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명소탐방기1
*탐방일자:2015. 9. 9일(수)
*탐방지 :강원 평창소재 휘닉스파크 몽블랑/허브나라/평창무이예술관
*동행 :서울사대 고동준, 김종화, 이상훈, 최돈형 동문
인구가 5만도 채 안 되는 평창군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오는 2018년에 열리는 제20차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덕분일 것입니다. 동계올림픽은 주 경기가 스키와 스케이트이어서 북반구의 여러 국가 중 눈이 내리는 소수의 나라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 그 유치 경쟁이 하계올림픽 보다는 덜 치열합니다. 그럼에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가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것은 경쟁국이 캐나다, 러시아, 독일 등의 세계적인 대국이거나 선진국이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한 겨울에 평창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곳이 스키의 최적지이기 때문입니다. 평창이 스키의 최적지라는 것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합니다. 제가 몸담았던 쌍용그룹이 1975년 용평스키장을 개장한 이래 휘닉스파크, 알펜시아레조트 등 두 개의 스키장이 뒤이어 개장해, 지금은 총 3개의 스키장이 평창에 들어섰습니다. 전국 19개소의 스키장 중에서 최고로 평가되는 스키장이 바로 용평레조트의 스키장인 것을 보아도 단박에 평창이 스키 천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을에 평창을 찾아오는 분들 중에는 메밀꽃이 필 때를 맞추어 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메밀꽃이 다른 꽃보다 더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일제 강점기 때 요절한 작가 이효석님의 소설“메밀 꽃 필 무렵”의 주 배경이 평창이기 때문입니다. 평창군은 이 때를 맞추어 이효석 문학축제를 개최합니다. 올해는 “2015 평창 메밀꽃 필 무렵 효석문화제”가 9월4일부터 열흘 동안 봉평의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재작년 늦은 여름에 봉평 일대를 돌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메밀밭과 물레방아, 그리고 이효석 문학관을 둘러보았는데 그 때는 축제기간이 아니어서인지 뭔가 분위기가 가라앉은 듯 했습니다.
1968년 서울사대를 입학한 물리과의 최돈형동문이 이번 나들이를 주선했습니다. 영문과의 고동준 동문과 화학과의 김종화동문 등 세 동문과 함께 첫날 평창의 명소 몇 곳을 둘러보고 다음 날 금당산을 오르고자 9월6일 아침 1박2일 여정으로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마침 평창의 면온에 새집을 지어 살고 있는 화학과의 이상훈 동문이 하룻밤을 자기 집에서 머물 수 있도록 방을 내주겠다고 해서 먼저 이 친구 집을 찾아갔습니다. 이번 여행 내내 운전대를 잡은 고동준 동문은 우리보다 입학이 한 해 늦고 전공과목도 자연과학이 아닌 영문과여서 화학과를 졸업한 이상훈 동문과는 초면으로 서먹서먹할 법도 한데 이내 서로 말을 트는 등 쉽게 가까워졌습니다. 면온의 친구 집에다 짐을 푼 후 최돈형동문이 점심으로 낸 강원도 최고의 먹거리인 막국수를 맛있게 들고 나서 이상훈 동문의 안내로 평창명소 탐방 길에 올랐습니다.
1.휘닉스파크의 몽블랑전망대
첫 번째 들른 평창의 명소는 봉평에 자리한 휘닉스파크의 몽블랑 전망대입니다. 한 겨울 스키 철이었다면 인파가 몰려 좀처럼 잡아타기 쉽지 않았을 케이블카를 편안히 타고 해발1,050m의 몽블랑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몽블랑 전망대를 정점으로 방사선처럼 뻗어 내려간 12개의 슬로프 코스가 시원스레 한 눈에 들어왔고, 그 끝자락에 자리한 휘닉스단지가 한가로워보였습니다. 북쪽으로 해발1,261m의 태기산 정상에 들어선 한국방송공사의 송신탑이 아주 가깝게 보였고 남쪽 가까이에 해발1,200m의 청태산이 자리해 휘닉스파크에서 “그곳에는 언제나 신선한 바람과 원시림의 상쾌함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광고할 만 하다 했습니다.
스키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휘닉스파크를 찾는 사람들이 비수기인데도 제법 많은 것은 여기 몽블랑 일대가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천 m가 넘는 고지대에 아담한 규모의 연못이 조성되어 소공원(小公園)의 편안함이 느껴졌고, 태기산 방향으로 들어선 목장에서 한 낮의 따사로움에 졸린 듯한 모습을 한 양떼들을 보고 잠시나마 안온함에 빠져들었습니다. 연못 바로 아래 산 속에 낸 길지 않은 우회 길로 에돌며 “원시림의 상쾌함”이 이런 것이다 싶었습니다.
