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영산강 따라 걷기

영산강 따라 걷기2(담양댐-관방제림-담양교)

시인마뇽 2021. 2. 8. 00:03

*탐방구간: 담양댐-관방제림-담양교

*탐방일자: 2021. 1. 20()

*탐방코스:담양댐-한전담양변전소-담양비행장-금월교-관방제림

             -죽녹원-담양교-담양버스터미널

*탐방시간: 1038-1631((5시간53)

*동행 : 나홀로

 

 

  치산치수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석학으로 불릴만한 공자와 맹자가 공히 우임금의 치수를 언급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가 우임금의 치수에 대해 말씀한 것은 중국의 요순 때부터 주나라까지의 정사(政事)에 관한 문서를 수집해서 편찬한 서경(書經)하서(夏書)편에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아래 글은 맹자가 맹자(孟子)등문공장구 상(滕文公章句 上편에서 언급한 부분을 우재호님이 번역한 을유문화사 간행 맹자(孟子)에서 인용해 옮겨놓은 것입니다.

 

우임금이 또 아홉 개의 하천을 터 통하게 하고, 또 제수와 탑수를 치수하여 바다로 흘러들게 하며, 여수와 한수를 트고회수와 사수를 소통시켜 장강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니, 그 후에 비로소 중국은 오곡을 심어 먹는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禹流九河 瀹濟漯而注諸海 決汝漢 排淮泗而注之江 然後中國可得而食也)

 

 

  조선이 말기에 급격히 국력이 쇠퇴한 데는 가뭄과 홍수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조선이 치산치수를 제대로 못한 것은 조정과 지방 수령 모두 다 무능하고 부패해서였습니다. 1877년과 1878년은 가뭄이 극심했고 1879년에는 삼남지방에 홍수가 덮쳤습니다. 잇따른 자연재해와 조정의 부패로 재정은 고갈되고 정부 창고들이 비어가 군인들에게도 배급이 중단되었습니다. 급기야는 1882년 임오군란이 터져 조선은 멸망의 길로 치달았고, 1910년 일본제국에 합병되었습니다. 조선의 멸망에는 공맹의 가르침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공자와 맹자가 중시한 치산치수를 소홀히 해 자초한 면도 있습니다.

 

 

  담양 시내를 지나는 영산강의 강줄기를 따라 걷는 길에 담양관방제림(潭陽官防堤林)을 들러 조선시대 이 지방 수령들이 기울인 치수 노력의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1648(조선 인조26) 담양 부사 성이성(成以性)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만든 담양관방제림은 1854(조선 철종5) 부사 황종림(黃鍾林) 이 연간 3만여 명을 동원하여 제방과 숲을 정비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인공림으로 조성한 담양관방제림은 우리 선조들의 자연재해를 막는 지혜를 알 수 있는 역사 및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

 

 

  1038분 담양댐을 출발했습니다. 담양터미널을 945분에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놓쳐 택시를 타고 담양댐으로 이동했 습니다. 50일 만에 다시 찾은 담양호는 눈 덮인 추월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인도를 아이젠을 차고 걸어가다가 이내 차도로 내려선 것은 눈이 녹아 물기가 등산화에 스며들까 걱정되어서였습니다. 오감서편의점 옆 자전거길종주 담양댐길인증쎈터를 막 지나 광주시까지 24km 남았음을 알리는 '담양No.48'의 표지판을 사진 찍은 후 하얀 눈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제방 길을 따라 남진했습니다. 하얀 눈이 덮인 논 뜰은 남쪽 멀리 펼쳐져 참으로 오랜만에 설원(雪原)을 보는 듯 했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빠른 속도로 눈이 녹기 시작해 아이젠을 벗었습니다.

