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협진주유소(583번지방도)-소속리산-승주고개
*산행일자:2006. 9. 7일
*소재지 :충북 음성
*산높이 :소속리산 432미터
*산행코스:협진주유소-82번국도-21번국도-소속리산-346봉
-승주고개-감우리정류장
*산행시간:9시5분-17시54분(8시간19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아침안개가 짙게 깔려 한남금북정맥 나들이 길이 생각보다 더뎠습니다.
가시거리가 십수미터 정도 밖에 안 되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고속버스에 조금은 짜증이 났지만 우리의 소중한 이 산하가 안개 속에 숨어서 모처럼 늦잠 자며 쉴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땅위의 이슬과 하늘아래 구름 사이를 가득 채운 안개는 기온이 내려가면 공기 속에 과다하게 들어있는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혀져 생성되는데 이 생성원리는 이슬이나 구름과 똑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흐릿하고 모호한 안개의 특성입니다. 이 모호성이 양극 사이에 완충지대(Buffer Zone)를 만들어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밤의 어둠은 이 세상을 모두 검은 색으로 덮어버리고 낮의 밝음은 이 산하의 현란한 모든 색을 드러나게 하지만 안개는 이른 아침 밤과 낮의 완충지대에 자리 잡아 희뿌연 색깔로 이들 간의 색 대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공익을 내세워 개인이나 기업의 비밀스러움을 다 내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투명을 이유로 버선목을 뒤집어서라도 속의 것을 다 보고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개인의 아름다운 비밀은 추억으로 내버려 두고 기업의 성공적인 경영비밀은 경영노하우로 남겨두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투명성 제고에 매달려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것은 밤과 낮을 만드신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지독한 관음증 중독현상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남의 옷을 더 이상 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 보다는 흐릿하고도 모호한 안개라는 완충 복(?)을 입혀 벌거벗겨진 이 사회의 긴장을 줄여나가야 건강한 사회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호한 안개 속에 몸을 숨기면 실체를 다 드러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은밀한 쉼터 같은 것을 만나게 되어 안심하고 살 수 있어 좋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나들이 채비를 했지만 민적거리다 6시 반 첫차를 놓치고 7시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는 무극행 버스를 탔습니다. 이천을 넘어서자 중부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안개가 가을 논 뜰을 삼켜버려 나날이 진해가는 황금빛 논벼들의 출렁거림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8시40분에 무극에서 삼성리행 시내버스로 갈아타 10분 후 쯤 이번산행의 들머리인 협진주유소에 도착했습니다. 눈길에 하는 스패치를 찬 것은 짙은 안개로 나무와 풀들이 모두 젖어있어서였습니다.
아침9시5분 협진주유소를 출발해 동 쪽으로 난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고개 너머 공장에 조금 못 미쳐서 오른 쪽 임도로 들어서자 안개가 자욱한 숲 속이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비산비야의 넝쿨 숲을 뚫고 나간 지난번의 고된 산행으로 이번 산행이 한결 수월해져 훈련의 학습효과를 실감했습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인삼밭과 덤불길을 어렵지 않게 지나 등나무보신탕 앞 2차선 차도에 다다랐습니다. 차도를 건너 왼쪽 고개마루로 올라 맞은편에 금왕농공단지로 들어서는 방아다리 고개에 도착한 것은 주유소출발 반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 밋밋한 155.8봉(?)에 올랐다가 풀숲을 헤치고 절개면 상단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9시46분에 82번 지방도로 내려섰습니다. 안개는 완전히 가셨고 길 건너편에 공장부지로 조성한 듯한 허허벌판이 보였습니다.
10시2분 거의 내버려지다시피 한 체육공원을 지났습니다.
