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11 (삼수마을-사자산-시목치)

시인마뇽 2007. 9. 2. 18:17
 

                                     호남정맥 종주기 11


                    *정맥구간:삼수마을-사자산-시목치

                    *산행일자:2007. 8. 24일

                    *소재지  :전남장흥/보성

                    *산높이  :일림산664m, 골치산614m, 사자산666m, 곰재산629m

                              제암산807m, 작은산682m

                    *산행코스:삼수마을-일림산-골치-사자산-곰재-제암산-시목치

                    *산행시간:7시24분-19시32분(12시간8분)

                    *동행    :나홀로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 맞서 12시간 넘게 호남정맥을 종주하고 나자 사람 몸이 탄성체라면 내 몸의 탄성한계는 어느 정도일까 새삼 궁금했습니다. 땅거미가 완전히 져 사위가 깜깜해진 저녁 7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각에 이번 구간의 끝 지점인 시목치고개(일명 감나무고개) 에 도착해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나서는 혹시나 탄성한계를 넘도록 무리하게 산행을 강행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은 쓸수록 생긴다는 시골 어른들의 말씀은 제 몸의 탄성한계가 높았던 젊었을 때나 들어맞는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이 먹어서는 한번 몸이 망가지면 좀처럼 회복이 어려우니 돈과 몸을 축내며 너무 쏘다니지 말라는 주변 친지들의 한 마디가 옛날처럼 마냥 고깝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젊었을 때 보다 제 몸의 탄성한계가 많아 낮아졌음이 감지되어서입니다. 


  며칠 전 한 일간신문에서 어느 한 분이 올린 “탄성과 소성, 그리고 파괴”라는 기고문을 읽었습니다. 이 기고문에 따르면 철로 만들어진 재료를 양쪽에서 잡아당겨 끊어지게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탄성영역과 소성영역을 차례로 거쳐 파괴에 이른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가한 힘을 제거했을 때 원상태로 돌아가는 영역은 탄성영역이고 원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변형상태로 남아 있는 영역이 소성영역입니다. 소성영역의 물체에 힘을 더 가하면 깨지거나 부셔져 파괴에 이르게 되는 것은 이러한 재료뿐만 아니고 사람 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몸을 웬만큼 쓰면 탄성영역에 머물러 다시 회복되지만 너무 심하게 혹사하면 소성영역에 들어가 몸져눕게 됩니다. 소성영역에 들어가서도 몸을 함부로 굴리면 결국은 파괴되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면 하루 종일 24시간인들 계속해 못 걷겠습니까만, 그동안 탄성영역에 머물러 하룻밤 자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 몸이 개운해져 아침 일찍부터 산행 길에 나서왔는데, 그리하면 제 몸이 탄성한계를 넘어서 산행 길에 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소성영역에 머무를까 두려워 그런 무리한 산행은 자제해온 것입니다.

  

  어제도 그리 했습니다.

삼수마을을 출발해 일단 일림산에 오르면 불의의 사고가 생겨 중간에 탈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좀 멀기는 해도 시목치까지 나가야 차들이 다니는 고개 마루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순천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5시55분에 출발하는 보성행 첫 버스를 탄 것도, 또 보성에서 하차해 택시로 삼수마을로 옮긴 것도 최대한 쉬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 제 몸의 피로도가 탄성영역 안에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름대로 탄성한계를 넘지 않도록 산행 중 내내 신경을 썼는데도 막상 목적지인 시목치에 다다르자 한 걸음도 더 걷지 못할 정도로 녹초가 되어 바로 아래 장동의 택시를 불러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가히 폭력적인 이번 더위에 몸이 망가지지 않고 더위를 먹지 않은 것은 제 몸이 탄성한계를 넘지 않도록 저 나름대로 챙긴 덕분입니다.


  아침 7시24분 삼수마을을 출발했습니다.

