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기 10 *정맥구간:벼제-시루산-구티재-백석리도로 *산행일자:2006. 10. 26일 *소재지 :충북 보은 *산높이 :시루산482미터/구봉산416미터 *산행코스:벼제-구봉산-시루산-492봉-작은구티재 -구티재-백석리도로 *산행시간:9시52분-17시14분(7시간22분) *동행 :나홀로
우리나라 산속의 나무들 중에서 가장 친근한 수종을 둘만 들라하면 단연 소나무와 참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상록침엽수이고 참나무는 낙엽활엽수로 두 나무들은 여러모로 다른 나무입니다. 낙엽도 그러합니다. 나이든 솔잎이 떨어져 쌓인 소나무 낙엽 길은 소리가 나지 않고 폭신하기 이를 데 없어 한 가을에 조용히 생각을 키우며 걷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한 해를 못 넘기고 나뭇가지 끝에서 갓 떨어져 나온 참나무 낙엽은 푸르렀던 엊그제의 팔팔한 성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 지려 밟는 감촉이 연륜이 더한 솔잎보다 한참 못 하지만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만은 더 할 수 없이 경쾌해 젊은 연인들이 상쾌한 추억을 만들어가기에 딱 알맞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성질이 전혀 다른 두 나무들이 척을 지지 않고 한 곳에서 다정하게 같이 사는 것을 보노라면 그들의 우정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둘도 경쟁관계에 있다 합니다. 어느 나무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수종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산림의 모습이 천천히 변화해가는 천이의 마지막 단계인 극상림이 소나무 숲이냐 참나무 숲이냐를 갖고 생태학자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의 고산은 주로 소나무가 점하고 있지만 성장속도는 솔잎흑파리에 죽어갔고 제선충에 죽어가는 소나무보다는 참나무들이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생물학계의 원로이신 김준민 교수께서 지으신 “들풀에서 줍는 과학”에 따르면 광릉의 소나무 숲에서 1년간 쌓인 낙엽양이 평방미터당 1.2Kg 인데 비해 참나무 숲은 1.4 Kg이었고, 낙엽이 완전히 썩기까지 소나무 숲은 38.4년이, 참나무 숲은 17.9년이 걸렸다 합니다. 이러한 자료로 보아 참나무가 이 나라의 대표수종으로 뽑힐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만 소나무의 반격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한남금북정맥을 종주하면서 소나무 숲도 지났고 참나무 숲도 지났으며 이 두 나무 들이 다같이 사는 숲길도 지겹도록 걸었습니다. 아직은 제게는 이 두 나무들이 대표수종을 놓고 다투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두 나무들이 힘을 모으면 폭신하면서도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환상적인 낙엽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9시52분 벼제를 출발했습니다. 보은군의 창리에서 벼제까지 택시로 이동했는데도 집에서 늦게 나서 지난번보다 출발시간이 근 한 시간은 늦어졌습니다. 이번 산행을 백석리도로에서 끝내야 다음 산행 시 갈목재까지 무난히 진출할 수 있는데 백석리고개는 고사하고 그 전의 구티재까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초장부터 서둘렀습니다. 벼제도로에서 포도밭 옆으로 난 시멘트도로를 따라 오르다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소자리의 공터가 정상인 420봉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넓은 풀밭의 안부를 지나 비닐로 묘지를 덮은 360봉에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오른 쪽의 돌무더기 안부로 내려섰다가 480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된비알 길이어서 한 20분여 힘들었습니다. 얼굴을 때리는 길섶의 노간주나무들이 밉지 않은 것은 어릴 때 시골집에서 노간주나무로 생 울타리를 친 기억이 나서였습니다. 10시59분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앉은 구봉산 정상에 올라 13분을 쉬었습니다. 구봉산은 지도상에 그 높이가 416미터로 적혀 있으나 480능선에서 조금 더 올라 다다른 것으로 보아 실 높이는 50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습니다. 전망이 좋아 카메라를 꺼냈으나 바테리가 다해 사진찍기에 실패했습니다. 북동쪽 어디 메쯤 자리 잡고 있을 속리산 천황봉을 감싸고 있는 첩첩산중의 산줄기들이 전개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난 암릉 길을 따라 시루산으로 향했습니다. 썩은 나무 밑 등처럼 바위뿌리가 힘이 없어 한 발로 툭 쳤더니 절리들이 잘게 부서져 버렸습니다. 함석판 안내판을 지나 480봉에 이르기까지 왼쪽 산 아래에서 “고물파세요!”하고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11시38분 해발482미터의 시루산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480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시루봉으로 오르는 능선 길 오른 쪽의 남사면이 수직으로 떨어져 나가 너덜지대가 되어버려 몰골사나워 보였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이 계속 아래로 이어졌습니다. 돌탑이 서있는 420봉에 다다르자 한남금북정맥의 거의 모든 표지리봉이 한 줄에 나란히 걸려 그동안 수 없이 보아온 반가운 이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급경사 길을 내려와 안부사거리로 내려섰다가 360봉으로 오르는 길에 검은 색의 뱀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저를 보고도 미쳐 똬리를 풀지 못해서인지 도망가지 않고 혀만 날름댔는데 그 뱀에게서 여름날의 전의를 읽을 수 없어 그리 무섭지 않았습니다. 360봉을 지나 414봉 갈림길까지 왼쪽아래 가까이 보이는 건설 중인 청주-상주간 고속국도와 나란히 걸었습니다. 12시40분 414봉 갈림길의 강릉최씨 묘지에서 떡을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제가 산길로 이동하는 속도와 왼쪽 산 아래서 고물장수가 리어카를 끌며 옮겨가는 속도가 비슷했던지 “고물 파세요!”