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남금북정맥 종주기

한남금북정맥 종주기5(보천고개-질마재)

시인마뇽 2007. 1. 3. 23:01

                                        한남금북정맥 종주기 5


                         *정맥구간:보천고개-보광산-칠보산-질마재

                         *산행일자:2006. 9. 28일

                         *소재지  :충북 괴산/증평

                         *산높이  :보광산539미터/칠보산584미터

                         *산행코스:보천고개-고리티고개-보광산-모래재

                                         -칠보산-칠보치-질마재

                         *산행시간:7시31분-16시13분(8시간42분)

                         *동행       :나홀로

 

 

  앞으로 남은 한남금북정맥의 종주 길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번만 같기를 빌어봅니다. 음성읍내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한데다 이제껏 발목을 잡아온 풀 숲길이 별로 없어 다섯 번의 종주산행 중 이번이 가장 넉넉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온 자동차가 포장도로를 만나면 쌩쌩 내달리듯이 모처럼 편안한 길에 들어서자 제 걸음도 저절로 빨라져 1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던 보천고개-칠보산-질마재 구간을 9시간이 채 안 걸려 오후 4시 조금 넘어 여유롭게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참으로 시간도 넉넉했고 종주 길도 순탄해 마음도 한껏 여유로운 하루였습니다.


  마음이 넉넉해지자 곳곳에 표지기를 매달아 놓아 제 길을 알려준 먼저 오른 분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백곰과 백곰2님, 마산의 전수배-진희자님, 홀대모의 임채미-권재형-임상택님, 강산에님, 배창랑님, 김태억님, 강성원 우유의 어느 산님 및 이밖에 모든 분들에 늦게나마 감사인사 올립니다. 아직은 제 산행실력이 표지기가 없는 길을 지도만 가지고 개척산행을 할 정도는 못되기에 이분들의 표지기가 없었다면 정맥 길 단독종주란 꿈도 꾸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을 잘 못 들어 한참을 헤매다가 제 길로 들어서 표지기를 만났을 때의 안도감과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음에도 정작 길을 밝혀준 산님들의 노고에는 이제껏 눈을 감아온 것이 아닌 가해서 부끄러웠습니다. 가르침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길로 이끌어주시는 선현들이 존경스럽듯이 표지기로 제 길을 안내하는 이분들에 다시 한번 고마워하는 저의 뜻을 전합니다.


  아침7시31분 보천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음성읍내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7시에 증평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3-4분 사이로 6시20분 첫차를 놓치고 나서야 6시25분에 첫차가 출발한다는 터미널시간표가 잘 못 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보천고개로 바로 가는 버스가 6시50분에 터미널을 출발하는 것을 버스가 떠난 다음에 전해 들어 별 수 없이 7시발 증평행 버스를 탔습니다. 보천에서 하차하여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보천고개까지는 엉뚱하게 까먹은 시간을 벌충하고자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450년 된 느티나무 건너편에서 오른 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잠시 걷다가 능선으로 올라서 편안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완만한 오름 새가 이어지다가 마지막 2-30미터가량 경사가 급한 길을 걸어 420봉에 올라서자 8시가 막 지난 이른 시간인데도 새들이 노래하며 반겼습니다. 잠시 후 지난 377.9봉의 삼각점은 평평한 능선 길에 묻혀있어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꽉 들어선 완만한 마루금을 따라 내려서 묘역이 꽤 넓어 보이는 산소2기를 지날 즈음 오랜만에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산 밑에서 환송하는 까치보다 산 속에서 환영하는 까마귀가 더 고맙기에 그들의 울음소리가 반가웠습니다. 잠시 후 내동고개에 도착한 시각은 보천고개출발 1시간이 조금  지난 8시37분이었습니다.


  9시15분 고리터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자그마한 돌탑이 쌓인 내동고개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백마산으로 갈리는 구릉삼거리로 올라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웬만큼 올라서서 바위들이 자리 잡은 능선 길을 지났는데 올망졸망 모여 있는 바위들이 마치 가족회의를 하는 것처럼 정겹게 보였습니다. 이내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보여 긴장되었고 알아서 비켜달라고 스틱으로 나무를 두드리며 저의 진행을 알렸습니다. 370봉을 넘어 고리터고개에 내려서자 왼쪽으로 청색지붕의 한 가옥이 보였습니다. 이 고개에서 10분을 쉰 후 다시 구릉을 넘고 임도를 건너 보광산으로 들어선 후 얼마 되지 않아 억새 풀 속에 삼각점이 숨어있는 395.4봉을 올랐습니다. 395.4봉에서 보광산 오르는 길은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고 풀 숲길이 없는데다 날씨도 선선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르막길을 차분히 올라 다다른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100미터를 가 보광산 정상을 들렀습니다.


