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영산강 따라 걷기

영산강 따라걷기1(용소-용마루길-담양댐)

시인마뇽 2020. 12. 11. 10:29

*탐방구간: 용소-용마루길-담양댐

*탐방일자: 2020. 12. 1()

*탐방코스:가마골생태공원관리사무소-출렁다리-용소-비녀실정류장

-용마루길-추월산정류장-무릉도원터널-담양댐

*탐방시간: 1022-1658((6시간36)

*동행  : 나홀로

 

 

  “한국인의 삶을 담는 시간은 역사요, 공간은 국토이다라는 박양호 전 국토연구원장의 지적은 곱씹어 새길 만합니다. 그가 우리 국토공간의 특성을 동해, 남해와 서해의 3()와 강, , 섬이 많다는 3()를 합한 ‘3() 3()의 국토로 요약한 것은 바다, , 산을 하나의 틀 속에서 한국인의 삶을 구성하는 공간적 원형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최남선, 이은상, 안재홍 선생등이 주도한 국토순례도 이러한 인식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국토순례가 산과 강에 집중되어 바다에 이르지 못한 것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지만, 국토순례를 담은 기행문이 일간신문과 잡지 등 대중매체에 연재되어 당대 한국인의 국토인식제고에 기여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합니다.

 

 

  국내 명산은 저도 웬만큼 탐방했다고 자부합니다. 백두대간과 9정맥, 한강기맥과 15개의 지맥 등 굵직한 산줄기를 종주했고, 개별 산으로는 100명산 외에도 지역의 명산 370여 산을 더 찾아 올랐으며, 이 모든 탐방을 성실히 기록해 산행후기로 남겼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계곡을 따라 걸을 때도 잦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것은 산은 강에 물을 대는 강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산이 강에 물을 댈 수 있는 것은 산 자체가 빗물을 저장하는 거대한 수장고(水藏庫)여서 가능합니다.

 

 

  “우리 국토의 원형적 구성요소 중에서 강은 산과 바다를 연결하는 조화적 실체이자 그 자체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는 박양호님의 언급이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올 들어 15회에 걸쳐 섬진강의 강줄기를 빼놓지 않고 걸었기 때문입니다. 박양호님이 공편한 강과 한국인의 삶에 실린 프롤로그 : 강과 한국인의 삶에서 강은 물로서, 자연으로서, 그리고 문화로서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면서 한국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또한 한국인의 삶이 다시 강에 영향을 주었다. 강과 한국인의 삶은 그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특유의 교호메커니즘을 지녀왔다. 강과 한국인의 삶은 굽이굽이 얽혀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제가 영산강 강줄기를 따라 걷기 시작한 것도 이 강이 남도민의 삶과 어떻게 굽이굽이 얽혀 있는지 보다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영산강(榮山江)은 전남 담양의 용추봉에서 발원해 영산강 하구언(河口堰)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을 이릅니다. 영산강은 남한에서 낙동강, 한강, 금강, 섬진강 다음으로 긴 강이지만 강 길이는150Km에 불과해 섬진강의 반가량 밖에 안 되는 비교적 짧은 강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 강이 남도의 젖줄로 기능해왔고, 지금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서입니다. 남도의 젖줄이 영산강(榮山江)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밝힌 바와 같이 고려 말 외적들의 노략질을 피해 나주의 이 강가에 집단으로 피란해온 흑산도 사람들이 이곳을 그들 고향의 이름을 따 영산현(榮山縣)이라 불렀기 때문이라 합니다. 조진상님은 강과 한국인의 삶에 실린 글 영산강에서 구한말 개항과 더불어 영산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강의 이름도 영산강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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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65분에 광명역을 출발하는 KTX에 몸을 실은 지 시간 반 가량 지나 741분 광주송정역에 도착했습니다. 송정역에서 12천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광천터미널로 가서 담양 가는 시외버스 시간을 확인해본즉, 930분까지 기다려야해 했습니다. 인근의 시내버스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내 도착한 311번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광천터미널을 출발한 311번 시내버스가 서방시장을 지나 담양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930분경이었습니다. 광주송정역에서 19번 버스를 타고가다 서방시장 앞에서 311번 버스로 갈아타면 택시비를 들이지 않고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것을 안 것은 담양에 도착하고 나서였습니다. 담양터미널에서 가마골까지는 탐방시간을 벌고자 28천원을 들여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1022분 가마골생태공원관리사무소에서 영산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10분여 걸어올라 다다른 용소폭포 앞에는 영산강의 발원지를 알리는 영산강 시원 용소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용소폭포 위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는 것은 용소가 영산강의 발원지일 수 없음을 일러주는 것이어서 발원지를 찾고자 용소폭포 위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올랐습니다. 계곡 옆에 낸 넓은 길을 15분여 걸어올라 중룡교를 지나자 더 이상은 위험해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용소폭포로 되 내려가다 왼쪽 산등성의 출렁다리로 올라가 그 아래 용소폭포와 계곡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121분 영산강의 발원지인 용소를 출발했습니다. 출렁다리에서 내려가 용소폭포를 사진 찍은 후 영산강 따라 걷기의 첫 구간의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가마골에 냉기가 서린 것은 심산유곡이라 불릴 만큼 계곡이 깊어서였습니다. 계곡을 빠져나와 햇볕을 만나자 온 몸을 감돌았던 냉기가 가셔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매표소를 지나자 계곡 가에 연이어 자리한 음식점들이 썰렁해 보인 것은 아마도 가마골 계곡을 찾는 분들은 대개가 한 여름의 피서객이 주이기 때문이겠다 싶었습니다. 용추사 갈림길을 막 지나 차도를 버리고 오른 쪽 천변에 낸 시멘트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갈대가 가득 들어선 폭이 좁은 영산강 상류의 하천을 지나 왼쪽으로 호남정맥 종주 때 지났던 순창의 오정자재 길이 갈리는 가마골입구삼거리에 이른 시각이 1215분이었습니다. 도로변 평상에 앉아 점심식사를 한 후 삼거리 오른 쪽의 용연1교를 건너 792번도로를 따라 서진했습니다.

