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명소 탐방기2(수리산태을봉)
*탐방일자:2018. 6. 18일(월)
*탐방지 :경기도군포시 소재 수리산태을봉
*동행 :나홀로
제가 가장 자주 오른 몇 산을 들라면 단연 수리산, 청계산과 관악산이라고 답할 것 입니다. 십 수 년 전 과천에 살 때는 관악산을 진산으로 해서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앉은 과천의 좌청룡이 청계산이고, 우백호가 수리산이라고 자주 얘기했었습니다. 이곳 산본으로 이사 와서 십년 넘게 살다보니 수리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청계산에서 발원한 안양천이 관악산과 수리산을 동서로 갈라놓았는데, 관악산을 진산으로 삼은 과천의 우백호가 수리산이라는 것이 과연 맞는 이야기인지 확신하지 못해서입니다.
경기도의 군포시, 안양시와 안산시 등 3개시를 어우르는 수리산은 그 산세가 독수리가 치솟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합니다. 신라 진흥왕 때 지어진 천년고찰 수리사에서 수리산의 이름을 따왔다는 일설에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아무려면 산 낳고 절 생겼지 절 낳고 산 생겼으랴 싶어서입니다. 또 조선의 어느 왕손이 수도하여 수리산(修李山)이라 불린다는 또 다른 설은 수리산의 오랜 역사를 조선시대로 묶어두는 것이어서 더욱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그럴 듯한 것은 수리산이 견불산(見佛山)으로도 불렸다는 설인데, 이 산 자락에 천년 고찰 수리사가 있어 그래도 믿음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산의 최고봉은 해발489m의 태을봉(太乙峯)입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서 이 봉우리를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서쪽 멀리로 안산 앞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동쪽의 관악산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서서히 둘러보면 청계산, 발화산, 백운산, 모락산, 감투봉, 슬기봉, 수암봉 등의 여러 산들이 태을봉을 중심으로 해서 반원을 그려나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수리산의 제 2봉은 남쪽에 자리한 해발452m의 슬기봉으로, 군부대가 진을 치고 있어 꼭대가는 오를 수가 없습니다. 태을봉과 슬기봉을 잇는 약 2Km의 주능선은 곳곳에 암봉이 자리하고 있어 암릉 길을 걷는 재미가 더해지는 능선 길입니다. 북동쪽 가까이로 항상 태극기가 펄럭이는 해발426m의 관모봉이 태을봉을 지켜주고 있고, 이름 그대로 암봉의 자태가 빼어난 남서쪽의 수암봉은 해발고도가 395m로 슬기봉의 초병이 되어 서해안을 망보고 있습니다. 안성의 칠현산에서 시작된 한남정맥이 이 산의 감투봉과 슬기봉, 수암봉을 차례로 지나 김포의 문수산으로 뻗어나갑니다. 제가 사는 산본은 한남정맥이 서쪽 울타리가 되어주고, 북쪽의 태을봉-슬기봉 주능선이 병풍이 되어 삭풍을 막아주기에 이처럼 안락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들곤 합니다. 과연 산본 도시는 이름 그대로 그 근본이 산에 있다 싶습니다.
몇 해 전에 수리산이 동두천의 소요산을 제치고 도립공원으로 선정된 데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인접도시 시민들의 접근용이성입니다. 수리산은 이 산과 인접한 안양시, 군포시와 안산시 등 3개시의 140만 시민들이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어서 유일하게 인구가 10만이 채 안되는 동두천 시만 인접해 있는 소요산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또 수리산에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암릉코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세든 분들도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산책로도 꽤 여러 군데 있어 바위길 중심의 소요산을 따돌리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리산의 태을봉이 군포8경의 제1경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그동안 수 없이 오른 이 봉우리를 다시 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태을봉을 오른 것은 1971년이니, 이 봉우리가 제1경으로 선정된 2004년보다 33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는 동행한 대학 친구 어느 누구도 카메라를 들고 다닐 만큼 형편이 넉넉한 때가 아니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처음 본 산본이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세기도 안 지나 경천동지할 만큼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한 산본 시가를 지켜보노라면 대한민국의 위대함이 절로 느껴집니다. 중심 시가인 로데오 거리를 걷노라면 이 도시의 역동성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곤 합니다.
