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남정맥 종주기

금남정맥 종주기 3 (널티고개-계룡산- 용화사갈림길

시인마뇽 2007. 2. 17. 20:39
                                           금남정맥 종주기 3


                  *정맥구간:널티고개-계룡산-용화사갈림길 

                  *산행일자:2007. 2. 16일

                  *소재지  :충남공주/계룡

                  *산높이  :계룡산845미터/팔재산358미터

                  *산행코스:널티고개-팔재산-금잔디고개-관음봉-쌀개봉

                                  -천황봉-용화사갈림길 -씨튼영성의 집 수녀원

                  *산행시간:8시30분-18시05분(9시간35분)

                  *동행    :나홀로

 


   금남정맥의 세 번째 구간인 계룡산을 종주하면서 이 산이 쌀개봉의 동쪽 사면에 숨겨놓은 한 무더기의 고드름을 보았습니다. 바위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이 그 끝에 붙어서 얼기와 녹기를 되풀이하며 키워 온 빙주의 고드름이 이리도 처절하도록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이렇게 해서라도 자기생명을 늘려가고자 하는 하얀 눈의 고군분투에 감탄했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하늘을 날다가 이 땅에 내려앉아 얼마고 쉬다보면 날씨가 풀리고 그래서 녹아버리면 일생이 끝나는 눈이 오랜 시간 생명을 부지해가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얼음상태의 고드름으로 변해 얼음기둥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해서였습니다. 진작 흰 눈으로부터 생명을 이어가는 지혜를 보고 배웠다면 이틀 후면 몸속의 나이테에 원 하나가 더 그려지는 이 세밑에서 가는 세월에 섭섭하다고 마냥 투덜대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어제는 복 받은 하루였습니다.

몇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나서 금남정맥 길 중에서 입산이 금지된 계룡산의 암봉 쌀개봉과 천황봉이 가장 위험한 코스라는 생각이 들어 큰 걱정을 했는데 무사히 해냈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에는 쌀개봉-천황봉 구간의 산행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먼저 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나서 아침기온이 영하6도로 떨어진 어제가 오히려 땅이 녹지를 않아서 미끄럽지 않고 더 안전할 것 같아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천황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하면서 잠시 잘못 판단해 십 수분을 알바를 한 것을 빼 놓고는 깔끔하게 난코스를 해내고 나자 가슴이 뿌듯했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에 더하여 좀처럼 산에서 눈에 띄지 않는 고드름을 본 것은, 그래서 하얀 눈의 생명 이어가기를 깨달은 것은 분명 제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아침8시30분 널티고개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남부터미널을 6시 반에 출발한 첫 버스가 공주의 구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8시20분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길 건너 시내버스터미널로 바로 가 갑사 행 시내버스에 간신히 올라탔습니다. 버스에 올라 숨을 돌리고 나자 이내 버스는 널티고개 조금 지나 폐차장 앞에 정차했고 저는 하차해 23번국도를 교각 밑으로 건넜습니다. 성진가구 앞으로 가는 잠간 동안에도 손끝이 시릴 만큼 냉랭한 날씨여서 잠시 멈춰서 서 장갑을 꺼내 끼고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성진가구를 막 지나서 오른 쪽 뒤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4곳의 묘지를 지나고 가파른 비탈길을  20분 가까이 올라 바위가 들어앉은 무명봉에 오르자 북에서 남으로 뻗어나가는 계룡산의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나서 다시 8분을 걸어 대나무 깃봉이 세워진 300봉에 올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왼쪽사면에다 일궈놓은 과수원의 나무들에 매달아 놓은 빈 페트병은 허수아비 대용으로 해 놓은 듯싶었습니다. 과수원 위에 쳐놓은 철조망을 따라 걸어 안부로 내려섰다 다시 올라 팔재산으로 향했습니다.


  9시40분 해발358미터의 팔재산에 올랐습니다.

