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무남이재-겸백고개-그럭재
*산행일자:2007. 8. 9일
*소재지 :전남 보성
*산높이 :주월산558m/방장산536m
*산행코스:무남이재-주월산-방장산-겸백고개-대룡산갈림길-그럭재
*산행시간:6시20분-15시30분(9시간10분)
*동행 :나홀로
정맥 길의 하얀 조개껍질 덕분에 모처럼 시간여행을 즐겼습니다.
광양의 외망에서 망덕산을 올라 호남정맥에 발을 들인 후 어제로 9구간을 종주해 보성의 그럭재에 다다랐는데, 그동안 능선에 놓여있는 엄지손톱 2개만한 하얀 조개껍질이 눈에 띄지 않았던 적은 단 한 구간도 없었습니다. 바다에서 살고 있는 조개가 어찌하여 능선위에 올라와 있을까 조금은 이상하다 했지만, 종주 길이 바쁜 저로서는 이들 조개껍질을 붙잡고 따져볼 계제가 아니어서 이제껏 그냥 지나쳐왔습니다. 설사 바다가 융기해 이 산줄기가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몇 백만 년 전의 일일 텐데 그때의 조개껍질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될 리가 만무할 테고, 어느 누군가가 조개음식을 싸갖고 올라와 먹은 후 껍질을 버리고 간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추정해버리고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제껏 한 구간도 빼놓지 않고 조개껍질이 계속 눈에 띄어 누군가가 음식을 먹고 난 후 버리고 갔을 것이라는 제 추정이 틀린 것이 아닌 가하고 회의가 들던 중 어제 종주산행을 시작한 들머리 무남이재와 얼마 후 올라선 주월산에 얽힌 전설들을 알고 나서 여기 능선 길의 조개껍질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습니다. 2004년에 월간 “산”지의 별책시리즈로 발간된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산행” 책자에 실린 전설은 이러했습니다. 문애미재 또는 무내미재로도 불리는 무남이재는 예전에는 큰 홍수가 져서 계곡의 물이 넘어가 물넘이재로 불렸다 하며, 주월산은 문자 그대로 큰 홍수로 물이 넘쳐 배가 넘어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바다 속의 조개들이 물이 넘쳐 산줄기를 넘을 때 이곳 능선에 올라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배를 매어두었다는 조계산 구간의 배맨바위의 전설도 무남이재와 주월산의 그것들과 맥을 같이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망덕산에서 여기 주월산까지 줄잡아 100Km가 넘는 원거리인데 어느 누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정맥 길을 따라다니며 조개껍질을 버려두고 갔겠는 가 싶어지자 위 전설들이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상의 전설이 허구가 아니고 사실이었다 해도 궁금증이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때가 언제였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가 선사시대의 일이 아니라면 당연히 어디엔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개껍질이 어떻게 해서 산길에서 발견되는 가를 규명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 듯싶었고 정맥을 종주하는 제가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산행기에 뜬금없이 조개껍질 이야기를 올린 것은 혹시 누구라도 이 글을 읽고 이 궁금증을 풀어줄 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서입니다. 시작은 조개껍질 이야기로 미미하지만 잘만하면 호남정맥의 생성비밀을 밝혀 내 우리나라 지질학을 다시 가르쳐야할 만큼 장대한일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조개껍질을 단서로 한 고증과 추리, 누군가가 이 방면에 웬만큼 지식과 능력만 있다면 한번 빠져도 좋겠다 싶어서입니다. 또 뭔지는 몰라도 호남정맥이 조개껍질을 통해 분명 제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침6시20분 안개가 가득한 무남이재를 출발했습니다.
