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남정맥 종주기

금남정맥 종주기 2 (진고개-성항산-널티고개)

시인마뇽 2007. 2. 15. 21:17
                                            금남정맥 종주기 2


                    *정맥구간:진고개-복룡리고개-성항산-널티고개

                    *산행일자:2007. 2. 7일

                    *소재지  :충남부여

                    *산높이  :성항산 240미터                   

                    *산행코스:진고개-복룡리고개-신의리/토골간도로

                              -성항산-322봉-널티고개

                    *산행시간:9시-17시25분(8시간25분)

                    *동행    :나홀로

 

 

  산자락을 가득히 메운 안개와 동녘 하늘에 솟은 아침 해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금남정맥의 산 능선을 차지하겠다고 벌이는 싸움이 참 볼만했습니다. 원래부터 햇살과 안개는 상극이라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능선을 뺏고 뺏기는 치열한 혼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비행기가 못 뜨는 일은 없지만 안개가 좀 많이 끼었다하면 이륙이 불허되는 것은 햇빛이 안개를 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햇빛을 막아내는 데는 굵은 빗줄기보다 훨씬 강한 안개도 실은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명을 다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상대습도가 100%를 넘게 되면 과포화상태의 수증기가 응결해 안개를 만들기에 안개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은 공기의 온도에 달려있는데 이 공기를 데우는 것이 바로 햇빛이기에 말입니다. 중천에 높이 뜬 아침 해가 햇살을 뿌려 능선의 안개를 증발시켜버렸는가 했는데 어느새 골짜기의 안개가 골바람의 도움을 받아 다시 능선 길을 먹어 삼켜 가시거리가 20미터도 안되게 만드는 등 십수회의 거듭된 밀고 밀리는 혼전은 아침 9시반경에 시작하여 12시까지 계속됐습니다. 햇빛의 승리로 돌아간 혼전의 현장을 살펴본 후 저는 이 싸움이 이 산에 봄을 불러들이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음을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당연 패자인 안개의 시체가 즐비해야하고 처참해야 할 능선 길에 벌써 사라졌어야 할 안개가 물방울로 변신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중한 정오의 태양이 이 나무들에 따뜻한 햇빛을 쪼여주고 있었습니다. 뿌리로 빨아올리는 수분만으로 봄을 맞이하기가 아직은 때 이른 나무들에 이런 방법으로 필요한 물과 햇빛을 공급한다고 생각하자 안개의 패배로 끝이 날 것이 뻔한 이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제가 참 멍청했구나 싶었습니다. 이 들의 만남을 햇빛이라는 창과 안개라는 방패의 다툼으로만 보고 봄을 만드는 창조적 생명행위로 인식하지 못한 저의 단견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침9시 진고개에서 들머리로 올라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새벽같이 서둘러 아침 6시5분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하는 공주행 고속버스에 올라타 짙은 안개로 서행을 했어도 7시50분이 채 안되어 공주에 도착했습니다.  인근의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겨 8시10분발 부여행 버스에 올라 탄천에서 하차했습니다. 3천원에 렌트카를 불러 진고개로 가서 산행채비를 마치고 9시 정각에 출발했습니다. 묘지 몇 기를 지나 무명봉에 올랐어도 안개의 기세가 여전히 등등해 20미터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왼쪽 사면이 간벌된 능선을 따라 올라 9시반경 200봉(?)에 올라서자 아침햇살이 능선 위의 안개를 내몰아 시야가 트였고 중천에 떠있는 태양이 얼굴을 내보였습니다. 눈에 익은 표지기들이 나뭇가지가 낮게 드리워 고개를 숙이고 진행해야하는 좁은 길을 안내해줘 고마웠습니다.


  9시40분 큰 나무들이 베어져나간 오른 쪽 사면이 시원스레 보이는 개활지를 지나는 중 산자락의 안개가 다시 능선을 덮는 통에 태양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개활지를 지나서 십 여분 후 능선 오른 쪽 사면의 출입을 막는 철선 울타리를 만나 3-4분을 걷자 울타리는 산 밑으로 떨어지고 안개가 다시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200봉을 왼쪽으로 에돈 후 잡목 길로 들어서자 능선 길 나뭇가지에 맺혀있는 물방울들이 하도 초롱초롱하게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몇 커트 찍었습니다. 내림 길에 무심코 능선삼거리를 지나 다다른 또 다른 삼거리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고심하다가 일단 표지기가 달려 있는 곳까지 되돌아가다가 여러 개의 표지기가 걸린 갈림길을 만나 알바를 면했습니다. 얼마 후 묘지를 지나 구릉삼거리에 올라서자 산자락을 메웠던 안개가 골바람의 힘을 빌려 다시 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11시20분 복룡리고개에서 697번 지방도를 건넜습니다.

