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종주기15
*기맥구간:운두령-계방산-오대산비로봉
*산행일자:2015. 9. 13일(일)
*산높이 :계방산1,577m, 호령봉1,561m, 오대산1,563m
*소재지 :강원평창/홍천
*산행코스:운두령-계방산-뾰지개봉-호령봉-비로봉-상원사
*산행시간:5시17분-18시15분(12시간58분)
*동행 :나 홀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자긍심이라 한다면 실로 오랜만에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제가 가슴 뿌듯해 하며 자긍심을 갖게 된 것은 한강기맥의 난코스인 운두령-계방산-비로봉 구간을 깔끔하게 해내서입니다. 이 구간은 재작년 봄 양수리에서 한강기맥종주를 시작할 때부터 내내 어떻게 통과하느냐로 고심해온 코스입니다.
한강기맥의 운두령-계방산-비로봉 구간이 정말 난코스인가는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난코스를 가르는 기준을 위험한 바위길이 있느냐 없느냐로 삼는다면 이 구간은 분명 난코스가 아닙니다. 바위 길이 길지 않고 그나마 있는 바위 길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곳에도 로프를 매달아놓지 않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1315.2m봉에서 호명봉 사이의 바위 길은 철쭉나무 등이 종종 길을 막아 지나기가 매우 불편하기는 하나 결코 위험한 코스는 아닙니다.
제가 이 구간을 난코스로 생각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간의 길이입니다. 기맥의 길이가 18Km를 조금 넘고 이탈로도 3.5Km나 되어 이 구간을 마치려면 22Km를 걸어야 합니다. 한 시간에 1.5Km 정도 걷는 느린 제 걸음으로 과연 하루에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중간에 적당한 지점을 정해 두 구간으로 나눠 종주하는 것이 이제껏 제가 해온 방식인데 이 구간은 그 적당한 지점을 찾지 못해 두 구간으로 나눌 수 없어 고심해온 것입니다.
이번 구간 중 계방산에서 조금 내려가 이승복생가 쪽으로 길이 갈리는 분기점에서 오대산의 비로봉까지가 출입이 금지된 비탐방로입니다. 적발되면 벌금을 낼 각오로 이 길을 반드시 지나야하는 산객들은 거의 다가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이어서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자연 기맥 길도 분명치 않아 흐릿한 데가 여러 곳 있는데 구간 중간에 보이는 몇 곳의 하산 길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아래 마을까지 계속 이어지는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도움이 될 만한 산행기를 찾아보았으나 끝내 구하지 못한 것은 중간에 구간을 끊고 아래로 탈출한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이런 길로 탈출했다가 자칫 길을 잘 못 들면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일찌감치 단념했습니다.
한 친구가 동행을 하겠다며 중간에 야영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와 그것이 해결책이다 싶어 좋다고 답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아도 과체중인 제가 야영으로 늘어나는 짐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에 회의가 갔습니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이틀을 연속해 걸으면 무릎이 온전히 견뎌내겠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이 또한 답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구간 쪼개기도 안 되고 야영도 안 된다면 하나 남은 방법은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루에 걸어 통과하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 지구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두 해전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13시간을 걸은 적이 있어 이 구간 또한 그 시간이면 될 것 같기도 해 한 번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이 동했습니다.
제가 이 구간을 한 번에 통과하자고 결심한 것은 두 주전 기맥거리가 14.5Km이고 이탈로가 8.5km로 전장이 23Km인 운두령-보래봉-불발현 구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입니다. 기맥구간을 시속 1.8Km의 속도로 걷고 나자 이번 구간도 서둘러 새벽5시에 산행을 시작하면 아무리 늦어도 저녁 5시 안에 비로봉에 도착할 것이고 상원사에도 해지기전까지 도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전날 저녁 진부로 가서 하룻밤을 묵은 후 새벽같이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해발1,089m의 운두령으로 이동해 이번 구간을 성공적으로 종주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새벽5시17분 평창군과 홍천군을 경계 짓는 운두령을 출발했습니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냉랭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멧돼지는 불빛을 보면 도망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기사분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오른 쪽 나무계단 길로 올라섰습니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혔지만 사방이 캄캄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걷기에만 열중해서인지 오름 길인데도 속도가 붙었습니다. 1166m봉을 지나 운두령 높이의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는 등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으면서 고도를 꾸준히 높여갔습니다. 운두령을 출발해 반시간 가량 지나 가시기 시작한 어둠이 완전히 밀려나고 막 해돋이를 끝낸 태양이 그 자리를 차지한 아침 6시경 헤드랜턴을 껐습니다. 10분을 더 걸어올라 “운두령2.2Km/계방산1.9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무명봉의 쉼터에서 잠시 머물면서 구두끈을 조여 맸습니다.
