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기 2 *정맥구간:화봉육교-마이산-코니아일랜드공장-583번지방도 협진주유소 *산행일자:2006. 8. 31일 *소재지 :충북음성/ 경기안성 *산높이 :마이산 473미터 *산행코스:화봉육교-마이산-아랫대실/방깨울 도로-583지방도 사창리- 코니아일랜드공장-군부대-583번지방도 협진주유소 *산행시간:8시30분-17시50분(9시간20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혹독한 종주산행 끝에 올 여름을 떠나보냈습니다. 아무려면 이 나라 이국토를 그토록 심하게 할퀴고 간 심통 사나운 이 여름이 제가 환송 산행으로 예의를 갖추어 고별인사를 한다 해서 얌전하게 물러갈 리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마지막 저항이 이토록 드세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경기안성과 충북 음성과의 경계선상에서 중부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화봉육교를 출발하여 한남금북 정맥 길을 따라 21번 국도까지 진출하겠다는 저의 목표는 마지막 여름 하루에 발목이 잡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의 환송산행으로 올 여름을 보내고 말겠다는 저의 뜻을 간파한 이 여름이 지난 몇 달간 키워온 온갖 가시나무와 풀들을 동원하여 마구 찔러대고 발을 걸어 쓰러트리기까지 하면서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마지막 여름 하루와 힘들게 대치하다 진이 빠져 결국에는 21번 국도를 두 시간 가량 남겨놓은 583번 도로상의 협진주유소에서 환송산행을 접고 나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 여름에 측은감이 들었습니다. 어제 8월31일에는 금북정맥을 반 년 동안 오르내리면서 미운 정 고운정이 다 붙은 올 여름을 정중히 환송하고자 한남금북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아침7시10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여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경기안성의 일죽에 도착했습니다. 8시10분에 삼성리로 떠나는 시내버스를 잡아타 지난 일요일에 산행을 마친 화봉육교에서 하차했습니다. 이 여름이 심술을 부려 비라도 뿌려대면 찝찝한 산행이 될 터인데 하는 걱정이 기우임을 알려줄 듯이 하늘은 쾌청해 9월의 가을하늘을 하루 당겨 보는 듯 했습니다. 아침8시30분 마이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발을 들였습니다. 풀숲을 얼마고 걷고 나서야 제대로 된 산길로 들어서자 한동안 뜸했던 속 끓음이 다시 나타나 등걸이 나무의자가 세워진 첫 번째 쉼터에서 한 참을 벗어나 뱃속을 비우느라 5-6분을 까먹었습니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올라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마이산으로 향했습니다. 화봉육교 출발 44분 후에 다다른 봉우리는 일죽산악회에서 표지석을 세워놓았지만 마이산 정상이 아니고, 망이산성 안내판이 세워진 이곳에서 7-8분을 더 걸어 헬기장과 서문지 및 봉수대안내판을 지나 삼각점이 있는 곳이 정상봉으로 충북 음성군에서 정상석을 세워놓았습니다. 9시25분 해발425미터의 마이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낮은 능선을 따라 흙으로 내성을, 돌로 외성을 쌓고 내성 안에다 장방형의 봉수대를 설치했다는 망이산성이 이 산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당시는 망이산으로 불린 것이 분명할진데 언제부터 누가 왜 마이산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잘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만들고 있는 쉼 돌에 앉아 10분을 쉬고 난후 396봉으로 향했습니다. 남문지를 지나 한 두 봉우리를 오르내린 후 소나무들이 삥 둘러싼 아담한 396봉에 다다랐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326봉을 반쯤 올라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가느다란 철선을 넘고 넘으며 얼마고 내려서자 이번 산행의 난이도를 짐작케 하는 풀숲 길이 나타났습니다. 10시35분 길지 않은 풀 숲길을 15분간 헤쳐 나가 다다른 무명봉에서 10분을 쉬고 난 후 오른 쪽 사면의 조림지에서 자라난 잡목들을 베어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노인네들 곁을 지나기가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조림지 윗길을 지나서 다다른 넓은 공터의 풀밭을 가로질러 예쁘장한 빨간 지붕의 황토 집 옆길로 걸어 아랫대실-방깨울 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이 도로를 건너 대상사료 옆을 지나 나지막한 봉우리에 오른 다음 오른쪽 길로 얼마고 걸어 묘지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다시 173봉에 오른 다음 길이 풀 숲 안으로 어디론가 사라져 십 수분을 여기 저기 뚫고 나가보았지만 제 길을 찾지 못해 팔다리에 생채기만 남기고 결국에는 마루금을 버리고 왼쪽 아래의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4-5분을 걸어가자 (주)청한 앞의 임도삼거리가 나타나 이제 다시 제 길로 들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583번/515번 지방도로를 만나기까지 차들도 다니는 넓은 길이어서 그동안 까먹은 시간을 벌고자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11시50분 (주)청한 앞 임도삼거리에서 남동쪽을 향해 직진했습니다. 