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노고치-오성산-조계산
*산행일자:2008. 7. 8일
*소재지 :전남 순천/곡성
*산높이 :조계산884m/오성산606m/유치산530m
*산행코스:노고치-닭봉-유치산-오성산-두월육교(접치)
-조계산-선암사-선암사주차장
*산행시간:11시17분-19시7분(7시간50분)
*동행 :송백산악회 회원
총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탄알 그 자체가 아니고 속도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혼자서 호남정맥을 종주해온 제가 그동안 뜸했던 백두대간을 함께 뛴 한 산악회의 회원들을 만나보고 싶어 이 산악회 특유의 빠른 산행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엄청 고되더라도 감수하리라 마음먹고 종주산행에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유명 “산”지의 출판사에서 펴낸 안내책자에 10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는 노고치-조계사-굴목재 구간을 이 산악회에서 목표한 7시간 안에 주파하고자 죽어라고 뛰었으나 결국에는 굴목재 조금 못 미친 조계산의 장군봉에서 구간종주를 마치고 선암사로 하산했는데 8시간이 다 걸렸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힘들었던 것은 긴 산행코스가 아니고 빠른 속도 때문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의 미사치-노고치 구간의 종주거리가 이번 구간보다 훨씬 길었어도 제게 맞는 속도로 12시간에 걸쳐 산행한 결과 크게 고되지 않았음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님은 눈으로 들어온다는 에이츠의 명시 “Drinking Song"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제가 3개월이 지나도록 한번도 이 산악회의 산행에 참여하지 못해 이러다가는 회원들의 눈에서 멀어져 영영 잊혀가는 것이 아닌 가해서 명산 조계산 산행팀과 같이한 호남정맥 종주에 동참했습니다. 버스 한대가 넘쳐 봉고차 한대가 따라가야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함께 산행 길에 나섰지만 인사를 나눌만한 친근한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구면의 몇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빈자리를 찾아 뒷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의 한 분도 얼굴을 전혀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이분과 인사를 나눈 후 산경표와 산맥의 차이를 길게 설명해 드렸는데 처음 뵌 분에 주제넘게 시간을 많이 뺐었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했습니다. 잠실 출발 5시간이 거의 다되어 들머리인 노고치에서 하차했습니다.
오전 11시17분 노고치고개에서 왼쪽으로 올라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충전기에 꽂아 놓은 바테리를 그냥 두고 와 들머리인 노고치를 카메라에 담지 못했지만 사진 찍는 시간이 절약되어 산행이 빨라질 수 있겠다 싶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같이 기념사진을 한방 찍은 후 잽싸게 왼쪽의 시멘트축대를 올라 산속으로 질주하는 일행들과 보조를 맞춘 것은 잠간뿐이고 이내 후미로 쳐졌습니다. 10분도 채 안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413.2봉을 지났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 오름을 계속해 620능선에 오르자 비교적 길이 평탄해졌지만 이 시간도 길지 않았고 노고치 출발 40분 만에 오른 634봉에서 북쪽으로 꺾어 안부로 내려갔습니다. 어느새 대오가 정해져 후미대장은 저보다 몇 년 연배이신 노익장을 자랑하시는 한 분이 맡으셨고 호남정맥 종주 팀의 영원한 후미라는 부부 두 분과 젊은 여성 한분이 그 뒤를 따랐는데 네 분들 모두 백두대간을 함께 오르내린 분들이어서 반가웠습니다.
12시32분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 744m의 닭봉에 올랐습니다.
634봉에서 내려서 좌측사면이 벌목지여서 전망이 좋은 능선 길을 걸으며 배틀재를 지났을 텐데 정신없이 걷느라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찜찜했습니다. 산비탈에 일궈놓은 다랑 밭은 녹차재배지라는데 보성의 녹차 밭보다 훨씬 초라해 보였습니다. 얼마 후 커다란 암벽을 왼쪽의 너덜과 산죽 길로 우회해 능선으로 올라서자 모처럼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왔습니다. 능선을 올라 헬기장 바로 밑 그늘에서 쉬고 있는 후미팀 네 분을 만나 안도했습니다. 헬기장 한 가운데 배낭 하나가 달랑 있어 후미대장 분 것이 아닌 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북쪽의 희야산을 다녀온 다른 회원 것이었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쉬고 갈 형편이 못되어 선채로 목을 축인 후 바로 헬기장을 출발했습니다. 앞서간 네 분을 따라잡기를 포기하고 나자 혹시나 길을 잘 못 들지 않을까 염려되어 배낭에 쳐 넣은 산행기와 지형도를 꺼내들었습니다. 잡목 숲을 지나 헬기장 출발 10분 만에 다다른 거암은 뱃바위가 틀림없는데 유치산 정상석이 서 있어 어리둥절했습니다. 조계산 너머 배바위와 이곳의 뱃바위의 이름들이 이 산이 바다가 융기해 만들어졌음을 입증하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하는 것은 외항의 망덕산에서 이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능선 길에 널려있는 하얀 조개껍질을 꽤 여러 곳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13시31분 해발530m의 유치산을 올랐습니다.
