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단목령-점봉산-망대암산-한계령
*산행일자:2006. 3. 26일
*소재지 :강원 인제/양양
*산높이 :점봉산1,424미터/망대암산1,236미터
*산행코스: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단목령-길갈교(오색초교)
*산행시간:6시21분-15시11분(8시간50분)
*동행 :나홀로
비록 시작은 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충북 영동의 궤방령에서 첫 발을 내딛었지만, 그리고 한 방향으로 계속해 진행하지 못하고 이 구간 저 구간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지만, 마무리 산행만은 대간 길의 남한 땅 최북단의 진부령에서 마쳐 완주의 축배를 들겠다는 것이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오는 4월2일로 예정된 미시령-신선봉-진부령구간을 종주하기 전에 지난 2월 악천후로 포기한 단목령-점봉산-망대암산-한계령 구간을 먼저 다녀와야 하는데 그 일이 그리 간단치 않아 지난 한 주 내내 고민을 했습니다.
우선 이 구간 전역이 산불예방을 위해 입산이 금지되어 있고 특히 망대암산-한계령구간은 국립공원법에 따라 영원히 출입을 금하고 있어 50만원의 벌금을 물을 각오가 서있지 않으면 마음 편히 나설 수 있는 길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망대암산-한계령 구간의 암릉길이 속리산과 조령산의 암릉길보다 더 위험하다며 날씨 좋은 날 여럿이서 같이 갈 것을 당부하는 산행기를 많이 읽은 터라 저 혼자 나서기가 겁이 났습니다. 여차하면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코스를 누구한테 같이 가자고 부탁할 수도 없고, 혼자 가자니 암릉 길이 마음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며칠을 보내다가 포기하자고 마음먹고 송백의 지리망산 산행에 함께 하기로 예약을 하고 나자 한 짐을 덜어 놓은 듯이 홀가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런 이유로 그리 간단히 포기한다면 이 다음 남북통일이 되고나서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북한 땅의 대간 길을 단독으로 종주하겠다는 꿈을 꾸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며 마음 한 구석에서 저를 비웃는 소리가 제 귀를 때렸습니다. 결국에는 저 혼자서 오르기로 최종결심하고 금요일 오후에 지리망산 예약을 취소하고 산 친구에게서 20미터 보조자일을 빌려다 놓는 등 길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국립공원의 감시원보다 먼저 한계령 초소에 닿고자 새벽부터 서둘렀습니다.
하룻밤을 오색리 안골마을 민박집에서 머무르고 일요일 아침 일찍 민박집 아저씨가 차를 태워주어 점봉산으로 오르는 한계령의 들머리에 쉽게 도착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6시5분에 동서울을 출발하는 양양 행 막차를 타고 가는 중 홍천을 지나자 일기예보에도 없는 비가 뿌리기 시작해 걱정됐습니다. 전 구간의 대간 길 중 가장 험하다는 한계령-망대암산 암릉 길을 이 비를 맞으며 저 혼자서 오르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고심 끝에 민박집에 부탁하여 설악산 구조대원 한분을 가이드로 모실까 했습니다만, 새벽에 일어나 빽빽하게 하늘을 수놓으며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보고 하늘도 저를 돕는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하고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아침 6시21분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아침기도를 올린 후 한계령을 출발했습니다.
