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시목치-용두산-피재
*산행일자:2007. 9. 8일
*소재지 :전남장흥
*산높이 :용두산551m
*산행코스:시목치-만년임도-용두산-병무산-피재
*산행시간:7시20분-16시36분(총9시간16분/구간종주:8시간5분)
*동행 :나홀로
하늘이 높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것으로 보아 이제는 완연한 가을입니다.
손이 석자만 더 길었어도 손끝이 하늘에 닿을 수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경기도 남양주의 천마산(天摩山)에 올라가 석자가 넘는 스틱으로 하늘을 찔러본들 무슨 소용에 닿겠는가 싶을 정도로 하늘이 높았습니다. 불과 보름 전에 바로 앞 구간인 일림산-사자산-제암산을 오르내릴 때만 해도 내리쬐는 땡볕을 이겨내기가 엄청 힘들어 무슨 놈의 하늘이 이리도 가까이 내려와 태양이 사람들을 이토록 괴롭히게 만드는가하고 원망도 했습니다. 그새 며칠을 지척대며 내린 비가 대기를 식혀 주어 목덜미에 와 닿는 햇살의 따가움이 그래도 견딜 만 하자 여름 내내 머리 위를 맴돌던 하늘이 어느새 멀리 물러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주가 팽창하든 아니하든 하늘은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한대로 높은 곳에 있기에 가을이 왔다고 하늘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문학적 수사로는 어떨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눈에 잘 보이는 북극성도 광속의 빠르기로 800년을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데 그 보다 훨씬 멀리 있는 수많은 별들을 어우르는 하늘을 보고 석자만 가까이 있으면 손끝이 닿을 수 있다고 숫자로 계량해서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늘의 높이가 자로 잴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찾아보다가 구름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 여름에는 답답할 정도로 하늘이 낮게 느껴지지만 구름이 높이 뜬 가을에는 더 할 수 없이 높게 보이기에 말입니다. 무한대로 멀리 있는 하늘의 참 높이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고 구름을 통해 그 높이를 어림해 느낄 뿐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남정맥 종주 산행에서는 다른 때보다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높이 떠다니는 구름들을 눈여겨보았고, 또 하늘에 흩뿌려진 구름 조각들을 하늘과 함께 카메라에 담으면서 하늘의 높이를 가늠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말끔한 하늘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어도 하늘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하느님이 구름 뒤에 숨어 계시며 구름의 양은 물론 하늘의 높이도 조절해왔다는 제 믿음과는 달리 구름이 하늘 높이 썩 물러간 청명한 가을에도 하느님의 모습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도 하늘처럼 무한대의 높이에 계시기 때문인가 봅니다. 구름의 신 제우스에 물어본다 해도 그 신인들 무슨 수로 그 분의 거처를 알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비로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마치 지구상에 모셔온 것처럼 떠들어온, 그래서 하느님의 현시가 벌써 이루어진 양 혹세무민한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하느님의 뜻을 모범적으로 받드는 목자들이 아니고 하느님을 사칭해 이익을 추구하는 모리배들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늘이 높은 이 가을이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딱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감히 하느님을 들먹였습니다.
아침 7시20분 장동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피재로 향했습니다.
전날 밤 대학동창들과 저녁모임을 가진 후 영등포역에서 밤 11시가 다 되어 순천 가는 막차에 올랐습니다. 벌초하러 선산을 찾는 분들로 자리가 없어 조치원역에서 전주역까지 2시간을 서서가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새벽 3시40분경 순천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몸은 파김치가 다 되었습니다. 순천버스정류장에서 아침5시55분에 출발하는 장흥 행 첫 버스에 몸을 실어 몇 십분이나마 단잠을 자고나자 몸이 조금 개운해졌습니다. 장동에서 하차해 길 건너 매표소를 들러 주인아주머니로부터 피재와 곰치 가까이에 이르는 버스 편을 알아본 후 택시를 타겠다는 생각을 바꾸어 걸어서 시목치에 올랐습니다.