순천 사는 한 분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무남이재에서 비옷을 갈아입은 후 왼쪽의 주월산으로 향했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풀숲에 들에선지 얼마 안 되어 바짓가랑이가 흥건히 젖었습니다. 길 양옆으로 흰색의 나일론 줄이 쳐져 있어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길 찾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처음 십 수분은 오름길이 가팔랐지만 그 후로는 주월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경사가 완만하고 도라지와 원추리 등 야생화들이 저를 반겨 키를 넘는 풀숲을 뚫고 가지만 않았다면 걸을만한 길이다 싶었습니다. 7시 반이 조금 지나 정상 바로 전에 오른쪽의 임도와 합류한 패러글라이딩장을 정상으로 잘 못 알고 비닐이 쳐진 의자에 걸터앉아 왼쪽 무릎을 달래며 10분 넘게 쉬었습니다. 이틀 전부터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무릎에 통증이 느껴져 이번 산행을 미룰까도 생각했는데 어정쩡하게 아픈 상태가 이어지는 것보다 아예 긴 시간 산행을 해 종주산행 가능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해 병원치료 여부를 분명하게 판가름 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에서 강행군을 했습니다. 평지 길과 내림 길에서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지만 오름길에서는 그 경사의 정도와 관계없이 무릎통증이 심하게 느껴져 멀쩡하던 머리도 띵하고 아팠습니다.
7시56분 해발558m의 주월산에 다다랐습니다.
표지석 대신 놓인 큰 돌은 묘지의 상석으로 쓰였을 법한 정방형의 화강암으로 아무런 기록이 없어 옆의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주월산”이라는 빨간 글씨의 안내판이 없었다면 이곳이 정상임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자 안개 속에 감추어진 정광산활공장이 나타났습니다. 정식 비행기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더의 이륙장이기에 안내판에 풍향, 고도, 주파수 등의 여러 가지 정보가 적혀있었습니다. 활공장을 떠나 방장산으로 가는 풀숲 길도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배거리재를 지나 아드리재에 이르는 내림 길은 편안하고 제법 넓었습니다. 아드리재를 지나서부터는 주월산을 오를 때 만났던 풀숲 길의 산딸기와 청가시가 다시 나타나 여지없이 팔다리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9시17분 해발 536m의 방장산에 도착했습니다.
안개가 자욱해 새들과 매미들 모두 울음을 그쳤는데 잠자리와 거미만은 일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안개에 젖은 거미줄이 여러 곳에서 길을 가로 막고 있었고 풀숲 위를 나는 잠자리들이 바람을 거슬러 움직이느라 힘들어 했습니다. 아드리재를 지나 짙은 안개를 뚫고 경사가 별로 없는 작은 봉우리들을 몇 개 넘어 KBS 중계소가 있는 방장산에 다다르자 운무를 뚫고 올라온 바람이 씩씩거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습니다.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쉼터에서 10분을 쉰 후 파정치로 향했습니다. 중계소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느라 풀숲 길을 걷지 않아 모처럼 산행이 편했습니다. 방장산 출발 20분 동안 십자안부 호동재와 호동과 수남주차장으로 갈리는 방장산사거리를 차례로 지났습니다. 사거리에서 직진해 만난 임도를 따라 조금은 가파른 길을 내려가다 헬기장을 지나 임도사거리인 파정치에 도착한 시각이 10시7분이었습니다.
11시30분 845번지방도가 지나는 겸백고개로 내려섰습니다.
파정치에서 7-8분을 쉬면서 스며들어온 물기에 다 젖은 양말을 벗어 힘껏 수분을 짜냈습니다. 파정치를 출발해 묘지를 지나고 구릉을 넘어 안부사거리로 내려섰다가 직진해 얼마큼 올라 길 오른 쪽의 철망을 만났습니다. 철망 왼쪽 길로 조금 내려가 왼쪽사면이 벌목지여서 시야가 탁 트인 능선에 다다르자 저수지 덕산제와 득량만 앞바다가 시원스레 보였는데 시꺼먼 적란운이 득량만 앞바다를 뒤덮어 곧바로 큰비가 내릴 것 같았습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구름의 변화무쌍함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는 아무래도 지표가 가열되어 기단이 불안정한 여름일 듯싶습니다. 가을 하늘에 높이 떠 있는 새털구름은 아름답기는 해도 그 움직임이 다소곳해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수직으로 발달한 시꺼먼 소나기구름을 보고 하늘의 에너지가 모두 구름 속에 집결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구름의 형상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변화무쌍함과 이 땅에 쏟아 붓는 소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망 좋은 능선을 지나 된비알 길을 올라 삼각점이 매설된 335.5봉에 서기까지 파정치에서 40분여 서진했습니다. 335.5봉에서 서진을 멈추고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반시간 남짓 북진해 겸백고개에 다다르기까지 낮은 봉우리를 넘고 묘지를 지나 다다른 240능선 봉우리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 마지막으로 콩밭을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본 연파란 콩 꽃이 화사하지는 않았어도 애잔한 모습을 해 저의 눈을 끌었습니다. 도로변 나무아래에 털썩 주저앉아 점심을 들은 후 마침 파란 하늘이 열려 구두가 빨리 마르도록 다시 양말을 벗어 물기를 짜냈습니다.