 

 

  1258분 비녀실정류장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용연1교를 건너 792번 차도를 따라 걷느라 왼쪽 산 아래로 흐르는 영산강과 멀어졌다 했는데 도래수마을을 지나 다시 영산강과 만났습니다. 담양댐 축조로 저수된 새파란 영산강의 물을 내려다보며 걸어 다다른 비녀실정류장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간 것은 택시가사가 일러준 담양호 둘레길을 걷고자 해서였습니다. 시멘트차도로 물을 건너 왼쪽으로 난 넓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걸으면서 흙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수시로 지나다녀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남쪽으로 진행하다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담양호 수변에 이르자 덤프트럭에 흙을 퍼 담아주는 굴착기 한 대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바로 옆에 꽤 넓게 자리한 담양 국씨 묘원을  사진 찍고자 올라가 풍광이 일품인 담양호를 내려다보면서 이만하면 가히 명당 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묘지에서 내려가 되올라간 삼거리에서 임도를 따라 서진해 호변에 낸 용마루길 안내판을 보자 제 길로 걸어왔다 싶어 비로소 안도했습니다.

 

 

  1340분 용마루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용마루길이란 여기 옛마을터(?)에서 담양호국민관광단지를 이어주는 전장3.9Km의 호변산책로로, 담양호의 수려한 전경과 추월산, 금성산성 등 주변 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관광명소입니다. 용마루길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단연 호숫가에 바짝 붙여 낸 데크 길입니다. 이 길은 곳곳에 쉼터인 전망대가 있어 힘들면 쉬어갈 수 있고, 쉬면서 숨죽은 듯 잔잔한 담양호와 강 건너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을 차분히 카메라에 옮겨 담을 수 있습니다. 담양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나무입니다. 푸르렀던 나뭇잎이 다 떨어진 회색의 겨울철에 용마루길을 걸으며 푸른 대나무 숲길을 지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걷고 있는 곳이 대나무로 이름 난 담양의 호반길이어서 가능했습니다. 용마루 길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데다 곳곳에 쉼터와 화장실이 있어서인지 쉬엄쉬엄 산책을 즐기는 연세든 노부부들도 여러 분 보았습니다.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가 한 몸이 된 연리지를 사진 찍은 후 7-8분을 더 걸어 마지막 전망대에서 머무르며 저녁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담양호의 고즈넉한 정경을 완상했습니다. 데크 다리 목교를 건너면서 정면으로 올려다본 우뚝 솟은 추월산이 엄청 반가웠던 것은 2008년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 힘들게 오른 기억이 생생해서였습니다.