7시50분 시목치를 출발해 정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장동 출발 20분 후에 다다른 시목치에서 10분을 쉬며 산행을 채비했습니다. 장흥군의 장동면과 부산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시목치(?木峙)는 감나무재의 한자(漢字)이름으로 고개 마루에 세워진 안내판에서 이 고개의 유래를 읽어보고 뭐 좀 안다고 섣불리 나서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은 감나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갑낭재(匣囊峙)로 보검을 칼집에서 빼드는 형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데 그 후 오랜 세월 음으로 구전되면서 감나무재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를 시목치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제 눈에는 칼을 빼드는 형상이 보이지 않았는데 관산덕론기에 이 고개의 유래를 실은 풍수지리학의 대가 도선국사의 눈에는 이 고개가 그리 보였던 모양입니다. 시목치에서 20분 가까이 가파른 길을 따라 349봉에 오르는 동안 누런 짐승이 저 만치 앞쪽에서 쏜살같이 능선 길을 가로 질러 내달리는 바람에 잠시 멈춰 섰지만 하도 빨리 사라져 그 짐승이 멧돼지인지 고라니인지 식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기왕이면 날렵하고 귀여운 고라니이기를 바랐지만 그 후 길 언저리에 분탕질한 흔적으로 보아 멧돼지임이 틀림없어 보여 한동안 긴장했습니다.
9시3분 369봉에 올라 8분을 쉬었습니다.
349봉에서 측백나무(?) 숲을 지나 임도 길 안부로 내려섰다가 벽시계가 걸려 있는 왼쪽으로 다시 올라 묘지가 들어선 구릉으로 올라섰다가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들을 보며 무명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녹슨 깡통이 버려진 369봉에 올라 있을 법한 삼각점을 찾아보았으나 헛수고였습니다. 369봉 산마루에서 정남으로 보이는 제암산은 지난번에 오른 암산이어서 그 빼어난 자태가 온전하게 눈에 들어왔지만 남서쪽으로 보이는 어디서 본 듯한 잘 생긴 산은 천관산인지 두륜산인지 아니면 아주 다른 산이지 짐작되는 바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멧돼지가 얼마 전에 놀고 간 흔적이 너무나 뚜렷해 앞서 길을 가로 질러 내달은 짐승이 멧돼지로 밝혀지자 자연 헛기침이 많아졌고 스틱 끝으로 바위 돌을 쳐 쇠 소리를 내는 것도 잦아졌습니다. 369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반시간 가까이 걸어 367봉에 올랐고 다시 고개를 두 곳 넘어 전망바위에 다다르자 왼쪽 산 밑으로 다소곳이 들어앉은 마을이 한껏 평온해 보였습니다.
10시48분 만년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안테나가 세워진 안부로 내려서는 바위 길은 물기가 남아 있어 상당히 미끄러웠고 몇 곳은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내려서기도 했습니다. 안부에서 직등 길을 올라 348봉에 오르자 이 가을이 바다에서 실어온 바람을 풀어놓아 엄청 시원했습니다. 보름 전에는 그늘 속에 들어가도 등 뒤를 흥건히 적신 땀이 식을 줄 몰랐는데 그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목덜미를 내리쬐는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일단 그늘로 들어서면 바로 등 뒤가 서늘해졌습니다. 갑낭재 출발 3시간이 다 되도록 겨우 4.9Km를 걸어 방이마을과 심정마을을 이어주는 만년임도에 내려서고 나자 속도를 조금 더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3Km 떨어진 용두산을 향해 쉬지 않고 내달음질 했습니다. 만년임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임도 길 안부에 다다라 여기저기로 갈라진 길을 세고 나서 여기가 시내라면 신호등을 설치했어야 할 육거리 안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305봉에 올라 하늘 높이 떠다니는 구름들을 카메라로 잡아 보았습니다. 여름의 열기가 완전히 기시지 않은 초가을 하늘의 구름은 냉기로 똘똘 뭉친 겨울철의 구름보다 그 높이가 낮고 형태도 오래 가지 못하지만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에 들어섰음을 알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12시21분 해발 551m의 용두산에 올라섰습니다.
305봉에서 오른 쪽으로 휘어진 길을 급하게 내려섰다가 한동안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정맥 길을 밟았습니다. 바람이 선선하고 그늘도 잘 진 평탄한 능선 길을 세상만사 훌훌 털고 혼자서 걷노라면 모처럼 저도 산식구가 되었다는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다시 묘지까지 급하게 올랐다가 숨을 돌릴만한 덜 가파른 길을 잠시 더 걸은 후 456봉에 올라서 12분을 쉬었습니다. 456봉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10m가량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헬기장 두 곳을 지나자 오름 길이 완만해졌습니다. 산불무인감시시설의 풍속계가 계속 돌고 있는 용두산 정상은 시야가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정북으로 보이는 산은 무등산인 듯했고 남동쪽에 자리한 제암산은 여전히 여러 암봉 들의 제왕임을 자랑하는 듯 했습니다. 영암의 월출산은 정서 방향으로 보였고 남서쪽의 천관산(?)도 그 선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여러 봉우리들과 구름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산죽 길을 지나 왼쪽으로 임도가 잘 나있는 금장재로 내려섰습니다.