잠시 후 일출을 볼 수 있었지만 암릉 길 무사통과라는 난제가 남아 있어 여느 때처럼 마음 편히 모처럼의 장관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에 눈이 녹아 얼어붙은 빙판 길이 나타나 아이젠을 차지 않고는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2월에 되돌아 선 곳을 지나자 이내 본격적인 암릉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방금 전 암릉 길을 지나와 한계령으로 내려서는 남자 분 한 분에게 길 상태를 물어보자 조금 미끄럽기는 해도 걱정할 것 없다고 답을 해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1시간가량 걸린 암릉 길 통과는 생각보다 쉬웠고 안전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잔뜩 긴장해서인지 눈이 덮인 낭떠러지 바위 길을 어렵사리 옆으로 건너느라 마음을 졸였습니다. 전날 밤 산 밑에서 내린 비가 여기서는 눈이 되어 길을 살짝 덮고 있었기에 암릉 길을 지나기는 겁이 났어도 새 하얀 눈이 잔설 위에 쌓인 시꺼먼 속진을 가려주어 칙칙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얼마 후 걸쳐 있는 죽은 나무를 타고 바위에 올랐습니다. 곧 이어 암봉을 오른 쪽으로 돌다가 내려서는 바위길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산이라면 당연 로프를 걸어 놓았을 법한 하강 길인데 출입금지 구역이어서 공원 측에서 있던 로프도 한 곳만 남겨 두고 모두 철거했다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길을 지나서 백두대간을 완주하고자 하는 대간꾼들은 이토록 매몰찬 국립공원 측과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기대는 아예 안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무리하면 암벽을 내려서는 것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침 20미터 보조자일을 준비해온 터라 보다 안전하게 내려가고자 소나무가 서있는 옆으로 옮겼습니다. 자일을 풀어 소나무에 걸쳐놓은 다음 자일을 잡고 4-5미터의 암벽을 편안하게 내려섰습니다. 자일을 사려 배낭에 넣으면서 한 선배분의 도움으로 70년대 초 몇몇 대원들과 함께 오버행코스로 인수봉을 올랐던 기억이 났습니다. 암벽등반은 다른 산행보다 중독성이 훨씬 강해 한번 빠지면 다른 일들을 정상적으로 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리 오래하지 못하고 중단했습니다만 지금껏 제게 남아 있는 도전정신은 그 때 록크라이밍을 통해 체득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내려서 암봉을 오른 쪽으로 옆찌르며 진행하자 로프가 설치된 바위 길에 다다랐습니다. 가느다란 로프에 매듭을 해놓아 잡고 오르기가 편했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제 경우 로프만 의지해서 오르다가는 팔에 여간 힘이 부치는 것이 아니기에 반드시 지형지물을 최대로 활용하곤 합니다. 어려움은 여기서 끝났고 또 한 암릉을 이번에는 왼쪽으로 우회해 쉽게 통과했습니다. 지난 밤에 눈만 내리지 않았다면 보다 빨리 이 코스를 통과할 수 있었겠구나 하면서도 눈비가 내리는 한 밤에 지나기는 그리 내키지 않는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시30분 1158봉에 다다랐습니다.
주전골 2.8키로라고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진 능선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15분간 편안한 길을 걸어 1158봉의 전망처에 다다랐습니다. 전망처에서 조망한 설악의 서북능선은 막 목욕을 끝낸 신사처럼 말쑥하고 점잖아 보였습니다. 1월1일 새벽 2시 한계령을 출발하여 대청봉으로 오르는 중 밟았던 서북능선에는 입김이 서린 안경을 벗고 혹한에 시달리며 눈길을 힘들게 걷느라 정을 붙이지 못했는데 먼발치서 바라다보는 봄날의 서북능선은 마냥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모두가 암릉 길을 무사히 마친데서 오는 여유로움 덕분이기에 안전하게 보살펴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1158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고 걷다가 다시 왼쪽으로 조금 방향을 바꾸어 내려가는 길은 푸르른 산죽 밭을 가르고 나있어 싱그러워 좋았습니다. 1158봉 출발 30분 후 250미터 가량 고도를 낮추어 십이담계곡으로 갈리는 삼거리 안부로 내려서자 자연휴식년제 구간식생조사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그동안 입산을 막아왔던 자연휴식년제가 작년 말로 끝나 앞으로는 자유롭게 이 구간을 지날 수 있겠구나 했는데 국립공원에서 느닷없이 법을 고쳐 영원히 출입을 금지해 놓았다 하니 해제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대부분의 대간 꾼들은 날벼락을 맞은 듯 망연자실해 있을 것입니다.
