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증암천합수점-첨단대교-새로나추모관
*탐방일자: 2021. 2. 8일(월)
*탐방코스:증암천합수점-담양군/광주광역시경계점-영산교-지야교
-첨단대교-산동교-새로나추모관
*탐방시간: 13시38분-18시4분(4시간26분)
*동행 : 나홀로
경기도 파주 태생인 제가 호남의 제1도시인 광주와 인연을 맺은 지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대학 2학년생으로 여름 방학 때 고교 동창 몇이서 제주도를 가는 길에 광주를 들른 것이 1969년의 일이니 반세기가 더 지났습니다. 광주역에서 목포로 가는 기차를 탄 7월26일이 마침 광주역이 개관하는 날이어서 축제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광주에 사는 산형(山兄)들의 초청으로 다음해 2월 서울친구와 함께 광주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려 예정했던 형들과의 무등산 산행이 무산되자 한 나절을 금남로의 엘리트다방에 죽쳐 앉아 사이먼 가펑클의 “스카보로우 페어” 등 당시 인기 팝송들을 원 없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제가 모 회사에서 1990년대 중반에 2년 반을 충호남영업부장으로 일할 때는 거의 매주 광주를 방문했습니다. 이번에 제 탐방을 도와준 양사장님은 그때 함께 일한 회사동료분입니다. 조선조 중종 때 개혁을 주도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 때 역풍을 맞아 죽게되자, 조선전기 문신으로 조광조의 제자인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1505-1557)는 사직하고 낙향해 담양에 정원 소쇄원을 지었다는 것은 3구간 탐방기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제게 점심과 저녁 식사자리를 마련해주고 차편을 제공해준 양사장님은 바로 그 분의 후손입니다. 1993년 가을 위도에서 서해페리호가 침몰해 전북지역 대리점사장 여러분을 한꺼번에 잃는 참변을 같이 겪었고, 그 후에도 꾸준히 만나 우정을 쌓아왔기에 저희 둘의 인연은 남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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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38분 증암천/영산강 합수점을 출발했습니다. 광주송정역에서 여기 합수점까지는 고맙게도 양사장께서 차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자전거길 쉼터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후 합수점의 시멘트 다리를 건너 용강제 제방길로 올라섰습니다. 광주시내를 향해 남서쪽으로 진행하면서 내려다 본 영산강 천변이 참으로 넓고 나무들도 많다 했는데, 담양하천습지였습니다.
'담양하천습지보호지역’ 안내문에 따르면 담양하천습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하천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전남 담양군의 대정면, 수복면, 봉산면과 광주시북구 용강동 일원에 형성된 이 습지는 그 넓이가 약30만평(0.981㎢)에 이릅니다. 작년에 섬진강을 탐방하면서 알게 된 것은 대개의 습지가 합수점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지천의 물이 본류와 만나 유속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지천과 함께 흘러내려온 토사들이 상당량 합수점 부근에 쌓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영산강을 탐방하며 지천과의 합수점을 지날 때마다 습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증암천 합수점을 막 지나 비로소 담양하천습지가 나타나 반가웠습니다. 영산강 상류의 조류집단 서식지로 풍부한 생물다양성이 보존되어 있는 담양하천습지는 하천제방 내 대규모 대나무군락지가 분포하고, 자연형 하천형태를 유지하며, 하천습지에서는 다양한 목본류 식생이 밀생하는 등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어 멸종 위기인 수달, 삵, 매, 큰기러기, 가창오리, 흰목물떼새, 구렁이, 맹꽁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고 환경부와 담양군 공동으로 세운 안내판에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대나무 숲을 제외하고는 거의다가 누런색의 달 뿌리와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뿐이어서 겨울철의 하천습지에서는 전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이 길을 지났더라면 작년 여름 섬진강을 따라 걸을 때처럼 하천습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겨울철이라서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제방 길을 걷기 시작한지 반시간이 지나 광주광역시로 들어섰습니다. 영산교를 지나자 강 건너 천변에 짙푸른 대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대나무 숲이 엄청 넓어 보였습니다. 전동식 게이트펌프가 설치된 입암1배수문을 지나 천변 길로 내려섰습니다.
14시48분 담양대나무숲 인증센터를 지났습니다. 제방에서 내려가 천변 길을 걸으며 작년 여름 대홍수 때 수마가 할퀴고 간 현장을 보았습니다. 담양대나무숲 인증센터에 이르러 강물 위에 설치한 데크 다리를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 놓은 것은 데크 길 곳곳에서 다리가 부서져 있어서였습니다. 용산교를 지나자 계곡이나 해협에 적합한 다리 구조로 반원형의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어 심미성이 매우 뛰어난 주홍색의 아치교가 보였습니다. 멋들어진 외관을 보고 저 다리가 첨단대교가 아닐까 했는데 카카오맵으로 확인해본 즉 지야대교였습니다. 지야대교를 막 지나 올라선 제방에 월산보와 자야대교를 사진 찍기에 딱 좋은 자야팔각정이 자리하고 있어 잠시 쉬어갔습니다. 다시 천변 길로 내려가 만난 습지 역시 나무들이 한 방향으로 누워있어 작년 여름 대홍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강 건너로 광주과학기술진흥원 건물이 보이는 용두교를 지난 시각은 15시53분으로, 이 다리에서 약25Km를 더 걸으면 나주시에 이르게 됩니다.