 

 

  1210분 한국전력공사 담양변전소 인근의 간이쉼터에서 햄버그를 꺼내 든 후 오후 탐방을 이어갔습니다. 눈이 다 녹아 제방의 가로수가 투영된 영산강의 물길과 아직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새하얀 천변이 빚어내는 뚜렷한 색 대비는 생각보다 날씨가 푹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지붕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시골마을을 카메라에 옮겨 담는 동안 아련한 향수(鄕愁)가 느껴진 것은 나이가 한 살 더해져서일 것입니다. 젖소를 키우는 축사와 석현교를 차례로 지나 담양비행장 앞에 이르자 경비행기 몇 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담양읍내 쪽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걷다가 왼쪽 천변의 푸르른 대나무숲을 들러 잠시 힐링도 했습니다. 다시 제방 길로 올라가 전원팬션 강과들과 대곡교를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징검다리를 건넌 것은 건너편 정자에서 쉬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1353분 담양이 자랑하는 역사적 명소인 담양관방제림에 들어섰습니다. 다리 건너 정자가 생각보다 청결하지 못해 쉬어가지 않고 바로 징검다리를 다시 건너 제방 길로 올라섰습니다.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제방 길을 따라 진행해 금월교에 다다른 시각은 134분으로, 바로 옆 버스정류장에서 커피 한잔을 따라 마시면서 1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금월2배수통문 안내판을 보고 제가 걷고 있는 제방이 금월방수제임을 알았습니다. 이 제방 길을 따라 남진하면서 강 건너 메타쎄콰이어 가로수를 사진 찍었습니다. 어도가 나 있는 보를 지나 비닐하우스 단지가 가까워지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구성진 트롯 노래가 들렸습니다. 학동교를 건넌 후 오른 쪽으로 꺾어 제방길로 들어서자 두 아름은 족히 될 법한 거목들이 즐비해 여기가 바로 유서 깊은 담양관방제림(潭陽官防堤林)임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의 관방제(官防堤)는 전장 2Km의 제방으로,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음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 약 42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합니다. 관방제 오른 쪽 아래 넓은 천변에는 제법 큰 운동장이 조성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는 소공원이 들어서 연못도 보였습니다. 관방제림이 끝나는 곳에서 향교교를 건넌 시각은 1430분이었습니다.

 

 

  1614분 담양교 앞에서 제2구간의 영산강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향교교를 건너 들른 곳은 죽녹원(竹綠園)으로, 1432분에서 1552분까지 1시간20분 동안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온 산이 거의 다 대나무 밭인 죽녹원은 넓이가 약94천평 가량 되는 대나무 공원입니다. 8가지 주제의 산책로가 나 있다는데, 눈이 녹지 않아서인지 출입이 금지된 코스가 여럿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이처럼 울창한 대나무 숲이 이토록 넓게 자리 잡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숲 속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들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이 겨울에 독야청청해서입니다. 대나무 숲에 바람 이는 소리를 듣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옛날 옛적 한 백성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 곳이 대나무 숲이었다는데, 그 소리가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을 타고 널리 퍼져 소리친 백성이 엄청 마음을 졸였을 것 같습니다. 여러 길을 두루 돌아본 후 죽녹원을 빠져나와 다시 향교교를 건넜습니다.  국수집들이 들어선 제방 길을 따라 걸어 만선교를 지난 후 천변길로 내려선 것은 꽤 큰 보를 가까이에서 사진찍고 싶어서였습니다. 영산강하구둑까지 119Km를 남겨 놓은 지점을 막 지나 다다른 담양교에서 영산강 따라 걷기를 마치고 15분가량 걸어 담양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1651분이었습니다.

 

 

....................................................................................................................................

 

 

  문명시대의 강은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자연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도시를 지나는 강은 관리를 하지 않으면 홍수가 나면 범람하기 일쑤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양천이 한강에 합수되는 강서 쪽의 목동과 탄천이 한강과 만나는 강동 쪽의 풍납동이 상습침수지역에서 벗어난 것은 한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나서입니다. 안양천과 탄천의 천변길을 산책할 수 있는 것도 한강의 지류인 이 하천들이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한 덕분입니다. 생활하수와 공장폐수의 방류로 악취가 코를 찔러 천변길을 따라 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안양천과 탄천을 관리하지 않고 자연그대로 놓아두었다면 목동과 풍납동의 침수는 물론 하천오염으로 건강한 생태계는 벌써 망가졌을 것입니다. 수 백 년 전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홍수피해를 극복한 담양의 관방제림이 강을 잘 다스린 표본이다 싶어 사족을 달았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