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강기맥 종주기

한강기맥 종주기14(불발현-보래봉-운두령)

시인마뇽 2015. 9. 3. 13:23

                                                        한강기맥 종주기14

 

 

                                                      *기맥구간:불발현-보래봉-운두령

                                                      *산행일자:2015. 8. 30()

                                                      *산높이   :보래봉 1,324m

                                                      *소재지   :강원 평창/홍성

                                                      *산행코스:운두령-1380m-보래봉-자운치

                                                                           -불발현-도장골-자운리괸돌 버스정류장

                                                       *산행시간:640-1652(10시간12)

                                                       *동행      :나 홀로

 

 

 

     이번처럼 종주산행의 진행방향을 갖고 고심한 적이 여태껏 없었습니다.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 원칙을 지켜야 산행기(山行記)도 전 후편을 서로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어 남한 땅 9개 정맥을 한 구간도 예외 없이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했습니다. 전적으로 대중교통에 의지해 종주 산행을 하고 있는 제게는 교통편의상 반대로 진행하는 것이 몇 배 쉬운 구간을 더러 만났고 이럴 때마다 진행방향을 바꿔볼 까하는 유혹도 내심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때마다 과감히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경험칙 상 원칙을 지키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의 알파요 오메가임을 알고 있어 가능했습니다. 제가 한강기맥을 종주하면서 양수리를 출발해 두 주전 불발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북동쪽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기실 제 나름 설정한 원칙에 충실하고자 해서였습니다.

 

 

 

   이번에 불발현을 출발해 운두령에서 끝내는 것이 순리임에도 그리하지 못하고 그 반대로 진행해 저 나름 오래 지켜온 원칙을 깼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 것이 보다 편히 산행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불발현-보래령-운두령 방향으로 진행시 자운리 괸돌버스정류장에서 불발현까지 8Km 가량을 걸어 올라야 합니다. 그리한다면 제 느린 발걸음으로는 운두령까지 가지 못하고 보래령에서 구간을 끊어 두 구간으로 나누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보래령에서 보래터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발품도 팔아야 하고 보래터널에서 장평까지 오가는 택시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합니다. 고심하다 생각해 낸 꾀가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이럴 경우 불발현에서 자운리괸돌버스정류장까지 8km를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내려가는 것이어서 운두령에서 아침 일찍 시작한다면 하루에 마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다음 구간이 운두령-비로봉-상원사 구간으로 기맥거리가 18Km이고 상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3Km로 도합21Km가 되는 장거리 코스라는 것입니다. 이리 긴 구간은 재작년에 낙동정맥 종주를 마친 후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마침 운두령-불발현-자운리괸돌버스정류까지가 기맥구간의 14.5Km와 이탈로 8.5Km를 합치면 23Km가 되어 사전 훈련코스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아 23Km의 긴 구간을 10시간12분만에 성공리에 마쳐 운두령-비로봉-상원사 구간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가슴 한구석에 찜찜해하는 마음이 숨어 있어 기분이 그리 깔끔하지 못합니다. 한 번 원칙을 깨면 다시 원칙을 깰만한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앞으로 한 방향으로 종주를 해나간다는 원칙을 지켜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성격상 번민과 고심을 계속할 것입니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예외 없는 원칙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마음 편히 생각하고 살아가는 데도 그 나름 훈련이 필요한 가 봅니다. 5-6년만 젊었어도 순방향으로 하루에 마칠 수 있었겠다 싶어지자 나이가 한 낱 숫자에 불과하다는 쉰 소리에 마음 쓸 나이가 아님을 새삼 느꼈습니다.

 

 

 

   아침640분 해발1,089m의 운두령을 출발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친구부인이 차려준 아침식사를 맛있게 들은 후 6시에 봉평 친구 집을 출발했습니다. 친구 차로 반시간을 달려 운두령에 도착하자 하늘이 쾌청하고 아침공기가 삽상해 산행하기 딱 알맞았습니다. 산행채비를 마친 후 친구는 돌아갔고 저는 왼쪽 산길로 들어서 남진했습니다. 수분 후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하자 서쪽 내면 쪽으로 골짜기를 가득 메운 운무가 보였는데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만나본 후 3년 만에 다시 보는 장관이었습니다. 초입의 분명치 않은 길을 지나느라 바짓가랑이를 다 적셨지만 상의는 젖지 않아 이내 윈드자켓을 벗었습니다. 눈에 익은 투구 꽃이 아침 인사를 건네 와 답례로 다소곳한 자태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계속 남진해 산행시작 50분 후 삼각점이 박혀있는 1271.8m봉 올라서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830분 이번 구간 최고봉인 1380m봉에 올라섰습니다. 1271.8m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서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도차가 크지 않고 길이 좋은 편이어서 생각보다 진행속도가 빨랐습니다. 야행성동물인 멧돼지가 일과를 마치기 직전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이 아침6시에서 8시까지 라며 이 두 시간 동안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어 산행 내내 긴장했는데 앞 구간에서 많이 보았던 분탕질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의아해 했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1334.7m봉을 지나 1380m봉으로 오르는 중 중간에 분질러져 쓰러진 고사목을 보았습니다. 똑 같이 죽어있는 한 나무인데도 초록색의 이끼가 서있는 나무에는 끼지 않고 오로지 쓰러진 나무에만 낀 것이 신기해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선 평평한 공터의 1380m봉에 오르자 구절초, 미타리 등의 수더분한 여름 꽃들 7-8종이 형형색색으로 만개해 이 높은 곳에 위치한 산상의 화원도 이토록 풍요로울 수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1380m봉을 지나 산죽사이로 난 한갓진 오솔길을 걸으며 안온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때면 의례히 먼저 간 집사람을 불러내어 함께 산 세상을 화제 삼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곤 해 외롭지 않습니다. 1261m 봉에 도착한 시각이 9시로 이 봉우리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모처럼 편히 쉬었습다.    