16시26분 첨단대교를 지났습니다. 용두교에서 10분 거리의 북광주골프클럽을 지나 천변 길을 걸으면서 이제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먼발치로 병풍산이 보였는데, 추월산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변길가에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들을 보자 셀리의 시 「서풍부(西風賦, To the west wind)」 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The trumpet of prophecy! O Wind, 예언의 나팔이 되라! 오 바람이여,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
외관의 아름다움이 지야대교에 훨씬 못 미치는 첨단대교에 이르렀습니다. 영산강하구둑까지 98Km를 남겨둔 전장 350m의 첨단대교는 외관이 평범해 이름과는 달리 첨단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다리를 막 지나 거징이쉼터에 이르자 광활한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했습니다. 강가로 다가가 강 건너 아파트를 사진 찍으면서 서울의 한강과 다르다 싶었던 것은 강둑이 시멘트 둑이 아니라 흙둑이었고, 강 건너 강둑에 자동차도로가 나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해넘이 시간이 가까워지자 강바람이 차가워 손이 곱았던 것은 이 바람이 봄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예언의 나팔 서풍, 즉 겨울바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징이쉼터를 지나 강줄기와 가까이 낸 천변 길을 걸었습니다. 방정맞도록 새파란 하늘에 도전이라도 하듯 고개를 바짝 들고 곧추 서 있는 강변의 갈대 모습이 하도 도도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이번에 광산대교까지 진행해야 다음번에 승천보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천변 길로 복귀해 발걸음을 빨리 했습니다. 첨단대교를 지나 산월교에 다다른 시각은 16시48분입니다.
18시4분 새로나추모관 입구 풍월정(좌) 인증센터에서 네 번째 구간의 섬진강 탐방을 마쳤습니다. 첨단대교에서 20분 남짓 걸어 다다른 산월교는 전장이 450m로 제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영산강의 다리보다 길었습니다. 산월교를 지나 올려다 본 왼쪽 강둑 너머 돔(?) 모양의 건물은 외관이 참으로 독특했지만, 강변 풍경과는 그런대로 어울려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영산교에 이르자 강변에 조성한 북구종합운동장과 강 건너 생태습지가 모습을 내보였습니다. 축구장 2면, 야구장 3면과 족구장 2면이 들어선 종합운동장은 오전6시부터 일몰시까지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장450m의 산동교를 지나 ‘영산강색채경관조성사업’으로 식재한 유채꽃밭을 보고 놀란 것은 긴 겨울을 잘 이겨낸 유채꽃들이 파릇파릇 돋아나 엄청 넓은 강변 을 덮고 있어서였습니다. 종합운동장과 생태습지. 그리고 유채꽃밭은 사람들의 손길이 간 곳이지 자연 그대로 놓아둔 곳들이 아닙니다. 이는 도시의 강들은 관리되어야 인간과 수서생물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닌가 합니다. 해가 지면서 햇빛이 눈높이로 비춰와 앞을 똑바로 보고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선글라스를 가져왔다면 요긴하게 쓸 텐데 생각하다가 코로나로 마스크를 착용해 늘 끼는 안경도 김이 서려 벗고 다니는데, 선글라스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었습니다. 강둑길로 올라가 서쪽으로 진행해 철교 앞에 이르자 길이 막혀 더 이상 가지 못했습니다. 근처 새로나추모관 입구 정자로 돌아가 4구간 탐방을 종료하고 몇 분을 기다렸다가 양사장님 차에 올라 송정역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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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5월의 광주혁명은 문명의 20세기가 이 땅에서 겪은 마지막 반문명적인 권력의 폭거에 대항해 일어났던 광주학생들의 자발적인 시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광주시위를 지켜본 빛고을 광주의 어머니들은 가슴속이 새 까맣게 타들어가 숯덩이로 변했어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서울에서 회사를 다닌 저는 속으로는 분노하면서 겉으로 아무 것도 못 보았다는 듯이 빛고을의 고통을 외면했기에, 아직도 저는 광주를 지날 때면 마음 한 구석에 부채 의식이 남아 있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혼자서 광주시내를 관통하는 영산강의 강줄기를 따라 걸으며 생각한 것은 그동안 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광주시민들에 대한 부채 의식을 이제는 덜어내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의 광주시위는 광주혁명으로 재평가되었고, 그에 따른 피해자보상도 웬만큼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국회에서 광주혁명에 손상을 줄만한 어떤 논의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법제화해 시행하는 마당에 40여년 전의 일을 가지고 제가 더 이상 같이 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은 광주시민을 과거지사(過去之事)에 묶어두고 오랜 세월이 흘러 치유한 아픈 기억들을 되살리는 것이 아닌 가 해서입니다. 영산강 탐방을 끝내기 전에 그동안 딱 한번 참배했던 5 . 18 광주묘역을 다시 찾아가 희생된 분들의 영령을 위로드린 후 부채의식을 떨어내겠음을 고하고자 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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