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86.울진명소 탐방기4(황보천 하구)

시인마뇽 2018. 9. 6. 09:58

                                                             울진명소 탐방기4

 

 

                                               탐방일자:2018. 7. 31()

                                               탐방지 :경북울진군소재 명소

                                                                              -황보천 하구

                                                                              -울진봉평 신라비전시관

                                                                              -죽변항 등대

                                               동행     :경동고24회동문 이규성, 조현, 안병관 등

 

 

 

 

  올 들어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다른 해보다 더 가까워졌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올여름 한낮의 기온이 건강한 사람의 체온을 뛰어넘어 섭씨 40도를 육박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단순히 기온만 높은 것이 아니고, 가뭄도 거의 7월 한 달 내내 계속되어 한발(旱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런 찜통더위를 피해 며칠만이라도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동해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경북울진군의 평해에 이종규/안병관 두 동문이 살고 있어 가능했습니다.

 

 

   2012년 여름 이곳 평해를 찾아 관동8경을 탐방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몇 차례 더 울진의 명소를 탐방했습니다. 2013년 가을 성류굴과 불영사를 탐방했고, 2016년 여름에는 망양정 옛터, 울진대풍헌, 월송리포진성터를 둘러보았으니 이번의 울진명소 나들이는 네 번째가 되는 셈입니다. 이번에 찾아간 탐방지는 황보천 하구, 봉평신라비, 죽변항등대 등 세 곳입니다. 평해에 살고 있는 안병관 동문이 길 안내와 해설을 맡아주어 단 하루의 짧은 여정으로도 살뜰하게 곳곳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73011시가 조금 넘어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평해에서 아들을 만나기로 한 이교수 부부가 차를 가지고가 그 차에 동승해 여행길이 편안했습니다. 평해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을 찾아가 이종규 동문과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이교수의 아들을 만났고,  얼마 후 조현동문의 부부가 도착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종규 동문은 거하게 저녁을 낸 후 장호원 집으로 올라갔고, 저희는 안병관 동문이 마련한 시골집으로 자리를 옮겨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바다가 멀지않아서인지 도시와 달리 열섬효과가 없는 시골의 한 여름 밤이 한결 시원해 모처럼 더운 줄 모르고 하룻밤을 푹 잘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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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황보천 하구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황보천 하구를 다시 찾은 것은 전날 밤 찾았을 때의 야경이 참으로 시적(詩的)이다 싶어서였습니다. 숙소에서 7-8분을 걸어 만난 7번 도로를 건너 동쪽으로 흐르는 황보천의 제방 을 따라 걸었습니다. 몇 분을 안 걸어 다다른 다리에서 해안선이 흐릿하게 보이는 바다를 바라다보았습니다. 보름을 지난 지가 나흘 밖에 안 되어서인지 바다 위에 떠 있는 달은 반달보다 커보였고 이 달에서 내리비치는 달빛도 꽤나 밝아 전기불이 없어도 사위가 깜깜하지 않았습니다. 