14시1분 병무산을 올랐습니다.
이번 산행의 끝 지점인 피재를 5.8Km 앞둔 금장재를 출발해 직등 길로 올라섰습니다. 십 수분을 걸어 오른 471봉에서 왼쪽으로 확 꺾여 편안한 능선 길이 이어졌습니다. 얼마 후 한 참을 내려가 장평면과 부산면을 이어주는 비포장도로의 안부사거리에 닿은 시각이 13시15분으로 시장기가 느껴져 길 옆 그늘 아래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20분 후 도로 건너 산길로 올라서 병무산으로 향했습니다. 시목치를 출발해 수 없이 많은 봉을 오르내려 이골이 난 터라 3번째 헬기장으로 올라서는 직등 길도 오를 만 했습니다. 살모사로 보이는 작은 뱀이 바로 앞에서 길을 가로 지르며 고개를 똑 바로 들고 저를 쳐다보는 모양새가 상당히 공격적이어서 큰 뱀이었다면 긴장했을 것입니다. 날을 세운 공격 자세가 제가 휘두른 스틱으로 무너지자 뱀은 이내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는데 몇 걸음을 옮겨 놓자 이번에는 개구리가 저를 향해 뛰어들었다가 아니다 싶었는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어 그 역시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4번째 헬기장 바로 위의 돌로 낮게 쌓은 축대를 지나 봉우리에 오르자 지형도에도 없는 병무산의 이름이 적혀있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었는데, 표지석이나 삼각점이 없어 따로 없어 이 산의 이름을 달리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작 삼각점이 세워진 곳은 병무산에서 20분을 북진하여 다다른 봉우리로 월간 산에서 펴낸 지도상의 513.7봉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길 왼 쪽 나뭇가지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보인 탐진댐이 다소곳해 보였습니다. 삼각점봉에 오르자 한동안 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왔고 가버린 여름이 아쉬워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매미들의 마지막 합창 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습니다.
15시55분 피재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5번째 헬기장에서 얼마고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6번 째 헬기장은 숨 끊어진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헬기장이 여섯 곳이나 들어선 것도 흔한 일이 아닌데 헬기장 마다 고유번호가 매겨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6번째 헬기장을 끝으로 하산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걸어 올라선 410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피재로 내려서다가 젊은 한 분을 만난 것이 이번 산행 중 유일한 만남이었습니다. 그 분을 보자마자 호남정맥을 종주중이냐고 물은 것은 그분의 행색이 저와 비슷해 보여서인데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광주의 한 일간지에 종주기를 올린다는 그 분과 반갑게 통성명을 한 후 헤어져 피재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십분 여 내림 길을 빼놓고는 대체로 평탄한 길이 계속되어 410봉에서 1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왔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820번 도로가 지나는 피재는 장평면과 유치면을 아우르는 고개로 광주 가는 직행버스가 멈추는 봉림리에 걸어서 20분이면 다다를 수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종주를 하는 제게는 구간나누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14시36분 봉림리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끝냈습니다.
피재에서 한참을 쉰 후 오른 쪽으로 820번도로를 따라 가 봉림리 버스정류소에 도착했습니다. 거의 50분을 기다려 광주 가는 직행버스에 올라 화순에서 하차했습니다. 어렵게 찜질방 위치를 확인 한 후 화순의 성당을 들러 저녁 7시 반에 시작되는 특전미사를 올렸습니다. 산 꼭대기에 올라 구름사진을 찍으며 만나 뵙고자 했으나 뵙지 못한 하느님을 특전미사를 올리며 모셨습니다. 그 분은 역시 하늘 높이 계셨고 성령만이 함께 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광양의 망덕산을 출발해 계속해서 보아온 조개껍질이 용두산을 넘어서자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피재-곰치구간에서는 한 곳에서도 조개껍질을 보지 못했습니다. 조개껍질과 같이한 장장 160여Km의 동반 산행은 끝났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 것은 아닙니다. 여기 조개껍질을 방사선검사로 생성연대를 측정해본다면 어떻게 해서 바다에 있을 조개껍질이 호남정맥 능선 길에 있는가가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맥 길에 산재한 조개가 호남정맥보다 그 생성이 늦은 것은 당연하지만 끝은 같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호남정맥이 바다로 침잠하여 종말을 맞는 시기를 계산할 수 없는 터에 그 짧은 조개껍질의 생성연도를 따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합니다.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종주산행을 마칠 때까지 조개껍질이 힘들게 견뎌온 시간을 반추하며 한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자 합니다. 그리고 정 힘들면 잠시 짐을 내려놓고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과 인사를 나누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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