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한북정맥 종주기1(수피령-하오현)

시인마뇽 2007. 1. 3. 11:41
                                한북정맥 종주기1


                                 *정맥구간: 수피령-복주산-하오현

                                 *산행일자: 2004. 5. 5일 

                                 *소재지   :강원철원/화천

                                 *산높이   :복계산1,056미터/복주산1,152미터           

                                 *산행시간: 9시35분-17시40분(8시간 5분)

                                 *동행       :없음

               

    드디어 한북정맥의 첫 구간에  발을 들였습니다.

한북정맥은 남한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대간상의 추가령에서 시작되어 백암산, 대성산, 광덕산, 국망봉, 운악산, 도봉산을 이룬 다음 파주 교하의 해발102미터의 장명산을 끝으로 곡릉천으로 침잠하는 전장 175키로의 산줄기입니다. 한북정맥의 시원점인 추가령은 북녘 땅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남한 땅  최북단의 대성산 남쪽에 위치한 수피령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합니다.


  백운산-국망봉 구간과 강씨봉-청계산 구간을 같이 오른 승진이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고별산행으로 함께 뛰고자 했으나 승진이가 무릎이 아파 병원에 다니게 되어 좌절되었고, 과천시 산악연맹의 회원 분들과 동행하고자 한 시도 역시 이러저러한 일들로 무위로 그쳐 저 혼자서 시작했습니다.


  어제 대성산 바로 밑의 수피령 고개에서 시작한 한북정맥 첫 구간의 종주는 일반인들이 오를 수 없는 대성산을 제대로 조망하고자 복계산을 먼저 오른 다음 5시간 동안 마루금을 타고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전진, 복주산에  올라서 다음에 찾을 회목봉과 광덕산을 확인하고 하오현 고개로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했는데, 총 7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아침 9시30분 사창리에서 택시로 이동하여 출발지인 해발 780미터의 수피령에 도착하였습니다. 어제는 시간 운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택시비로 많은 돈을 까먹었습니다. 집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13,000원, 사창리에서 수피령까지 16,000원이 들었는데 산행을 끝내고 보니 충분히 줄일 수 있었습니다.


  9시 35분 복계산에 이르는 들머리에 들어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과 격전을 치러 일구어 낸 승전을 기념하는 전적비를 들러 보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지는 우리사회의 좌경화를 막지 못해 먼저 가신 님들에 송구스러웠습니다. 동서울에서 함께 버스를 탄 등산객들은 이동과 광덕고개에서 전부 내리고 한북정맥을 종주하고자 이곳 수피령을 찾은 사람은 저 혼자이기에, 출발 10여분동안 까악까악 짖어대며 동행을 해준 까마귀가 고마웠습니다.


  길을 올라 마루금에 다다른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 10시 31분 해발 1,056미터의 복계산에 섰습니다. 복계산은 한북정맥상의 산은 아니나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오를까 싶고 대성산을 조망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곳이어서 40분 정도 시간을 더 들여 들렀습니다. 화천군과 철원군의 어름에 위치한 복계산 정상에 철원군에서 표지석을 세웠는데, 화천군에서는 비목의 고장답게 표지목을 세워 서로 대비되었습니다. 백운산-국망봉 길에는 양지꽃이 즐비했었는데 복계산을 오르는 길에는 꽃이 조금 더 큰 나도양지꽃이 오가는 길손들을 반겼습니다. 북동쪽에 위치한 대성산은 군사목적상 오를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한눈에 들어온 산세들이 웅장하면서도 깔끔해 보였고 북서쪽에 자리잡았을 연천의 고대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림해서 모두를 카메라에 실었습니다.


  10시 38분 복계산을 떠나 복주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탔습니다.