계룡산 저수지가 막힘없이 잘 보였고 맞은 편 계룡산의 자연성능 뒤편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높은 산이 대둔산인 것 같았습니다. 냉랭한 날씨에 바람이 아직 매서워 땀이 식기 전에 바로 자리를 떴습니다. 좁다란 너덜겅을 가로 질러 경사가 급한 내림 길로 하산해 다다른   중장리고개에서 691번 지방도로를 건너 또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올랐습니다. 소나무들이 에워싼 260봉에 오르기도 힘들었고 묘지들이 들어선 평평한 곳으로 내려섰다가 길섶에 키가 작은 잡목들이 우거진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진초록의 어린 전나무들이 오름 길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어 산색이 칙칙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11시 정각 삼각점이 세워진 327봉 묘지에서 산행시작 2시간 반 만에 처음으로 배낭을 벗어 놓고 12분간 푹 쉬었습니다. 남쪽 방향으로 시야가 탁 트여 계룡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이 보이는 듯 했고 파란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소음도 이 산의 평화로움을 깨지 못한 데다 바람도 불지 않고 햇빛이 따사로워 잠시 눈을 붙여도 좋을 만큼 평온한 시간이 얼마고이 지속됐습니다. 327봉을 출발해 280봉을 거쳐 시꺼먼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만학골 고개로 내려선 시각이 11시30분이었습니다. 널티고개를 출발해 3시간가량의 산행은 본격적인 계룡산 등반에 대비한 연습이었고  본격적인 산 오름은 이 고개에서 시작됐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만학골 쪽으로 조금 내려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비포장길로 들어선 잠시 후 다시 오른 쪽으로 꺾어 밭떼기만한 초원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12시 50분 마치 산소자리 같은 편안한 616봉에 올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1차 관문은 만학고개에서 462봉에 이르는 된비알의 오름길이었습니다. 만학고개 출발 40분 동안 수직으로 300미터 고도를 높이는 일도 숨찼고 먼저 오른 한 분이 462봉에 조금 못 미쳐서 왼쪽으로 잘못 내려가 고생을 했다는 산행기를 읽고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자 신경을 쓰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뜀바위의 462봉에 올라서자 웬만큼 진이 빠진 듯 했습니다. 462봉에서 시작된 편안한 능선 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십 수분 후 본격적인 암릉 길이 시작되었고 위험한 암릉을 돌아가느라 몇 번이고 오르내림을 반복했습니다. 616봉에서 점심을 끝내고나서  내복을 벗었더니 나를 듯이 가벼웠습니다. 금잔디고개로 내려서는 중 멧돼지가 분탕질을 한 흔적이 역력한 능선 길을 지나느라 잠시 긴장했었습니다.


  14시5분 해발 775미터의 삼불봉을 올랐습니다.

616봉을 출발해 수정봉을 거쳐 내려선 금잔디고개에서 처음으로 남녀 한 팀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안부사거리인 금잔디고개는 갑사와 동학사를 모두 이곳에서 내려갈 수 있는 데다 바로 옆에 동파를 걱정해 잠정폐쇄하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언제고 식수를 담아갈 수 있는 수도시설이 있어 이 산 안부 중에서 요지 중의 요지입니다. 이 고개에서 삼불봉을 오르는 길도 가팔라 공원에서 산 오름을 돕고자 철계단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동학사나 천황봉에서 이 봉을 바라보면 세분의 부처님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삼불봉의 해발고도는 775미터로 남서쪽으로 1.6키로를 내달려 해발 816미터의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자연성릉이 이 봉우리에서 시작됩니다.


  13시3분 해발816미터의 관음봉에 올랐습니다.

동쪽사면의 절애의 절벽위에 추락 사고를 막고자 철제가드를 설치해 놓아 아슬아슬한 맛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만한 절경의 암릉길을 그냥 지나기가 아쉬워 중간 중간에 멈춰서 사진 몇 커트를 찍었습니다. 관음봉에 오르는 철 계단이 이 산 최장의 계단 길로 해발 816미터의 높은 봉우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보살님을 만나 뵙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팔각정에 앉아 쌀개봉과 천황봉을 바라보자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껏 잘 해왔듯이 이번에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안부로 내려서자 연세든 몇 분들이 쉬고 계셔 그 분들 면전에서 입산금지구역으로 들어서기가 뭣해 그분들이 자리를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로 앞의 암봉을 오른 쪽으로 돌아가는 우회 길로 들어섰습니다.


  15시55분 해발 828미터의 쌀개봉에 올랐습니다.

관음봉안부사거리에서 첫 암봉을 오른 쪽으로 옆 질러 양쪽에 봉우리가 있는 안부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의 능선 길로 들어선 후 왼쪽이 직벽인 암릉 길을 지나 암봉에 오르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 암봉에서 직벽을 피해 오른 쪽에 자리한 널따란 바위로 조심스럽게 돌아서 안부로 내려선 다음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맞은 편 오름길에 설치된 가느다란 로프를 잡고 암릉길로 올라섰습니다. 얼마 후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쌀개봉에 올라서자 무사히 난코스를 해냈다는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바로 앞에 금강홍수예경보시설 계룡산중계소가 보였고 군사시설이 들어선 이산 최고봉인 해발 845미터의 천황봉은 중계소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가 비껴서 있었습니다. 동쪽 산 아래에 자리 잡은 동학사가 조그맣게 보였지만 이 동학사를 “ㄷ”자로 둘러싼 주능선은 장대했습니다.