태을(太乙)의 사전적 의미는 대략 이러합니다. 그 첫째는 중국 철학에서, 천지 만물이 나고 이루어진 근원 또는 우주의 본체를 이르는 말이고, 두 번째는 음양가에서, 북쪽 하늘에 있으면서 병란ㆍ재화ㆍ생사 따위를 맡아 다스린다고 하는 신령한 별을 이릅니다. 태을봉의 태을은 위 두 가지 뜻보다는 독수리의 비상과 관련된 것으로 그 뜻이 풀이되고 있는 듯합니다. 정상석과 그 옆에 세워진 경기도지사 명의의 안내판에 공통적으로 적혀 있는 글의 내용인 즉,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 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지상으로 꼽으며 이런 현상을 태을이라 부른다. 일출 무렵 태을봉에 올라 그림자를 내려다보면 커다란 ‘태을’현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제껏 수리산에 독수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해서 태을의 전설이 참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지 않다고 따지는 것 처럼 부질없는 일입니다. 다만 수 없이 태을봉을 올랐어도 독수리의 날개 짓을 본 적이 없어 태을의 풍수지리적의미를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아 아쉬워할 뿐입니다.
오후 4시경 산본의 주공1단지 집을 나서 태을초교 오른 쪽 옆길로 들어섰습니다. 노랑바위 산림욕장 입구의 돌탑을 사진 찍고 나서 곧바로 산등성을 타고 수리산의 상봉인 태을봉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을 얼마 앞둔 암릉길이 가파르기는 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아 그동안 자주 이 길로 올라갔습니다. 아직은 땅에서 지열을 내뿜지 않아 한 낮에 산을 올랐어도 그다지 땀이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올라서인지 집에서 태을봉 정상까지 시간 반이 넘겨 걸렸습니다. 정상에 올라가 모처럼 꼼꼼하게 정상석 뒷면의 비문을 꼼꼼하게 읽은 것은 태을의 다양한 의미를 일러주는 글이 새겨져 있어서였습니다. 나뭇잎이 눈을 가려 조망할 만한 것이 별 반 없는 정상에서 십수미터 거리의 전망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데크 전망대에서 남쪽 아래로 내려다 본 산본 시가는 아담해 보였습니다. ‘시민체육공원-감투봉-슬기봉-테을봉-관모봉-수리약수터’을 잇는 산 능선이 이 시가를 ‘ㄷ’자로 감싸주어 포근한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테을봉-슬기봉의 주능선에 햇살을 드리운 저녁 태양이 속도를 더해 서쪽으로 지고 있는 중이어서 주능선 남면의 그림자 색이 점점 짙어져 가고 있음이 감지되었습니다. 남쪽 먼발치에 자리한 청계산, 발화산과 백운산이 듬직해 보여 그 의젓한 자태를 카메라에 담고나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산은 궁내초등학교 쪽으로 했습니다. 여름의 건강한 싱그러움은 숲에서 광합성을 통해 배출하는 산소덕분입니다. 수리산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주로 넓은 잎 낙엽수인 굴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등입니다. 도시에 바로 붙어 있는 이 산을 걸으면서 산 속의 공기가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넓은잎나무들이 열심히 광합성을 한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궁내초등학교에서 산행을 마치고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집을 나와 태을봉을 올랐다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대략 4시간을 걸었습니다.
수리산은 산행코스가 매우 다양합니다. 짧은 길로 태을봉만 올라갔다가 그 길로 하산하면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안양의 명학역에서 안산의 상록수역까지 능선 길로 걸어가면 5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수리산은 바위 길도 있고 산책로도 나있어 이 산을 오르내리는데 나이가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제게 이 산이 매력적인 것은 웬만한 들머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다가갈 수 있어서입니다.
수리산이 있어 생판 낯선 도시 산본에 13년간 정붙이고 살 수 있었습니다. 태을의 상서로움 덕분에 산본의 붙박이로 오래 오래 살아갈 뜻인데, 제가 어찌 수리산에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고마움을 표하고자 이렇게 탐방기를 남깁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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