달빛이 교교하게 비추는 바다 위에 몇 척의 배가 불을 밝힌 채 떠 있는 이 정경을 시선 이백이 보았다면 술병을 들고 고깃배를 향해 바다로 텀벙텀벙 걸어 들어갔을 것입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바다 야경을 스마트폰에 옮겨 담은 후 아쉬움을 간직한 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황보천(黃堡川)이란 경북울진의 평해읍 북쪽 오곡리와 기성면 황보리 유역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유로가 총9Km밖에 안 되는 소규모 하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하천의 이름입니다, 조선시대 노씨가 많이 살고 있던 마을에 큰 불이 나 노씨는 떠나가고 황()씨가 남게 되자 자기들의 성씨인 황자와 그 마을에 있었다는 큰 보()자를 따서 황보리(黃堡里)라는 마을이 생겼으며 이 하천도 마을이름에서 따왔다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어두워 보지못한 황보천 하구의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이튿날 아침에 다시 이 하구를 찾아갔습니다 . 하구에 이르기 전에 7번도로 위 군무교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갈대가 무성한 황보천을 사진 찍었습니다. 유로가 짧아서인지 하구가 가까운데도 하천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습니다. 데크다리를 지나 자전거 길을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걸어가자 소나무 밭에 쳐 놓은 텐트 몇 채가 보였습니다. 바로 아래 백사장이 구산해수욕장으로 피서객이 거의 보이지 않아 스산했습니다. 남쪽 바로 아래가 황보천 하구인데 어인 일인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황보천의 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트막한 사구를 사진 찍고 데크다리로 돌아와 이 다리를 건넜습니다. 이 길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관동팔경의 한 곳인 월송정에 이르게 됩니다. 월송정 옆에 자리한 평해황씨재단의 평해황씨가 황보리의 황씨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 나선 길이라 월송정까지 걸어갈  뜻을 접고 다시 데크다리를 건너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본 즉 황보천의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보이지 않은 것은 이 물이 사구 아래 모래 속으로 스며들어 바다로 바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하구는 처음 보는 것으로 자연은 참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울진봉평리 신라비전시관(蔚珍鳳坪理 新羅碑展示館)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들고 나서 10시가 다 되어 탐방 길에 올랐습니다. 일본에 갔다가 새벽에 돌아온 안병관 동문이 피곤을 무릅쓰고 길 안내를 맡아 주어 고마웠습니다. 울진읍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 울진봉평리 신라비전시관(蔚珍鳳坪理 新羅碑展示館)을 둘러보았습니다. 전시관도 꽤 넓다 했는데 이 전시관 뒤로 야외비석공원이 자리하고, 앞으로는 비석거리,  야외공연장, 인라인스케이트 장과 주차장이 넓게 터 잡고 있어 터 한번 넓게 잘 잡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곳 봉평리의 한 논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해 여기 전시관에 전시하고 있는 울진봉평리 신라비는 신라의 법흥왕11(서력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합니다. 국보 제242호로 지정된 이 신라비에는 전면에만 399자의 글자가 새겨졌는데, 비문의 내용인즉 이 비가 세워지기 얼마 전에 울진지방에서 불을 지르고 성을 에워싸는 등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여 신라 중앙정부에서 대군을 동원하여 이 사태를 진압한 뒤 그에 대한 사후처리로 법흥왕과 신료13인이 육부회의를 열어 칡소(얼룩소)를 잡는 등 일정한 의식을 행한 뒤 현지관련자들에게 장60대와 100대의 형을 부과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방민에 주지시킨다는 것으로 율령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이 전시관의 안내팜플렛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 비석의 발견이 의미를 갖는 것은 삼국사기의 율령반포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 해주는 등 고대사연구에 도움 되는 바가 커서라 합니다.