보성읍에서 아침6시와 8시 반에 이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가 출발하는데 첫 차를 타지 못한 저는 택시를 타고 와 8시반버스를 탔을 때보다 산행시작을 시간 반은 당겼습니다. 논 사이로 난 시멘트포장도로로 들어선 후 갈멜농원을 거쳐 삼수마을 표지석이 서있는 895번도로에 다다르기까지 딱 10분이 걸렸습니다.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오른 쪽의 콩밭 옆으로 난 큰 길을 따라 산길로 들어서 418봉으로 향했습니다. 고추밭을 지나서 똑바로 올라 만난 임도를 따라 얼마큼 올라가자 풀숲이 우거진 내림 길이 시작됐습니다. 풀숲을 헤치고 조금 내려가 보았지만 방향도 아니고 다시 내려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되돌아와 오른 쪽 산속으로 들어가 힘들게 치켜 올라갔습니다. 다시 만난 길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길이 끊나 다시 오른쪽 산속으로 들어가 무조건 잡목을 헤쳐 나가며 위로 올라갔습니다. 얼마 후 오른 쪽 밑에서 올라오는 좋은 길을 만나 이 길을 따라 걸어올라 몇 분 후 한치재에서 올라오는 넓은 길의 능선삼거리에 올라섰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418봉에 오른 시각이 8시21분이니 반시간 이상은 잡목 숲길에서 길을 내며 올라가느라 고생을 한 셈입니다.  어떤 분들은 정맥 길에서 벗어난 한치재에서 출발해 무지막지한 잡목 숲길을 피해 올랐는데 895번 도로에서 제대로 길을 한번 이어보자고 잡목 숲길로 들어섰다가 오랜만에 혼쭐이 났습니다. 초반부터 무리한 듯싶어 418봉에서 복숭아를 까먹으며 20분을 쉬었습니다.


  9시42분 누군가가 작은 바위에 한자로 日林山이라고 써놓은 626.8봉에 올랐습니다.

418봉에서 왼 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앞서 헤치고 온 잡목 풀숲 길에 비하면 양탄자 길이어서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왼쪽 아래로 흐릿하나마 바다가 보이고 헬기장까지 고도차가 거의 없는 편안한 길이어서 고진(苦盡)과 감래(甘來)의 시간차가 이렇게 짧아도 되는 것인지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회령삼거리 안부로 내려섰다가 헬기장을 지나 산죽 길에 들어서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됐습니다. 얼마간은 경사가 완만해 힘든 줄 몰랐는데 626.8봉이 가까워지자 경사가 급해졌습니다. 흐렸던 하늘이 다시 개어 남은 하루 더위가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는 듯 했습니다. 산마루턱에 올라서자 3년 전에 비를 흠뻑 맞고 올랐던 일림산이 그리 멀지 않게 보였습니다. 마루턱에서 조금 더 가 만난 작은 표지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일림산까지 펼쳐진 초원은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용추골로 갈리는 능선삼거리를 조금 지나 나무 그늘아래에서 10분을 쉬었습니다.


  10시30분 해발664m의 일림산  다다랐습니다.  

5월에 지났다면 산철쭉이 눈부시도록 화사했을 이 산을 한 여름에 오르는 것은 한 겨울에 해수욕장을 찾는 것처럼 멍청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없는 너른 평원을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고행하는 맛도 곱씹을 만 했습니다. 보성강 발원지로 갈리는 능선사거리에서 십 수분을 더 걸어 호남정맥 최남단지점인 일림산 중봉에 도착한 시각이 10시23분이었습니다. 광양의 망덕산을 출발해 서진을 계속하며 서서히 남으로 내려온 호남정맥이 이제야 비로소 방향을 바꾸어 백두대간의 영취산을 향해 북진하게 된 것입니다. 잠시 후 일림산에 올라서자 구름이 해를 가리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날씨가 엄청 고마웠습니다. 어인 일인지 3년 전에는 비바람을 이겨내며 똑바로 서있던 정상의 표지석이 뿌리가 뽑힌 채 흙속에 묻혀 있어 안쓰러웠습니다. 남쪽 아래 바다가 밀어 올린 바람이 삽상해 이 바람을 타고 북쪽으로 내달리면 사자산과 제암산을 쉽사리 넘어 시목치에 안착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분을 쉰 후 사자산을 향해 안부로 내려갔습니다. 안부에서 골치산으로 올라섰다가 서쪽의 600봉을 지나 골치로 내려서는 동안 이끼가 길바닥을 살짝 덮어 몇 번이고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오른쪽으로 용추계곡 가는 길이 갈리는 사자산3.4Km 전방의 골치에 도착해 짐을 풀고 더위에 시달린 몸을 추슬렀습니다. 복숭아를 꺼내먹고 커피를 마시는 등 이것저것 찾아 먹으며 반시간을 쉬고 나자 원기가 되살아나 11시47분에 골치를 출발했습니다.


