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종주기 11
*정맥구간:공덕재-오봉산-여주재-29번국도
*산행일자:2006. 6. 17일
*소재지 :충남 청양
*산높이 :오봉산455미터
*산행코스:공덕재-오봉산-매산리도로-여주재-240봉-29번국도
*산행시간:9시27분-17시46분(8시간19분)
*동행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그동안 혹사했던 무릎을 달래고자 천천히 걷기를 두 달 반가량 계속해왔더니 다시 옛날 수준으로 산행속도를 내는 것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어느새 천천히 걷는 것이 몸에 배어 걷는 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숨이 차올라와서입니다. 어제만 해도 그러했습니다. 9시27분에 공덕재에서 산행을 시작했기에 해지기 전에 문박산을 지나 645번 지방도까지는 무난하게 진출하리라 생각했는데 한참을 미치지 못한 29번 국도에서 멈춘 것은 제 걸음이 옛날보다 더뎌졌기 때문입니다. 선답자 한분은 이 길을 6시간 반이 조금 더 걸려 마쳤고 저하고 산행속도가 비슷했던 또 한 분도 8시간이 채 안 걸렸는데 저는 8시간을 넘겨 걸어 겨우 29번 국도에 다다랐습니다. 저녁 7시안에 645번 지방도로까지 진출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되어 29번 도로에서 산행을 멈추고 청양시내로 나갔습니다. 백두대간을 뛸 때에도 다른 산객들에 한참을 뒤쳐져 줄곧 후미에서 걷곤 했는데 그 때보다 더 늦어졌으니 앞으로 안내산악회를 따라 제대로 종주산행을 할 수 있을지 크게 걱정되었습니다.
아침 9시27분 공덕재를 출발해 오봉산으로 향했습니다.
기차로 보령으로 내려가서 바로 청양군 화성면소재지까지 버스로 이동했고 화성에서 오천원을 들여 공덕재까지 택시를 타고 가 다른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고개인데도 바람이 시원해 공덕재를 출발하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오름길이 가팔랐습니다. 소나무 간벌지대를 지나서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린 다음 너덜 길의 안부로 내려서는데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언제 쐐기에 쏘였는지 오른 팔등이 따갑고 근질근질했습니다. 다시 25분을 더 걸어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420봉에 오르자 소나무 밑 등에 고려 말 고승인 나옹화상의 시 “청산에 살라하네”의 일부시구가 적힌 비닐표지판이 걸려있었습니다. 산을 통해 전하는 말없이 살라하고 티 없이 살라하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살다 가라는 나옹화상의 말씀은 일상생활에서는 지키기 힘들지만 저 혼자서 종주산행을 할 때만이라도 그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시46분 해발455미터의 오봉산을 올랐습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출발해 봉우리 2개를 오르내린 후 오봉산에 이르는데 27분이 걸렸습니다. 오봉산에 올라 땅바닥에 떨어진 “이곳은 정상입니다”라고 적힌 안내판을 표지목에 끼워놓은 다음 바로 아래 헬기장을 지나 그늘진 곳을 찾아 긴 시간을 쉬었습니다. 역사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커피만 빼 마시면 배가 살살 아파와 이번에는 그냥 왔는데도 뱃속이 편하지 못한 것은 몇 번을 산속에서 일을 보았더니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 가 걱정되었습니다. 얼마동안 밥을 줄 때마다 종을 울렸다가 그냥 종만 울려도 침을 질질 흘리는 개처럼 산에서 일을 볼 때의 시원함에 익숙해진 제 배가 산만 보면 요동을 쳐대는 것이 조건반사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저 혼자서 피식 웃었습니다.
11시5분 오랜 쉼을 끝내고 다시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20분을 걸어 낙엽 쌓인 내림 길을 지났고 이번 산행 중 가장 높은 480봉에 올랐다가 너덜 길의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시꺼먼 소나무들이 잔뜩 들어선 한낮의 정맥 길은 조용했습니다. 상공을 나는 여객기가 내는 소리가 반갑게 들릴 만큼 너무 조용해 산짐승이라도 나타나 이 정적을 깨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너덜안부를 지난 지 2-3분 후에 청양숭의청소년수련원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서부터 땡볕을 쪼여가며 24분을 걸었습니다. 임도 아래 오른 쪽 비탈면에 조림한 전나무가 잘 자라고 있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전나무 조림지가 끝나고 바로 이어서 수종을 모르는 침엽수의 어린 나무들이 촘촘히 심어진 묘목 밭을 지나 11시51분에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숲 속으로 들어서 340봉 왼쪽으로 우회해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갔다가 무명봉으로 오른 다음 절개지를 만나 계단처럼 난 길을 내려와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매산리 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12시15분 매산리 포장도로를 건넜습니다.
