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섬진강 따라걷기

섬진강 따라걷기10(구미교-향가유원지-가덕입구)

시인마뇽 2020. 5. 26. 00:35

섬진강 따라걷기10

 

*종주구간:구미교-향가유원지-가덕입구

*종주일자:2020. 5. 14()

*따라걷기:구미교-구남교-적성교-유촌대교-대풍교

-향가유원지-방산교차로-가덕입구

*종주시간:1124-1815(6시간51)

*동행 :나 홀로

 

 

  이번에 걸은 길은 얼추 잡아도 20Km가 더 되는 먼 길이었습 니다. 모처럼 먼 길을 걸어 얻은 수확은 강가에 세워진 안내판을 통해 두 편의 설화를 전해들은 것입니다. 한편은 개고개 전설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한편은한 효자와 한 다리전설 이야기로 모두가 순창을 배경으로 한 설화입니다. 두 편의 설화에 새길 만한 내용이 들어 있어 여기에 간략히 소개합니다.

 

  첫 번째 설화는 개고개 전설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장인 회갑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과 함께 개를 데리고 적성의 처갓집으로 가던 중 고개를 넘다가 강도를 만나 혈투를 벌입니다. 강도가 떨어트린 칼을 주워달라고 부인을 위협하자, 부인은 두려움에 그만 발로 칼을 강도 쪽으로 밀어줍니다. 강도가 칼을 집어 남편을 찔러 죽이려는 순간, 데리고 간 개가 강도를 급습해 목을 물고 늘어집니다. 강도는 그 칼로 개를 찔러죽이나 모가지가 물려 결국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남편은 이 사실을 장인에 고한 후, 칼을 강도에 발로 밀어준 부인을 처갓집에 홀로 두고 집으로 돌아와 의로운 개를 기리고자 견두비를 세웁니다. 후세 사람들은 그 고개를 개고개로 불렀다 합니다.

 

  두 번째 설화는 한 효자와 다리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순창읍 남계리에 사는 효자 한해오는 실존 인물이라 합니다. 열 살 때 어머니를 잃은 한해오는 밤마다 나갔다가 늦게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의 옷자락이 항상 젖어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겨 하룻밤은 몰래 아버지를 따라나섭니다. 주막의 과부 방에서 나온 아버지가 술이 취한 채 관솔불을 들고 경천 놋다리를 건너다가 강물에 빠지는 것을 본 한해오는 낮에는 일하고 밤마다 경천에 나가 다리를 놓습니다. 이 다리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한다리로 불리고, 한다리 언덕 위에 한효자비가 세워집니다.

 

  설화는 민중들의 입을 통해서 전승되고(구전성, 口傳性), 산문에 의존해 이야기를 전달하며(산문성, 散文性), 민중이 창작하고 즐겨 수용하고(민중성, 民衆性), 사실의 이야기이나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민중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허구화 되어야 하며(虛構性, 허구성),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 같은 성격이나 내용의 설화가 퍼져 있다는(世界性, 세계성) 5개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박태상 등 3인이 공저한 국문학개론에 실려 있습니다. 두 설화를 꼼꼼하게 읽고 나서 설화가 갖고 있는 5개의 특성이 두 설화에도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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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4분 구미교에서 열 번째 섬진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오수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걸어서 20분이 걸렸습니다. 1020분에 오수터미널을 출발하는 순창행 버스에 오른 지 40분이 채 안 지나 도착한 순창 땅 동계에서 점심을 사들었습니다. 택시로 이동해 지난 주 아홉 번째 따라 걷기를 마친 구미교에서 자전거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섬진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구미교 출발 10분 후 구암정(龜巖亭)에 도착했습니다. 순창 구미태생의 유학자 구암(龜巖) 양배(楊培)의 학문과 덕망을 기리기 위해 남원 양씨 후손들이 순조8(1808) 지은 구암정은 정면 3, 측면 2칸 크기로 팔작지붕 기와집의 누정(樓亭)입니다. 조선 연산군 때의 무오(1498), 갑자(1504) 양대 사화로 유림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섬진강 강호에 숨어든 양배(楊培)는 동생 양돈(楊墩)과 함께 적성강 상류 만탄에서 고기를 낚으며 살아갔지만, 그의 자손들은 4대가 내리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내월교를 지나면서 강 건너서 고기를 낚는 사람과 강 가운데 바위에 앉아 시간을 낚고 있는 두루미를 바라보노라니, 양배(楊培)선생이 섬진강으로 숨어든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강줄기를 따라 남진해 1211분에 도착한 어은정(漁隱亭)은 조선의 선조 때 양사형(楊士衡, 1547~1599)이 친구들과 술을 들며 시를 읊었던 정자로 순창군의 적성면 평남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양사형은 구암 양배(楊培)의 증손자로 1588년 급제한 후 영광군수를 역임했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운 분이기도 합니다.

