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피재-삼계봉-곰치
*산행일자:2007. 9. 9일
*소재지 :전남장흥/화순
*산높이 :가지산511m, 삼계봉504m, 국사봉499m
*산행코스:봉림리...피재-가지산-삼계봉-국사봉-곰치
*산행시간:7시57분-17시40분(총시간:9시간43분, 구간종주:9시간23분)
*동행 :나홀로
이제껏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면서 공사로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판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2년 전 한수 이남의 경기도 땅을 관통하는 한남정맥을 밟을 때에도 정맥길 산허리를 잘라서 길을 내는 공사장을 여러 곳 지났지만 죄송해하는 안내판은 고사하고 공사장을 돌아 정맥 길로 이어지는 길 안내용 화살표를 제대로 그려 놓은 공사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산 속 깊은 곳의 능선 길에 송전탑을 세우느라 땅을 파헤쳐 종주꾼들에 불편을 준 것은 틀림없기에 공사장 50m 전 후에 비닐 카버를 씌운 안내문을 해 다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새삼 고맙게 느껴진 것은 이 길을 지나는 얼마 되지 않는 호남정맥 종주꾼들을 위한 시공사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여서입니다.
호남정맥의 시목치-피재- 곰치 구간을 이틀 간 걸으면서 장흥군이 챙겨준 산객들을 위한 배려도 더 할 수 없이 고마웠습니다. 이 구간을 먼저 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나서 크게 걱정했던 것은 명감나무 등 가시나무가 무성한 잡목 길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계산을 지나 일림산에 이르기까지 가시나무 길을 뚫고나가느라 생고생을 한 것이 꽤 여러 곳이어서 이번 구간 종주를 마치고 나면 온통 팔다리가 가시에 찔리고 긁혀 엄청 쓰라리고 가려울 것이라 단단히 각오했는데 장흥군에서 길섶의 잡목과 풀들을 베어내고 깔끔하게 길을 다듬어 가시 한번 찔리지 않고 20Km가 훨씬 넘는 긴 구간을 무사히 지났습니다. 장흥군의 배려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봉우리들을 이어가는 정맥 길 곳곳에 표지목을 세워 길안내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정맥을 종주하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성한 가시나무 들이 가로 막는 풀숲 길을 어떻게 통과하고, 또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제 길을 찾아 이어가느냐 인데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곳 장흥군처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배려를 해준다면 그 어려움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여러모로 자상하게 마음을 쓰고 염려해준다는 뜻으로 쓰이는 배려(配慮)를 자칫 잘 못 생각해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의 일로 차치한다면, 지자체의 주민들을 위한 구체적인 배려 노력이 단체장의 개인적인 덕성 정도로 치부될 것입니다. 옛날 전제국가에서는 백성들에 대한 배려를 고을수령의 개인적인 시선(施善)에 기댈 수밖에 없었겠지만 풀뿌리민주주의의 전범인 지자제가 본격적으로 작동되는 민주국가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배려는 개인적인 시선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고객만족센타를 운영해 불만사항을 접수해 처리하는 일반회사들의 고객에 대한 배려는 CEO 개인의 덕성이나 취향에 따른 것이 아니고 고객만족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것입니다. 지자체의 주민들에 대한 배려도 이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행정서비스의 소비주체이자 고객으로 모시고 제대로 된 고객만족시스템을 가동시킬 때 비로소 주민들은 지자체의 진정한 배려에 감사할 것입니다. 장흥군의 산객들에 대한 배려가 단체장 개인의 관심을 뛰어 넘는 고객만족시스템의 정상적 가동에 따른 것이기에 단편적 배려가 아닌 종합적서비스로 나타났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대간을 종주하며 길부터 막고 보는 몇몇 국립공원의 산객들을 향한 적대적 조치에 분개해온 저로서는 친절한 길안내와 깔끔한 길 다듬기로 산객들을 배려하는 장흥군 당국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또 이를 널리 알리고자 이렇게 산행기에 올립니다.
아침7시57분 봉림리를 출발해 피재로 향했습니다.
광주 발 장흥 행 직행버스를 아침7시10분에 화순에서 탔습니다. 이양과 능주, 그리고 청풍 등의 화순군의 면소재지를 두루 들러 손님을 태운 후 곰치고개를 넘어 장흥 땅 봉림리에 도착하기까지 50분 가까이 차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넘실대는 들녘 을 보고 겉보기에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농촌이 안으로는 부글부글 속을 끓일 수밖에 없는 급격한 경제환경의 변화가 걱정됐습니다. 봉림리에서 유치면과 경계를 이루는 피재까지 걸어가는데 딱 20분이 걸렸습니다.