절개면을 올라 잡목 숲으로 난 마루 금을 잠시 이어가다가 쉴 곳을 찾아 퍼져 앉아 16분을 쉬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360봉에 올랐다가 KBS안테나와 산불감시 초소를 지나 삼각점이 박혀있는 해발 422미터의 천마봉에 올랐습니다. 다른 삼각점들은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했는데 이 봉우리의 원판 삼각점에는 국방부지리연구소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색달랐습니다. 천마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가느다란 철사 줄이 쳐져있어 무심코 지나다가는 발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묘지를 지나고 오랫동안 보온재를 덮어둔 채 내버려둔 듯한 비닐 하우스를 지나 여주재로 내려섰습니다.
13시35분 36번국도가 지나는 해발 210미터의 여주재 오른 쪽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조금 내려가 폐업중인 주유소 옆의 쌍용휴게소에서 맥주1캔을 사마신 후 준비해간 점심을 먹느라 20분을 보내고 13시55분에 휴게소를 출발했습니다. 고개마루 조금 앞에서 왼쪽으로 난 임도로 들어섰다가 이내 오른 쪽 산길로 올라서 5-6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려 무명봉에 다다르자 땅바닥에 놓여진 청양산악회의 안내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15시 정각 삼각점이 설치된 334봉을 올라 10분을 쉬었다가 다시 2개의 봉우리를 넘어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나지막한 240봉에서 조금 내려가다 오른 쪽으로 90도를 틀어 제대로 내려가서 알바를 면한 덕에 이번 산행에서는 한 곳에서도 알바를 하지 않았습니다.
15시59분 방죽골과 오류골을 이어주는 고개마루로 내려섰습니다.
고개마루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이 달랐던지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시멘트가 포장되어 있었고 오른 쪽은 흙길 그대로였습니다. 고개마루 오른 쪽 아래로 무리지어 핀 하얀 꽃들이 청초하게 보였습니다. 고개마루를 출발하여 송전탑을 만나기까지 이렇다 할 봉우리도 오르내리지 않았는데 진이 많이 빠졌습니다. 한 시간 동안 임도와 산길을 들락날락하기도 지겨웠고 공조참의 파평윤공지묘 외에도 묘 몇 기가 더 있어 이정표로 삼기에는 헷갈렸으며 묵혀둔 밭에서 무성하게 자라난 잡풀들을 헤쳐 나가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주인이 저 만치서 트랙터로 밭을 고르고 있는데 밭가로 지나기가 눈치 보였고 고른 흙을 밟을까 신경 쓰며 조심스럽게 밭을 지나 장방형구덩이가 일정 간격으로 파진 길을 걸으며 왜일까 궁금했습니다. 구덩이 길이 끝나자 어느 곳에도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흐릿한 길을 찾아 잡목 숲을 뚫고 나갔습니다. 묘를 지났고 다시 묘목 밭을 지나 송전탑에 다다랐습니다.
17시3분 홍성T/L No. 4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이 송전탑에서 왼쪽 아래 조경원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12분 동안 넓은 길을 걸어 또 다른 송전탑에 다다랐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90도를 꺾어 산길로 들어서자 매일유업 청양공장의 철조망울타리가 보였습니다. 이 울타리를 따라 17분간 부채꼴 모양을 그리며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공장안에 세워진 송전탑가까이로 가서 왼쪽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나 얼마 후 임도를 만났고 잡목사이로 직진해 청양장례식장 뒤편의 절개지에 닿았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서 장례식장 울타리 옆으로 지나 29번 국도에 닿았습니다.
17시46분 29번 국도로 내려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런 걸음으로는 저보다 1.5배는 빠른 선답자가 시간 반 걸려 도착한 645번 지방도로까지 저녁 7시안에 닿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려 이번 산행은 이곳에서 끝내기로 했지만 다음산행이 걱정되었습니다. 64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에서 목적지인 차동고개까지 차도에 연결되는 고개가 하나도 없어 여기서 차동고개까지 한번에 주파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제 걸음으로는 12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서입니다. 하루 전에 청양으로 내려와 묵고 새벽 4시부터 시작하면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청양으로 나갔습니다.
저녁 6시10분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예산으로 나가 천안 가는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천안에서 시내버스를 잘못 타 아파트단지를 한참 돌다가 8시반경에 천안 역에 도착했습니다. T-money 카드가 파손되어 전철을 탈 수 없어 카드를 파는 곳을 10여분 찾아 헤매다 결국 현금으로 표를 사 8시55분발 청량리행 전철을 탔습니다. 다음 날 홍천의 금확산 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나름대로 서둘렀는데도 밤 10시 반이 조금 넘어 산본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과 부산 등의 대도시를 연결하는 교통망은 완벽하겠지만 소도시를 잇는 교통수단은 아직도 더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무릎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시 주력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현재의 제 속도로는 대간이든 정맥이든 구간을 나누기가 쉽지 않아서입니다. 다른 분들 같으면 3번만 출산하면 끝날 터인데 앞으로도 10번은 더 해도 마칠 수 있을 런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시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매사 속력을 높여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함을 절감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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