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남금북정맥 종주기

한남금북정맥 종주기4(승주고개-보천고개)

시인마뇽 2007. 1. 3. 23:00

                                         한남금북정맥 종주기 4


                          *정맥구간:승주고개-보현산-큰산-보천고개

                          *산행일자:2006. 9. 21일

                          *소재지  :충북음성/괴산

                          *산높이  :큰산510미터/보현산430미터

                          *산행코스:감우리-승주고개-보현산-돌고개-큰산

                                          -행치고개-보천고개

                          *산행시간:8시38분-18시24분(9시간46분)

                          *동행       :나홀로

 

 

   나무가 내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땅으로 내려왔는지는 확실히 몰라도 길바닥에 벌렁 누워 숨가빠하는 매미를 보고 고된 연습 끝에 여름 내내 산속에서 산중음악회를 열었던 매미의 일생이 이렇게 끝난다 싶어 지켜보기가 안타까웠습니다. 아직도 어떤 매미들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고 이미 끝나버렸을 마지막 이틀의 여름음악회를 치러내느라 한껏 목청을 높이고 있었지만 전성기의 7-8월과는 달리 이 산속에서 낳고 자라온 터줏대감 산새들의 합창에 밀리는 기세가 역력했습니다. 이 땅에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키워온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마감할 때에는 저 매미가 나무에서 내려와 땅을 찾는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다시 땅을 찾아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입니다. 낳고 기르고 마지막으로 가슴을 내주어 따뜻하게 받아들이기에 그냥 흙이 아니고 대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조용히 대지의 품에 안기는 매미의 마지막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람들도 저와 같이 자연의 질서에 조용히 순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전의 두 번 산행으로 비산비야의 음성 땅 낮은 산줄기를 다 통과했다고 생각해 이번 산행부터는 속도가 좀 붙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오전의 3시간 동안은 생각만큼 속력을 냈는데 12시가 지나서는 산행시간 거의 반을 풀 숲길을 헤치고 나가느라 저녁 6시가 훨씬 넘어 해지기 직전에 산행을 마치기에도 바빴습니다. 나무가시에 찔리고 긁힌 두 팔다리가 여기 저기 상차기가 나고  참을 수 없이 가려워 연고로 도포를 하고서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힘들게 산행을 마치고나면 모든 생명체의 고향인 대지가 마냥 착하고 자비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지를 지배하는 신도 심술을 부려 긴 풀 숲길을 뚫고 나가느라 진이 많이 빠졌습니다만 이번 산행에서는 그나마 제우스 신이 점잖게 가만히 있어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침9시 2분 승주고개에서 들머리로 올라서 보현산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번 이 고개에서 감우리로 하산 할 때 길 가집에서 풀어놓은 개가 덤벼들어 스틱을 휘두르며 내쫓은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 집을 음성 읍에서 타고 온 택시로 지났습니다. 8시 38분 감우리 차도에서 왼쪽으로 꺾어 개가 있는 집을 지나 시멘트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하차해 비포장차도를 걸어 올랐습니다. 물봉선 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로를 따라 S자를 그리며 걸어올라 9시 수 분전에 승주고개에 다다랐습니다. 자작나무가 조림된(?) 산길을 20분 가까이 올라 산불감시초소에 올라서자 서쪽으로 두 주전에 밟았던 소속리산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보현산 정상봉으로 추정되는 삼각구릉을 지나 483봉을 올랐다가 급경사 길을 따라 보현산신 제단이 세워진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10시26분 세 번째 임도 공터의 큰 소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7-8분을 쉬었습니다. 제단이 세워진 첫 번째 임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자갈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이 길이 아니다 싶어 바로 되돌아와 능선 길로 들어섰습니다. 여섯 기의 잘 다듬어진 묘지를 지나 얼마간 진행해 소나무 토막으로 울타리를 친 정방형의 한가운데 삼각점이 서있는400.1봉에 이르렀습니다. 임도로 내려서는 길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길 흔적이 없어 한참 후 산행기를 다시 꺼내보고 나서 방금 지나온 380봉으로 되돌아가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 임도를 다시 만났습니다. 여기서도 잠시 왔다가다 하다가 길 건너 왼쪽으로 몇 걸음 옮겨 오른쪽으로 표지기가 걸려있는 길을 찾아 다시 내려섰습니다. 세 번째로 임도로 내려서자 첫 번째 임도삼거리에서 왼쪽의 임도를 따라 빙 돌아 걸어 내려왔어도 됐음을 알았습니다. 보현산의 483봉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임도 왼쪽으로 난 200미터대의 야트막한 능선 길을 10분간 걸어 왕복2차선 아스팔트차도로 내려섰습니다. 37번국도와 516번 삼생리를 이어주는 차도 삼거리에 보현산 임도는 그 길이가 3키로로 음성읍 동읍리에서 시작하여 초전리에서 끝난다고 입간판이 안내했습니다. 보현산 임도 출발점인 차도 삼거리에서 길 건너 맞은편의 절개지 상단에 오르자 코취의 호령을 들으며 고개를 넘는 사이클 선수들이 내려다보였습니다. 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새소리가 나는 가 싶더니 밤송이가 툭 떨어져 발로 비벼 밤 2톨을 꺼내 챙겼는데 이를 지켜보고 저를 약탈자로 오인한 듯 새가 큰 소리로 울어댔습니다만, 이내 하늘을 나는 전투기의 굉음이 이 새가 우는 소리를 먹어 삼켰습니다. 송전탑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깨끗이 벌초를 한 묘지를 지났습니다.  차도삼거리 출발 40분이 지나 37번국도 새터마을과 516번 지방도 돌고개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길 건너 절개지 상단의 400봉에 올라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고 걸어 오른 쪽에 비닐하우스가 보이는 자갈 깔린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길 건너 능선 길을 걷다가  길바닥에 밤알이 즐비하게 떨어져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4-50알을 주웠습니다.