 

 

  용마루 길가에 자리한 연리지나무가 다른 곳의 연리지와 확실히 구별되는 것은 종이 다른 두 나무가 만나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왼쪽의 갈참나무와 오른 쪽의 상수리나무는 참나무과로 같은 조상에서 분화되어 유전적으로 유연관계가 가까운 같은 과이지만 서로 종이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줄기가 두 번이나 합체가 된데다 갈참나무가지가 상수리나무의 몸을 뚫고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양을 연출한 이곳의 연리지는 희귀한 사례라고 안내판은 적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경기도 성남의 둘레길과 전북의 금산사인근에서 만나 본 연리지는 같은 과의 두 나무가 만나 한 몸을 이룬 연리지였지 과가 다른 두 나무의 연리지는 아니었습니다. 땅에 뿌리박은 연리지와 찰딱 같은 부부의 정을 겨룰 만한 것은 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가 서로 하나 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하늘을 날 수 없는 비익조일 것입니다. 이 새는 실재하지 않고 오직 전설상으로만 존재하는 새여서 연리지처럼 다른 종의 새들과 눈 및 날개를 합쳐 날 수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연리지와 비익조의 합체가 빚어낸 러브스토리는 각고의 세월을 이겨낸 결실이어서 사람들이 살아생전에 이루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1516분 추월산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데크 다리 목교를 건너 다다른 추월산 정류장부터는 호반 길이 따로 나 있지 않아 차도를 따라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지난 봄 섬진강 옥정호의 호반 길을 걸을 때도 경험한 바여서 산을 넘는 것이 귀찮지 않았습니다. 굽이진 29번도로를 따라올라 추월산무릉도원터널을 막 통과하자 바로 앞에 벤치가 있는 조촐한 쉼터가 보였습니다. 이 쉼터에서 커피를 따라 마시며 조망한 저녁나절의 고즈넉한 담양호는 저보다 더 높은 곳에서 이 호수를 내려다보는 위엄이 느껴지는 큰 바위의 추월산과 대비되었습니다. 저 만치로 보이는 담양댐을 사진 찍고 계속 내려가 산과 호수팬션(?) 앞에 이른 시각은 1620분으로 저녁기운이 역력했습니다. 몇 분 후 다다른 도림리정류장 앞에서 머지않아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텐데 이쯤해서 이번 탐방을 마쳐야하지 않나 싶어 지도를 꺼내 보았더니 용면소재지나 담양댐 어디든 부지런히 걸으면 반시간이면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담양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용면소재지로 가야 하나, 그리하면 다음번에 담양댐을 찾아가야합니다. 이번에 담양댐까지 진행할 생각에서 담양댐에서 담양읍내까지는 택시로 이동하기로 하고 담양댐으로 향했습니다.

 

 

  1658분 담양댐에 도착해 영산강 따라 걷기’ 1구간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도림리정류장에서 몇 분을 걸어올라 도림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호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해 갈 길이 급했지만 길 아래 담양호가 석양을 맞아 빚어내는 저녁 풍광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랴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에 옮겨 실기에 바빴습니다. 담양호에 못지 않은 것은 전신으로 석양을 맞아 더욱 장엄해 보이는 추월산의 깎아지른 거대한 암벽입니다. 담양댐이 조선조 초기에 축조되었다면 송강 정철 같은 호남의 문인들이 시를 짓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어둠보다 빨리 담양댐에 도착해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의 담양호가 내보여준 저녁 정경을 다시 한 번 완상한 후 1만3천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담양읍내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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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댐은 농업진흥공사가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19769월 완공한 댐입니다. 이 댐의 목적이 용수원개발, 관개배수, 농지기반조성과 영농근대화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댐은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 분명합니다. 높이64m, 344m의 이 댐이 저수할 수 있는 용량은 약67백만톤으로 다목적 댐인 섬진강댐 약466백만톤의 16%이며, 소양강댐 약2,900백만톤의 2%에 불과합니다. 담양댐의 저수용량이 다른 댐보다 적은 것은 이 댐이 영산강의 발원지와 너무 가까운 곳에 건설되어 담수할 물이 충분치 못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이 댐 바로 아래가 곡창지대인 담양벌이어서 농경지를 침수시키면서까지 댐을 아래에 건설할 수 없어 부득이 이 곳에 설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만 실제로 그러한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섬진강댐은 저수량의 일부를 산에 터널을 뚫어 다른 유역의 동진강에 공급합니다만, 담양댐의 물은 오로지 영산강 유역의 농경지에만 공급합니다. 이 댐의 저수용량 67백만톤은 그 아래 6,245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에 충분한 양이라 합니다.

 

  다음 영산강 탐방은 아침나절에 여기 담양댐에서 시작합니다. 마지막 저녁 햇살마저 사라질 순간인 저녁 끝무렵의 담양호와 햇살 가득한 아침나절의 담양호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대비해볼 생각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