7시21분 해발 1,577m의 계방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쉼터에서 조금 내려갔다가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150m가량 고도를 높이는 동안 비행기의 굉음이 들려왔습니다. 이 산속의 새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재잘거리지 않는 이른 아침에 상공을 나는 비행기는 매일 이 시간 우리나라 영토를 한 바퀴 돌며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초계기일 것입니다. 헬기장을 지나 해발1492m의 전망대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골짜기를 가득채운 구름을 온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서에서 동으로 운두령을 넘는 구름들의 가벼운 몸놀림을 지켜보는 한강기맥이 한 눈에 잡혔습니다. 전망대에서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 정상석이 세워진 계방산을 올랐습니다. 조망되는 산봉우리와 산줄기들이 방금 지나온 전망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오대산, 설악산, 태기산, 가리왕산(?) 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계방산에서 오대산 쪽으로 얼마 내려가지 않았는데 길이 좁아져 바짓가랑이가 길섶 풀들이 머금은 이슬에 금세 젖어버렸습니다. 북동쪽으로 진행해 오른 쪽 아래로 이승복 생가길이 갈리는 안부 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9시52분 1462.3m봉을 지났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직진 길로 이어지는 기맥 길은 오대산비로봉까지 비탐방로여서 출입금지 펜스가 쳐 있었습니다. 펜스를 넘어 얼마간 직진해 왼쪽으로 소계방산 길이 삼거리에 도착해 다소곳한 용담 꽃을 사진 찍고 오른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산위의 기온이 영상 8도까지 떨어져 가을날씨가 완연하다 했는데 구두 속 양말이 풀잎 에 맺힌 이슬에 푹 젖어 한 여름 질펀한 빗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길이 희미하게 보이는 안부로 내려갔다가 50m가량 고도를 높여 삼각점이 박혀 있는 1462.3m봉에 도착했습니다. 이 봉우리를 조금 지나 1433m봉을 우회하며 만난 갈림길이 주왕지맥 갈림길이라고 법솥말님 산행기에 적혀 있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한참 후 표지기가 걸려 있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11시45분 해발1358m의 뾰지개봉에 도착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다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가 150m가량 고도가 낮은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 몇 개를 넘는 동안 산죽 길을 지났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동멱골 길이 갈리는 해발1,150m대의 안부를 지나 올라선 1209m봉(?)에서 때 이른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0시53분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몇 번 반복하며 고도를 180m가량 높여 헬기장이 들어선 뾰지개봉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방아다리 약수터 길이 갈리는 뾰지개봉에서 왼쪽으로 얼마간 걸어 오른 쪽으로 길이 갈리는 활산목이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기맥길이 이제까지와 확연하게 다른 것은 이미 수명을 다하고 쓰러져 길을 가로막는 고목들이 즐비하다는 것으로 마치 원시림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12시56분 C-10 비닐판이 보이는 1282.3m봉을 지나 북진을 계속하며 봉우리 몇 개를 오르내렸습니다.
14시 정각 헬기장 흔적이 보이는 1315.2m봉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1282.3m봉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기맥 길은 고도차가 크지 않은 편안한 길이어서 고목들이 길을 가로 막지 않았다면 속도를 조금 더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주전 운두령-보래봉-불발현 구간을 종주할 때는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던 가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이런 저런 가을꽃들이 꽤 많이 선보였습니다. 고산에서 꽃을 피워 서울근교 산에서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진청색의 용담 꽃도 여러 곳에서 만났습니다. 이름 모르는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새빨간 열매는 여름태양이 정성들여 빚어낸 이 가을의 소중한 결실이어서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C-8 비닐판이 걸려 있는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이 박혀 있는 1315.2m봉의 옛 헬기장에 도착해 짐을 벗어 내려놓았습니다. 17시20분에 상원사를 출발하는 진부 행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나 헤아려본즉 이미 늦었다 싶어 택시를 탈 요량으로 10분 여 푹 쉬었습니다.