몽블랑 전망대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면서 좁은 폭의 삭도 바로 아래 땅의 식생 상태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여기에 케이블카를 설치했을 때 바로 아래 땅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냈을 텐데 그새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옛날의 우거진 숲을 다시 찾아가는 듯 했습니다. 식물보다 동물이 주변의 환경변화에 민감하겠지만 “관광망원경을 통해 산자락을 살피다 보면 어렵지 않게 고라니, 사슴, 산토끼 등의 야생동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광고메시지처럼 머지않아 훼손됐던 생태계가 거의 원형으로 회복되지 않을 까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케이블 카 덕분에 천 미터가 넘는 고지를 힘들이지 않고 다녀오자 케이블카도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우리 두 발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지에 찻길을 내고 바다에 뱃길을 내고 하늘에 비행기 길을 낼 때는 환경훼손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면서 케이블카 길을 내는 데 유독 반대가 극심한 것은 그 길이 자연의 상징이랄 수 있는 산에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이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이 염려하는 만큼 환경훼손이 심각한가에 대해서 저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케이블카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것이 찻길을 내고 뱃길을 내고 비행기 길을 내는 것보다 더 염려된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 주위에 사는 동식물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계 유명 관광지에 케이블카를 설치한 명산이 꽤 많은 것으로 듣고 있는데 인근 주민들을 위해서 설치 후 철거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입니다.
이번에 몽블랑을 오르내리면서 제 나름 느낀 것은 동식물이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도 얼마간 과대계상 된 것이 아닌 가 싶기도 합니다. 설악산 여러 곳에 케이블 카를 설치해 동식물을 못살게 하거나 심하게 괴롭히는 수준이 아니고 노약자들이 오를 수 있도록 한 두 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을 반대할 뜻이 없다는 쪽으로 이번에 몽블랑을 다녀 오고 나서 제 생각을 더욱 굳혔습니다.
2.허브나라
이제껏 저는 허브(herb)란 허브 향을 내는 특정한 식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게 “허브나라”농원을 찾아간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주 쉽게 말해 허브가 장미처럼 다양하지 못할 것이 빤한데 아무리 농원이라 해도 볼거리가 뭐 있겠느냐 싶어서였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허브나라에 들어서자마자 완전히 바뀌었으니 여기 저기 보이는 다양한 종의 모든 식물들이 허브였기 때문입니다. 허브(herb)란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대로 “예로부터 약이나 향료로 써온 식물”의 총칭으로 라벤더, 박하, 로즈메리 외에도 양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그 종이 엄청 많습니다.
휘닉스파크의 몽블랑에 이어 찾아간 탐방지는 흥정계곡길에 자리한 허브나라농원입니다. 흥정계곡은 해발1,277m의 흥정산에서 발원해 평창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서강의 한 지류로, 꽤 높은 흥정산이 일궈놓은 계곡이어서 계곡 그 자체로도 더할 수 없는 여름 쉼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여름 더위가 완전히 물러나지 않아서인지 흥정계곡 가의 허브나라 농원을 찾아온 이들이 꽤 많아 보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자마자 들어선 허브농원은 입장료가 일인당 3천원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유료농원입니다.
허브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이호순 님은 고등학교 시절 유달영 박사의 “인생노트”를 읽고 나서 농촌생활을 결심했다 합니다.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근무해온 대기업의 간부자리를 사퇴하고 부인과 함께 봉평으로 내려와 허브나라를 세운 것이 1993년으로, 그 후 20여 년간의 이들 부부의 땀과 애정이 오늘의 허브나라를 결실했습니다. 허브나라는 120여종의 허브가 자라는 아름다운 농원으로 14가지 테마로 꾸며져 있어 볼거리가 제법 다양했습니다.
