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10 (그럭재-봇재-삼수마을)

시인마뇽 2007. 8. 30. 14:09
                                 호남정맥 종주기 10


                 *정맥구간:그럭재-봇재-삼수마을

                 *산행일자:2007. 8. 23일

                 *소재지  :전남보성

                 *산높이  :배각산417m/봉화산475m/활성산465m

                 *산행코스:그럭재-배각산-봉화산-봇재-활성산-삼수마을

                 *산행시간:7시27분-15시27분(8시간)

                 *동행    :나홀로

 

                

  어제는 호남정맥의 능선 길에서 이름을 모르는 활엽수 나무의 줄기를 초록색의 이끼가 뒤덮었고 그 이끼위로 넝쿨이 나무줄기에 바짝 붙어 위로 치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이든 큰 나무에 이끼가 끼어 있거나 넝쿨이 줄기를 휘감고 올라가는 2종의 식물이 같이 사는 것은 종종 보아왔지만, 3종의 식물이 한데 어울려 공생하는 현장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적지 아니 신기했습니다. 공생이란 두 생물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이기에 적어도 한 쪽은 반드시 움직이는 동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맥 길의 공생 현장을 보고나서 이런 제 생각은 잘 못된 고정관념일 뿐,  3종의 아니 그 이상의 식물들이 공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경쟁과 공생을 통해 서로 견제하고 도와가며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장이 바로 저희들이 터 잡고 다양하게 살아가는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공존의 현장을 보고 저는 3종의 식물이 공생한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분들에는 2종의 식물이 한 나무에 붙어 기생해 자라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공생이란 종이 다른 생물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이라면 커다란 활엽수 수피에 끼어 있는 초록색의 이끼와 그 이끼 위로 커가는 넝쿨 들이 서로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는가를 정확히 규명한 뒤라야 감히 공생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저 산을 즐겨 찾으며 산행 중 보고 느낀 바를 자연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산행기를 남기는 산 꾼일 뿐이어서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생물학에서 쓰이는 엄격한 의미의 “공생”을 온전하게 따르지는 못하고, 그저 넓은 의미에서 공존이나 기생도 공생으로 뭉뚱그려 표현하고 있음을 미리 양해말씀 드립니다.


  생물학에서는 단순히 한 곳에서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공생으로 부르지 않는답니다.

공생은 서로 만났다는 단순한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이 서로에 이익이 된다는 필연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개미가 진딧물이 배설하는 단물을 빨아 먹고 무당벌레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주는 진딧물과 개미의 관계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서로가 뭔가를 주고받는 필연적인 공생의 관계인 것입니다.  인간사회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아 단순히 옷깃을 스치는 인연만으로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이고, 우연한 만남을 뛰어넘어 관계라는 필연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제 본 공생의 주인공들에는 그렇게 부둥켜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필연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초록의 이끼가 줄기에 붙어 있어 이끼는 오가는 사람들에 밟히지 않아 좋고 이 나무의 줄기는 초록색의 이끼를 통해 광합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무식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넝쿨은 나무나 이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그저 기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호남정맥을 종주하면서 먼 곳으로 돌아가라고 발하는 멧돼지의 경고음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또 명감줄기 등 온갖 가시나무가 길을 가로막는 잡목 숲길을 헤쳐 나가며 온몸이 가시에 찔린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이때마다 저는 산길을 걷는 동안만이라도 이 산속의 식구들과 공생의 관계를 맺을 수는 정말 없는 것인가 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제 진정과는 달리 산속의 멧돼지나 또 풀숲의 식물들에게 제가 한낮 침입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엄청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욕망하는 식물(The Botany of Desire)”이라는 책 을 읽고 나서 이들과 공생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저의 꿈을 접지 않아도 되겠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인 마이클 폴란(Michel Pollan)은 이 책을 통해 공진화(共進化)의 개념을 들어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서로 다른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공진화의 모든 관계에서는 객체가 주체인 동시에 주체가 객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저자는 농경이란 풀이 나무를 이기려고 사람을 이용해 나무를 베어내게 만드는 전략으로 새롭게 정의를 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길들여진 대표적인 식물인 사과, 튤립, 감자, 대마초가 어떻게 사람들을 이용해 이들의 최대 소원인 자기 종을 퍼뜨렸는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호남정맥의 산 식구들과 하나가 되는 길은 그들이 주체가 되고 제가 객체가 되어 그들이 저를 어떻게 유용하게 쓸 것인가를 살펴보고 기다리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은 자명해집니다. 산 속의 멧돼지가 아무 때나 덤벼드는 난폭자가 아니고 낮에는 길을 비켜주고 밤에만 주로 활동하는 점잖은 야행성동물임을 널리 알리는 일입니다. 명감나무 가시가 헤치고 나가기에는 위협적이지만 생 울타리를 만드는 데는 더할 수 없이 유용함을 널리 알려 이 나무의 서식지를 넓혀주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리한다면 더 이상 산 식구들이 저를 내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아침7시27분 그럭재를 출발했습니다.