구릉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서다 만나는 3곳의 삼거리에서 계속 오른쪽으로 진행해 십자안부를 지났고 오른 쪽 사면에 나무들을 베어내고 잣나무를 심어놓은 능선 길을 걸어 청양T/L No.141번의 송전탑이 세워진140봉에 다다랐습니다. 잠시 후 절개지를 내려가 논산-천안고속도로를 밑으로 통과하여 복룡리 고개에 올랐는데 안개의 기세는 여전했습니다. 697번 지방도를 건너 올라선 KTF 중계기 바로 아래 바람을 막아줄 만한 곳을 찾아 짐을 내려놓고 커피를 꺼내 들며 10분을 쉬면서 이 근처에서 알바를 했다는 성봉현님의 산행기를 정독했습니다. 안개가 자욱해 산행기에 나오는 철탑을 확인하지는 못했어도 갈 길은 제대로 찾아 밤나무 밭과 잡초 숲길, 그리고 다시 밤나무 밭을 지났습니다. 꽤 넓은 구릉에 듬성듬성 서있는 밤나무들이 안개 속에 서 있는 풍경이 참으로 여유로워보였습니다.  길 오른 쪽으로 쳐진 낡은 철조망을 지나 12시 4분에 140봉에 올라서자 남중한 태양에 완전히 진압당한 안개가 저만치 앞으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185봉에서 신의리-토골을 이어주는 시멘트도로로 내려서는 길이 겉 표면만 녹아 자칫 미끄러져 옷을 버릴까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12시54분 삼각점이 서있는 183.7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쳐진 철망 울타리가 정맥 길을 가로막아 별 수 없이 무단으로 철제문을 넘어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과수원사이로 난 마루금 왼쪽에 위치한 농가를 통해 이 길로 접근할 수 있음이 확인됐지만 개들이 짖어대는데다 몇 년 후 과일이 결실할 때면 아예 출입을 원천봉쇄할 것이기에 이 길 통과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후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정맥 길과 반대방향인 오른 쪽으로 꺾어 183.7봉을 올라 이번 산행 중 처음으로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15분을 쉰 후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남방차림으로 정맥길로 복귀해 종주산행을 이어간 것은 안개가 가시자 기온이 올라 봄기운이 역력해서였습니다. 273봉을 오른 쪽으로 비껴가 백두대간을 같이 종주한 천자봉님의 표지기가 걸려있는 성항산에 올랐습니다. 능선 갈림길에서 성항산을 거쳐  토골-두아리의 포장도로로 내려서기까지 “ㄷ”자 모양을 그리며 진행했습니다.


  14시28분 향지리의  이동통신 중계기를 지났습니다.

토골-두아리의 포장도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묘를 지나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120봉을 올랐고 다시 묘지 몇 기를 지나 향지리의 이동통신 중계기에 다다랐습니다. 한 여름에 여기를 지날 때에는 오른 쪽 산 아래 축사에서 풍기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아 분자의 운동범위로 크기가 정해지는 기체의 부피는 절대온도에 비례하고 압력에 반비례한다는 보일샤를의 법칙이 들어맞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점잖은 사람들이 열을 받으면 팔짝 뛰는 것도 기체분자와 운동속성이 같아서일 것입니다. 이동통신중계기에서 18분을 걸어 만난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따라 조금 걷다가 이내 오른 쪽의 능선으로 올라 잡목 숲길을 지났고 15시 정각에 이장한지 그리 오래지 않은 4기의 묘지를 막 지나 바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습니다. 이장한 묘지에는 봉분을 파헤친 구덩이와 묘비가 그대로 남아 있어 흉물스러웠습니다. 각 묘당 딱 1개를 세운 묘비도 그대로 놔두는데 그 거대하고 튼튼한 석조납골당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기에 산을 보호하겠다고 납골당을 만드는 것이 먼 훗날에는 보통의 묘지보다 더 큰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10분 상리의 임도에 도착했습니다.

이장묘지를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해발 300미터가 다되는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면서 이제야 깊은 산속에 와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른 쪽 저만치에 360봉이 서있는 320봉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322봉에 다다랐고 오른 쪽으로 급하게 떨어져 상리임도로 내려가는 길에 왼쪽사면의 거목들이 막 베어진 현장을 지나며 왜 나무를 베어내는 지 그 이유가 자못 궁금했습니다. 저희들이 짬을 내  오르는 산들의 진정한 주인은 나무들과 야생동물일진데 사람들이 무슨 권한으로 잘 자라는 나무들을 베어내어 민둥산으로 만드는지 개발이라는 그럴 듯한 이유 말고 정말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따져 묻고 싶은 것은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가 “나무”라는 시에서 읊은 대로 나무는 하느님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끄러운 전기톱소리를 뒤로 하고 철조망을 넘어 녹다 만 눈이 조금 남아 있는 가족 묘지를 지나 상리임도에 다다랐고 바로 옆 묘지에서 한 줄 남은 김밥을 마저 들었습니다. 이내 산등성으로 올라 또다시 밤나무 밭을 지나며 왼쪽 산 아래로 보이는 기산 저수지의 정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는 동안 고라니로 보이는 산 짐승이 후닥닥 뛰어가 풀숲으로 사라지는 진풍경을 목도했습니다. 밤나무 밭을 지나 넓은 구릉에서 왼쪽의 임도를 따라 걷다 바로 왼쪽의 숲 속으로 진입했습니다.


  17시24분 23번 국도가 지나는 널티고개에 도착해 종주 산행을 종료했습니다.

상리임도에서 널티고개까지는  높은 봉우리도 없고 차 소리가 계속 들려와 해넘이시간이 다되었어도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습니다. 23번 도로에 내려서기 직전의 묘지에서 상의를 갈아입고 구도로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십 수분을 걸어 봉명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갑사를 출발해  18시 정각에 이 정류장에서 멈춰선 공주행 시내버스에 몸을 실어 하루산행을 끝냈습니다.


  이 산에 사는 산식구들에는 능선 길에서 목격한 햇살과 안개의 자리다툼이 봄을 불러들이기 위한 연극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깊은 산 속에서 나무를 마구 베어내는 사람들의 횡포는 전쟁선포에 다름없었을 것 같아 종주산행을 잘 끝내고도 영 뒷맛이 씁쓰름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