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질마재-좌구산-구녀산-이티재
*산행일자:2006. 10. 3일
*소재지 :충북 증평/청원
*산높이 :좌구산658미터/구녀산484미터
*산행코스:질마재-좌구산-방고개-분젖치
-구녀산-이티재-초정리
*산행시간:9시45분-16시(6시간15분)
*동행 :나홀로
한해를 살고 가는 곤충들의 시간은 사람들의 시간과 같을까 다를까 궁금했습니다.
시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사람들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시간을 재는 방법이 제 각각이어서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달랐을 터인데 하물며 곤충들의 시간감각이 사람들과 같을 리 없을 것입니다. 시계와 같은 측정도구가 없다면 생명체들이 느끼는 시간은 수명에 따라 다르게 느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똑 같은 하루라도 하루살이에게는 한 평생으로 마냥 길게 느껴지겠지만 백년을 넘겨 사는 거북이에게는 한숨거리의 시간밖에 안될 것이기에 말입니다. 또 몇 년을 땅속에서 기다리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겨우 한 해 여름 숲 속에서 살다 가는 매미라면 캄캄한 땅속에서 지내온 시간과 빛과 더불어 숲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똑 같은 하루라 해도 똑 같게 느껴질 리가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어제는 정맥 종주 길에 나뭇가지 끝에서 쉬고 있는 잠자리를 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방향만 바꿔가며 다른 데로 날아가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있는 잠자리 한 마리를 7-8분여 지켜보다가 갈 길이 바빠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말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제가 잠자리와 교유한 시간은 7-8분에 불과하지만 잠자리에게는 저를 만난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까 궁금했습니다. 제 시계로는 단 몇 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해 밖에 살지 못하는 잠자리의 감각시계로는 하루 한나절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함께한 7-8분이 저를 친구로 삼고도 남았을 잠자리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9시45분 질마재를 출발해 좌구산으로 향했습니다.
짙은 안개를 뚫고 중부고속도로를 달려온 고속버스가 증평에 도착한 것은 동서울터미날 출발 시간 반이 지난 아침 8시20분이었습니다. 가까운 우체국 앞 정류장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 조금 늦게 온 9시10분 발 청천행 시내버스를 타고 20분여 달려 해발 350미터의 질마재에 도착했습니다. 질마재에서 오른 쪽 산등성으로 오르는 길이 몹시 급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 밸이 당겼습니다만 쥐죽은 듯 조용한 산속에서 울창한 숲길을 걸어 오르며 맞는 아침바람이 삽상해 견딜 만 했습니다. 급경사 길은 440능선에서 끝났고 그 다음부터는 얼마간 완만한 오름 새가 이어졌습니다. 질마재 출발 반시간이 조금 지나 세작골산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증평산악회에서 세운 세작골산 이정표에 산 높이가 적혀있지 않아 지도를 찾아보았는데, 5만분의 1 지도에는 아예 산 이름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세작골산에서 612봉에 이르기까지 풀 숲길이 아니어서 제 속도를 냈습니다. 처음으로 배낭에 방울 종을 매달고 산행을 했습니다. 종소리가 너무 작아 쇳소리를 싫어한다는 멧돼지가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이따금씩 스틱으로 나무를 쳐 소리를 내는 동작을 계속했습니다. 세작골산에서 10분을 걸어 다다른 무명봉에서 줄기가 희멀겋고 매끈한 활엽수 몇 그루를 만나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5분을 더 걸어 불에 탄 소나무들이 서있는 무명봉에 올라섰다가 돌무더기가 보이는 십자안부를 지나 다시 급경사 길을 따라 10시45분쯤에 612봉을 올랐습니다.
