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남금북정맥 종주기

한남금북정맥 종주기9(머구미고개-벼제고개)

시인마뇽 2007. 1. 3. 23:08
                                             한남금북 종주기 9


                      *정맥구간:머구미고개-국사봉-쌍암재-벼제고개

                      *산행일자:2006. 10. 19일

                      *소재지  :충북 보은

                      *산높이  :국사봉587미터

                      *산행코스:머구미고개-국사봉-실티재-602.1봉-쌍암재

                                      -19번국도대안리-벼제고개

                      *산행시간:8시38분-17시8분(8시간30분)

                      *동행      :나홀로

 


   안개가 가시자 제 모습을 드러낸 거미줄이 여름날의 거미줄과는 그 형태와 느낌이 전혀 달라보였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산 길 한가운데에 플래카드를 걸어 놓듯 양쪽의 나뭇가지를 폴 대 삼아 길을 가로질러 그물망을 쳐온 거미들이 가을이 깊어가자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끝에 실타래에 실을 감듯이 거미줄을 쳐놓았습니다. 한 여름의 거미줄은 평면이어서 색상도 선명하지 못했고 질감도 없었는데 어제 본 거미줄은 종기모양을 한 입체형 그물망으로 나뭇가지마다 쳐져있었고 색상도 은백색으로 뚜렷했으며 부피감도 느껴져 마치 하얀 꽃송이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개 속에서 막 목욕을 끝낸 듯 영롱한 물방울이 거미줄에 맺혀있어 아침햇살을 받아 반사하는 것이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한 여름에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정맥 길을 종주하면서 거미줄이 길을 막아 꽤나 귀찮았습니다. 가을이 본격화되자 대부분의 거미줄이 사라져 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새 거미들이 활동을 멈춘 것이 아닌 가해서 서운했었는데 어제 머구미고개에서 국사봉으로 오르는 산길에서 새로운 형태의 거미줄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조락의 계절 가을을 맞아 거미들도 먹이 감을 낚아채는 전략을 바꾼 것 같습니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 날아다니는 곤충들의 수가 급감한 가을에는 길을 가로지른 여름날의 넓은 그물망이 소용없어지고 가지에 붙어사는 곤충들을 잡아먹고자 종기모양으로 그물망을 쳐 놓은 것이 아닌 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는 살아남고자 애쓰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사연들이 나름대로 숨어있는 것이다 싶었습니다.


  새벽부터 서두른 덕에 강남터미널에서 아침 6시발 청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가을 특유의 짙은 안개를 뚫고 달린 고속버스가 7시15분 경 청주에 도착했고 바로 육거리가는 시내버스를 잡아탔습니다. 육거리 다음 역에서 내려 미원행 시내버스에 올라탄 지 30여분 후 머구미고개에서 하차해 산행준비를 했습니다.


  아침8시38분 머구미고개에 자리 잡은 SK낭성주유소를 출발했습니다.

최근에 지하도가 폐쇄되어 별 수 없이 무단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32번 지방도를 건넜습니다. 용창공예 앞에서 오른 쪽의 관정사 방향으로 난 시멘트 길로 들어서 얼마고 걷던 중 떼 지어 앉았다 날았다 반복하며 길을 안내해주는 비둘기만한 새들을 만났는데 안개가 짙게 깔려 날개 색을 식별할 수 없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7-8분을 걷다가 오른 쪽으로 난 샛길로 들어서 산등성으로 올라섰습니다. 안개가 만든 물방울이 나뭇가지에 맺혀 있다가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커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산행시작 30분이 지나 393봉에 오른 다음 십자안부를 지나자 오른쪽 골짜기의 안개가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종기모양을 한 거미줄 그물망이 제 모습을 드러내 가지마다 희뿌연 꽃들이 피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10시8분 해발587미터의 국사봉에 올라섰습니다.

십자안부를 지나 몇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쫓기듯 사라지는 안개의 뒷모습을 찬찬히 지켜보았습니다. 온 산을 에워쌓았던 안개가 선선히 아침햇살에 자리를 물려주듯이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자리물림도 저러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해보았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특정인의 야욕이 불러들인 북한의 핵실험 파장이 그 땅에서 살고 있고 또 살아야 할 북한주민들을 지금보다 몇 배 더한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 자명한데도 그리도 자리물림이 힘든 것인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베어진 소나무들이 길을 가로막은 오름길을 숨 가쁘게 올라 500봉 능선에 올라선 다음 오른 쪽으로 난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3-4분 후 521봉을 올랐다가 내려선 후 다시 올라서 평탄한 능선 길을 밟았습니다. 된비알의 비탈길을 올라 국사봉에 다다르자 잡목과 억새풀사이에 세워진 삼각점 옆에 핑크색 꽃을  피운 패랭이꽃 몇 송이가 저를 반겼습니다.


  10시22분 오른쪽 바로 옆에 난 헬기장을 막 지나 나무그늘에서 10분을 쉰 후 실티재로 향했습니다. 567봉에 다다르기까지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했습니다. 곳곳이 낙엽에 뒤덮여 길을 찾아 이어가는 것이 신경이 쓰였습니다만 아무도 밟지 않은 이 낙엽 쌓인 길을 제가 먼저 걷는다고 생각하자 희열감도 느껴졌습니다. 더러더러 바위 길도 지났습니다. 521봉에서 한참을 걸어 돌탑이 서있는 실티재에 11시3분에 내려서 사진 몇 커트를 찍은 후 가파른 길을 올라 580봉으로 올라섰는데 오름새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국사봉 출발 1 시간 남짓해 올라선 580봉에서 김밥 한 줄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12시21분 이번산행에서 최고봉인 602봉에 올라섰습니다.