 

 

 

 

   1027분 해발1,324m의 보래봉에 올라섰습니다. 1261m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보래령으로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급해 잠시 멈춰 서서 구두끈을 조여 맸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급경사 길이 끝나자 다시 완만해져 해발1,040m대의 보래령으로 내려서기까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왼쪽 아래로 보령터널입구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보래령에서 보래봉으로 오르는 직등길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개에서 산마루까지 고도차가 260m가량 난데다 바람이 한 점도 불지 않아서였습니다. 다행히도 계속 치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잠시 평탄한 길을 걷기도 해 50분 가까이 걸린 가파른 오름 길이 그래도 참을 만 했습니다. 두주 전만 해도 능선 길을 걸으며 새소리와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인 일인지 모두 종적을 감추어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름 길에서 씩씩거리는 제 숨소리가 유일하게  정적을 깼습니다. 보래봉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편안한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가면서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128분 해발980m대의 자운치로 내려섰습니다. 1180m대의 안부로 내려서자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주 희미하게 나있었습니다. 이 안부에서 이른 점심을 들은 후 11시 정각에 오름길을 이어갔습니다. 이 높은 산 능선에 세 네 아름은 족히 될 거대한 참나무가 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습니다. 그 신기해하는 제 생각의 뿌리는 아무래도 중력인 것 같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저 육중한 나무가 여기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다 자란 나무를 이 높은 곳으로 끌어다 옮겨 놓은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자꾸 들어 하는 말입니다. 끌어올리는 것이 힘든 것은 중력과 반대방향으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인 즉 밑에서 끌어올린 것이 아니고 이곳에서 뿌리박고 살아온 것으로, 키가 커질수록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뿌리내리며 살아왔기에 저리 크다고  신기해할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1123분에 다다른 회령봉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급하게 내려갔다가 서서히 다시 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1089.4m봉에서 선 채로 잠시 쉰 후 해발980m대의 자운치에 내려서자 표지기가 꽤 여럿 보였습니다.

 

 

 

   1432분 해발1,000m대의 불발현에 도착해 기맥종주를 마쳤습니다. 해발고도가 천m가 채 안 되는 자운치에서 1204m봉으로 향하는 오름 길은 보래령에서 보래봉을 오르는 길보다 한결 수월했습니다. 경사가 완만한데다 중간에 1076m봉과 1072m봉을 차례로 넘으면서 체력을 조절할 수 있어 그랬습니다. 정작 저를 힘들게 한 것은 후끈거리는 더위였습니다. 낱낱이 포도 알을 익히고자 주님께서 내려준 마지막 이틀의 여름 태양이 작열해 바람이 불지 않는 산길을 걸어 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204m봉을 넘어서도 한참 동안 서진해 흥정산 갈림길에 도착한 시각은 1412분으로 이곳에서 불발현까지 남은 거리는 0.96Km에 불과했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두 다리에 모아 불발현으로 내달렸습니다. 바로 전 구간에서 보았던 진초록의 속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잠시 멈춰 사진을 찍었습니다. 1122m봉을 넘어 나무계단으로 내려선 불발현에 도착해 이번에 처음 사용한 지도 앱을 점검해보았더니 운두령을 출발해서 여기 불발현에 도착하기까지 756분 동안 14.41Km를 걸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속도가 시속1.8Km를 조금 넘어 이 속도라면 운두령에서 오대산의 비로봉까지 10시간에 주파할 수 있어 한 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52분 자운리괸돌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정자에서 20분 가까이 쉰 후 두 주전 차를 타고 내려간 8.5Km의 먼 길을 이번에는 꼬박 걸어 내려갔습니다. 도장리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산자락을 에도는 길이어서 그 나름 운치가 있어 좋았습니다. 임도를 걸으며 길바닥을 기는 뭇 곤충들에 마음을 써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의 일입니다. 생각보다 기맥종주를 빨리 끝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 민가가 나타나는 도장리까지 노래를 흥얼대며 내려갔습니다. 임도가 끝나고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 조금 지루했지만 이 때가 아니면 시골 길을 언제 걸어보겠는가 싶어 군소리안하고  걸었습니다. 좀처럼 버스 정류장이 나타지 않아 주민들에 물어보려 해도 밭에서 일하는 분들이 거의 모두가 외국인이어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야단들인데 농사 짓는 고된 일은 하겠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 외국인을 불러 쓰는 것일 텐데 우리 농촌도 참으로 많이 변화됐다 싶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10여분 기다리는 동안 소낙비가 내려 몽땅 옷을 적실 뻔 하다가 때마침 버스가 와 큰 비는 맞지 않았습니다.

 

 

 

 

      이번 산행이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은 대학동창 이상훈교수가 전적으로 도와준 덕분입니다. 운두령에서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고자 전날 밤 봉평에 막 집을 새로 지어 기거하는 이 친구를 찾아가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요즈음 이 친구는 금년에 정년퇴직을 맞아 손에 잡히는 생태계라는 제목의 에세이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제게 추천사를 부탁해와 보름 전에 원고를 넘겨줬는데 그새 책이 출간되었다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못 쓰는 글이나마 사양 않고 추천사를 쓴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내용에 빠져서입니다. 추천사 쓰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은 이 책의 수준에 제 추천사가 걸맞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책 내용이 좋아도 그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다른 독자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없을 것 같아 꼼꼼하게 세 번을 읽은 후 추천사를 썼습니다. 하룻밤 재워주고 아침도 먹여주고 차편까지 제공한 이 친구에 이번 한 번은 제가 공들여 쓴 추천사로 그 고마움을 가름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