하고 외치는 소리가 거의 같은 강도로 들려왔습니다. 갈림길에서 얼마큼 가다가 높다란 무명봉을 발 딛기도 불편할 정도로 좁은 길을 걸어 왼쪽으로 에돌아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쪽사면으로 줄기가 희맑은 잘 조림된 자작나무들이 가지런히 들어서 있었습니다. 베어진 나무들이 내버려진 360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바위뿌리가 넙적한 400봉에 올랐다가 경사가 급한 길을 내려와 북상골과 길골을 이어주는 안부에 닿은 시각이 갈림길 출발 50분이 지난 13시42분이었습니다. 15시5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작은구티재로 내려섰습니다. 북상골-길골간 안부에서 어린 삼엽송 침엽수가 숲을 이룬 된비알의 오름길을 걸어올라 440봉 능선 길에 오르자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460봉에 이르자 남동쪽 멀리 천황봉으로 보이는 고봉이 보였습니다. 15분을 더 걸어 14시28분에 올라선 492봉에서 오랜만에 타간 따끈한 커피를 들면서 7-8분을 쉬었습니다. 비 채비를 마치고 왼쪽으로 서서히 고도를 낮추었습니다. 갓 떨어진 낙엽이 길을 막 덮어 아직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나지 않아 표지리봉이 아니라면 길 찾기에 애를 먹었을 만한 그런 길을 부지런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묘가 있는 안부를 지나 구릉으로 올라섰다가 절개지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생각보다 1시간 이상 빠른 시각에 작은구티재에 도착하자 예정대로 백석리도로까지 가보겠다는 욕심이 동했습니다. 구티사거리-산대리간 연결도로가 지나는 작은구티재의 고개마루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진 어린 은행나무들이 비를 맞아서인지 노랗게 단풍이 든 은행잎들이 더욱 산뜻해 보였습니다. 작은구티재에서 삼각점이 세워진 456.7봉으로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팔랐습니다. 참호를 지나 낙엽송 숲길을 따라 올라 묘를 지나고부터 된비알의 오름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한 20분은 걸었더니 이제 숨을 돌릴만한 능선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삼거리에서 10분을 더 걸어 456.7봉에 다다르자 무성한 잡목 숲 속에 키가 큰 삼각점이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16시1분 575번 국도가 지나는 구티재에 도착했습니다. 456.7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얼마큼 내려가 비교적 평평한 길을 걸어 우뚝 선 고봉 못 미쳐서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구티재를 지나 백석리 마을까지 진출하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바로 앞의 고봉 탁주봉을 들를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우회했습니다. 공동묘지를 지나 해발280미터의 구티재로 내려서 길 건너 쉼터의 나무의자에 앉아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12분을 쉰 후 못골행 진입로 입구의 묘를 지나 오른 쪽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KBS 방송시설물을 지나 16시30분에 355봉을 올랐습니다. 임도로 내려서 잠시 후 들깨를 거둬들인 밭을 지났습니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좁은 산길로 들어서 능선 삼거리에 다다랐고 다시 왼쪽으로 거의 180도를 꺾어 420봉으로 올라갔습니다. 17시14분 백석리도로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420봉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급경사의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갔습니다. 묘와 삼밭 사이로 난 길로 내려가다 차도 바로 위의 묘지에서 내의를 갈아입은 후 차도로 내려선 다음 택시를 불러 창리로 옮겼습니다. 집을 너무 늦게 나서 벼제를 출발할 때는 엄청 서둘러야 구티재까지 진출할 것 같아 초조했습니다. 한 번도 길을 잘 못 들지 않고 중간에 비가 내려 내닫기가 덥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구티재에 일찍 도착해 한 시간 거리의 백석리도로까지 내달렸습니다. 구티재에서 마쳤다면 청주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야 해지기 전에 갈목재에 도달할 수 있을 터인데 백석리도로에서 마쳤기에 다음번에도 당일 일찍 산본 집에서 출발해도 문제없게 되었습니다. 귀경 길 버스안에서 “고물 파세요!”하는 외침이 다시 귓가를 울렸습니다. 고물이란 문자 그대로 오래된 물건으로 그래도 쓸모가 있다는 것이 폐물과 다른 점입니다. 중고품은 값은 헐하더라도 중고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데 고물은 고물장수가 사가지 않으면 결국 폐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값을 훨씬 뛰어 넘는 오래된 물건은 단연 골동품입니다. 물건이 오래되어도 어떤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느냐에 따라서 그 값이 천양지차이듯이 사람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노욕만 남아 젊은이들에 노추로 보이는 것이 아닌지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만, 나이 들어 고물대접을 받지 않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에 비례하는 경험을 지혜화하지 못한다면 또 젊은 날의 야망이 노욕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자기관리를 해나가지 않는다면 늙어서 중고품 대접도 받기 힘든 것이 요즈음의 세상입니다. 지금처럼 시간이 나는 대로 부지런히 산에 오르고 도서관을 찾는 다면 몸과 머리가 녹슬지 않아 먼 훗날 고물대접은 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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