580봉에서 능선 길을 오르내리며 바위뿌리가 삐져나온 암릉 길을 걸었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내려섰다가 520봉을 왼쪽으로 끼고 돌았습니다. 2기의 묘지를 지나 베어진 나무토막들이 길을 가로 막는 길을 따라 산오름을 계속해 602봉에 올라서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602봉에서 12분을 더 걸어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찾는다는 청암산악회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593봉에 도착했습니다. 사과를 까먹으며 10분을 쉰 후 왼쪽 사면의 출입을 막는 낡은 철선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514봉을 거쳐 다다른 520봉에서 왼쪽으로 거의 90도를 꺾어 내림 길로 들어섰습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깰 정도로 한 낮의 산길이 고요했습니다. 철쭉 길을 지나 13시45분에 양지말과 음지말을 잇는 시멘트길의 안부로 내려서자 두 그루의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샛노란 감들이  가을빛을 발했습니다.


  14시8분 571번 지방도가 지나는 쌍암재를 건넜습니다.

시멘트 길 안부를 지나 마루금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토지지신” 비가 세워진 구릉으로 올라서 묘지를 지나고 한 여름이라면 뚫고 나가기가 만만찮을 풀 숲길도 한참동안 지났습니다. 쌍암재 앞 571번 차도를 건너 밭 가로 올라서자 아낙네 여러분들이 들깨를 거둬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뿌리를 다 캐내 한 두 해를 쉬면서 지력을 회복할 절호의 찬스를 맞은 듯한 검은 차양막의 텅빈 인삼 밭이 끝나는 길가에서 20여분을 쉬며 점심을 들었습니다.


  14시40분 인삼밭가 길에서 왼쪽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잠시 후 나타난 철조망에 그동안 보아왔던 각종 리봉이 가지런히 매달려 있어 마치 표지기 전시회를 보는 듯 했습니다. 철조망을 넘어 15분여 산 오름을 계속했는데 낫이나 칼날을 가는 넙적한 숫돌(?)들을 많이 만나 한 조각을 주워 왔습니다. 15분여 걸어올라 다다른 구룡산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갈림길에서 오른 쪽의 구룡산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왼쪽으로 꺾어 안부를 지난 후 420봉을 거쳐 480봉에 오르기까지 마치 댓재-백복령 구간의 백두대간을 지날 때처럼 오른 쪽 사면이 거의 수직 벽으로 된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산길로 다시 들어선지 1시간 만에 된비알의 능선 길을 따라 걸어 480봉에 오르자 오른쪽 바로 아래 시멘트블록의 동그란 참호가 눈에 띄었습니다.


  16시10분 19번국도가 지나는 대안리고개로 내려섰습니다.

480봉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473.1봉으로 오르는 중 삼거리를 만나 오른 쪽으로 꺾어 급경사의 비탈길을 S자를 그려가며 조심스럽게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에서 올라선 구릉에서 왼쪽으로 하산해 대안리 고개삼거리에서 5-6분을 쉬었습니다. 이 고개에서 마치겠다는 애당초의 산행계획을 수정해 벼재까지 가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다음 산행 시에 구티재까지 무난하게 진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개마루 오른쪽 아래에 세워진 수준점안내판에서 절개면 사면을 따라 올라 오른쪽으로 난 능선 길을 걸으며 추석 때 사용되었을 일회용 컵 여러 개가 여기 저기 버려져있는 묘지 몇 기를 지났습니다. 이미 8시간을 넘겨 걸은 터라 424미터의 낮은 봉우리도 오르기가 힘겨웠습니다. 시루를 엎어놓고 제단(?)을 설치해놓은  424봉에서 잠시 착각해 낙엽이 폭신한 길을 따라 직진하다 뒤늦게 제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다시 424봉으로 되돌아오느라 10분을 까먹었습니다. 424봉 정상 바로 앞에서 오른 쪽의 까까비탈길로 내려서는 10분 동안 왼쪽 무릎이 아파와 경사길 내려서기가 신경 쓰였습니다.


  17시8분 벼재에 도착해 8시간 반 동안의 하루산행을 끝냈습니다.

이쪽저쪽으로 모두 19번 국도로 연결되는 벼재 앞 포장도로에서 택시를 불러 보은군 내북면 소재지인 창리로 이동했습니다. 창리에서 몇 분을 기다려 청주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려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길 건너 고속터미널에서 저녁 7시10분 발 서울의 강남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맡겼습니다.


  깊은 산속의 정적을 깨는 골바람의 도움을 받아 가지에서 잎들을 떨쳐내는 나무들의 겨울나기가 어느새 시작됐나 봅니다. 여름 내내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 공급해온 푸르른 잎들이 이제는 단풍이 들어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나무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쓸모가 없어진 단풍잎들을 과감하게 떨쳐내고 겨울잠을 채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했지만 끝내 시심을 불러내지 못한 것도 푸르렀던 나뭇잎들의 시신들이 바로 낙엽이라는 냉혹한 자연의 질서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