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한북정맥 종주기3(광덕고개-국망봉)

시인마뇽 2007. 1. 3. 11:59
                                한북정맥 종주기3


                              *정맥구간: 광덕고개-백운산-국망봉

                              *산행일자:2004. 4. 18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국망봉1,168미터/백운산888미터

                              *산행코스: 광덕고개-백운산-도마치봉-신로령-국망봉-생수공장앞

                              *산행시간:8시43분-17시45분(9시간2분)

                              *동행       :정승진


  경기도 북단의 산들에는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는데 영락없는 여름날씨가 어제의 산행을 힘들게 했습니다. 한여름이라면 우거진 녹음으로 햇빛을 가릴 수 있을 터인데, 이제 막 가지에서 새순이 움트는 시점이라 어제같이 바람도 일지 않고 기온이 20도를 훨씬 넘는 후덥지근한 날에는 꼼짝없이 비지땀을  흘릴 수밖에 없어 장시간 걷는 종주산행이 힘들었습니다.


  어제는 경기 포천의 광덕고개-백운산- 도마치봉- 국망봉을 잇는 한북정맥을 밟았습니다.

승진이와 함께한 9시간의 긴 산행이 후덥지근한 날씨와 길 양옆으로 볕을 가릴 나무들을 베어낸 민둥산의 능선코스가 꽤나 길어 힘들었지만,  13정맥의 하나인 한북정맥을 탄다는 설레임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침 8시 43분 광덕고개에서 감자떡으로 입맛을 돋군 후 백운산 들머리인 철 계단을 올라섰습니다.  길 양옆으로 즐비하게 피어 있는 야생화가 자색의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도감의 도움으로 그 야생화가 얼레지 꽃임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능선의 나무들은 아직도 새순이 돋아나지 않아 황량했는데 만발한 얼레지 꽃이 계속해 이어져 그 황량함을 덜어주었습니다.


  한시간 남짓 2.5키로를 걸어 백운산을 0.6키로 남겨놓은 지점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첫 인사를 나눈 분들은 흥덕사에서 올라 광덕고개로 하산한다는데 그 분들은 저희보다 훨씬 일찍 산행을 시작한 부지런한 분들입니다.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오가는 이들이 많지 않기에 만나는 이들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10시15분 해발 888미터의 백운산에 다다랐습니다.

북쪽으로 광덕산과 복주산을 잇는 한북정맥의 주 능선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서둘러 증명사진을 남긴 후 도마치 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흘 전 청계산에서 어렵사리 그 이름을 확인한  양지꽃이 길섶에 수북하게 피어 있어 반가웠고, 도마치 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도 작년 10월에 한번 밟은 터라 역시 반가웠습니다. 11시 5분 광덕고개에서 5.1키로를 걸어 해발 936미터의 도마치봉에 올랐습니다. 나홀로 산행으로 오후 3시경에 여기 도마치봉에 오른 작년 10월에는 해가 얼마 남지 않아 절정의 단풍만 감상하고 바로 흥덕사로 하산하여 아쉬움이 컸었는데 어제는 국망봉까지 내달아 아쉬움을 풀었습니다. 잠시 주위의 정경을 둘러보며 카메라에 옮겨 담는 동안 광덕고개를 늦게 출발한 젊은 한 쌍이 국망봉을 넘어서 일동으로 하산할 뜻이라며 휑하니 저희들을 앞질러 갔습니다.


  11시20분 도마치봉을 출발한지  10분만에 만난 냉천의 샘물로 목을 추겼습니다.

들머리에서 발견한 얼레지 꽃은 양지꽃과 더불어 여기 광덕고개-국망봉의 주능선에 피어 있는 대표적인 야생화입니다. 석룡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지나 30분 가까이 민둥머리 능선을 걷고 또 걸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소나무 밭을 만났습니다.


  12시 14분 소나무 밑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승진이가 준비해온 떡과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명품 거버 칼로 깎아낸 사과를 맛있게 들고나자 등을 눕히면 바로 잠이 들 정도로 온몸이 나른해 졌습니다. 식후의 나른함은 고등동물인 포유류동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옛날  시골에서 최고로 대접받은 우공들이 여물을 다 먹고 난 후  등을 눕혀 되새기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는데 제게는 나른함을 만끽하는 우공들이 그리도 편안하고 여유로와 보였습니다.


  12시 40분 다시 짐을 꾸려 고행 길에 나섰습니다.

도마치봉에서 국망봉까지  7.8키로의 능선 길을 걸으며, 자연 이번 총선에 관해 몇 마디를 나누었습니다. 승진이는 자신이 찍은 표가 결과적으로 사표가 되어 아쉬워했고, 언제라도 진정한 보수로 남기를 원하는 저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좌경화에 우려를 표하는 정도였을 뿐,  산상에서나마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고자 더 이상의 논쟁을 삼가했습니다.