까만 비닐 차양포로 햇빛을 가린 인삼밭이 양쪽으로 포진해 있어 온 들판이 시꺼멓게 보였습니다. 윗두리실 포장도로를 건너 직진하다가 제일참공장/에코인재목재공장을 지나서 얼마 후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거의 같은 폭의 풀 밭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속의 풀 숲길을 힘들게 헤쳐 나와 40분 여 비포장도로와 시멘트 길, 그리고 풀밭 길 등 차례로 편안한 구릉 길을 걷고 나자 먼저 이 길을 내고 다져온 선조들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처음으로 음성 땅에 발을 들여 비산비야의 정맥 길을 걸으면서 제 눈짐작으로 대략 고도가 3-4백 가량 되는 산들이 사방 어느 방향으로도 30-40리는 족히 떨어져서 움푹 들어가 가운데가 드넓은 평야의 분지를 삥 둘러 에워싸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풀 밭길을 7-8분간 걸어 (주)메가텍 안내판이 서 있는 583번/515번 지방도에 닿았고 그늘을 찾아 김밥을 들면서 십 수분을 쉬었습니다. 12시47분 차도를 따라 왼쪽 고개마루로 올라가 금왕읍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난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꽤 넓게 자리 잡은 묘지를 지나 얼마고 직진하자 논이 나와 다시 돌아와 오른 쪽의 정맥 길로 들어서느라 10분가량 잡아먹었습니다. 얼마 후 전문건설공제조합기술교육원에 도착해 오른 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7-8분을 걸어 사창리 앞 583번 지방도로를 다시 만났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차도를 따라 2-3분을 걷다가 오른 쪽으로 난 현대금속으로 가는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땡볕에 시멘트 길을 걷는 것이 생각보다 무덥거나 힘들지 않은 것은 날씨가 선선해져 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를 넘긴지 며칠 되는 8월31일의 마지막 여름하루가 막 끝나가기 때문입니다. 산길을 걷다가 차도를 만나면 곡선과 직선의 다툼을 보는 듯 합니다. 곡선의 산길이 직선의 차도에 무참히 잘려나간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미의 곡선이 효율의 직선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곡선은 우리네 마음의 원형 같은 것이어서 직선 밑으로라도 기어들어가 끈질기게 그 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갑니다. 쌍봉초등학교 정문을 지나서 생나무로 쳐놓은 학교울타리 옆길을 걸으며 정맥이 저를 참 아름다운 길로 안내한다 싶었습니다. 14시4분 583번 도로변의 코니아일랜드 아이스크림공장을 지났습니다. 왼쪽의 시멘트 길로 접어들어 한 가옥 앞의 전신주에서 1-2미터 높이의 나지막한 날 등을 타고 마루금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우거진 가시덤불을 뚫고 나갈 수가 없어 583번 도로변으로 되돌아와 그늘에서 쉬면서 한참을 고심했습니다. 마루금을 포기하고 바로 협진주유소까지 583번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협진주유소에서 마루금을 이어가 예정했던 21번 국도까지 진출할까, 아니면 다시 한번 시도해 정 시간이 달리면 협진주유소에서 마칠까를 놓고 몇 번이고 저울질을 하느라 반시간이 지났습니다. 차분하게 지도를 다시 보니 대략 갈 길이 보여 다시 시도하기로 결정하고 14시50분에 오른 쪽의 날 등에 올라섰습니다. 이 능선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섰다가는 도저히 전진할 수 없을 것 같아 왼쪽 인삼밭으로 내려서 밭가를 따라 걸어 건너편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가 폐옥이 수두룩한 마을로 내려섰습니다. 큰 길을 따라 2-3분을 걸은 후 다시 왼쪽의 고개 마루로 올라서 묘지로 들어서자 표지기가 눈에 띄어 반갑고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물탱크를 지나서 한 민가 앞뜰로 내려섰다가 얼마고 임도를 따라 걷자 길옆에 자그마한 삼각점이 세워져있었는데 이 곳이 바로 지도상의 143봉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른 쪽으로 꺾어 능선을 따라 전진하는 중 왼쪽의 인삼밭으로 다시 내려섰습니다. 