  13시56분 해발 666m의 사자산을 올랐습니다.

골치 출발 반시간 후 570봉에 다다르기까지 풀 숲길 몇 곳을 지났습니다. 태양이 머리 위로 남중한 정오의 시간대에 중력에 반해 가파른 산 오름을 계속하는 것은 분명 고역이었습니다. 570봉에 오른 후로는 더 이상 풀 숲길도 나타나지 않고 정맥 길도 완만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540봉을 지나서 그늘진 곳을 찾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제 몸이 탄성한계에 이르기 전에 산행을 멈추고 쉬면서 원기를 되찾겠다는 뜻이어서 무려 20분을 쉰 후 13시6분에야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한참 후 오른 쪽으로 휴양림 길이 갈리는 안부삼거리에서 본격적인 깔딱 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에 이 길을 내려올 때도 경사가 급하다 했는데 거꾸로 오르는 길은 땡볕 더위가 아니더라도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까까비탈의 직등 길을 힘들여 올라 밟기 시작한 암릉 길도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골치산에서 시작한 서진 길은 여기 암릉 길에서 끝나고 본격적으로 북진 길이 시작됐습니다. 사자산 정상에 올라서 장흥에서 오셨다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쌍의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틀간의 종주산행 중 유일하게 만나 뵌 분들이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자산에 오르자 3년 전에 곰재에서 사자산으로 방향을 트느라 오르지 못한 제암산의 암봉들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사자산에서 간재로 내려서는 길 또한 이끼가 끼어 내림 길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이름난 명산들이어서 길 하나는 제대로 잘 나있어 풀숲을 헤치고 나갈 일이 없어 좋았는데 의외의 복병 이끼를 만나 엉덩방아를 몇 번 찌었습니다. 사자산 정상에서 0.7Km 밖에 걸어 내려오지 않았어도 더위로 바로 지쳐 간재 안부에서 또다시 5-6분을 쉬었습니다.


  15시18분 곰재에 내려섰습니다.

간재에서 비교적 완만한 비알 길을 올라 커다란 암괴를 오른 쪽으로 에돌자 넓은 평원이 전개되었습니다. 저 많은 철쭉나무들이 일시에 꽃을 피우면 천상의 화원이 되고도 남을 고원을 지나면서도 크게 감흥이 일지 않는 것은 바로 더위, 끔찍한 더위 때문이었습니다. 사자산과 제암산의 한 가운데 서있는 눈에 익은 곰재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곰재로 빨리 내려가 쉬겠다는 일념에서 미끄러운 경사 길을 급하게 내려갔습니다. 곰재에 다다르자 맥이 풀려서인지 머리가 띵하고 멍했습니다. 이번 더위가 탄성한계 너머로 저를 밀어내는 데 성공한 듯싶었습니다. 한참을 꼼짝 않고 퍼져 쉬었어도 다시 일어나 저 가파른 된비알 길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달랑달랑한 물밖에 없는데 이쯤해서 종주 길을 접고 하산해버릴까 하는 유혹이 일었습니다. 20분을 쉰 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 제암산을 향해 몇 걸음을 발을 떼었는데 눈앞에 등을 눕혀 푹 쉬기에 충분한 평상이 보였습니다. 이 평상에 누워 딱 10분만 하고 살짝 눈을 감은 것이 깊은 잠에 빠져 30분 만에 눈을 떴습니다. 깨고 나자 확실히 탄성한계 안으로 들어와 비로소 제 몸을 찾은 듯 온 몸이 개운했습니다. 16시7분에 다시 곰재를 가볍게 출발했습니다.


  17시 정각 해발 807m의 제암산을 올랐습니다.

