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항동버스정류장
*탐방일자:2020. 6. 25일(목)
*탐방코스:항동버스정류장-도사제방-매화마을-수월정-섬진교
-거북동터널-오사제방-섬진강교-망덕포구-태인도 입구
*탐방시간:12시13분-19시15분(7시간2분)
*동행 :나 홀로
열다섯 번의 나들이로 전장이 223Km인 섬진강의 강줄기 따라 걷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 1월 전북진안의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5개월 만에 전남광양의 태인도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호남 땅은 전북의 진안, 임실, 완주, 정읍, 순창, 남원과 전남의 곡성, 구례와 광양 등 3개시와 6개군입니다. 9개 시군의 땅을 오로지 두발로 걸어 봄이 한반도의 내륙에 상륙하는 관문인 섬진강 하구에 다다른 제 자신이 미덥고 자랑스럽습니다.
도상거리 기준으로 약2,800Km 가량 되는 1대간9정맥을 거의 혼자서 종주한 제가 그 1/10도 안 되는 길이의, 그것도 산줄기가 아니고 강줄기를 따라 걸은 일을 가지고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이 낯간지럽지 않은 것은 섬진강 따라 걷기가 그 나름 의미 있는 일이다 싶어서입니다.
이번 섬진강 강줄기 따라 걷기의 완주가 갖는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산줄기 종주에서 강줄기종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장시간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산줄기를 이어가는 종주산행은 나이 칠십을 넘어서 계속 이어가기에는 무리입니다. 하루 빨리 몸에 부담이 덜 가는 강줄기 따라 걷기로 전환하자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완주한 것입니다. 둘째, 3년 전 70줄에 접어든 후 처음으로 이뤄낸 작은 쾌거라는 것입니다. 2014년 태백산에서 낙동정맥 종주를 마쳐 1대간9정맥을 완주한 이래 추가한 산줄기 종주는 2015년에 마무리한 한강기맥이 전부입니다. 2015년 목포의 유달산에서 시작한 영산기맥 종주는 2017년 함평의 생태관에서 발이 묶여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 정읍의 내장산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것은 작년부터 혼자서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해서입니다. 그런 이유로 요 몇 년 움츠렸던 제가 섬진강 강줄기 따라걷기를 혼자서 해내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셋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를 대비한 최적의 여가활동을 찾아낸 것입니다. 아직도 디지털 문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것은 비대면 생활의 강요입니다. 이제껏 사회생활은 거의 다가 면 대 면으로 이루어졌는데, 앞으로는 그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개는 산은 혼자 오르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것을 선호합니다만, 강줄기를 따라 걷는 일은 두려워할 만한 것이 없어 혼자서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반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15번이나 나들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이런 저런 대면 모임이 취소되어 시간의 여유가 생긴 덕분입니다.
........................................................................................................................
구례구역에서 구례버스터미널까지 택시로 이동해 10시40분발 화개장터행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1시10분 경에 화개장터에 도착해 인근식당에서 사 든 재첩국은 생각보다 부실해 만원의 값어치를 못한 것 같습니다. 일기예보를 믿고 우비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비웃듯 굵은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진다 했는데 이내 굵은 빗줄기로 변해 우산과 1회용 우비를 사들고 하동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11시40분에 화개장터를 출발한 하동 행 버스가 저를 내려준 것은 항동버스정류장을 지나 다음 정류장인 항동마을버스정류장이었습니다. 기사분과의 소통이 잘 안되어 한 정거장을 더 간 덕분에 광양군다압면의 면사무소와 초등학교, 그리고 우체국 등 시골 시가지의 대표적 건물들을 다 보았습니다.
