 아름다운 빛깔을 떠준 우리의 산천에 고마워하고 또 고마워했습니다.
16시16분 해발 1338미터의 노인봉에 올랐습니다.
선자령에서 북적댔던 산객들은 다시 대관령으로 하산해서인지 노인봉은 생각보다 덜 붐볐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최고의 전망처는 노인봉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에 올랐던 동대산-두로봉 대간 능선이 먼발치로 선명하게 보였고 바로 앞 응달진 동사면에는 잘 보존된 눈꽃들이 조용히 숨어 있었습니다. 동쪽으로 소금강을 감싸고 있는 능선이 동해로 뻗어 내려갔고 남서쪽 멀리 소황병산 너머로 풍력발전기 2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좁은 암봉의 정상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서둘러 하산해 진고개로 내달렸습니다. 노인봉 못 미쳐 대피소는 물론하고 어느 한곳에도 한 눈을 팔지 않고 내달린 덕에 평소에 저를 앞섰던 몇 분들이 제 뒤를 따랐습니다.
17시21분 진고개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산행시간을 줄이고자 노력한 결과 대관령 출발 7시간 21분 만에 26키로의 대간 길 장정을 마쳤습니다. 이번에는 코스가 너무 길어 서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 이렇게 달린다면 과연 무릎이 견뎌내겠는가 싶어 다음부터는 속도를 조금 줄여볼 생각입니다. 이제 겨우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을 마쳤는데 1대간 9정맥을 차질 없이 전부 해내려면 무엇보다도 무릎이 온전히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인생도 제게 사주지 않는 술을, 그것도 다른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고 유일하게 마실 줄 아는 맥주를 6캔이나 사갖고 오느라 고생하신 회원 한분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작년 10월 밤길을 안내해 고맙다며 제게 맥주를 사겠다고 별러온 그 분이 사온 맥주를 차게 해 산행이 끝난 후 함께 마시고자 배낭에 넣고 산행을 했는데 마지막 차가 밤10시 넘어서 출발한다하여 산본가는 대중교통이 전부 끊어지기 전에 서울에 닿고자 앞의 차를 타느라 그분과는 자리를 같이하지 못하고 잠실로 돌아와서 하이맛 친구와 다 마셔버려 더욱 죄송했습니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고백 할 것은 저는 제 인생에 술을 정말 많이 사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서 시골에서 술심부름을 하느라 홀짝대며 배웠던 막걸리를 필두로 우리의 위스키 소주는 물론하고 양주와 맥주 등 종류를 불문하고 계속 사댔는데 제 인생은 야속하리만치 이제껏 저를 위해 단 한번도 사주지 않았습니다. 한창 젊어 집사람이 며칠간 친정으로 몸을 옮긴 것도 그놈의 술 때문이었기에 관계치 않고 주는 대로 제 술을 받아 마시는 제 인생이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더 이상 무턱대고 술을 사주지 않겠다고 반란을 획책해 2001년 3월부터 제 인생에 모든 술의 공급을 끊었습니다. 그랬더니 유예기간도 주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일시에 끊는 법이 어디 있냐며 협상을 요청해와 아주 가끔 맥주만 사주기로 합의했습니다. 맥주는 술이 아니고 음료수라고 강변하는 제 인생에 그 정도는 들어주어야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죽어라고 술을 사주고도 인생으로부터 한잔도 얻어먹지 못한 못난이가 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시인 정 호승님이 그랬습니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을 사주지 않았다”고 그의 시 “술 한 잔”에 울분을 털어 넣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인생에 술을 사주고 시를 얻었는데 제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골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저도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얻었습니다. 세상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알았습니다. 술을 통해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법은 배우지 못했어도 아름다운 이 세상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그저 그런 선남선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법을 익혔습니다. 또 그렇게 살다보면 사는 것이 즐거울 수 있음도 배웠습니다. 제게 술을 받아먹기만 했던 인생이 제게 돌려준 것은 술이 아니고 이 세상 살아가는 인생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생은 제게 과다하게 술을 얻어먹고 인생전부를 제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인생에 고맙다며 인사했고, 그래도 술은 맥주만 사주겠다고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긴 글 끝에 또 맥주로 손이 갑니다. 이 맥주는 제 인생이 아닌 제가 마실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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