11시22분 청원군에서 제일 높다는 해발 658미터의 좌구산을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612봉에서 좌구산에 오르는 길에 억새와 싸리나무, 그리고 잡목들이 엉켜져 있어 산행속도가 빠르지 못했습니다만 612봉을 오를 때 시작됐던 오른 쪽 무릎의 통증이 가셔 오히려 걸을 만 했습니다. 좌구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588봉을 거쳐 산소를 지나고 키를 넘는 풀 숲길을 지나 짧은 거리의 가파른 길을 로프를 붙잡고 올라섰습니다. 돌길을 3-4분 걸어 정상석과 이정표가 서 있고 바로 밑에 산소 1기가 자리 잡은 좌구산 정상에 올라 13분을 쉰 후 2.5키로 떨어진 방고개로 내달렸습니다. 좌구산 정상에서 잠시 내려서다 다시 오른 돌탑 봉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내려갔습니다. 산 중턱에서 다시 오른 쪽으로 또 다시 꺾어 하산하는 중 길 왼쪽사면에 들어선 낙엽송들의 곧게 뻗은 자태가 귀공자처럼 곱게 보였습니다. 모처럼 십수분간 호젓한 산길을 편히 걸었습니다. 전투기의 굉음과 채석장의 파열음이 산 속을 뒤집어 놓은 지난 종주 때와는 달리 정적감이 느껴지는 조용한 산길을 걸으며 평화로움에 빠져들어 안온함을 느꼈습니다. 500봉을 오르는 가파른 길에도 좌구산처럼 로프가 쳐져 있었습니다. 500봉에 올랐다가 거의 다 내려와 푸르름이 넘쳐나는 잣나무 숲을 지나 비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12시22분 미원면의 삼흥과 증평읍의 부점촌을 이어주는 비포장도로가 지나는 방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고개마루에 들어선 신축 중인 목재건물 정자는 콘크리트 양생 중에 있는데 이 건물이 다 지어지면 훌륭한 쉼터가 되겠다 싶어 미리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또 다시 된비알의 고바위길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20봉에 연이어 진달래나무들이 꽉 들어선 536봉에 올라선 시각이 12시55분이어서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한 시간 반전에 지나온 좌구산이 한 눈에 들어왔고 산허리를 에도는 임간도로도 선명하게 잡혔습니다. 바로 옆의 나뭇가지 끝자리에 사뿐히 잠자리 한 마리가 내려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방향만 바꿔 앉을 뿐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 잠자리를 7-8분간 지켜보다가 사진만 찍고 작별인사를 빼먹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520봉을 거쳐 삼기리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삼거리에 다다라 왼쪽 길로 들어섰다가 이내 오른쪽으로 내려섰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걷다가 어느새 분젖치 절개지 상단에 이르렀습니다. 경사면에 피어있는 다양한 종의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가을이 불러들인 꽃들이라면 오른 쪽 아래에 자리 잡은 삼기리 저수지는 농익어가는 가을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황금빛 논 뜰에 젖줄 역할을 단단히 해왔을 것입니다.
13시48분 분젖치를 지났습니다.
지도와는 달리 오른 쪽의 삼기리 방향으로는 왕복2차선의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 있었고 반대방향의 벌말 쪽으로는 아직도 포장이 안 된 옛 도로였습니다. 길을 건너 380봉으로 오르는 동안 산소를 찾은 성묘객들의 목소리가 계속해 들려와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했습니다. 묘지를 옮긴 흔적이 분명한 380봉을 지나 420봉 삼거리에 다다르자 457봉이 눈에 잡혔습니다. 457봉을 향해 십 수분을 더 걸어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초정리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있었습니다. 밝게 웃는 모습의 이정표가 인상적인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확 틀어 몇 분을 올라 운동기구와 의자가 설치된 457봉에 도착했습니다. 십분 정도만 더 가면 구녀산 정상에 다다른다는 산행기를 읽었기에 쉬지 않고 그대로 전진했습니다. 반 아름은 족히 될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있는 편안한 길을 따라 걷다가 구녀산 바로 밑의 경사 길에서 또 다시 하얀 로프를 만났습니다.
14시37분 돌탑이 서 있는 해발484미터의 구녀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정자 옆의 안내판에 구녀성의 전설이 자세하게 실려 있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신라 말에 쌓았다는 석성 구녀성의 실체는 보지 못하고 구녀성 축성에 따른 아홉 딸들의 슬픈 이야기만 되씹었습니다. 잘 나있는 길을 따라 부지런히 이티재로 내려서면서 정상에 오르는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4시56분 해발360미터의 이티재로 내려서 5시간11분 동안의 정맥 종주를 마쳤습니다.
2시간은 더 기다려야 버스가 온다는 휴게소 분의 얘기를 듣고 나서 난감해 하다가 대략 20분간 걸으면 초정리에 닿을 수 있다는 말씀에 용기를 내어 초정리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실제 걸린 시간은 35분으로 오르내리는 차들이 제법 많아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마침 약수로 널리 알려진 초정리는 “제4회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제”가 열려 시끌벅적했습니다.
16시 초정리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내수읍을 거쳐 증평으로 나와 16시50분 발 동서울 터미널 행 버스에 몸을 맡겼습니다. 초정리에서 이티재를 거쳐 미원가는 버스는 12시와 16시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다 합니다. 다음 산행시는 내수읍에서 택시를 타고 이티재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혼자서 정맥을 종주하기가 힘든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에서 들머리로 접근하기와 날머리에서 가까운 시내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서입니다. 그래도 대중교통을 고집하는 것은 그래야 나들이 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종주산행은 고행의 길임을 각오한 산행이기 때문입니다.
새삼 536봉에서 만난 잠자리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혹시나 가을 속으로 사라져가는 잠자리가 그렇게 죽음을 맞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잠시 만난 7-8분의 시간이 잠자리처럼 하루 한나절의 시간으로 제게 다가선 것은 그새 저도 잠자리의 친구가 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행사진>
- 청계산 산꾼 청계산 산꾼 Y
- 2009.11.12 10:31
- 잘보고 갑니다 안산하세요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11.13 17:11
-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안산, 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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