12시13분 항동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12시경에 하차한 항동마을버스정류장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빗길을 10여분 걸어 지난번에 따라 걷기를 마친 항동정류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1회용 우비를 입고 차도아래 시멘트 길을 따라 몇 분을 걷다가 상의 호주머니에 넣은 스마트폰에 물이 들어갈 것 같아 엉성한 우비를 벗어 버리고 견실한 우산을 받쳐 들었습니다. 다압면민광장에 도착해 멀찌감치 떨어진 면사무소를 시계방향으로 빙 돌아가는 제방 길로 들어섰습니다. 동화속에 나올 법한 깜찍해 보이는 다압초등학교를 사진 찍고 861번 도로에 합류해 진초록의 대나무 숲을 지났습니다. 고사버스정류장을 지나 다시 차도에서 벗어나 비를 흠뻑 맞은 넓은 하중도의 습지를 바라보면서 자전거길을 따라 남진했습니다. 다시 합류한 861번 도로를 따라 걸어 청해진가든을 거쳐 흰색으로 페인트를 칠한 녹슨 철제바퀴가 전시된 관동마을의 송정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13시25분 도사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2.3Km의 도사제방 길은 거의 직선으로 햇볕을 가릴 그늘이 없어 간헐적으로 비를 맞고 걷는 것이 오히려 잘됐다 싶었습니다. 제방 아래 나무들이 무성한 강변의 숲은 강둑길과 나란히 이어졌습니다. 광양 쪽 제방 숲, 모래 사장, 강줄기, 습지, 하동 쪽 강둑을 거쳐 그 건너 제법 큰 규모의 하얀 건물에 시선이 멈췄는데, 그 건물이 알프스푸드마켓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매화마을의 수월정(水月亭)에 다다른 시각은 14시15분이었습니다. 조선조 선조 때의 문신이자 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고조부인 정설(鄭渫, 1542-미상)이 1573년에 지은 수월정은 송강 정철이 아름다운 정자와 빼어난 풍광에 반해 “달빛이 비추니 금빛이 출렁이며/ 그림자는 잠겨서 둥근 옥과 같으니/ 물은 달을 얻어 더욱 맑고 / 달은 물을 얻어 더욱 희니 / 곧 후(侯)의 가슴이 맑고 투명한 것과 같다”라는 가사 수월정기를 남긴 곳으로, ‘섬진강유래비’와 ‘수월정 유허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수월정에 올라 섬진강을 내려다보자 강 한 가운데에서 재첩을 채취하는 작은 배들이 몇 척 보였습니다. 봄에 왔다면 매화꽃이 날려 저 아래 강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를 맞고 재첩을 잡는 어부들이 타고 있는 작은 어선을 바라보노라니, 겸제 정선을 불러 고즈넉한 저 풍경을 그려내도록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포구로 향하는 자전거 길은 계속 제방 길로 이어졌습니다.
15시정각 광양의 신원마을과 강 건너 하동읍을 있는 섬진교를 그 밑으로 지났습니다. 수월정을 지나 다시 들어선 제방 길은 신기마을을 오른 쪽으로 끼고 먼발치로 빙 돌아가는 길이어서 꽤 길었습니다.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는데다 구름이 가시지 않은 채 간헐적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비를 맞으며 제방 길을 긴 시간 혼자서 걷노라니 천둥 번개가 요란한 속에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뚫고 혼자서 산봉우리를 오르내렸던 십 수 년 전의 백두대간 종주가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산속이라서 두려웠는데, 이번에는 강변길이어서 안심됐습니다. 엄청 넓은 잔디밭의 광양무인항공교육원을 지나 섬진교에 이르자 다리 아래에서 낚시를 하는 한 분이 참으로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861번 도로에 합류해 커브를 돌자 경전선 철교가 보였고, 답동버스정류장을 지나자 새로운 다리가 또 보였습니다. 강 건너 하동포구백사청송이 일품이어서 여름 한철 피서객들이 엄청 많이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섬진강(하천거리)-하구(기점)부터11Km” 내용의 폴이 세워진 자전거길 간이쉼터에서 햄버그를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는 남은 구간을 이틀에 나누어 마무리 지을 생각에서 하룻밤을 묵을 준비를 해왔습니다. 일기예보와 달리 비가 계속 내려 중간에 쉬지를 못하고 계속 걸은 덕분에 해떨어지기까지 4시간은 더 걸을 수 있는 15시55분 현재 포구까지 남은 거리가 11Km 밖에 안 되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번거롭게 이틀에 나누어 걸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 이번에 아예 망덕포구까지 가기로 생각을 바꾸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17시2분 거북등터널을 지났습니다. 자전거길 간이쉼터를 출발, 진월중도배수펌프장을 거쳐 광양의 금동마을과 하동을 이어주는 아치형의 주홍색 다리인 섬진강대교 밑에 이르기까지 40분가량 빗길을 걸었습니다. 금동배수펌프장을 지나 섬진강에 바짝 붙여 낸 861번도로로 다시 합류했습니다. 도로 아래 좁은 띠의 물가는 검은 색(?)의 얇은 돌들로 채워졌는데 강 건너 하동 쪽은 백사장이 계속되어 서로 대비됐습니다. 