허브나라 안을 둘러보면서 깜짝 놀란 것은 대학시절 즐겨 불렀던 1970년대의 팝송인 사이몬 앤 가펑클의 "Scabrow Fair"에 나오는 꽃들을 모두 만나본 것입니다. 파슬리(parsley), 세이지(Sage), 로즈메리(rosemary)와 타임(thyme)의 꽃 이름은 수 없이 불렀으면서 실물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모두 다 수더분해 얼마간 실망했지만, 덕분에 허브가 이런 것임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팔레튼 가든으로 시작해 셰익스피어 가든, 중세가든, 새초롱마을 등 모두 14곳의 볼 곳과 설립자와 특별한 인연인 있는 터키 갤러리를 둘러보고 허브나라의 종합 판이랄 수 있는 허브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허브나라 탐방이 대학시절의 추억을 일깨워줘 잠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1970년도 1월 말경 무등산을 오를 뜻으로 당시 전남 도청소재지인 광주를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겨울비로 무등산 산행을 접고 대신에 광주의 지인 몇이서 금남로의 엘리트다방을 찾아가 오후 내내 죽치고 머물었습니다. 엘리트 다방은 서울 종로5가의 금수다방처럼 디스크자키가 노래를 틀어주는 음악다방이어서 저 또래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은 광주의 명소였습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시면서 디스크자키에 신청한 노래가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브로우 훼어”였습니다. 메모지에 영어로 parsley, Sage, rosemary 및 thyme과 같이 듣고 싶다고 써 냈더니 DJ가 이를 받아보고 파슬리, 사게, 로스매리와 씸 씨 같이 들어주시기 바란다고 멘트를 했습니다. 저는 꽃 이름인 줄 모르고 사람 이름으로 잘 못 아는 우를 범했는데 DJ는 이에 더해 이름을 잘 못 부른 것입니다. 무식이 빚어낸 앙상블 치고는 그래도 기억할 만한 추억이어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그때 엘리트다방에서 함께 노래를 들은 광주의 지인 두 분은 몇 년 전에도 만났을 만큼 그 때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평창 무이예술관
저의 모교 도마산초교는 심상정의원의 조부께서 땅을 희사하시고 미 해병대가 학교건물을 지어주어 건립한 경기도 파주의 자그마한 초등학교입니다. 인근 신산초교의 분교로 있다가 5학년 때 본교로 독립해 저는 앉은 자리에서 2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1961년 이 학교가 배출한 졸업생이 전부 35명이었는데 요즘은 매년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졸업해왔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폐교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번에 방문한 평창의 무이예술관은 딱 제가 졸업한 학교 만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건물은 700여명의 졸업생을 내고 문을 닫은 무이초등학교의 학교건물이었습니다. 폐교된 무이초등학교를 예술관으로 환생시킨 주역들은 서양화가 정연서, 서예가 이천섭, 조각가 오상욱, 도예가 권순범 등의 예술가 분들이라 합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 2년여 준비한 작품으로 2001년 4월 18일 개관한 무이예술관이 지역 예술관으로 자리매김하기 까지 그 나름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예술관으로 만드는데 딱 좋은 것은 넓은 운동장 터를 야외조각공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이예술관 또한 야외조각공원이 있어 대형조각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강점입니다. 이뿐만이 아닌 것이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설치할 수 있고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넉넉한 땅 덕분일 것입니다.
예술관내에 전시된 작품 중 저의 눈을 끈 것은 메밀꽃밭을 사실적(?)으로 그린 정연서 화백의 유화입니다. 유영국화백이 주로 그린 세모꼴 산이 대담하게 가지치기를 한 추상화라면 이 예술관에 전시된 그림은 구상화가 분명한 것이 그림 속의 메밀꽃밭을 보노라면 제가 마치 메밀꽃밭을 걷는 듯해서입니다.
메밀꽃에 대한 제 추억이 그리 아름답지 못한 것은 가난 때문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1950년대 말 한 해 겨울은 메밀국수와 수제비로 매 끼니를 이어갔습니다. 어르신들이 모아 놓은 여유 돈과 한 해 농사지은 벼를 모두 팔아 천수답 다섯 마지기를 사는 바람에 평생 먹고도 남을 메밀음식을 한 해 겨울에 다 먹어치웠으니 질렸을 만도 한데 아직도 메밀국수를 좋아하는 것은 추억이 짙게 드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나온 초등학교도 얼마든지 페교 위기에 놓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졸업한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이 반가울 리가 절대로 없습니다만, 그래도 폐교가 되어야한다면 여기 무이초등학교처럼 예술관으로 다시 낳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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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명소 세 곳을 둘러보고 면온의 친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친구부인이 정성들여 차린 저녁상으로 배를 불린 후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인 고 이효석님의 체취를 맡으려 한 밤에 봉평 읍내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최근 2번을 출산해 오르내린 구목령-불발현-운두령 구간의 한강기맥은 평창군과 홍천군을 아우르는 산줄기입니다. 흥정계곡의 발원지인 흥정산은 한강기맥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회령봉과 보래봉은 한강기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음번에 지날 계방산과 오대산 역시 평천군과 홍천군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적멸보궁은 온전하게 평창군에 있습니다.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을 종주하며 평창군의 명산들을 여럿 오르내렸습니다만, 아직도 못 오른 명산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평창의 명산보다 더 많이 찾아나서야 할 곳은 평창의 명소입니다. 이제 첫 발을 들인 평창의 명소탐방은 틈나는 대로 이어나가고 그 때마다 탐방기를 남길 뜻입니다.
추억 쌓기에 탐방여행만한 것이 없어 쉼 없이 새로운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탐방사진>
1.휘닉스파크 몽블랑
2.허브나라
3.평창 무이예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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