뱃봉에서 로프 줄을 쳐놓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 임도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임도에서 숲 속의 산길로 들어서 모처럼 편안한 길을 걸었습니다. 13시를 막 넘어 도착한 닭재 바로 앞 구릉에서 후미팀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유일하게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쉴 수 있는 점심시간은 고작 13분이었지만 졸고인 호남정맥 종주기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고마운 한분과 인사를 나누어 반가웠습니다. 13시15분에 선두팀이 점심을 들겠다는 오성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내 통나무의자와 이정표가 있는 십자안부인 닭재를 지났습니다. 닭재에서 15분을 걸어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유치산 정상에 다다랐는데 잡초가 무성했고 정작 이 봉우리에 있어야 할 정상석을 뱃바위에 세워놓아 산봉우리가 허전했습니다. 유치산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한망이재로 내려섰다가 474봉에 올라 일행 한분이 건네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474봉에서 391봉으로 옮기는 중 좌측 사면의 벌목지여서 전망도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라오는 능선 길을 지났습니다. 유치산 출발 1시간이 다되어 깊숙한 안부인 두모재에 도착했습니다.
15시15분 해발 606m의 오성산을 올랐습니다.
두모재에서 한 걸음에 오상산을 오르기는 경사도 급하고 짧은 길이 아니어서 선두대장이 일러준 대로 반시간 쯤 걸어올라 전망바위에서 5분을 쉬었습니다. 땅 바닥을 살짝 덮은 진초록의 둥굴레가 제법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 군락지를 지나는 얼마 동안은 둥굴레의 싱그러움에 피로감이 가시는 듯 했습니다. 명산 팀과 종주팀의 무전기들이 거의 동시에 작동되자 주고받는 여러 교신소리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산속이 조금은 시끄러웠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조망한 후 준비해간 쥬스로 목을 축이자 다시 기운이 샘솟았습니다. 오성산을 오르는 중 능선 길에서 만난 아침9시반경에 굴목재를 출발했다는 광주 분이 정상이 얼마 안 남았다고 일러주어 산죽사이로 난 된비알 길을 쉬지 않고 올랐는데 반시간이 거의 다 걸려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남쪽으로 조계산이 보였는데 어느 분이 촬영한 무등산과 지리산의 정상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각점과 표지석이 세워진 오성산 정상에서 동쪽 아래에 진달래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어 봄이면 그 화사함이 장관이라 합니다. 철지난 진달래를 찾아보는 것보다 제시간에 선암사에 닿는 것이 급선무여서 남쪽으로 난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가 접치로 내달았습니다. 접치를 가로지르는 두월육교에서 이 산악회 회장 분에게서 식수를 공급받은 후 15시48분에 접치를 출발했습니다.
17시48분 해발 884m의 조계산 정상봉인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산악회에서 배포한 지형도에는 접치에서 정상까지 1시간 10분 걸린다고 나와 있는데 저는 꼭 2시간 만에 정상을 올라 50분이 더 걸렸으며 제가 갖고 간 안내도보다는 20분이 덜 걸렸습니다. 접치에서 장박몬당까지 1시간40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올랐던 것은 정상까지 1시간 10분 소요된다는 지도를 믿어서였는데 반시간을 더 걸었어도 정상에는 근접도 못하고 겨우 능선삼거리에 도착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접치에서 절개면을 오르는 길에 철계단이 놓여 있어 오름길이 편했습니다. 절개면을 올라선 다음 넓은 길옆의 송전탑을 지나 나무 숲길로 들어서 이번 산행의 마지막 깔딱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조계산의 전설을 적어놓은 인오님의 전설안내판의 내용을 옮겨가지 못해 너무 아쉬웠습니다. “민재화장터이야기”, “장박골두꺼비처녀이야기”와 “송광사해우소와 화엄사가마솥이야기”를 적은 전설안내팻말을 차례로 지나 접치 출발 1시간 20분이 지났어도 장군봉-연산봉 능선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접치를 4-5분 먼저 출발한 후미팀 4분이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해 무전을 때릴까 하다가 그만 두고 다시 20분을 걸어 장박몬당의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지난 3월에 한번 걸었던 길이고 쉬지 않고 오르느라 많이 지쳐 바닥에 퍼져 앉아 5-6분을 쉬었습니다.