 

 

   규모가 꽤 커 보이는 이 넓은 전시관에 달랑 신라비만 전시되었다면 참으로 썰렁하겠구나 하는 제 생각을 바꾼 것은 3개의 전시실을 다 둘러보고 나서였습니다. 울진봉평리 신라비의 실물과 탑본이 모두 전시된 제1전시실에서 오래 머무른 것은 신라비 외에도 이 비의 발견경위, 국보지정과정, 원문해석, 비의 가치, 법흥왕의 업적은 물론 울진의 역사를 조감하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2전시실에는 신라의 비뿐만 고구려와 백제의 비를 포함한 삼국시대의 비 7기의 실물모형이 함께 전시되어 볼만 했습니다. 방송대 국문학 교재에 나오는 신라의 임신서기석 등 신라비 5기와 고구려비 1, 백제비 1기 등이 전시된 제2전시실에서 삼국의 주요비석을 한 자리에서 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금석문과 한글관련 전시물이 주를 이루는 제3전시관은 금석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훌륭한 배움터가 될 것 같습니다.

 

 

   비록 모형이지만 야외비석공원에 여러 시대의 비석이 전시되어 있는데, 땡볕을 감내하기 힘들어 광개토왕릉비만 보고 죽변항으로 이동했습니다.

 

 

 

3,죽변항 등대

 

 

 

 

 

   죽변항은 몇 번 차를 타고 지나기는 했지만 내려서 거리를 걸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봉평리의 신라비전시관을 출발해 북쪽으로 올라가 다다른 죽변항은 경북 울진군의 북단에 위치한 어항으로 2004sbs에서 이 항구 언덕에 세트장을 설치하고 드라마 폭풍 속으로를 제작, 방영하고 나서 널리 알려졌다 합니다. 안병관 동문의 추천으로 작은 배들이 정박한 이 항구의 부두에서 멀지 않은 한 식당을 찾아가 이 지방의 별미로 알려진 곰칫국을 사들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찾아간 곳은 동해바다와 면하고 있는 언덕 위의 죽변항 등대입니다. 등대(燈臺, lighthouse)란 항로표지의 하나로 바닷가나 섬 같은 곳에 탑 모양으로 높이 세워 밤에 다니는 배에 목표, 뱃길, 위험한 곳을 알려주려고 불을 켜 비추는 시설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가 하나도 틀리지 않아 죽변항 등대도 바닷가에 탑 모양으로 높이 세워져 있습니다. 언덕 위에 세워진 죽변항 등대는 팔각형(?)의 하얀 탑으로 높이가 16m에 이릅니다. 등대 안으로 들어가면 사다리처럼 가파르게 연결된 계단을 따라 등탑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나본데, 때마침 스마트폰의 밧테리가 다나가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자 힘들여 등탑꼭대기까지 올라갈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등나무(?) 잎이 햇살을 막아준 그늘아래 벤치에서 땀을 식힌 후 바로 아래 대나무 숲으로 내려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았습니다. 이 항구가 죽변(竹邊)항으로 불리는 것이 여기 대나무 숲 때문이라는데, 동해에 수직으로 면한 해안절구라는 지형만으로도 이름이 날만한데 그에 푸른 대나무 숲까지 더해졌으니 죽변항이 sbs의 드라마세트장으로 활용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행한 이교수가 저를 잠시 멈춰 세우고 바로 아래 동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어 고마웠습니다. 키를 넘는 대나무 숲에 낸 산책로를 따라 북쪽으로 십 분여 걸어가자 드라마 폭풍 속으로에서 세트장으로 지어진 언덕 위의 주황색 지붕의 어부의 집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나무 숲길을 빠져나와 오른 쪽 아래 어부의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본 후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를 바라보노라니 제가 마치 드라마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부의 집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백사장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하트해변’입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암으로 고생한 집사람을 지켜냈다면 이런 해변을 같이 걸으며 함께 지내온 삶을 반추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짙게 일어 자리를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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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울진명소탐방을 마친 죽변항을 떠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떠올렸습니다. 죽변항의 등대가 빛을 비추어 밤바다를 밝히기 시작한 것은 1910년부터라고 합니다. 이 해에 우리나라 는 일본제국에 합병되어 암흑의 시대를 맞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등대라는 문명의 빛이 마냥 고맙지 못했던 것은 당시의 위정자들이 항로를 밝혀주는 등대하나 세우지 못한 채 캄캄한 밤에 대한제국이라는 배를 몰고 항해하다 암초를 만나 좌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배를 건져 항해를 다시 하는데 꼬박 35년이 걸렸습니다. 그 후 새로 등대도 세우고 배도 만들어 어느새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거함이 되었습니다. 배를 새로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는 저는 대한민국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만든 배로 항해를 잘해왔기에 오늘날 고교동문들과 이렇게 아름다운 미항을 탐방할 수 있다 싶어지자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또 다시 좌초하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탐방사진> 

 

1)황보천 하구

 

 

 

 

 

 

 

 

 

 

 

 

 

 

 

 

 

 

 

 

 

 

 

 

2)울진봉평리 신라비전시관 

 

 

 

 

 

 

 

 

 

 

3)죽변항 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