새벽 3시40분에 순천역에 도착해 역사에서 쉬었다가 인근 국밥집에서 해장국을 사든 후 6시20분에 출발하는 서광주행 경전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타보는 경전선 열차는 벌교를 지나 조성역에 다다르기까지 논 뜰을 가르며 달려 바깥 풍경이 시원했습니다. 아침 이른 시각에 그럭재 들머리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순천에 사시는 한분의 도움 덕분이어서 이 글을 빌려 이 분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호박꽃이 화사한 작은 밭떼기를 지나 측백나무 숲길로 올라섰습니다. 짙은 안개로 이슬이 잔뜩 맺힌 풀길을 걷느라 구두가 다 젖고 나서야 스패치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럭재 출발 반시간 후 이동통신중계탑이 서있는 임도삼거리에 다다라 오른 쪽으로 확 방향을 바꾸어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몇 걸음 옮겨 다시 오른 쪽 절개면으로 올라섰습니다. 안개가 가시고 햇살이 퍼지자 이내 목덜미가 따가워져 수건을 내두르고 산행을 했습니다. 절개면을 올라 이어지는 정맥 길은 바로 전의 구간에서처럼 풀 숲길이 아니어서 생각보다 걷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절개면을 올라 20여분을 걸어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거의 90도를 틀어 7-8분을 더 걸어 삼각점이 서있는 해발471m의 배각산에 다다른 시각이 8시37분이었습니다. 

                                                                            

  9시40분 해발 475m의 봉화산에 올라섰습니다.

배각산에서 왼쪽으로 꺾어 20분을 내려가다가 유스호스텔 갈림길에서 잠시 쉰 후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2004년에 이 길을 종주한 따라가기님의 산행기에는 산딸기가시 등이 길을 가로막는 고약한 풀 숲길로 적혀있어 불볕더위에 이를 헤치고 나갈 일이 걱정되었는데 그 후 3년 동안 호남정맥을 종주한 많은 분들이 길을 잘 내 그저 기우로 끝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긴 의자가 세워진 봉화산0.7Km 전방에서 선채로 숨을 고른 후 산죽 길을 지나 임도 건너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봉화산 정상에 “새천년의 햇살 보성에서 빛나리” 글이 쓰인 커다란 돌비석과 정방형의 축대위에 원통형의 돌탑을 새로 쌓아 조형미가 뛰어난 봉수대가 세워져 있어 득량만 앞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상의 넓은 터가 작은 공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원통형 봉수대아래 그늘진 곳에서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를 쭉 뻗고 아무 생각 없이 10분 간 푹 쉬었습니다. 날씨가 서늘해져 모기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를 맞았는데도 이 여름 마지막 더위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산 나들이는 이틀간 호남정맥을 종주하고 사흘째는 해남의 두륜산을 오를 계획이어서 첫날부터 무리하다 자칫 더위라도 먹으면 일정차질이 불가피해질 것 같아 쉬는 횟수와 시간을 최대로 늘려 잡고 천천히 운행했습니다. 봉수대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중 이끼와 넝쿨이 한 활엽수 줄기에 붙어사는 공생의 현장을 지나면서 좀처럼 보기 힘든 다정한 정경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선 411.4봉에 도착했습니다.      