  13시 34분 국망봉 2.5키로 전방의 신로령을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능선 길을 뒤돌아보니 정말 먼길을 용케도 걸어 왔구나 싶어 저희들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오른쪽 밑으로는 포장된지 얼마 안되었을 도마치 고개길이 분명하게 제 모습을 내보였고, 왼쪽 밑으로는 가리봉과 그 주위에 암벽들이 직립해 있어 설악산이 연상되었습니다.  이 산을  끔찍이도 아끼는 어느 한 분을 만났는데, 애절하게도 그는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그리도 산을 사랑하고 아끼어 줄곧 오르내렸는데 왜 내가 암에 걸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한탄이 4년 전 암으로 그 미를 먼저 보낸 제게는 너무도 처절한 절규로 들렸습니다. 경북대병원에서 암으로 판명되어 삼성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내일 나온다는 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벙커안이 시원하겠다는 승진이의 아이디어대로 군사목적으로 구축한 벙커 속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습니다. 저희들이 쉴 자리로 선택한  벙커는 신로령 근처에서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 시원해  국망봉의 석빙고로도 손색이 전혀 없는 훌륭한 휴식처였습니다.  점심때에 남겨 놓은 사과를 마저 까먹고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식히자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위 아래 피어 있는 노랑색의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고 도감을 찾아 확인해보니  산괴불주머니 꽃이었는데, 얼레지 꽃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야생화입니다. 14시 4분 다시 오름길에 나섰습니다. 곧이어 만난 높은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오른 쪽으로 트래파스하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보아, 승진이도  봄 날씨를 뛰어 넘는 기습적인 더위 탓에 많이 지친 듯 싶었습니다.. 광덕고개에서 신로령까지가 얼레지의 군락지라면 여기서 국망봉까지는 노랑색의 양지꽃이 군락을 이루어 부지런한 나비들을 불러모으고 있었습니다. 능선에서 확인한 꿩의바람꽃과 미치광이풀도 이번 산행으로 만난 소중한 야생화이기에 모두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국망봉을 1키로 가까이 남겨 놓은 고개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했습니다.

장암저수지에서 골짜기를 타고 불어 올라오는 시원한 골바람에 온 몸을 맡겨 되살린 원기로 국망봉으로 향하는 마지막 피취를 올랐습니다.


  15시12분 광덕고개를 떠난 지 6시간 반만에  1,168미터의 국망봉 정상에 선 저희들은 하이파이브로 환호했습니다. 동쪽으로는 화악산과 석룡산이, 남동쪽으로는  명지산이, 서북쪽으로는 각흘산과 명성산이, 남쪽으로는 강씨봉과 귀목봉이 , 그리고 북쪽으로 광덕봉과 복주산이 자리해 경기도 제3의 고산인 국망봉과 교우하고 있었는데, 이산들 모두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5시 22분 구름 한 점 없는 땡볕이 정상에 서 있는 저희들을 밀어내기에,  땀흘려 정상에 오른 대견한 저희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후 서둘러 하산하였습니다. 광덕고개에서 약 13키로를 걸어 올라온 국망봉에서 장암저수지까지 거리가 겨우 3.2키로라니 내림 길의 경사가 급하다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되었습니다. 스틱의 도움으로 가파른 하산 길을 천천히 40여분 내려가 대피소에서 쉬면서 심호흡으로 청정한 공기를 들이마셔 도심의 공해에 시달린 폐부를 가슴속 깊이 씻어 냈습니다.


  16시 10분 대피소에서 출발하여 얼마고 내려오니 주위의 나무들이 연녹색의 새순들로 산뜻하게 보였습니다.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고, 그 깊은 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발이 시리도록 차가와 더위에 지친 저희들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17시 45분 생수공장에 도착, 9시간의 긴 종주등반을 마쳤습니다.

택시로 이동으로 옮겨 생맥주를 마시며 한북정맥의 광덕고개-국망봉코스를 무사히 마쳤음을 자축했습니다. 둘이서 열내며 산의 예찬론을 펴나가는 중  승진이가  보금자리를 펼칠 디트로이트인근에는 산이 없다며 내달에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어르신네들의 걱정에 안스러워 하는 승진에 저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꿈이 분명하고 그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승진이의 다부진 모습을 지켜본 저는 승진이가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라 믿기에 서슴없이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라고 어찌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해발 4095미터의 키나바루를 함께 오르고 그후 경기도의 산들을 3번이나 같이 산행한 제가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딸자식처럼 아껴온 승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주위의 따뜻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되어 격려의 한마디도 전해주었습니다.


  어제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올 해 안으로 한북정맥을 종주해보겠다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승진이와 함께 시작한 한북정맥을 저 혼자서라도 마칠 각오입니다. 종주를 마치면 훌륭한 산행기가 더해져 내년 봄에 출간할 제 산행기가 보다 풍성해 질 것입니다. 그러면 제 삶도 그 만큼 윤택해 질 것이기에 반드시 해낼 각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