한잠 잘 잔 덕분에 반시간 동안 직등 길을 쉬지 않고 올라 돌탑이 세워진 봉우리에 가볍게 올라섰습니다. 길 왼쪽에 서있는 절애의 형제바위를 카메라에 담아왔는데 카메라가 흔들렸는지 상이 분명치 않아 아쉬웠습니다. 돌탑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시설물과 헬기장을 지나 제암산 정상 턱 밑까지 올라서기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곧추선 암봉에 겁에 질려 바로 아래서 오를까 말까 한참을 고심한 끝에 용기를 내어 도전했습니다. 얼마큼 올라선 후 좁은 틈을 헤비고 올라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넓적한 바위에 표지석이 서 있었고 사방에 펼쳐지는 전망도 일품이어서 아니 올랐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맞은 편 낮은 봉에 제암산의 표지석을 세운 것은 위험한 이봉에 오르지 말고 맞은 편 봉에 올라 사진만 찍고 가라는 뜻 같았습니다. 오르기는 했어도 몸을 비집고 빠져 올라 온 좁은 틈바구니로 다시 몸을 집어넣고 내려서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 난감하고 무서웠습니다. 이러다가 누가 올 때가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 바위에서 밤을 세워야하는 것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내 진정을 하고 왼쪽으로 옮겨 다른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위험하기는 해도 잘하면 가능하겠다 싶어 심호흡을 한 후 스틱을 내려설 곳으로 살짝 떨트린 후 하강을 시작했습니다. 가까이서 찾아보니 스탠스도 홀드도 모두 쓸 만한 곳이 보여 뒤돌아서 바위를 안고 내려섰습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막상 바위에 붙고 보니 생각만큼 난코스는 아닌 것을 미리 겁부터 집어먹고 벌벌 떨었던 것입니다. 잠시 벌렁대는 가슴을 진정 시킨 후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마고 고약한 암릉길을 걸어 전진하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낭떠러지 암벽을 만나 다시 원 위치해 오른 쪽으로 난 제 길로 내려가느라 또 시간을 까먹었습니다. 제 길에 들어선 후 20분을 동진해 17시43분에 제암산자연휴양림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갈림길의 이정표에 따르면 여기에서도 시목치까지 3.7Km 남아 있다 하니 서둘러도 어둡기 전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 걱정됐습니다. 655봉 암봉을 우회해서인지 다른 분들 산행기에 나오는 권중웅불망비를 보지 못했습니다.


  19시32분 시목치에 내려서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655봉에서 작은산에 이르는 길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고 해도 저무는 시간인데다 오른 쪽 산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최대한 속력을 냈습니다. 중간에 3-4분을 쉬며 목을 축인 후 계속 내달려 헬기장을 지나 바로 해발 682m의 작은산을 올랐습니다. 소나무에 걸려 있는 눈에 익은 표지기들이 석양을 받아 환해 보였습니다. 10분을 쉰 후 18시38분에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시목치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림길은 경사가 급했고 이끼 때문에 여전히 미끄러웠습니다. 시목치2.0Km전방인 관광농원 갈림길을 지나서 몇 번이고 미끄러진 후 송전탑에 이르자 어둠이 본격적으로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산에서 미리 점검한 결과 헤드랜턴은 이상 없이 작동해  설사 어둡더라도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내려가기로 작정한 터라 차라리 마음이 편했습니다. 얼마 후 팔각정에 다다르자 주차장이 0.8Km 남았다는 안내판이 보인데다 미끄러운 이끼 길 대신 나무계단 길이 나타나 긴장이 풀렸습니다. 팔각정에서 얼마고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 쪽 길로 들어선지 7-8분 후 시목치에 도착했습니다. 구 도로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른 후 택시를 부르고 큰 아들에 안착을 알리고 나자 맥이 풀리고 피로가 엄습해와 꼼짝 않고 몇 분을 누워있었습니다.


  더위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저는 결코 밀리지 않았습니다. 

곰재에서는 제 몸이 탄성한계를 넘어 선 듯해 두륜산 산행을 포기해야 하나 하고 긴장했었습니다. 시간은 잡아먹었지만 반시간 동안의 단 잠이 피로회복의 즉효 약이었습니다. 아슬아슬했던 더위와의 전투에서 탄성한계를 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시목치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은 마지막 더위는 어둠이 먹어 삼켰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저의 승전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택시로 바로 아래 장동으로 옮겨 맥주를 반주로 해 풍성한 밥상을 남김없이 비웠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의 두륜산 산행을 위해 해남행 버스에 오르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끔찍했던 이 여름 끝 더위의 뒷덜미가 쓸쓸해 보였습니다. 하루 더 두륜산에서 마지막 일전을 치른 후 그동안 고생했던 여름 더위를 남쪽 먼 나라로 정중히 보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몸을 추슬러 다시 한 번 탄성한계를 높이고자 합니다.


*첨언:1)따라가기님, 님의 산행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조개껍질은 10-11 두 구간의 능선 길에서도 계속해 만나보았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