 

  1226분 어은정에서 멀지 않은 오수천과 섬진강의 합수점에서 섬진강을 건넜습니다. 적성면 평남리의 합수점에는 섬진강의 제1지류인 오수천을 건너는 구남교,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우평교와 강바닥에 놓은 보행전용(?) 시멘트다리 등 3개의 다리가 모여 있는데, 제가 건넌 다리는 보행전용 시멘트 다리였습니다. 진안과 임실 땅의 섬진강을 지나면서 보아온 황백색의 달뿌리풀들이 어느새 초록색으로 다 바뀌어 빠른 속도로 흘러내려가는 강물과 함께 이 강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듯했습니다. 강둑길을 걸으며 만난 이런 저런 꽃 중에서 제일 화사한 꽃은 꽃잎이 큰 진홍색의 꽃양귀비였습니다. 다 익은 보리를 탈곡하고 남은 보릿짚들이 머지않아 벼를 이식할 논을 덮고 있어 강둑 아래 들판이 싯누랬습니다.  강둑길에서 내려가 강가 길을 따라 걸으면서 콸콸 흐르는 강물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게되자 자연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강 건너 체게산의 두 봉우리를 있는 출렁다리를 몇 분들이 건너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다시 강둑으로 올라가 자전거도로를 따라 남진해 적성교에 다다른 시각은 1315분이었습니다. 적성교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강둑길로 15분 남짓 걸어 번듯한 2층 양옥의 체게산금돼지권역 그린홈센터를 지났습니다. 곧이어 만난 꽤 넓은 보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 다른 것은 고기들이 올라가도록 만든 휘어진 수로의 어도(?)가 따로 설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유적교를 지나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강둑길을 따라 반시간 넘게 걸어 강바닥에 설치한 화탄세월교 앞에 이르렀습니다. 자전거 길은 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졌습니다.

 

  1446분 유촌대교를 지났습니다. 화탄세월교를 건너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 유촌양수장에 이르렀습니다. 자주색의 갈퀴나물 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둑길은 순창나루터권역커뮤니티센터를 지나 옛날 섬진강 뱃나루터 자리에 놓은 유촌대교로 이어졌습니다. 뱃나루터에 자리한 버들주막이 유명한 것은 4백년 된 아름드리 팽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였습니다. 1974년 유촌교가 건설된 후 사라진 주막집 자리를 팽나무가 지키고 있었는데, 2006-7년 중에 익산국토관리청에서 주관한 섬진강제방공사가 잘 못되어 팽나무가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강변의 섬진강군민체육공원이 말라죽은 팽나무 숲 자리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유촌대교를 지나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제방은 직선길이어서 섬진강하구기점부터 100Km지점에서 찍은 사진에 소실점이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꽤 길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황색의 갈대들이 신록의 주변 초목과 대비되었습니다. 경천과의 합수점에서 오른 쪽으로 15분을 걸어 유풍교를 건너자, 향가유원지와 영산강 자전거길이 좌우로 갈렸습니다.