10시5분 여러 개의 큰 바위가 집결한 해발 1,236미터의 망대암산에 올라 처음으로 10여분을 편히 쉬었습니다. 점봉산을 지척에 두고 뒤를 돌아다보니 왼쪽으로 3년 전에 올랐던 가리봉이 전신이 드러나 보였고 그 너머로 멀찌감치 안산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안산에서 오른 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귀때기청봉, 끝청봉과 중청봉을 지나 녹지 않은 눈으로 머리가 허연 대청봉에서 끝나는 서북능선의 부드러운 실루엣이 이곳에서도 분명하게 잡혔습니다. 바람도 그리 세차지 않았고 햇살이 따사롭기 그지없어 간간히 들려오는 새소리가 마냥 평화롭게 들렸습니다.
10시 58분 해발 1,424미터의 점봉산에 올라섰습니다.
점봉산은 망대암산과는 달리 정상이 넓었고 장대한 표지석이 서 있어 표지석 앞에 배낭을 놓고 등정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망대암산에서 점봉산에 이르는 길은 완만한 오름길임에도 길에 눈이 녹지 않았고 간간히 눈에 띈 주목나무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저공비행을 하며 제 주위를 위협하듯 맴돌다가 다른 한 마리와 짝을 지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 새삼 애틋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한계령에서 9키로를 걸어 점봉산에 오르기 까지 암릉 구간을 지나오느라 4시간 반가량 걸렸지만 여기서 6.2키로 떨어진 단목령에는 2시간 반이면 충분히 다다를 듯싶어 조금 더 쉬면서 여유롭게 단목령으로 출발했습니다.
12시9분 단목령을 3.2키로 남겨 놓은 해발 910미터대의 안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점봉산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길은 고도를 500미터 이상 낮출 만큼 가팔랐습니다. 아직도 녹지 않은 눈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너른이골로 갈리는 안부를 두 번 지났습니다. 중간 중간에 훼손된 길을 복원하기 위해 흙을 집어넣은 마대를 쌓아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아이젠이 이 마대를 터트릴까 보아 신경 써서 걸었습니다. 망대암산에서 점봉산으로 오르는 길의 키가 작은 관목들과는 달리 점봉산에서 내려서는 길에는 키가 훤칠한 교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대비됐습니다.
13시25분 해발 855미터의 단목령에 도착해 7시간의 대간 종주를 마치고 대간 길에서 벗어나 왼쪽의 오색초교로 하산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단목령에 도착하기 까지 한 시간 동안 아름드리 참나무들과 그 밑에서 잘 자라고 있는 산죽을 가르고 난 환상적인 산길을 걸으며 며 더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이 길에서 저 혼자라는 외로움도 공포도 또 몰래 종주를 했다는 죄의식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어려운 구간을 마치고 이제 한 구간만 더 하면 대망의 백두대간 완주를 이룬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입니다.
오색초교로 내려서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계곡에 접한 산의 허리로 난 낙엽이 소북이 쌓인 좁은 길을 걸으며 낙엽 속에 숨어 있는 얼음을 잘 못 내딛어 계곡으로 떨어질까 보아 상당히 조심스러웠으며 해발 400미터대로 내려서서야 더 이상 길을 덮는 얼음이 보이지 않아 안심이 됐습니다. 겨울 내내 얼었던 눈들이 녹아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가장 확실한 봄의 소리였고, 길섶에 피어난 하얀색의 꿩의 바람 꽃(?)과 연자주색의 똑 같은 모양의 꽃들 또 노란 복수초가 가장 눈을 끄는 봄의 그림이었습니다.
15시11분 길갈교를 다리를 건너 오색초교 가까이의 차도에서 산행을 마쳤습니다.
9시간이 다 되는 도둑산행을 마치고 미리 부른 민박집 차로 오색으로 옮겨 16시15분에 상봉동 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후손에게 온전하게 넘겨 줄 우리의 산하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고귀한 유산입니다.
이 유산을 우리 대에 탕진하고 훼손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백두대간이, 그리고 망대암산-한계령 구간의 특별히 보전되어야 하고, 그래서 국립공원에서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다만 후손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온전하게 백두대간을 넘겨주어야 한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저희들도 제한적으로나마 오르내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느 한 구간을 막아 놓고 절대로 통과가 안 된다 하는 것은 국립공원 측이 대간 사랑을 독점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대간꾼들과 사랑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함께 끌어내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덧붙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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