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종주기 5
*정맥구간:양정고개-함박봉-물한이재
*산행일자:2007. 3. 1일
*소재지 :충남 계룡/논산
*산높이 :천마산287미터/천호봉377미터/함박봉404미터/깃대봉394미터
*산행코스:양정고개-천마산-천호봉-황룡재-함박봉-깃대봉
-덕고개-곰치재-물한이재
*산행시간:8시46분-17시30분(8시간44분)
*동행 :나홀로
대중교통으로 정맥 길을 들고나는 것이 좀 불편하기는 해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도시를 접할 수 있어 저는 좋아합니다. 어제 대둔산 들머리인 물한이재를 날머리로 해 종주산행을 마치고 논산가는 길에 들른 양촌시내에서 20분여 머무르며 스케취한 거리풍경은 이러했습니다. 연무대-물한이재 길과 금산-논산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를 중심으로 슈퍼마켓, 제과점, 약국 및 이불집(?)이 들어서 있었고 다방, PC방, 가전제품 및 화장품의 종합판매장, 패션점을 표방한 옷가게, 음식점, 하나로마트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병원은 사거리코너의 2층 건물과 약국 바로 옆 두 곳에 있었으며 교회는 시가지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상주인구가 적은 소도시에서 점포들이 살아남는 길은 전문화가 아닌 종합화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가전제품도 1,2위 업체 제품을 같이 판매했고 화장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원도 내과와 소아과 등 몇 개 과목을 같이 진료하는 작은 종합병원이었고 약국에서도 가축약을 같이 팔고 있었습니다. 패션점은 남여 성인복을 동시에 다루었는데 가장 전문화가 된 것은 유일신을 모시는 교회일 듯싶었습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저같은 사람들에는 엉성하기는 해도 정맥길 가까이의 소도시에 사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대도시에서는 러시아의 문호 또스또에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내용대로 왼쪽 코를 다루는 전문의와 오른 쪽 코를 담당하는 의사가 따로 있는 병원이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도시의 전문점에서 고객별로 제공하는 특화된 서비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얼떨떨해 하는 뭇 사람들에는 이러한 소도시의 종합점에서 제공하는 그저 그런 서비스가 더 편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침8시46분 계룡시 양정고개에서 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수원역에서 6시35분 호남선 열차를 타고 2시간 가까이 내달아 8시23분에 계룡역에서 하차했습니다. 206번 좌석버스를 타고 양정고개로 이동해 계룡지구대 뒤편의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통나무계단을 따라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248봉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고른 후 금바위 위에 세워진 팔각정의 천마정에 올라 계룡시내를 조망한 후 천마산으로 향했습니다. 계룡시에서 세운 표지목이 길 안내를 잘 해주어 송전탑을 지나서 천마산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단체장을 직접 뽑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가시적으로 변한 하나가 바로 지역주민들이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인근 야산에 탐방로를 잘 냈다는 점입니다.
9시37분 양정고개에서 2.1키로를 걸어 돌탑이 세워진 해발287미터의 천마산을 올랐습니다.
방금 전에 지나 온 천마정과는 달리 나무들에 가려 전망이 별로이고 먼저 올라온 부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하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어 자칫 분위기를 깰 것 같아 바로 자리를 떠 4키로 떨어진 천호봉으로 향했습니다. 260봉을 넘고 농소리로 갈리는 봉우리 삼거리를 지나 폐타이어를 싸 놓은 야적장 옆의 임도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선 것은 천마산을 출발하여 반시간이 조금 못되어서였습니다. 임도 오른 쪽 아래의 산기슭에 자리한 사육장에 갇혀있는 개들이 쉬지 않고 짖어대는 바람에 새들은 물론 나무들도 그리고 다른 산 식구들도 제 때 편히 쉬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11시4분 해발 377미터의 천호봉을 올랐습니다.