  쌀개봉 역시 직벽의 암봉이어서 바로 내려가지 못하고 왼쪽으로 에도는 중 어느 산에 못 지 않는 아름다운 통천문을 지났고 바로 오른 쪽 암벽에 가지런히 매달려 있는 고드름 앞에서 잠시 신비감에 빠져들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 섰습니다. 통천문사이로 내보이는 천황봉의 자태도 일품이었고 이 높은 곳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해 이 바위에 찾아 앉은 눈의 생명을 늘려가는 고드름의 생명행위에 절로 외경심이 일었습니다. 이 산에서 생명을 늘려가는 것이 이렇게 춥고 외로울 진데 매일 같이 자기 몸을 녹이고 얼려가며 몸무게를 더해가는 고드름을 보고서 그것이 어떤 삶이든 살아있는 삶은 모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38분 뾰족한 암봉이 양쪽에 서있는 안부에 올라서자 이제 정말로 해냈다 싶었습니다.

통천문을 지나 금강홍수예경보시설 계룡산중계소 바로 밑에서 왼쪽으로 꺾어 편안한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몇 분후 폐타이어를 쌓아 만든 참호에 다다라 왼쪽 길로 들어선 것 까지는 잘한 산행이었습니다. 얼마 후 먼저 오른 한 분의 산행기를 잘 못 이해하고 우회길 왼쪽 위의 커다란 암봉이 좌우에 서 있는 안부로 올라간 것이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철조망이 쳐진 안부 바로 밑에서 오른 쪽 암봉을 우회하는 듯한 희마한 길이 보여 나무 가지를 붙잡고 한참 동안 암봉을 에돌다가 문득 이 길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입산금지구역이라 해도 이리 험한 길로 우회했을 리가 없어 보인 것은 선답자들이 지나간 자국을 어디서도 찾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사 이 길이 제 길이라 하더라도 너무 위험해 포기하는 편이 옳겠다 싶어 다시 안부로 돌아갔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안부에서 밑으로 내려서자 이 거봉을 한참 밑으로 에도는 길이 나 있었고 십 분여 걸어 산행기에 나와 있는 좌우 양봉 가운데의 아름다운 안부에 올라섰습니다. 과연 천황봉은 거봉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회길도 작은 암봉처럼 봉우리 바로 밑을 지나는 것이 아니고 한참 아래로 지나는 것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금 내려가다 아니다 싶어 엉뚱한 안부로 올라 선 것이 알바를 불러온 것이라 생각하자 아직도 저의 산지식이 별 것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나뭇가지를 잡고 왔다 갔다 하느라 팔에 힘이 빠지고 어깨가 아팠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성취감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17시24분 묘지가 들어선 용화사 갈림길의 안부사거리에서 정맥종주를 마쳤습니다.

암봉 사이 길 안부에서 이곳 안부사거리에 이르는 40분 동안 길은 편했지만 이정표나 표지기를 하나도 보지 못해 불안했습니다. 천황봉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방향은 맞지만 계속해 고도를 이리 낮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가해서 또 불안했습니다. 얼마고 내려서서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신문지조각을 보고 저와 함께 백두대간을 오른 한 분이 두 달 전에 이 길을 지나면서 신문지를 잘라 걸었다는 산행기가 생각나 비로소 이 길이 맞구나 하고 안심했습니다. 반시간을 걸어 내려와 안부삼거리에 다다르자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세워져있어 움찔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무명봉을 넘어 안부사거리에 도착해 정맥 종주를 마치고 오른 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18시5분 씨튼영성의 집 수녀원 앞에서 긴 산행을 마쳤습니다.

3년 전에 들른 신원사 길로 알고 내려섰는데 알고 보니 용화사 연화굿당이었습니다. 굿당 조금 못 미쳐서 상의를 갈아입고 굿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붉게 물든 석양은 어느새 서산을 넘어 사라졌지만 땅거미가 찾아들기는 아직 이른 어름에 씨튼영성의 집을 지나는 차도에 도착해 한 젊은이에 버스정류장을 물어보자 아는 차를 잡아 세워 저를 태우고 신원사 앞 정류장에서 내려주었습니다. 가까운 거리지만 그냥 걸어왔다면 18시10분 발 버스를 놓쳤을 것을 그분 덕분에 바로 타 공주에서 저녁 7시발 서울행 고속버스를 갈아탈 수 있었습니다. 정맥 길을 혼자 종주하다보면 이분들과 같이 남을 돕는 고마운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작년 3월 대간 길에서 난코스로 알려진 점봉산 구간을 혼자 해냈을 때의 환희를 이번 산행에서도 똑 같이 느꼈습니다. 내일이면 제 몸속에 나이테가 하나 더해집니다. 저의 작은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더해지는 나이는 그저 도전횟수를 기록하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