82번 지방도에 내려서 길을 건넌 후 오른 쪽의 금왕산업단지 사거리로 옮겨 왕복 4차선의 차도를 따라 금왕월드사우나를 향해 걸었습니다. 목우촌 공장을 지나 체육공원으로 들어서자 잡초들이 여기저기 우거져있어 외진 공원을 찾아오는 주민들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원 끝 지점에서 오른 편의 임도로 들어서 고개마루로 올라섰습니다. 오른쪽 산속으로 들어서 철망울타리를 따라 봉우리로 오른 후 왼쪽으로 확 꺾어 목우촌 공장 뒤편의 절개면 날등을 조심스럽게 걸어 시멘트도로로 내려섰습니다. 도로건너 오른 편의 철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한 봉우리에 올랐다가 임도로 내려서 오른 쪽으로 올라섰습니다. 눈앞의 공장을 지나 시멘트 길로 빠져나갈 길목을 찾지 못해 다시 임도 따라 내려섰다 오르기를 반복하다가 밭가로 난 숲 풀길을 찾아 시멘트도로로 내려섰습니다. 하이테크 공장부지 안으로 들어가 왼쪽 산으로 들어서고자 작은 밭떼기를 지나다 올 들어 가장 큰 뱀을 만났습니다. 길을 찾지 못하고 시멘트도로로 되돌아와 고개마루로 올라서자 하이테크정문 왼쪽으로 먼저 오른 분들의 표지리봉이 걸려있었습니다. 산허리로 들어섰다가 이내 왼쪽으로 올라 능선 길에 접어들어 절개면을 따라 올라 무명봉에 도착해 왼쪽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들어선 후 오른 쪽의 철조망을 따라 걸어 구개촌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밖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에게 라디오가 큰 동무 역할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듯 바로 아래 과수원에서 라디오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다시 산길로 들어서 봉우리에 올랐다가 철망을 넘어 21번국도로 내려섰습니다. 길 건너 오른 쪽으로 조금 이동해 바리가든에 도착하자 2시간이 훨씬 넘는 산행으로 많이 지치고 시장해 짐을 풀고 쉬면서 복숭아로 요기를 했습니다.
11시24분 21번 국도 옆 봉곡리의 바리가든에 도착해 처음으로 10분을 쉬었습니다.
2시간이 훨씬 넘는 산행으로 많이 지치고 시장해 짐을 풀고 쉬면서 복숭아로 요기를 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345.8봉의 들머리만 제대로 찾는다면 이번 산행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짐을 챙겨 일어섰습니다만, 공터를 가로 질러 오른 쪽 밑의 인삼밭을 지나서부터 또 다시 헤맸습니다. 인삼밭 끝 지점에 갔어도 들머리가 나타나지 않아 다시 중간쯤 돌아와 만난 주민 한분에 길을 물었더니 왼쪽 임도로 조금 올라가면 리봉이 걸려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리봉을 찾아 조심스럽게 길을 이어가다가 다시 잃어 오른 편 아래로 내려서자 인삼밭으로 새로 개간한 듯한 밭떼기가 보였습니다. 다시 올라와 왼쪽의 인삼밭가로 다가서 오른 쪽으로 꺾어 울타리를 따라 걸었더니 잠시 후 다시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길로 복귀해 풀 숲길을 지나자 표지리봉이 눈에 띄어 비로소 안심하고 직등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30분이 채 못 되는 시간에 170미터 가량 고도를 높이느라 모처럼 진땀을 흘렸습니다. 바리가든 출발 1시간 후 인 12시33분에 345.8봉에 올라서서 삼각점을 확인하고 점심을 들면서 17분을 쉬었습니다.
14시 정각 해발 432미터의 소속리산을 올라섰습니다.