도저히 가시덤불의 풀숲을 헤쳐 나갈 수가 없어 인삼밭으로 붙어 밭가를 걷는 것은 이번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15시40분 고생고생을 해서 내곡리-쌍봉리간 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고개마루로 올라가 10분을 쉬면서 이제 그만 583번 도로로 나가 이번 산행을 끝내자는 유혹을 억누르고 기필코 해내겠다는 전의를 되살렸습니다. 절개면 왼쪽에서 꼭지점으로 걸어 올랐어도 제 길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눈짐작으로 간신히 길을 이어가 20분 후에 다시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구두끈을 고쳐 매고 임도를 건너 가시덤불길로 들어서자 이 여름의 마지막 저항이 저를 기다렸습니다. 잡풀들이 키를 넘고 칡넝쿨도 발목을 걸어 저를 쓰러트리곤 했습니다. 낫으로 잡목과 풀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뚫고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다가 또 다시 시도를 해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별 수 없이 이번에도 오른 쪽의 인삼밭으로 내려서 밭가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밭가 길이 그동안 내린 비로 움푹 파이고 깎아 내린데다가 곳곳에 풀들이 가로막아 앞서 인삼 밭가를 지났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간신히 능선 길로 올라서자 오른 쪽으로 군부대가 보였습니다만 정맥 길을 이어갈 자신이 없어 작정하고 능선너머 인삼밭으로 다시 내려서자 이번에는 개들이 죽어라고 짖어댔습니다. 묶여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바로 개 우리를 지나야 했기에 인삼 밭에서 개들과 일전을 벌일 뻔 했습니다. 도랑을 건너 임도로 들어서 군부대방향으로 전진하자 군부대 울타리에 걸어놓은 표지기가 보였습니다. 마루금을 벗어났다가 복귀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 군부대 울타리까지 진출하는데 일단은 성공해 길옆에다 짐을 내려놓고 남은 김밥을 마저 들며 13분을 쉬었습니다. 16시55분 군부대 울타리에 접근했습니다. 울타리 옆의 풀숲을 보자 또 다시 숲을 헤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583번 도로를 향해 시멘트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10분을 걸어 삼거리에 다다르자 생각이 바뀌어 오른 쪽 길로 접어들어 다시 마루금이 지나는 산으로 향했습니다. 큰길로 한참을 걸어올라 풀숲으로 들어가 군부대 울타리 옆으로 바짝 붙었습니다. 이 악물고 덤벼들자 저도 모르게 돌파력이 생겼습니다. 이때는 묵직한 제 몸무게가 과감하게 풀숲을 뚫고 전진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무조건 몸으로 밀고 나갔더니 저를 가로막는 풀줄기가 끊겨 나갔습니다. 하루 일을 끝내고 귀대하는 헬기들로 엄청 시끄러웠지만 그럴수록 저도 소리를 질러가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드디어 부대 울타리와 헤어져 산마루에 올라서자 헬기의 굉음이 음악처럼 부드럽게 들렸고 583번 도로로 내려서는 흐릿한 길도 그토록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17시50분 오른 쪽 가까이에 도드람사료가 보이는 내버려진 협진주유소로 내려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름 하루를 가을에 넘기고 나서 혹독했던 하루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비록 목표했던 21번 국도까지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선방한 산행이라 자위하고 마침 빈차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2천원에 무극으로 나가 버스터미널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며 마지막 여름산행을 곱씹었습니다. 금북정맥을 종주하며 정들었던 이 여름과 헤어지는 것이 저로서도 그리 마음편한 일이 아닌데 마지막 여름 하루의 드센 저항에 고전하고나자 때가 되도 물러설 줄 모르는 이 여름이 조금은 괘씸하게 생각됐습니다. 그래도 저는 내년 여름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올 여름보다 우거진 풀 숲길을 찾아 더 뻑 센 산행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리해야만 저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가을을 여는 마지막 여름 날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 날”을 올리며 힘들었던 산행기를 맺습니다.
가을 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에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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