8시17분 피재를 출발해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3시에 곰치를 출발했다는 한 호남정맥 종주 팀이 피재에서 아침식사를 들고 있어 여기서 잠시 쉬며 산행채비를 점검해보겠다는 생각을 바꾸어 곧바로 오른 쪽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잠깐 동안 시멘트임도가 나타났고 임도 왼쪽 측백나무 숲속으로 버섯종균 장(?)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임도가 끝나서 풀 숲길을 잠시 걸은 후 산을 깎아서 내고 있는 흉물스런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올랐습니다. 산허리를 잠시 에돈 후 비알 길로 340봉에 올라서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오름 길도 경사가 급했고 중간에 배탈이 나 속을 비워야했기 때문입니다. 340봉에서 시작된 평평한 능선 길은 오래지않아 끝났고 다시 직등 길을 올라 405봉에 다다른 시각이 9시25분이었습니다. 여러 개의 표지기와 몇 그루의 나무들이 405봉에 오른 저를 반겨 이 봉우리에서 짐을 내려놓고 10분을 쉬었습니다.
10시14분 사거리안부인 장평우산갈림길로 내려섰습니다.
405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걸어 서쪽으로 전망이 확 트이는 전망바위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앞 구간을 지날 때 나뭇잎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보인 탐진댐이 비로소 전신을 다 드러내보였습니다. 탐라국사람들이 육지로 올라와 처음으로 배를 대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탐진강을 높이 막아 전라남도 서남해안지역에 공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원활히 공급하고자 만든 다목적댐 탐진댐은 그 규모가 주암댐의 40% 정도로 작아 댐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 했습니다. 초록빛 물 색깔도, 산허리를 적시고 있는 강물도, 파란색과 주홍색의 현대감각의 교각들도 어느 하나 표를 내며 나서지 않고 서로들 어우러져 빚어내는 조화로운 댐의 정경은 장흥군이 숨겨둔 또 하나의 비경이었습니다. 반시간 가량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편안한 길을 걷다가 얼마동안 내려가 장평우산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안부에 내려서서 하늘 높이 유영하는 새털구름을 보고 가을이 와있다 했는데, 새들에 밀릴까봐 마지막 목청을 돋우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 아직도 지난 여름이 이 산하에 드리운 그림자를 다 거둬가지는 않았다 싶었습니다.
11시7분 해발 511m의 가지산을 올랐습니다.
사거리안부가 깊지 않아 맞은편의 389봉으로 올라서는 길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가지산의 암봉이 선명하게 잘 보이는 389봉에서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몇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20분이면 오를 수 있다는 가지산을 향해 안부로 내려섰다가 산허리를 왼쪽으로 에돌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 능선삼거리에 다다르자 피나무(?) 숲이 우거져 시원했습니다. 정맥 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빗겨 있는 가지산을 오르자 389봉에서 만난 한분이 먼저 올라와 있었습니다. 큰덕골재를 출발해 아침 9시에 곰치에 이르렀으나 몸이 안 좋아 일행들과 헤어지고 차를 타고 피재로 옮겨 가지산을 올랐다는 이 분은 저와 고향이 같은 파주분이어서 더더욱 반가웠습니다. 이번 산행 최고의 전망대는 단연 가지산이었습니다. 정수리가 암봉인 가지산에서 정서쪽으로 바라다 본 영암의 월출산은 기암괴석만으로도 다른 산들과 확실히 대비되었고, 탐진댐을 가득 채운 수려한 물줄기의 탐진강과 남쪽의 제암산도 훌륭한 볼거리였습니다. 다시 산죽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능선삼거리로 돌아와 사과를 까먹은 후 11시40분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완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려 14분 만에 올라선 510봉에다 장흥군에서 현 위치가 가지산이라고 적어놓은 표지목을 세워놓아 헛갈렸습니다.
13시27분 해발 504m의 삼계봉에 올랐습니다.
510봉에서 로프를 잡고 큰 바위를 돌아 내려갔다가 돌로 축대를 쌓은 송전탑을 지나 460봉에 올랐고 경사가 완만한 평탄한 길을 따라 걸으며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여러분들을 만났습니다. 송전탑 50m전 후에 공사로 불편을 드려 죄송해 하는 안내판을 보고나자 방금 지나온 송전탑이 다시 되돌아 보였습니다. 안내판이 걸린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잔디를 입히지 않아 시뻘건 황토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보기에도 흉했습니다. 큰 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기왕에 시작한 공사라면 깔끔히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22봉을 지나 장고목재로 가는 능선 길에 즐비하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르는 연붉은 꽃들이 하얀색의 쑥부쟁이 등 다른 가을꽃들과 함께 정맥 길을 환하게 했습니다. 넓은 임도가 지나는 사거리안부인 장터목재를 12시41분에 출발하여 묘지 및 풀숲 길을 지나자 비로소 된비알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직등 길을 오르기가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로프를 설치할 만큼 경사도 급한데다 점심시간이 지나 배가 고파 더 했습니다. 장고목재 출발 20분 후에 올라선 450봉에 삼계봉표지목을 세운 장흥군의 실수는 가지산에 이어 두 번 째 인데 국사봉에서도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어 산객들을 배려하는 시스템 가동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450봉에서 로프 길을 17분을 더 올라 삼계봉에 다다르자 삼각점이 보여 무척 반가웠습니다. 산죽 길을 3분간 걸어 내려선 안부에서 그늘을 찾아 점심을 들며 푹 쉬었습니다. 18간의 긴 휴식을 끝내고 10분을 올라 490봉에 오르자 어느 한 분이 보성수계와 탐진수계가 갈리는 여기가 삼계봉임을 알리는 안내문을 걸어 놓아 정말 헷갈렸습니다. 삼계봉을 나타내는 이런저런 표지물이 450봉, 504봉, 490봉에 연이어 걸려있는데 지형도에 나와 있는 504봉에 삼계봉의 표지물을 다시 세우고 나머지는 모두 떼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15시19분 해발499m의 국사봉에 올라섰습니다.