15시45분 해발1,561m의 호명봉에 올랐습니다. 1315.2m봉에서 북동쪽으로 한참동안 진행하자 앞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호명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왼쪽 암벽이 준수하고 깔끔해 보이는 암봉을 어떻게 지날까 하는 걱정을 얼마 안가서 접은 것은 키가 작은 철쭉 등 잡목이 길을 덮은 밀림(?) 속으로 다소 미끄러운 길을 지나기가 만만치 않아서였습니다. 전망바위에 이르러 지나온 한강기맥을 조망하며 잠시 숨을 돌린 후 겁먹었던 암봉을 왼쪽 밑으로 에돌아 계속 전진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동피골 길이 갈리는 삼거리 지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했는데 바닥에 습기가 있어 바위길이 다소 미끄럽기는 하나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밀림 길을 통과하느라 많이 지쳐 중간에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나 그러다가는 해떨어지기 전에 상원사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꾹 참고 걸었습니다. 제대로 된 헬기장의 호명봉에 도착하자 젊은 한분이 호명봉이 어디냐고 물어와 바닥에 떨어진 표지물을 가리켜 이 봉우리가 호명봉임을 일러주었습니다. 사방이 탁트여 전망이 빼어난 호명봉에서 바라보는 주위의 산세가 참으로 웅장하고 장엄해 강원도의 힘이 이런 것이다 했습니다.
16시58분 해발1,563m의 오대산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비로봉으로 가는 길 중간에 오른 쪽으로 빠져 서대사로 같이 내려갈 속셈으로 호령봉에서 만난 젊은이를 따라가다가 걸음이 느려 이내 포기했습니다. 천천히 1532m봉으로 오르다가 송백산악회의 회원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532m봉을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오른 쪽으로 서대사로 가는 희미한 길을 보았지만 그대로 직진해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오대산 정상봉인 비로봉에서 삼각점을 확인한 후 출입을 막고자 설치한 펜스를 넘어 정상석이 세워진 비로봉에 다다르자 먼 길을 걸어 드디어 해냈다 싶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정상석을 사진 찍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송백의 살림꾼 김대장님이 도착해 정말 반가웠습니다. 상원사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송백 버스로 같이 올라가자는 김대장님의 제의에 고마워하며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18시15분 상원사에 도착해 15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비로봉에서 상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대부분 계단 길이어서 하산 속도가 빨랐습니다. 한 때 백두대간을 같이 했다고 반갑다며 호의를 베푸는 송백에 저녁 자리에 늦게 도착해 폐를 끼칠까보아 서둘러 내려갔는데, 이러다가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다가 송백의 후미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이분들에 제가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그냥 떠나라고 김대장님께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적멸보궁을 지나 중대사로 내려가는 돌계단 길이 너무 깨끗해 놓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였습니다. 중대사를 지나 얼마 후 내려선 상원사 화장실에서 땀 냄새 나는 옷을 전부 갈아입고 그 아래로 내려가 송백이 차려놓은 저녁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저녁 7시를 조금 넘어 송백 버스로 상원사를 출발해 서울의 잠실까지 편하게 이동했습니다. 송백산악회 여러분에 감사말씀 올립니다.
귀경 길 버스 안에서 이번 산행이 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정도로 힘들고 보람 있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그렇다’입니다. 이런 결론은 제 나이를 감안해 내린 것입니다. 두 해 후면 70줄에 접어드는 60대 후반에 13시간을 걸어 전장 22Km 거리의 구간을 해 낼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있으랴 싶기도 합니다. 10년 전인 50대에 이 구간을 했다면 가슴 뿌듯하기는 했어도 자긍심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를 더욱 대견해 하는 것은 구간 종주의 계획과 실행, 그리고 평가를 저 혼자 다해낸 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강기맥 종주가 끝나면 영산기맥을 종주할 뜻입니다. 제가 마음먹은 대로 거의 해낼 수 있는 것은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산행을 해서입니다. 인터넷의 도움이 절대적임은 물론입니다. 종주산행에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거의 다 얻습니다. 제 나름 계획을 잘 세우고도 바로 종주 길에 나서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는 것은 도전의욕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의다가 저로서는 처음 가보는 길인데다 산행 중 거의 사람을 만나 볼 수 없는 오지를 걷는 것이어서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의 비중이 늘어나 도전하기가 겁이 나곤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해낸 산행이어서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것입니다. 설사 제가 늙지도 않았는데 나이를 가불해 주착을 부린다며 비웃음을 사는 한이 있어도 이번만은 눈치 보지 않고 한껏 제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한강기맥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기맥 종주기16(최종회:비로봉-상왕봉-두로봉) (0) | 2015.10.09 |
---|---|
한강기맥 종주기14(불발현-보래봉-운두령) (0) | 2015.09.03 |
한강기맥 종주기13(구목령-장곡현-불발현) (0) | 2015.09.02 |
한강기맥 종주기12(원넘이재-덕고산-구목령) (0) | 2015.09.01 |
한강기맥 종주기11(먼드래재-운무산-원넘이재) (0) | 2015.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