폐타이어 야적장 옆 임도에서 송전탑을 지나 삼각점이 세워진 304.8봉에 올라서자 이름모르는 나무의 가지가 빨갛게 제 색을 다 내 이미 봄이 와 있음을 감지했지만, 날이 흐려 햇살이 퍼지지 않아서인지 늦겨울의 냉기는 여전했습니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평정하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개태사로 가는 길이 오른 쪽으로 나있는 안부삼거리를 지나서 밋밋한 능선을 따라 천호봉을 올랐습니다.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들을 단속하고자 매일 한번 씩 이 천호봉에 오른 다는 제 연배의 한 남자 분은 산객들의 얌체짓거리를 성토했습니다. 양정고개에서 6키로 떨어진 여기 천호봉까지는 나름대로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다다른 셈이어서 저녁 6시안에 이번 산행의 날머리인 물한이재까지 충분히 진출할 것 같아 안심됐습니다. 천호봉에서 13분을 더 걸어 오른 353봉에서 처음으로 짐을 풀고 커피를 마시며 10분가량 쉬었습니다.
12시37분 벌곡과 연산을 잇는 20번 도로가 지나는 황룡재로 내려섰습니다.
353봉에서 10분가량 쉰 후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340봉에 올라서서 논산천과 호남선 철로가 지나는 논산평야를 일별한 후 그 전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벌곡과 개태사 및 농공단지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목이 서 있는 332봉에 다다랐습니다. 332봉에서 벌곡방향의 왼쪽으로 확 꺾은 다음 25분을 더 걸어 황룡재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의 고개마루를 넘어 길 건너 왼쪽의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2월15일부터 석 달 간 산불예방을 위해 입산을 금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고 주차장 한 끝에 단속차량으로 보이는 무쏘 한대가 서 있어 잠시 멈칫했습니다. 살그머니 산등성을 올라 삼천리 연수원 뒤의 능선 길에 합류해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함박산으로 향했습니다.
13시5분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해발404미터의 함박봉을 올라 점심을 들며 10분을 쉬었습니다.
황룡재에서 계단 길을 따라 해발 404미터의 함박봉에 오르는 길이 된비알 길이어서 진땀을 흘렸습니다. 25분을 걸어 함박봉에 오르자 햇살이 쫙 퍼지고 바람이 없어 비로소 기상청에서 예보한 봄 날씨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활공장으로 쓰였다는 함박봉 정상의 넓은 공터에서 내려다 본 잔잔한 탑정호가 포근하게 다가왔고 다음번에 오를 대둔산의 연봉들이 더욱 가깝게 보였습니다. 대전에 사신다는 한 분이 포도주를 권해와 실로 몇 년 만에 맥주가 아닌 다른 종류의 술을 극소량이나마 입에 댔습니다. 아침이면 과음한 저를 챙겨주었던 집사람을 7년 전에 암으로 보내고 나서 소주로 폭음한 후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리해서는 몸 버리기 십상일 것 같아 술은 도수가 낮은 맥주로 통일했고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담배도 끊는 등 저 나름대로 건강을 챙긴 덕에 이제까지 이렇다할 잔병 치례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맥주만을 고집할 뜻입니다. 함박봉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자갈이 깔려 있는 공사 중인 임도로 내려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바로 앞 산 속에서 오른 쪽 산 아래로 후다닥 뛰어 내려가는 짐승소리가 하도 크게 들려 저도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으나 도망치는 짐승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함박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멧돼지가 분탕질한 흔적을 여러 번 본 터라 스틱으로 돌을 쳐 쇳소리를 냈는데 이 소리가 멧돼지를 쫓아버리는데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임도에서 산길로 들어서 깃대봉에 다다르는데 30분이 걸렸습니다. 송전탑을 지나고 391봉과 380봉을 오르내리며 낙엽이 깔린 안온한 산길을 걸었습니다. 함박봉 출발 1시간 후인 14시15분에 나무들을 베에 내 시야가 트인 깃대봉을 올랐습니다. 깃대봉 고스락에 정상석도 깃대도 아무 것도 없어 삼각점 옆에 스틱을 꽂아놓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14시52분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덕목재로 내려섰습니다.