되돌아 온 헬기장에서 잠시 쉬면서 맥주를 든 후, 11시 정각 남동쪽으로 내달렸습니다. 헬기장을 출발한 후  처음 몇 분간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연달아 오르내렸으나 그 다음부터는 능선길이 완만하여 걷기에 좋았습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실린 어느 분의 산행기에는 산행코스가 대단히 험한 것으로 소개되어 걱정을 했었는데 격심한 비바람 속에 산행을 마쳤음을 감안해도  그 분의 산행기는 조금은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2시 15분 해발 900-1,100미터 대의  연봉들을 오르기도 하고 트래파스도 하며 나아가 다다른 880미터대의 안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야생화 얼레지와 피나물이 군락을 이루었고, 현호색도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피나물의 노랑꽃들이 불러모은 흰나비와 검은 나비들이 나풀거리는 모습에서 새 생명의 약동을 읽었습니다. 위도와 고도가 모두 높은 여기 능선 주위는 이제 초봄을 맞은 듯 싶어, 계절의 여왕 5월의 신록이 아직도 초라했습니다. 넓은잎나무들에서 막 돋아난 새잎들이 줄기의 칙칙함을 몰아내지 못하여 회색의 겨울잔재가 말끔히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12시 28분 다시 복주산으로 내달렸습니다.

30분여 내달리니 낙엽송들이 제대로 신록의 푸르름을 내보여 피로감을 덜어 주어 좋았고, 산밑에서 나물 캐는 여인네들의 얘기소리가 들려와 반가웠습니다. 늦깍이 진달래의 뒤늦은 만개가 신기하여 카메라에 옮겨 담았고 대단위의 피나물 꽃 군락지도 함께 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복계산-복주산의 야생화가 백운산-국망봉보다 종도 다양하고 양도 훨씬 많아 이번 산행은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13시 49분 930미터 대의 안부에서 잠시 세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다시 여러 봉들을 오르내렸습니다. 하늘은 맑은데, 그래서 햇살은 따가운데 모자가 날릴 정도로 바람이 드세어 산행을 하기에 불편했습니다. 그 동안 밟아온  길을 돌아보자 복계산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는데 앞으로 오를 복주산은 그 봉우리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답답했습니다.


  14시 32분 나물을 캐는 분들이 몰고 온 갤로퍼차 2대가 서있는 임도를 만났습니다.

먼저 오른 분의 산행기에는 여기서부터 복주산까지 1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하여 쉬지 않고 임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 동안 지난 헬기장과 참호가 수없이 많아 이 능선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분간  걸어 만난 헬기장에서 임도가 끝나고  다시 산길이 시작됐습니다. 여기서부터 복주산까지는 산길에 바위가 많아 지금까지의 밋밋한 코스와는 달리 아기자기했습니다.


  15시 32분 복계산을 출발한 지 5시간만에 드디어 해발 1,152미터의 복주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저 혼자 올라 정상에 섰음을 증명하고자 철원군에서 세운 표지석 옆에 배낭을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람도 잦아들고 5시간의 긴 산행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남은 사과를 까먹으면서 10여분간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음에 오를 회목봉과 광덕산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뒤늦게 활짝 핀 진달래가 이곳 정상에는 산밑보다 한참이나 계절이 늦게 찾아온다는 자연의 순리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16시 9분 1,100 미터대의 마지막 헬기장을 지나자 하오현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산 중 철원방향으로 자리잡은 저수지가 시원해 보여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이 채 못되어 해발 800미터대의 하오현 고개가 눈앞에 나타나자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풀었습니다.


  16시 38분 하오현 고개에 내려섰습니다.

미지의 산을 혼자 오르게 되어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설레는 가슴을 안고 한북정맥을 뛰어 그 첫 구간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어제 그 첫 발을 들인 한북정맥은 다른 정맥보다 거리가 짧기에  올해 안으로 종주산행을 마치고자 하며,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백두대간을 밟을 생각입니다.


  고개 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자 복계산-복주산 야생화들의 꽃 잔치에 초대된 나비들의 나풀거리는 모습이 다시 떠올라, 작자미상의 “나비야 청산 가자”라는 시조를 읊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긴 시간  종주에서 오는 피곤함을 이 시조에 실어 보내며, 한북정맥 종주기를 맺습니다.


                         나비야  청산 가자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