345.8봉에서 소속리산까지는 전형적인 능선 길로 높낮이의 차가 그리 심하지 않아 모처럼 편하게 걸었습니다. 진작 간벌을 했다면 훨씬 실하게 자랐을 소나무 길을 걷다가 꽃동네와 백야리로 갈리는 문안등산로 안부삼거리를 지났습니다. 다시 반시간을 더 걸어 436봉에 다다르자 이 지방에 산다는 한 젊은이가 쉬고 있어 지도를 보여주며 승주고개에서 37번 국도로 내려서는 길을 물었으나 신통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436봉에서 앞이 탁 트인 북쪽을 조망하자 한 주 전에 지난 마이산이 분명하게 눈에 잡혔습니다. 발아래 너른 들판에 숨어 있는 한남금북정맥의 마루금을 이어서 오느라 치러낸 된 고생도 벌써 제 가슴 한 구석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아서인지 비산비야의 넓은 들이 마냥 시원스럽게 보였습니다. 436봉에서 십 수분을 걸어 송전탑을 지나고 소속리산에 오르자 정상이 하도 밋밋해 봉우리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1500산 순례에 나선 김정길님의 발자취를 확인했습니다.
15시39분 소속리산 정동 쪽의 맞은편에 위치한 340봉에서 한숨 돌렸습니다.
소속리산에서 7-8분을 직진해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남진을 멈추고 왼편으로 확 틀어 동쪽을 향해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한참을 내려서다 오른 쪽에 빨간 벽돌의 높은 건물이 있는 산소에 다다라 5분을 쉬었는데 이 건물이 지도상 꽃동네가 오른 쪽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보아 꽃동네건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남아 있어도 주님의 은총을 받은 것이라며 걸식노인들을 보살펴온 카톨릭 자선단체인 꽃동네가 수년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저도 성금지원을 끊었는데 그 후 어떻게 운영되는지 새삼 궁금했습니다. 안부로 내려서 무더기로 피어있는 어수리꽃(?) 꽃길을 지났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랐다가 금왕T/L N0.45의 송전탑을 밑으로 지나 동음리와 백야리를 잇는 시멘트도로의 고개마루로 내려서자 왼쪽 백야리 방향으로 산허리를 자르고 1.4키로의 임간도로를 내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길 건너 320봉에 올라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북진을 시작했습니다. 승주골과 백야리를 잇는(?) 좁은 길의 안부를 지나 가파른 비알 길을 오르며 청주양공지묘등 몇 개의 묘를 지나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340봉에 올라섰습니다. 백야리 상촌마을을 가운데에 놓고 소속리산에서 반 바퀴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340봉에 오르자 북서쪽으로 멀리 용계저수지가 내려다보였습니다.
15시46분 340봉을 출발했습니다.
쉬느라고 잠시 벗어 놓은 안경을 모르고 깔고 앉아 다리가 몽당 부러지는 바람에 맨눈으로 산행을 시작했더니 잠시 후 눈이 아파왔습니다. 얼마간 천천히 걷자 눈 아픔도 사라지고 적응이 되어 다시 산행속도를 올렸습니다. 맨눈 산행 20분 후에 346.3봉을 지났습니다. 반시간을 더 걸어 400봉에 올라서 잠시 쉬었다가 얼마간을 더 걸어 오른 봉우리에서 북진을 멈추고 동진을 계속했습니다. 산 오름이 만만치 않아 이 봉우리가 430봉이다 생각하며 계속 걷다가 375.6봉의 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채 안부로 내려서자 비포장도로가 좌우로 나 있었습니다.
17시31분 승주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좌우로 난 비포장도로는 승주마을과 감우리를 이어주는 산길인데 그나마 남아있던 3-4채의 승주마을 주민들이 몇 해 전에 이사를 가 이제는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합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꼬불탕한 대로를 따라 왼쪽 감우리로 내려갔습니다. 15분 동안 꼬부랑길을 돌고 돌며 내려가는 길섶에 이름을 모르는 연자주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시골 곡선 길의 여유와 아름다움이 한껏 드러났습니다.
17시54분 음성-무극 간 37번 국도상의 감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시작한 하루 산행을 9시간 가까이 걸어 쾌청한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며 끝냈습니다. 택시를 불러 음성으로 이동해 저녁 6시20분 발 안양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비산비야의 풀 숲길을 헤쳐 나가는 종주 길은 대충 끝났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산행부터는 제 속도를 내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이 오기 전에 종주산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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