양정고개에서 시작한 긴 시간의 남진은 깃대봉에서 끝났고 왼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동진을 시작했습니다. 덕목재로 내려서는 동안 새 삶의 아름다움과 주검의 추함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진달래 꽃과 불에 타 시꺼멓게 죽어 있는 소나무 들을 보았습니다. 꽃망울이 살짝 열린 진달래 꽃송이에서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새 삶을 시작하는 생명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는데 불에 타다 남은 소나무들의 시꺼먼 잔해들이 장승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서럽게 죽은 목숨은 죽어서도 한이 남아 있어 제대로 눕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남고속도로를 물이 흐르는 지하통로로 건너 오른 쪽 밭길로 들어서자 버들강아지가 활짝 핀 앳된 얼굴을 보여주어 춘래춘 불사춘의 2월이 지나갔음을 실감했습니다. 새롭게 조성하는 인삼밭길을 지나며 밭에서 일하시는 노인 한 분에 죄송스러워 밭둑길을 걸어 저기 산길로 들어서겠다고 양해말씀을 드렸더니 지금이야 지나가도 좋지만 인삼밭이 다 조성되면 출입을 금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이래저래 정맥 종주길이 점점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16시7분 곰치재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덕목재에서 동진을 멈추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남진을 했습니다. 인삼밭을 지나 송전탑 조금 위 지점에서 정맥 길을 다시 찾아 360봉으로 올라서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몇 번이고 고바위 길을 오르느라 진이 많이 빠진 중에 어렵사리 정맥 길을 찾아 다시 된비알을 오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표지기가 여러 개 걸린 360봉에 퍼져 앉아 한 숨을 돌린 후 곰치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봉우리를 하나 넘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봉우리를 오르는 중 금남정맥을 종주하는 한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분도 저와 같이 왼손에 지도를, 오른 손에 스틱을 잡고 있어 한눈에 정맥을 종주하는 분임을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 대둔산을 출발해 양정고개가지 진출하겠다는 그분이 양정고개를 출발한 저의 산행시간을 점검하고 중간에 적당한 지점에서 산행을 마칠 뜻을 내비치면서 제가 목적한 물한이재는 앞으로 1시간정도 더 가면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능선에서 왼쪽 아래로 산허리를 에도는 임도길이 길동무처럼 다감하게 느껴졌는데 곰치재에서 이 임도 길을 잠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졌습니다. 곰치재에서 계속되는 정맥 길은 높낮이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비교적 평탄한 길인데도 여전히 힘들었지만 중간에 가지나무에 달린 새빨간 열매를 카메라에 옮겨 담고 암릉 길을 걷는 등 작은 변화가 몇 번 있어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17시30분 도로공사가 덜 끝 난 물한이재로 내려서 9시간 가까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곰치재를 떠나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서 암릉 길을 지나고 나서는 363.9봉의 삼각점을 확인하고자 애썼습니다. 지도상의 제 위치를 확인하는데 삼각점만큼 좋은 곳이 없기에 웬만한 봉우리는 전부 올라 삼각점을 찾아보았으나 실패했습니다. 먼저 오른 한 분도 363.9봉의 삼각점을 찾지 못했다는 산행기를 읽었기에 더 더욱 오기가 나 어떻게든 찾고 말겠다고 이봉 저 봉을 기웃거렸는데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곰치재 출발 1시간이 지나서야 363.9봉의 삼각점을 찾고 나자 시멘트덩어리의 삼각점이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삼각점에서 물한이재로 내려서는 길도 경사가 급해 하산 길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깎아지른 절개면을 올라가 다시 정맥 길을 이어가는 것이 다음 산행의 과제이기에 들머리를 확인한 후 택시 한대를 5천원에 불러 양촌으로 옮겼습니다.
양촌은 경기도 파주의 제 고향 면소재지인 광탄보다 시가지 거리가 짧아보였고 거리풍경이 세련되지 못하기는 매 일반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다방과 슈퍼마켓이 세 군데나 보였고 병원과 PC방이 두 곳이나 있어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이 작은 도시에서도 피해갈 수 없겠구나 했습니다. 정맥 길을 들고 나며 들르는 이러한 소도시의 밤거리가 어둡지 않도록 경기가 풀려야 산길을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얼굴표정도 어둡지 않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이 소도시와 잠시라도 같이 호흡하고자 다방에 들러 커피 한잔을 사 마시고 싶은 욕심이 일었습니다만 이내 논산행 버스가 다가와 그냥 버스에 올랐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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