“대저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중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1시간 40분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제 친구 하이맛의 산행기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중력에 대한 저항이 생명행위라면 저는 이 산을 오르며 치열한 삶을 산 것입니다. 단 한번도 중력의 방향과 똑 같은 방향으로 내려선 일이 없었기에 더욱 더 치열했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을 짜내며 산을 오르면서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뿌리를 내리고 한자리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이 한 없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저들이 한곳에 저렇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도 중력에 대해 치열하게 저항하며 하늘로 치솟는 생명행위를 수없이 반복해왔기에 가능했겠다는데 생각이 머물렀고 친구의 생명에 대한 독특한 정의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식을 잃고 겨우 숨만 쉬는 환자들을 식물인간이라 부르는 것은 아주 잘못된 표현입니다. 하늘 높이 줄기를 올리며 가지를 뻗는 나무들의 중력에 대한 저항을 간과한 경박한 표현으로 나무는 하느님이 만든다는 미국의 시인 조이스킬머의 감탄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나무들도 중력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생명행위를 계속해왔기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로 하늘로부터 받은 햇빛의 도움으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드는 광합성이라는 생명행위가 가능한 것입니다. 중력에 대한 순응이 생명행위라면 사람들은 벌써 땅속이나 바다 속으로 다 들어가 지구상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입니다. 무거운 돌을 올렸다가 떨어지면 다시 올리는 시지푸스 신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까뮤가 진단한 부조리(Absurdity) 때문만은 아니고 중력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 처절하게 아름다워서입니다.
장박몬당의 표지판이 세워진 능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장군봉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3월 하늘을 덮었던 광란의 눈발 대신에 이번에는 구름이 하늘을 덮어 숲 속을 지날 때에는 산위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 빨리 감지됐습니다. 돌탑이 세워진 정상에 다다라 굴목재로 내려갈까 아니면 보다 코스가 짧은 선암사로 바로 내려갈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선두대장과 후미대장 분에 무전을 보냈어도 응답이 없어 다음에 좀 힘들더라도 산행을 마치고 기다리는 분들에 송구스러워 B코스의 짧은 길을 택했습니다.
19시7분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장군봉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 선암사로 하산했습니다. 다음 구간 종주시에 다시 오를 길이 기에 주마간산 격으로 흘깃 보며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샘터와 돌탑을 거쳐 선암사에 내려선 시각은 18시40분으로 2.7km의 급경사 내림 길을 47분 만에 주파한 셈입니다. 지난 3월에 둘러본 선암사를 그대로 지나쳐 얻은 시간은 선암천에서 얼굴을 닦고 상의를 갈아입는데 썼습니다.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하자 야생화 대모님과 여성대장 분등 먼저 내려오신 분들이 저를 반겨 죄송하고 고마웠습니다. 누른 밥과 찌게 그리고 수박으로 포식한 후 귀경 길에 올랐습니다.
B코스라도 해냈다는 뿌듯함과 이 산악회와는 명산탐방은 몰라도 종주산행을 같이 하기는 무리임을 확인한 씁쓸함이 교차됐습니다. 앞으로 저의 산행을 막는 것은 먼 거리가 아닌 빠른 속도에 있음을 확인했기에 무릎을 온건히 보존하며 오래오래 산행하기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저 혼자서 제 몸에 맞춰 천천히 산행하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조계산 정상을 다시 올라 정맥 길을 이어가야 한다면 다음에는 종주구간을 짧게 잡고 송광사에서 조계산을 오르며 바테리 문제로 그대로 지나친 인오님의 전설이야기를 담아볼까 궁리중입니다.
귀경 길 버스 안에서 옆자리 분에 영화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이창동님이 감독하고 전도연/송강호 두 배우가 열연한 영화 “밀양(Secret Sunshine)"은 제게는 구원의 빛이 어떠해야하는 가를 일러주는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유괴범에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기독교에 귀의, 돈독한 신자가 되어 유괴범을 용서하고자 교도소에 찾아갔다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죄를 용서받았다는 유괴범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당사자인 자신이 아직 용서를 안 한 범인을 하느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는 가하고 분노하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인데 망월동 묘지에 자식을 묻은 광주 어머니들의 분노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노작가 이청준님의 ”벌레이야기“가 뼈대가 되었다 합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에 은밀한 빛이 되어준 것은 하느님이 아니고 항상 곁을 같이하고자 헌신해온 자동차정비소 아저씨일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끝부분의 장면들이 작은 소읍의 지명인 고유명사 “밀양”을 구원의 빛을 의미하는 보통명사 "Secret Sunshine"으로 바꿔놓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제 감상후기의 요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늘에 저항해 땅에서 빛을 만나는 어머니의 절규는 중력에 반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그 후의 어머니 소식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작가도 감독도 모두 어머니의 그 후 삶에는 두 손을 놓고 있기에 저라도 이어서 글을 써볼까 하는 쓸데없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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