거북등터널은 아취형의 에코브리지로 만든 것이어서 길이는 아주 짧았습니다. 돈탁마을, 강변의 MTB 체험장, 우체통 모양의 화장실을 차례로 지나 남해고속도로의 섬진강교에 접근했습니다. 오사제방사계절꽃길제방 길이 끝나는 섬진강끝들마을을 지날 즈음 눈길을 끈 것은 오사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의 진흙 밭이었습니다. 서해안의 갯벌에 바닷물이 드나들며 낸 좁은 수로가 나 있듯이, 여기 섬진강에도 규모는 턱 없이 작지만 진흙 밭의 벌에 고혹적인 물길이 빚어져 있었습니다. 진흙벌과 물길을 바라보노라니 세월이 머무른 흔적이 이리도 정교한가 싶어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17시15분 망덕리에서 태인대교를 건너 태인도 입구에서 ‘섬진강 따라 걷기’ 전부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섬진강교에 이르자 스마트폰의 용량이 다했다며 더 이상 사진이 찍히지 않았습니다. 스마트 폰을 믿고 메모할 것을 가지고 가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 이 강 하구까지 남은 거리를 빠르게 줄여나갈 수 있었습니다. 섬진강 휴게소를 지나자 저만치에 섬들과 화력발전소가 보였습니다. 열 세 해전 섬진강둘레산줄기 환주 차 찾았던 망덕포구에 도착한 시각은 18시40분경으로, 생각보다 일렀습니다. 아직은 어둡지 않아 조금 더 걸어 태인대교를 건널 수 있겠다는데 생각이 미쳐, 주저하지 않고 망덕포구의 데크 길을 발 빠르게 지났습니다. 언덕에 오르자 태인대교가 보였고, 조금 더 걸어 그 아래로 남해의 바닷물이 흐르는 태인대교를 건너 김의 최초 생산지로 알려진 태인도에 발을 들였습니다. 비가 내려서인지 어둠이 감지되어 태인도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섬진강 따라 걷기’를 매듭지었습니다.
태인교를 건너 GS주유소를 찾아들어갔습니다. 혼자서 주유소를 지키는 젊은 종업원이 친절하게 택시를 불러주어 광양의 중마버스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밤10시에 출발하는 동서울터미널행 심야버스로 귀경해 택시를 타고 산본집으로 돌아가느라 이번 마지막 나들이에는 무려 총14만원의 경비가 들었습니다. 이틀에 할 것을 하루로 단축해 비용이 절약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반으로 줄어든 것이어서 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
태인대교를 다시 건너며 망덕산과 두우산에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 두 산은 섬진강을 둘러막는 섬진강둘레산줄기의 출발점과 끝점으로, 이 두 산을 잇는 이 둘레산줄기의 전장은 약630Km에 달합니다. 섬진강둘레산줄기는 섬진강에 물을 대주는 어머니 같은 산줄기입니다. 이 산줄기의 출발점인 해발197m의 망덕산은 2007년 봄에 올랐고, 종점인 강 건너 두우산은 망덕산보다 조금 낮은 산으로 2010년 여름에 올랐다가 섬진강변 고포리로 하산한 적이 있습니다. 섬진강둘레산줄기를 환주하면서 섬진강의 본류를 걸어보겠다고 꿈꾸었는데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입니다.
다음에 강줄기를 따라 걸을 5대 강은 영산강입니다. 영산강은 5대 강 중 길이가 가장 짧은 데다 기온이 높은 전남 지방을 관통해 겨울에 걸어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학위논문을 준비해야 해 섬진강처럼 전력투구해 빨리 끝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늦어도 내년 겨울 안으로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60대까지는 산줄기를 이어 걷는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했습니다. 70대 들어 산줄기를 강줄기로 바꿔가는 것은 체력의 감퇴를 고려해서입니다. 이번 ‘섬진강 따라 걷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하고나자 나머지 4대강도 도전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제게 걸을 공간을 내준 섬진강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 강에 계속해 물을 대주어 강이 활력을 잃지 않도록 보살펴준 섬진강둘레산줄기에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몇 구간을 같이 걸은 원영환, 이상훈 대학동문에도 같은 뜻을 전합니다. 또 223km를 걷는 동안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고 묵묵히 걸어준 제 두 다리도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걷기사진>
'XI.강줄기 따라걷기 > 섬진강 따라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강 따라걷기14(섬진강어류생태관-남도대교-항동버스정류장) (0) | 2020.07.06 |
---|---|
섬진강 따라 걷기13(구례구역-사성암-섬진강어류생태관) (0) | 2020.06.27 |
섬진강 따라걷기12(고달교-압록유원지-구례구역) (0) | 2020.06.07 |
섬진강 따라걷기11(가덕입구-신기철교-고달교) (0) | 2020.06.04 |
섬진강 따라걷기10(구미교-향가유원지-가덕입구) (0) | 2020.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