  10시10분 해발 539미터의 보광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서인지 이번 산행은 어느 때보다 순조로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느긋해지자 다른 때 같으면 을씨년스럽게 보였을 정상 한 끝에 버려진 녹 슬은 리어카 한대가 마치 설치미술의 소품처럼 소중하게 보였습니다. 갈림길로 되돌아와 조금 더 걷자 설치미술의 원조일 수도 있는 석탑이 눈에 띄어 바짝 다가가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보광사 옛 절터 뒤편에 서 있는 저 봉학사지 오층석탑이 고려초기에 이곳에 세워진 후 바로 아래 평평한 곳에 들어선 나무들의 몇 세대를 지켜보았다 싶어지자 설치미술의 한 소품쯤으로 여기기는 지켜온 세월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광사 길 임도를 따라 내려가 만난 시멘트길을 건너 오른 쪽의 능선으로 올랐습니다. 어느새 싸리나무들이 잎들을 노랗게 물들여 가을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20여분 걸어 만난 34번 국도를 지하통로로 건넜습니다. 수암낙시터를 지나 가을이 농익어가는 논 뜰 옆의 시멘트길을 따라 걸어 구도로를 건넜습니다.


  11시5분 구도로의 모래재에 세워진 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한봉수 의병대장이 1908년 이 고개를 넘는 일본군 호송대를 습격해 승리를 거두고 나서 이를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지기까지 76년이 걸려 1984년에 이 비가 세워졌다합니다. 바로 뒤에 잘 지어진 보광산관광농원 안으로 들어가 파란 계단을 따라 그림같이 아름다운 소나무 숲 속으로 난 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공군본부가 이전해간 증평이 가까워서인지 전투기 지나는 소리가 잦게 들렸습니다. 이에 더하여 사격 연습 총소리가 가깝게 들려 마치 최북단 한북정맥을 걷는 듯 했습니다. 얼마 후 밑 둥만 남은 참나무들 가운데 있는 344.1봉의 삼각점을 지나 380봉에 오르자 희미했던 안개가 완전히 가시고 햇빛이 났습니다.  임도따라 걷다가 오른 쪽 소로로 들어서 솔티재로 내려섰습니다.


  11시50분 솔티재에 도착해 10분간 점심을 들었습니다.

솔티재에서 바로 초록색 철망 울타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7-8분을 걸은 후 오른쪽으로 올라 440봉을 거쳐 460봉에 올라섰습니다. 가축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쳐 놓은 철선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또다시 멧돼지가 놀다간 흔적이 보여 긴장됐습니다. 왼쪽 수암골 골짜기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조성한 목장에서 염소들이 노니는 것을 보고 충남 서산의 나지막한 목장에서 되새김을 하는 우공들에게서 느꼈던 여유로움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큰비라도 내리면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급경사의 골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완만한 오름 새는 이번산행에서 가장 높은 596.5봉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풀 숲길을 헤치고 마루금에서 왼쪽으로 40미터 가량 비껴난 596.5봉을 올라 13시 정각에 삼각점을 확인한 후 다시 마루금으로 돌아와 7-8분을 쉰 뒤 칠보산으로 향했습니다. 칠보산 가는 길은 이제껏 걸어온 길에 비해 베어낸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 빨간 색이 곱게 물든 단풍나무 한그루를 카메라에 담는 동안 어디선가 모기들이 몰려들어 공격을 해대는 통에 서둘러 사진 찍기를 마쳤습니다.


  13시54분 마루금에서 약간 비껴 서있는 해발584미터의 칠보산 정상을 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산행 중 오른 보광산, 596.5봉 및 칠보산 등 500미터가 넘는 3개봉 모두 마루금에서 조금 비껴서 있었습니다. 이봉우리에서 질마재로 가는 길은 대체로 내림 길이어서 아무리 늦어도 저녁 5시안으로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 싶어 보천고개 출발 시 가졌던 중간에 알바라도 하게 되면 야간산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산소를 지나서 다다른 능선 길 왼쪽사면에 조림된 파란 낙엽송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치솟아 우중충한 색깔의 등 굽어진 소나무들과 대비되었습니다. 개활지의 왼쪽 사면 아랫마을 한 건물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14시44분 칠보치에 내려서 길섶에 물봉선과 이름모르는 노랑꽃이 피어 있는 예쁘장한 자갈밭 길을 카메라에 실은 후 십 수분을 쉬었습니다. 400봉에 올라섰다가 물웅덩이가 있는 안부로 내려서다가 간벌된 나무들이 앞을 막아 잠시 길을 잃었습니다. 안부에 자리 잡은 웅덩이의 물은 다른 분의 산행기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인 것 같았습니다. 다시 또 다른 400봉을 올라 왼쪽으로 난 능선 길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참새보다도 작은 박새(?) 몇 마리가 땅위를 낮게 날며 잠시 길안내를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총소리가 더 가깝게 들려 신경이 쓰였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올라 마지막 고봉인 460봉을 칠보치 출발 한 시간 만에 올라섰습니다. 460봉에서 질마재로 내려서는 하산 길은 가을이 듬뿍 담긴 넉넉하고도 고즈넉한 길이었습니다. 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했는데 어느새 고도를 110미터 낮추어 해발 350미터의 질마재에 이르렀습니다.


  16시13분 왕복2차선의 592번 지방도가 지나는 질마재로 내려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먼저 오른 분의 산행기를 보고 제 걸음으로는 1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아침 일찍 출발하고자 하루 먼저 음성으로 내려와 묵었는데 2시간 이상 단축해 넉넉하게 산행을 마쳤 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오른 쪽 아래로 500미터 가량 떨어진 정류장을 찾아 내려가 정류장에서 반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시내버스에 올라 증평까지 나갔습니다.


  가을이 낮 시간을 앗아가 산행시간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 이번 산행의 가장 큰 수확임을 기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