490봉에서 산죽 길을 7-8분 걸은 후 편안한 길을 걸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430봉에는 헬기장이 들어섰고 장흥군에서 세운 바람재삼거리 표지목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땅끝기맥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인 430봉에서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는 왼쪽 길로 들어섰다가 땅바닥에 땅끝기맥 분기점을 알리는 노적봉의 표지석을 보고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어 알바를 면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 93-6-8의 고유번호가 붙은 넓은 정식 헬기장을 지나 그늘 길로 들어선 후 몇 분을 더 걸어 수풀이 우거진 임도 길의 바람재에 도착했습니다. 바람재에서 동쪽에 자리한 해발 448m의 깃대봉을 올라서는 데는 길이 편안해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해발499m의 국사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 반시간이 넘겨 걸렸고 적지 아니 힘들었습니다. 깃대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급하게 내려가다가 깊숙한 안부를 거쳐 된비알 길을 치켜 올라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무명봉에서 조금 더 걷다가 오른 쪽으로 확 꺾어 완만한 경사 길을 천천히 올랐습니다. “준.희”라는 분의 “국사봉” 표지물이 없었다면 별 특징 없는 이 봉우리가 국사봉임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국사봉에서 십분 남짓 쉰 후 헬기장을 지나 아주 가파른 길을 따라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6시37분 476봉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내림 길이 갈리는 깊숙한 삼거리안부인 백토재에서 짧은 거리를 임도 따라 이동하다가 좁은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헬기장에서 내려가는 길은 급했지만 오름길은 2개봉을 넘기까지 완만했습니다. 475봉이 가까워지자 다시 된비알 길로 변해 숨 가쁘게 올랐는데 앞서 지나온 깃대봉으로 스텐레스판에 이름이 적혀 있어 또 한 번 어리둥절했습니다. 475봉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내려선 임도를 두 번 건넌 후 풀숲 길을 지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름길로 들어섰습니다. 국사봉에서 476봉까지 지도상에는 50분이면 다다를 수 있다 했는데 쉬지 않고 왔는데도 1시간 6분이 걸려 찜찜한 마음으로 표지목을 보자 현 위치가 국사봉이고 곰치휴게소까지 3.4Km가 남았다고 엉터리로 적혀 있어 짜증이 났습니다.
17시40분 839번 도로가 지나는 곰치로 내려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476봉에서 몇 m 직진해 왼쪽 돌길로 내려섰습니다. 혹시라도 표지목에 적힌 대로 3.4Km가 남았다면 18시18분에 곰치를 출발하는 광주행 버스를 타기가 바쁘겠다 싶어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돌길이 끝나는 안부에서 묘지를 지나 능선 길로 올라서 고사목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나지막한 312봉에 올라서자 비로소 곰치고개를 넘나드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3-4분을 내려가 만난 묘지에서 옷을 갈아입느라 20분이 걸렸는데도 476봉에서 곰치까지 한 시간 밖에 안 걸려 3.4Km 남았다는 표지목의 길안내가 엉터리로 확인된 셈입니다. 곰치로 내려서도 영 마음에 걸린 것은 산줄기를 이어 밟는 종주산행에서 물을 건넜다는 것이었습니다. 곰치고개를 넘으며 길을 가까지른 절개면을 보고 산자분수의 능선 길을 놔두고 계곡으로 길을 틀어 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10m 가량 화순 쪽으로 도로변에 자리한 곰치휴게소에 들러 맥주를 들며 이틀간의 정맥종주를 자축했습니다. 얼마를 기다려 저녁 6시18분에 출발하는 군내버스에 몸을 실어 광주로 향했습니다.
순천역을 전진기지로 한 정맥 종주는 이번으로 끝났고 다음부터 몇 번은 밤차타고 광주역으로 내려가서 정맥길 들머리로 이동해야 합니다. 호남정맥 종주 차 순천을 자주 내려갔고 그 덕분에 순천만, 고인돌공원, 낙안읍성, 소록도, 팔영산 과 두륜산 등 호남의 명소들을 두루 탐방했습니다. 참, 광양에서 시작된 조개껍질과의 끈질긴 동행도 바로 앞 구간에서 끝났습니다. 광양, 순천, 보성과 장흥의 호남 땅이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호남정맥을 종주한 덕이기에 이에 투자된 시간과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불후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작가이신 이청준 선생을 배출한 장흥군이 저희 산객들에 보여준 세심한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저는 두 주후에 곰치를 다시 찾아 남은 정맥 길을 이어갈 것입니다.
*추기: 제가 알기로는 삼계봉과 국사봉의 표지목 위치가 틀린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틀린 것으로 밝혀지면 정정해주실 것을 장흥군 당국에 부탁드립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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