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명소탐방기6(제주추사관)
*탐방일자:2018. 12. 30일(일)
*탐방지:제주도서귀포시소재 제주추사관
*동행 :큰아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시대의 실학자로 우리나라 4대 명필 중의 한분이기도 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필명을 날린 유홍준이 그의 책 “김정희”에서 추사는 실학 중에서도 금석학과 고증학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고, 서예에서도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이자 한국의 서성(書聖)이라 할 만한 분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추사는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닙니다. 고조부 김흥경이 영의정을 지냈고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대왕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로 봉해지는 등 당대에 내로라하는 명문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왕위에 오른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추사의 11촌 대고모였으니 추사는 어느 모로 보나 개천에서 난 용은 아니었습니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시련을 겪지 않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나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삶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추사가 태어나고 자란 조선이 평온한 나라가 아니었고, 추사가 살다간 19세기가 평탄한 한 세기가 아니었는데 당대 최고 지식인인 추사가 혼자서 무탈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추사는 두 번이나 유배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아버지 김노경의 유배로 시작된 추사의 시련은 55세(1840년)에 자신이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어 63세(1848년)에 해배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66세(1851년)에 함경도 북청으로 다시 유배되어 다음 해에 풀려나는 등 추사는 70평생에서 10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추사는 시련기를 허송세월하지 않았습니다.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세한도(歲寒圖)”를 그린 것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였습니다. 모진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기에 추사가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최고의 서예가로 오늘에도 추앙받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다섯 번째로 찾아간 실학명소는 추사가 위리안치되었던 제주도의 대정유배지입니다. 손자와 함께 떠난 제주 여행 중에 묵은 곳은 서귀포시에 자리한 신화월드의 서머셋 레조트로, 이곳에서 추사가 유배되었던 대정읍까지는 승용차로 20분이 채 안 걸릴 만큼 가깝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큰 아들이 차로 대정읍까지 데랴다 주어 박물관인 제주추사관과 바로 옆의 유배지를 다녀왔습니다.
대정읍에 도착해 성곽 옆길을 따라 걸으면서 한 겨울에 활짝 핀 이름 모르는 여러 송이의 노랑 꽃을 보고 오상고절의 국화꽃만큼이나 도도한 추사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중년 글이나 편지를 보면 추사는 연경에서 보고 온 것을 내세우면서 곧잘 세상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투의 이야기를 많이 해 여러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합니다. 정적 김우명이 추사를 모함해 올린 상소문의 행간에서 20여년간 요직만 옮겨 다닌 추사의 부친 김노경의 화려한 출세에 대한 질시와 함께 추사의 거만하고 고집스런 처세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고 유홍준은 그의 저서 “김정호”에서 지적했습니다. 정적인 신위 및 박종훈 등을 무고하게 탄핵하다 추자도로 귀양을 다녀온 윤상도가 10년 후 다시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을 못 이겨 배후가 추사라고 허위로 자백하는 바람에 추사는 아무런 죄도 없이 제주도의 대정으로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도도한 추사가 남들에 허리를 숙일 만큼 자세를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위리안치되어 8년7개월을 살면서 모진 시련을 이겨낸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둘러본 곳은 뭔가 모르게 허름해 보이는 현대적 건물의 제주추사관(濟州秋史館)입니다. 서귀포시대정읍추사로에 자리한 이 박물관은 조선후기의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2010년 5월에 건립되었습니다. 안내전단에 따르면 제주추사관은 추사기념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부국문화재단, 추사동호회 등에서 기증해 주신 ‘예산김정희종가유물일괄’, 추사현판글씨, 추사지인의 펀지 글씨 등이 전시하고 있습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 지하의 전시실로 들어서자 추사의 작품들이 널직널직하게 전시되어 공간감이 느껴진 것이 촘촘하게 전시된 경기도 과천의 추사박물관과 달랐습니다.