  11시26분 가지가 앙상한 작은 소나무가 서있는 300봉에 올랐습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출발해 무명봉에 올라서기까지 40분 동안은 마지막 여름 태양이 한껏 햇살을 쏟아 부어 잠시나마 녹차 밭을 지나지 않았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초소에서 내려가 KTF와 SK의 기지국을 차례로 지나면서 두 회사가 하나만 세워 같이 쓰면 될 일을 경쟁적으로 중계탑들을 세워 자연을 해치고 비용을 낭비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 규제의 논리적 근거가 유한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있다면 멀쩡한 산에다 나무를 베어내고 땅을 파헤쳐 세우는 중계탑은 산림의 보호를 위해서도 적절히 규제되었어야 마땅했습니다. 양 기지국 출입을 위해 닦아놓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15분을 내려가 봇재 2.8Km 전방의 보성선씨 추모공원 앞 5거리로 내려선 시각이 10시40분이었습니다. 추모공원 오른 쪽으로 난 좁은 풀밭 길로 들어서 얼마 후 측백나무 숲을 지나 정맥길 서쪽 바다에 접한 회천사람들이 보성읍과 순천으로 나들이를 할 때 넘나들었다는 재양골(朝陽谷)재로 내려섰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안내판이 서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313봉에 올라 토마토를 꺼내 든 후 내려서는 길에 잠자리 한 마리가 콧잔등에 내려앉았다가 이내 날라 가버렸습니다만 저를 산식구로 맞아들이는 세레머니 같이 보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원을 2.0Km 남겨 놓은 300봉에 오르자 먹구름이 해를 가리고 득량만 앞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세게 불어와 긴 의자에 올라 바지춤을 내리고 모처럼 풍욕을 즐겼습니다. 나무들이 없어 전망이 뛰어난 이곳에서 왼쪽의 득량만과 오른 쪽으로 조금 비껴서 멀리보이는 다원휴게소를 오랜 시간 조망할 수 있었던 것은 구름이 해를 붙잡고 내보내지 않아서였습니다. 태양이 다시 얼굴을 내보여 서둘러 300봉을 출발해 봇재로 향했습니다.


  12시22분 18번 국도변의 봇재에 도착했습니다.

300봉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선 십자안부에서 서서히 올라 얼마 후 오른 쪽 농장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오른 쪽 비탈면에 녹차 밭이 들어선 임도 길을 10분 가까이 걸어 만난 임도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다 임도를 건너 측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고 내려가자 제일다원 정문 앞 사거리가 나타나 직진해 시멘트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오른 쪽 밭에서 일을 하다 휴식 중인 할머니들 앞을 그냥 지나기가 무안해 휴게소가 얼마나 남았냐고 여쭤보자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며 이 더운데 혼자 왜 다니나 하고 혀를 차며 측은해 하는 기색이 역력해보였습니다. 말씀대로 4-5분 후 봇재 고개 마루에 도착하자 차도 건너로 잘 다듬은 녹차 밭과 잘 지은 건물의 대한다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왼쪽 아래 주유소를 지나 휴게소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들었습니다. 휴게소 앞마당에 세워놓은 차양아래에서 점심을 들고 난 후 반시간 넘게 푹 쉬었습니다. 이번에는 산행코스를 짧게 잡아 등을 눕힐 벤취만 있다면 한잠 자고 가도 될 법한데 앉은 채로 쉬다가 그냥 일어서자니 아쉬웠습니다.


  13시8분 봇재의 휴게소를 출발했습니다.