14시13분 대룡산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겸백고개에서 20분을 쉰 후 11시50분에 길 건너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만난 묘지집단을 가로 질러 오른 쪽 아래에서 올라온 큰 길을 만나 왼쪽으로 꺾어 220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오전 내내 저를 괴롭혔던 왼쪽 무릎의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져 계속되는 산 오름이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220능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직각되게 꺾어 묘지를 지나고 구릉을 넘어 276봉에 오르기까지 겸백고개 출발 후 반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오른 쪽으로 다시 꺾어 편백나무(?) 숲을 지나고 무명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안부로 내려선 후 반시간 가량 편안한 길을 걸어 능선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10분을 쉰 후 13시20분에 능선삼거리를 출 발했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오르는 중 호남정맥 종주 길에 여러 번 보아온 하얀 조개껍질이 눈에 띄어 사진을 찍은 후 주워왔습니다. 나뭇가지에 “삼각점봉 346m”안내판이 걸린 무명봉에 오르자 지형도에도 없는 삼각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삼각점봉에서 내려선 안부에서 이번 산행 중 가장 경사가 심한 된비알 길을 20분간 올라 대룡산 갈림길에 다다르자 진이 빠질 대로 다 빠져 눈앞에 빤히 보이는 오른 쪽의 대룡산을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선채로 호흡을 고른 후 갈림길을 출발했습니다.
15시30분 2번국도가 지나는 그럭재로 내려서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대룡산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완만하게 꺾이어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던 중 흐렸던 하늘에서 한차례 비를 뿌려 우의를 꺼내 입고 산행을 하다가 10분도 안되어 비가 그쳐 다시 벗어 배낭 속에 넣었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암릉 길을 걸어 다다른 큰 바위에서 10분을 쉬면서 목을 축였습니다. 안부사거리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길을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315봉에 올라선 시각이 14시56분이었습니다. 315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얼마고 걷자 산 아래로 2번 국도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오른 쪽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버려진(?) 밭을 지나 마지막봉우리를 올라선 다음 엄청 가파른 절개면을 내려가 그럭재에 도착했습니다. 2번 국도변 초당정류장에서 쉬면서 양말을 짜는 동안 국토를 순례중인 대학생들 한 떼가 지나갔습니다. 땡볕에 아스팔트길을 걷는 저들이 상당 부분 그늘진 산길을 걷는 저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것이 분명한데 그 고됨을 감수하고 기꺼이 순례 길에 나선 젊은이들이 있어 이 나라가 든든하고 미더운 것입니다.
호남정맥 종주 길에 몇 번을 이 지방 명소를 들러본 후 귀경했습니다.
순천만, 낙안읍성, 고인돌 공원에 이어 이번에는 그럭재에서 종주산행을 마친 후 하루를 묵어 소록도공원과 팔영산을 다녀왔습니다.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의 하나로 선정한 팔영산을 오르며 정맥 길에서 본 하얀 조개껍질을 또 보았습니다. 고흥반도에 위치한 팔영산은 호남정맥보다 바다와 훨씬 가깝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맥 길에서는 아주 멀리 한 두개씩 보였는데 이 산에서는 7-8개가 한꺼번에 눈에 띄었습니다. 귀경길 기차 안에서 하얀 조개껍질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골몰이 생각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조개껍질 덕분에 모처럼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무궁화호의 기차여행이 지겹지 않았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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