  11시48분 516번 지방도가 지나는 돌고개 고개마루에 도착해 7-8분을 쉬었습니다.

돌고개 개통기념비를 카메라에 옮겨 놓은 후 도로를 건너 묘지 왼편으로 들어가 절개지 상단으로 올라선 다음 오른 쪽으로 진행하여 안부를 거쳐 왼쪽 아래로 청색건물이 보이는 능선을 따라 320봉을 올랐습니다. 이제부터 풀 숲길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억새와 잡목을 헤치고 나가 삼각점이 서 있는 351.7봉에 올랐다가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종주 길에 산딸기, 싸리나무, 칡넝쿨과 이름모르는 가시나무가 발목을 잡아 시멘트 안부로 내려서는 36분 동안이 힘들고 짜증스러웠습니다. 햇빛을 가릴 그늘진 숲 속 길이 아니어서 땡볕을 그대로 쪼여가며 반시간 넘게 걸어 시멘트고개로 내려섰다가 다시 7-8분을 걸어올라 300봉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앞의 높은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오른 쪽으로 확 꺾어 아래의 시멘트 길과 나란한 방향으로 걸어 삼실고개로 향했습니다. 삼실고개가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서 점심을 드느라 20분을 쉬었습니다.


  13시48분 산 중턱에서 6분간 걸어 내려와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삼실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고개 마루 옆의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지지리도 못사는 중에도 머리 짐으로 채소를 이고 날라 인근 도회지에 내다 파시면서 저를 대학까지 보내신 분이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건너 산속 길로 접어들어 모처럼 편안한 길을 걷는다 싶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풀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한쪽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 길에는 높이에 관계없이 잡목과 풀들이 길을 덮어 이 길을 뚫고 나가는 동안에 여지없이 온몸에 풀독이 올라 가려움증에 시달리곤 했는데 이 번에도 오른 쪽 사면이 벌목지여서 많이 긁혔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벌목지를 지나 억새가 무성한 무명봉에 오르는 중 길바닥에 떨어져 누워있는 매미를 보고 자연의 냉혹한 논리를 읽었습니다.


  15시19분 해발 510미터의 큰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무명봉에서 큰산의 전위봉인 517봉에 오르는 길이 된비알 길이었습니다. 커다란 바위들을 지나서 왼쪽으로 돌아 오르는 길이 나뭇가지를 잡고 올라야 할 정도로 경사가 급했지만 풀 숲길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는 몇 백배 편했습니다. 517봉에서 왼쪽 능선 길로 내려가 만난 낙서주의 표지판이 서있는 자갈길의 임도를 따라 걷다가 이내 오른 쪽 능선 길로 올랐습니다.  산불무인감시영상관측소가 세워진 큰산 정상에 올라서자 맞은 편 동쪽 멀리 높은 봉우리들을 잇는 거대한 산줄기가 보였는데 혹시나 속리산 구간의 대간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대편 서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제껏 걸어온 정맥길이 한눈에 잡혔습니다. 행치고개로 내려서는 내림길도 급했습니다.


  16시12분 36번국도 옆의 행치휴게소를 출발했습니다.

행치휴게소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며 16분간 취한 휴식이 꿀 같았습니다. 지하통로를 건넌 다음 채석장을 가로질러 다다른 시멘트도로에서 왼쪽으로 붙어 가파른 절개면 상단에 올라서자 50분전에 지나온 큰산이 이름 그대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오른 쪽으로 날등을 따라 진행하다 안부 사거리를 지났습니다. 오른 편 산소 밑에 은행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은 넓은 공터가 보여 시원스러웠지만 종주 길은 다시 풀 숲길로 이어졌습니다. 무명봉에 오른 후 삼밭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가다 다시 안부사거리를 만났습니다. 오른 쪽 임도를 따라 걸어 파란색 지붕 건물 옆의 시멘트도로 삼거리의 가정자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17시2분 가정자 삼거리에서 묘지를 지나 다시 풀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먼저 오른 분의 산행기대로 왼쪽 시멘트 길을 따라 걸었으면 고추밭사이로 난 시멘트도로의 고개마루까지 7-8분이면 족한 것을 마루금을 따라 2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고개마루 고추 밭 오른 쪽으로 난 산길로 올라서 378.5봉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놓았습니다. 378.5봉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한 채 안부로 내려섰다가 야트막한 구릉을 지나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묘지 몇 곳을 지났습니다. 515번 지방도가 지나는 토골고개 얼마 앞의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가느라 길을 잘 못 들어 고개마루에서 원남면 쪽으로 한참 떨어진 도로로 내려섰습니다.


  18시24분 수령450세의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는 음성군 원남면과 괴산군 소수면의 분기점인 보천고개에 도착해 9시간 넘는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서해안에서 지켜보는 해넘이의 장엄한 아름다움에는 못 미치지만 보천고개에서 쳐다본 서녘하늘을 붉게 물드는 조촐한 저녁노을도 아름다웠습니다. 택시를 불러 보천으로 이동하는데 4천원이 넘겨들었습니다. 보천에서 음성읍으로 나가 동서울터미널 행 직행버스에 올라 하루 나들이를 마쳤습니다.


  5년간의 땅속의 삶을 끝내고 이 세상 나무에 올라 여름 내내 목청을 높였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죽어가는 매미의 깔끔한 한 삶을 들여다보며 이 글을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