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남정맥 종주기

금남정맥 종주기 4 (용화사갈림길-향적산갈림길-양정고개)

시인마뇽 2007. 2. 24. 17:12
                                                 금남정맥 종주기 4


                               *정맥구간:용화사갈림길-향적산갈림길-양정고개

                               *산행일자:2007. 2. 23일

                               *소재지  :충남계룡/논산

                               *산높이  :향적산574미터

                               *산행코스:신원사버스정류장-용화사갈림길-434봉-500봉

                                               -향적산갈림길-향적산-향적산갈림길-양정고개

                               *산행시간:9시54분-15시50분(5시간54분)

                               *동행    :나홀로

 

 

  금남정맥의 곁가지 봉인 향적산을 올라 며칠 후면 중학교에 들어간다는 참으로 생각이 엉뚱한 사내 녀석들을 만났습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해발574미터의 향적산 정상봉인 국사봉에 올랐어도 카메라를 빼 놓고 와 사진을 못 찍는 것이 아쉽다며 사내 녀석들 3명이 제 네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옆에서 우연히 들었습니다. 한 녀석에게 내가 사진을 찍어 주겠으니 메일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기 메일 주소라며 “지운5520@...”을 적어주었습니다. 모든 e-mail주소는 영어와 숫자로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제게 녀석이 일러주기를 자판은 영어로 해놓고 한글로 “지운”이라고 쳐 넣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녀석의 메일 주소가 "wldns5520@..."임을 확인하고 나서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참으로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고의 틀이 단단히 짜여 있는  어른들이라면 결코 생각해 낼 수 없는 녀석의 메일 주소를 보고 이 땅에서 자라나는 어린이 들이 이 녀석처럼 매사를 유연하고 독창적으로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이 나라의 꿈나무로 커나갈 것 같다는 믿음이 갔고 그래서 마음이 놓이고 기뻤습니다.


  아침9시54분 계룡산 천황봉의 남서쪽 산기슭에 자리한 신원사 초입의 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아침에 늦장을 부리다가 10분 늦게 집을 나선 것이 산행시작시간을 1시간 10분이나 늦추게 만들었습니다. 강남터미널을 6시4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공주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착해,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산성동의 시내버스정류장에 다다른 시각이 8시30분이어서 8시발 신원사 버스는 놓쳤고  40분을 기다려 9시10분발 버스를 탔습니다. 30분 넘게 달려 도착한 신원사버스정류장에서 산행채비를 마친 후 지난 번에 하산한 용화사갈림길로 향했습니다. 내의와 귀 가리개 모자 모두 집에다 벗어두고 왔는데 의외로 날씨가 냉랭해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지난 번 하산 길에 그냥 지나쳤던 논산상도리 마애불을 잠시 짬을 내어 들러보았습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자연암석에 몸체를 선으로 그려놓고 위에다 머리부분을 붙여놓은 고려시대의 마애불이 온후하고도 잔잔한 미소를 지며 저를 맞아주어 이번 산행이 내내 평온할 것 같았습니다.


  10시44분 용화사갈림길인 금남정맥 상의 안부사거리로 올라서 묘지 앞에다 짐을 벗어 놓았습니다. 신원사버스 정류장을 출발해  시튼영성의집과 용화사굿당을 차례로 지나서 들른 마애불을 사진 찍은 후 바로 올라 정맥 길로 복귀하기 까지 50분이 걸렸습니다. 한적한 곳을 찾아 부글대는 속을 달랜 후 산행기를 잘 못 읽어 안부를 넘어 똑바로 내려섰다가 계곡을 만나 다시 돌아와 제 길로 들어선 것이 11시4분이었으니 안부사거리에서 잡아먹은 시간이 그렁저렁 20분이 다 되었습니다. 안부 출발 15분 후에 434봉을 올랐고 이내 시야가 탁 트이는 전망바위에 다다르자 뒤쪽으로 천황봉이 전신을 내보였고 오른 쪽 아래로 양화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1시58분 500봉에 올랐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조금 더 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택해 안부로 내려섰다가 참호를 지나 440봉을 올랐고 이내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천황봉 남동쪽에 들어앉은 계룡대와 골프장이 가깝게 보였고 날씨가 쾌청해 같은 방향 먼발치로  식장산과 서대산 그리고 대둔산이 시계방향으로 나란히 보였습니다. 헬기장에서 18분을 걸어 큰 바위와 묘비가 서있는 500봉을 오르자 맞은 편 향적산의 이동통신 중계안테나가 가깝게 보였습니다. 500봉에서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높낮이가 별로 나지 않는 편안한 길인데도 출입금지구역이어서인지 지나가는 산객을 아무도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100대 명산의 하나인 계룡산의 지능선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 길을 걸으며 무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이 땅을 지켜주는 이 나라가 고마웠으며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13시16분 해발574미터의 향적산을 올라 꿈나무들을 만났습니다.