지하의 두 전시실을 둘러보는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세한도(歲寒圖)’였습니다. 세한도는 유배 중인 추사에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이곳 유배지에서 59세 때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발문에 나오는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늘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글은 논어에 나오는 명문구입니다. 추사가 진정 뛰어난 것은 2천년의 가르침인 공자의 말씀을 가지고 이미지의 형상화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추사가 한낱 그림쟁이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 아니고 당대 최고의 석학이어서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 속의 소나무를 보고 엉뚱하게도 지리산 장터목의 고사목이 연상됐습니다. 세한도의 소나무가 한겨울에 이르러 진가를 발휘했다면 지리산의 고사목은 죽어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모진 시련을 견뎌낸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리산의 고사목이 맡은 역할은 살아있는 나무들에 생명체는 그 무엇이 되었든 지고지선한 존재라는 것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있으면 생명체로 대접받을 수 있지만 죽고 나면 쓰임새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물건취급을 받는다는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죽은 지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눕지 못하고 서있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전시된 세한도는 진품이 아니고 당대 최고의 추사연구자였던 일본인 후트카 치카시가 1939년 복제하여 만든 한정본 100점 중의 하나였습니다.
제주추사관의 안내전단은 추사가 이곳 유배지에서 8년3개월 동안의 부단한 노력과 성찰로 ‘법고창신’하여 ‘추사체(秋史體)’라는 서예사에 빛나는 가장 큰 업적을 남겼으며,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냈다고 적고 있습니다. 유홍준은 추사를 함부로 논하기 힘든 첫 번째 이유로 추사의 글씨, 이른바 추사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뽑았습니다. 추사체는 매우 개성적인 글씨로 일반적인 아름다움, 평범하고 교과서적인 미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추사의 글씨에서 차라리 괴이함과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추사체는 순미(純美)나 우미(優美)가 아니고 추미(醜美)를 추구한 파격의 아름다움, 개성으로서의 괴(怪)를 나타낸 것을 본질로 하고 또 그 자체가 매력이기 때문이라고 유홍준은 갈파했습니다. 이곳 전시실에서 추사의 서예작품 몇 점을 보았습니다. 해남대둔사의 ‘무량수각(無量壽閣)’, 대정향교에 써준 ‘의문당(疑問堂)’, 그리고 판전(板殿)‘ 등의 현판입니다. 모두가 걸작임에 틀림없을 진데, 서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순미나 우미는 조금 느꼈지만 추미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제주추사관에서 밖으로 나가 바로 옆의 유배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전신상의 동상과 세한도의 나무 두 그루를 연상시키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 잔디밭을 지나 유배지로 들어서자 초가집 몇 채와 돌담, 그리고 당대에 사용되었던 생활용품들이 보였습니다. 위리안치된 추사는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던 것으로 알았는데, 재현된 대로 돌담의 초가집이 여러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다지 엄격하게 통제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추사가 살았던 집 모거리, 제자들을 가르친 집 밖거리, 추사의 제자 중에 꽤 부자로 알려진 강도순의 집 안거리가 한 곳에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아 추사는 위리안치된 모거리에서만 머물렀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대의 생활용품으로 연자방아 말방에, 물을 길어 나르는데 쓰인 물팡과 물허벅, 제주 특유의 대문인 정낭, 돗통시 등이 보였는데 제 눈을 끈 것은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겸비한 돗통시였습니다.
추사가 해배된 것은 유배 8년3개월만인 헌종14년인 1848년12월6일이며 한양으로 올라간 것은 그 이듬해 정월 초이레였습니다. 추사는 3년 후 다시 북청으로 유배됩니다만 이번에는 유배기간이 길지 않아 바로 이듬해 해배되어 과천에서 여생을 보내다 1856년에 이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추사는 규장각대교와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병조참판에 올랐던 당대의 당당한 사대부였습니다. 시와 문장은 물론 실사구시를 추구해 학문에서도 대성한 추사의 생애를 편린이나마 이렇게 전하면서 탐방기를 맺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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