 

  1626분 향가유원지에 이르렀습니다. 유풍교를 건너 왼쪽 향가유원지로 가는 강둑길로 들어섰습니다. 앞서 만난 경천/섬진강 합수점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해 대풍교를 지났습니다. 이내 올라선 차도 향가로는 향가터널 앞에서 섬진강을 따라 왼쪽으로 갈라졌고, 자전거길은 터널안으로 이어졌습니다. 일제 말에 건설된 철도터널은 해방 후 노선변경으로 마을길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2013년 자전거 길로 조성된 덕분에 이번에 걸어서 384m 길이의 향가터널을 지났는데, 터널 안의 공기가 하도 서늘해 한 여름 최고의 피서지로 손색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터널을 빠져나가 곧바로 다다른 곳이 향가유원지로, 강변풍경과 다리가 아름다워 2014년에 개봉된 영화 피끓는 청춘이 촬영된 곳입니다. 데크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본 섬진강이 다정다감하게 느껴진 것은 구부러진 강 길 덕분일 것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향가유원지에서 따라 걷기를 마치겠다는 생각을 바꾸어 청계교까지 진행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철교 옆의 데크다리를 건넜습니다. 다리를 건너 오른 쪽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다 오른 쪽 강가로 내려가 강변길을 따라 계속 남진했습니다. 언제 다시 햇볕이 숨을 죽인 저녁나절에 이렇게 느긋하게 강바람을 맞으며 강 길을 걸을 수 있으랴 싶어 몇 번이고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시 올라선 자전거 길을 따라걸어 옥과천이 섬진강에 합수되는 생사마을을 지났습니다.

 

  1815분 버스정류장 가덕입구에서 10구간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생사마을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완만하게 반원을 그리며 동쪽으로 흘러내려가는 섬진강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가다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남원이나 곡성으로 가는 버스 편을 여쭤보았으나 차편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방산나루를 지나 곡성군 입면의 금호타이어공장으로 건너가는 새종방교로 올라가 방산교차로에 닿았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주민 몇 분에 남원 가는 버스 편을 다시 물어 저녁 650분에 방산을 출발하는 남원행 버스가 있다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이 버스를 탔다가는 남원 가서 수원 가는 마지막 기차를 놓칠 것 같아 버스타기를 포기했습니다. 청계교를 향해 걸어가다 늦지 않게 곡성 택시를 부를 생각으로 자전거길로 복귀해 북진했습니다.  이내 가덕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택시를 불러 곡성역으로 이동, 1925분발 수원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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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살펴본 두 편의 순창 설화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성은 세계성(世界性)입니다. 전 세계에 유사한 내용의 설화가 퍼져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국내에서는 내용이 유사하거나 모티프(motif)가 비슷한 설화가 몇 곳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개고개 전설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는 강도의 목을 물어 주인을 살려내고 스스로는 죽습니다. 이는 임실의 오수의견 전설에 나오는 개가 술 취해서 불이 난 것을 모르고 잠을 자는 주인을 구하고자 인근 냇가로 가서 온몸을 물로 적신 후 그 적신 물로 불이 주인에 옮겨붙는 것을 막아 주인을 구하고 스스로는 죽는 이야기와 많이 닮았습니다. 두 번째 설화인 홀로 사는 아버지가 밤마다 여인을 만나러 오가는 길이 고되지 않도록 다리를 놓는 다는 것은 한효자의 이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상도 순흥의 청다리 설화는 관청에 호소해 다리를 놓게 하고, 전라도 함평의 학다리 설화는 홀아버지가 홀어머니로 바뀐 것이 다를 뿐 모티프는 다르지 않습니다. 조사를 하지 않아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모티프를 가진 설화는 꽤 많을 것입니다. 장소를 달리하는 여러 곳에서 모티프가 같은 설화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설화란 결국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회자되는 세계화의 씨앗은 아주 오래 전에 설화라는 밭에 뿌려진 것이 아닌 가 싶기도 합니다.

 

 

<종주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