500봉을 지나 30분여 걸어 오른 쪽의 금강대학 방향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를 만났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멘재로 생각되었습니다. 능선 길에 노간주나무(?)로 보이는 침엽수가 많이 눈에 띄어 이채로웠습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의 시멘트기둥이 세워진 곳을 3번이나 지나 향적산갈림길  큰 바위에 도착해 현지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분 도움으로 헬기장에서 본 산들의 이름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한 후 이분 일행들을 따라 잠시 금남정맥에서 벗어나 향적산을 올랐습니다. 향적산 정상에서 만난 꿈나무들에 사진 몇 커트를 찍어주고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북동쪽으로 대전 시내가 잘 보였고 남동 쪽 멀리로 충청남도에서 두 번째로 저수량이 많다는 탑정저수지가 보였습니다. 정상에는 “북두칠성-천계황지-남두육성-불”의 한자가 네 면에 돌아가며 씌어 있는 큰 비석이 세워져 있어 이 산이 우리나라 건국신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향적산을 오르는 중 제 앞에선 여인네 두 분이 부담 없이 주고받는 수다를 들으면서 며칠 전에 읽은 소설 한편이 생각났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수다”는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우리 여인네들의 수다는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푸는 사설이요 노래이었기에 단순히 쓸 데 없는 말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보다 17년이 위이신 소설가 박완서 님에 그동안 죄송했던 것은 동시대를 살면서 이 나라 말과 글을 다듬고 또 다듬느라 고생하시는 님의 소설을 한 권도 사 읽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 헌 책방에 들러 1994년에 펴낸 님의 소설집 “한 말씀만 하소서”를 사갖고 와 그 안에 실린 단편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읽고나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손위 형님께 전화를 걸어 혼자서 일관되게 참척의 고통을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전개과정도 독특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떠는 수다를 들으면서 중간에 말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그 어머니의 수다가 자식을 먼저 보낸 당신의 고통을 줄여줄 뿐 아니라 그 수다를 듣고 있는 독자의 응어리도 같이 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의 형식도 독특했고 실제로 아들을 잃은 작가의 비통함과 억척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던 한 어머니의 “수다”를 다 읽고 나서 중학교 다닐 때 장남인 큰 형님을 군에서 잃은 비통함을 속으로 삭이신 제 어머니를 다시 보는 듯 했습니다. 역시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자식사랑은 제가 요즈음 걷고 있는 금남정맥의 산줄기보다 더 크고 더 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시4분 향적산 갈림길의 바위에서 일어나 엄사리로 향했습니다.

향적산에서 정맥길로 되돌아와 갈림길 바위에서 점심을 들은 후 다시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동쪽으로 한참을 내려가 안부에 다다르자 엄사리 길을 알려주는 표지목이 서 있었고 아주머니 몇 분들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왼쪽으로는 군부대로, 오른쪽으로는 무사리로 가는 길이고 똑바로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 엄사리로 가는 길로 이곳에서 한 시간 여 곳곳에 세워진 표지목을 보고 3.4키로 떨어진 엄사리(청송약수터)로 가는 길만 쫓아 걸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고 몇 번의 갈림길에서 계속해서 왼쪽으로 꺾이는 엄사리 길은 이정표에 나와 있는 대로만 가면 길 잃을 염려가 전혀 없는 시원한 대로였습니다.


  15시4분 송전탑 바로 아래 안부사거리를 지났습니다.

국사봉에서 약 4키로를 걸어 다다른 안부에서 묘지 쪽으로 곧바로 올라 잠시 후 만난 갈림길에서 처음으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통나무다리를 건넜습니다. 얼마를 걸어 만난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절개지 위의 삼각점에 다다랐습니다. 절개지에서 포장길로 내려선 곳이 엄사리인데 길가 간이 화장실 옆의 가로등 전주에 금남정맥의 아크릴 판이 묶여 있었습니다. 송전탑 안부사거리에서 23분을 걸어 다다른 엄사리에서 양정고개로 이어지는 길은 성봉현님의 시내안내도를 보며 찾았습니다. 절개지를 타고 내려온 길에서 남서 쪽으로 직진해 4차선 도로를 건넜고 엄사초교를 오른 쪽으로 끼고 돌아 호남선 철로위의 다리 과선교를 건넜습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지하통로를 지나고 둔산농협을 지나 만난 1번차도를 건너 왼쪽으로 조금 더 걸어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는 신계룡지구대 뒤편의 양정고개에 이르렀습니다.


  15시50분 1번도로가 지나는 양정고개에서 6시간의 비교적 짧은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지구대안으로 들어가 근무 중인 경찰분에 천안 가는 기차시간을 확인 한 후 계룡역 쪽으로 조금 걸어가다가 버스를 타 16시20분에 계룡역을 출발하는 호남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좌석이 꽉 차 천안까지 서서가느라 몸은 힘들었어도 산꼭대기에서 만난 녀석들이 사진을 받아보고 얼마나 기뻐할 까 생각하자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