고개 마루 조금 못 미쳐서 차도를 건너 대한다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따라가기님 산행기에 의하면 다원 건물 오른 쪽의 급한 절개면 길이 아니고 차밭을 가운데로 관통해 만나는 임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올라가다 산속으로 들어서는 것으로 되어 있어 다원통과가 불가피한데 어느 곳에서건 그렇듯이 나라 땅이 아닌 남의 땅에 들어가서 지나가기는 여전히 불편하고 찜찜한 일이어서 신경이 쓰였습니다. 풀어놓은 개가 짖기만 하고 덤비지 않아 다행이었고 밭에서 일하는 아낙네들이 친절하게 물음에 답해주어 고마웠습니다. 밭 한가운데 계단을 걸어올라 밭이 끝나는 마루에서 산속으로 들어서자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풀 숲길이 나타나 장갑을 끼고자 찾았습니다. 봇재 휴게소에 놓고 온 것이 조금 후 생각났으나 땡볕에 다시 내려갔다 올라 올 엄두가 나지 않아 찾기를 포기하고 산행을 계속 했습니다. 서쪽으로 10분을 더 걸어 만난 임도6거리에서 왼쪽 두 번째 길로 들어선 숲길은 죽은 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지만 방금 지나온 길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14시34분 해발465m의 활성산을 올랐습니다.

임도6거리에서 높낮이가 거의 없는 산길을 25분 동안 걸어 활성산 남사면을 개간한 녹차 밭에 다다라 그늘을 찾아 13분을 쉬면서 된비알의 정상 오름을 대비했습니다. 달디 단 휴식을 끝내고 밭가 오른 쪽 길로 들어서 계속해서 올랐습니다. 밭이 끝나자 길도 같이 끊겨 왼쪽으로 옮기다 중간 지점에서 표지기를 발견해 그 길로 들어서 똑바로 올라갔습니다. 잡풀들이 무성한 묘지를 막 지나 올라선 봉우리에 아무런 표지가 없었지만 지도에 나온 대로 이 봉우리에서 정맥 길이 왼쪽 남서쪽으로 확 꺾여 활성산임을 알았습니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꺾어 14분을 걸어 내려가 만난 임도3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4-5분을 걷다가 그늘을 만나 또 다시 쉬면서 땀을 식힌 후 15시2분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15시27분 삼수마을 정자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한 낮에 한 시간을 쉬지 않고  걷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임도 길을 따라 12분을 내려가 아스팔트 차도를 만났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차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바람이 잘 통하고 그늘진 곳을 만나 짐을 벗어놓고 등을 눕혀 쉬었습니다. 이번 구간의 끝점인 895번 도로 고개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쉬면서도 마음이 편했습니다. 더 누워있다가는 잠이 들 것 같아 다시 일어나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십 수분을 내려가 다다른 삼수마을 정자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여러분 뵙고 인사를 올렸습니다. 마침 저보다 10살이 연하인 젊은 한 분이 호남정맥을 잘 알고 있어 이 분에 여기 지형에 관해 몇 가지를 물어 확인했습니다. 정맥 길은 논 왼쪽의 낮은 구릉지대로 이어지나 길이 나 있지 않아 논 한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가야 정남쪽으로 보이는 895번 도로에 닿게 되는데 10분이면 족하다는 말씀을 듣고 이번 산행은 여기에서 접기로 하고 군내버스를 기다렸습니다. 16시 10분을 조금 지나 군내버스에 올라 타 보성읍내로 나갔습니다. 보성역을 들러본 후 순천시내로 돌아가 찜질방에서 하루 밤을 묵었습니다. 


  들머리에 들어서기 전에 걱정했던 두 가지는 폭염과 가시숲길이었습니다.

불더위야 피할 수 없었지만 가시 숲길은 잠깐 뿐이어서 그나마 큰 다행이었습니다. 이틀을 더 산행하고 집에 돌아갈 계획이어서 이번 산행에서는 더위를 먹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자주 쉬고 또 오래 쉬었습니다. 그 덕분에 오랜 가뭄과 폭염으로 고생하는 우리의 산하와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는 생각입니다. 큰 나무와 이끼, 그리고 넝쿨이 공존하는 호남정맥에 발을 들인 제가 침입자가 아니고 그들과 한 식구로 자리매김 하는 날을 묵묵히 기다리며 내일도 정맥종주를 이어갈 것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