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한강 따라 걷기

한강 따라 걷기2(상사미교차로-광동댐-하장중·고등학교)

시인마뇽 2022. 4. 5. 19:20

*탐방구간: 상사미교차로-광동댐-하장중·고등학교

*탐방일자: 2022. 3. 28()

*탐방코스: 상사미교차로-사조보건잔료소-하사미마을회관-조탄마을

-숙암삼거리-광동댐-하장면면사무소소재지-하장중·고교

*탐방시간:1220-1658(4시간38)

*동행 :서울사대 원영환/이상훈 동문, 서울공대 이규성동문

 

 

  오래된 일을 정확히 기억(記憶)한다는 것은 젊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기에 몇 해 전부터는 설사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낙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칠십 줄에 들어선 지도 어언 5년이 다 되가는데 젊어서처럼 기억을 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싶어 요즘에는 더러 까먹더라도 그러려니 합니다.

 

  제게 자랑할 만한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처음 가본 데는 다녀오고 나서 반드시 글로 기록(記錄)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기억의 쇠퇴를 기록이 보완해주기에 후기(後記)를 남기는 것은 필요하고도 도움도 되는 일이어서 새로운 곳을 다녀오면 빼놓지 않고 후기를 남겼는데, 어언 20년이 다 되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에 탐방한 두 번째 구간의 한강 따라 걷기가 의미 있는 것은 오른 쪽 위 백두대간과 나란한 방향으로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한강의 본류인 골지천은 상사미교차로-예수원입구-귀네미골입구-숙암리를 거쳐 광동댐으로 흘러내려갔는데 오른 쪽 위 백두대간은 건의령-구부시령-덕항산-고냉지채소재배단지-댓재 순으로 북쪽을 향해 골지천과 나란한 방향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건의령에서 댓재에 이르는 백두대간 길은 200510월에 9시간33분이 걸려 걸은 적이 있고, 덕항산은 따로 두 번을 더 올라 갔습니다. 그때마다 산행을 상세히 기록해 후기를 남겼음은 물론입니다.

 

  동행한 이상훈 동문이 들르자고 한 예수원과, 원영환동문과 이야기를 나눈 귀네미골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는 바로 기억해내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그때 산행기를 써둔 것이 기억나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원은 외나무골다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백두대간의 구부시령에 이르게 됩니다. 귀네미골 마을은 1986년 광동댐 시공에 앞서 주민들을 이주시킨 곳으로 그 위 고랭지채소재배단지 위로 대간 길이 나 있습니다.

 

  이번 한강 탐방을 통해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그동안 꼼꼼히 기록해온 제가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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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평화누리길 탐방으로 경기도 땅의 임진강 따라 걷기를 마친 고교동문 이규성교수는 이번에 한강탐방을 같이해 18년 전 한북정맥 상의 죽엽산을 함께 오른 이상훈교수와 다시 만났습니다. 대의를 중히 여기고 제반 사회문제에 진보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두 친구가 다르지 않아,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이지만 둘이 긴 시간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보였습니다.

 

  태백역에서 하차하여 인사를 나눈 후 기사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12시 정각에 태백시를 출발하는 하장행 시내버스를 타고 피재를 넘어 지난번에 걷기를 마친 상사미교차로 앞 둘밭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1220분 상사미교차로에서 한강의 두 번째 구간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오른 쪽 위로 백두대간의 건의령으로 오르는 길이 갈리는 상사미교차로에서 상사미교를 건너면서 잠시 한강의 본류인 골지천의 물 흐름을 지켜보았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물이 불어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 봄이 바짝 다가왔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잘 조림된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 숲이 35번 도로 위에 자리 잡아 온 산이 훤해 보였습니다. 상사미창마을 지나 천변길을 따라 걷다가 순둥이 두 마리를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여느 개들처럼 덤벼들 듯이 짖어대지 않았고, 제가 웃음으로 대하자 꼬리를 치며 반가워해 모처럼 견공과의 만남이 평화로웠습니다.

 

  사조보건지소를 지나 골지천을 따라 걸으며 길가 밭을 초록색으로 물들인 산마늘을 보았습니다. 해발8m 이상의 울릉도 고산지역에서 자생하는 산마늘이 강원도에서 재배된 것은 1994년부터라고 합니다. 산에서 나는 나물 중 유일하게 마늘 맛과 향이 난다하여 산마늘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나물은 명이나물 또는 맹이나물이라고도 불리는데, 최근 소비량의 증가로 경상도 및 전라도 등에서도 재배되고 있다고 대한민국식재총람은 적고 있습니다.

 

  골지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처음 만난 보()는 사미가압장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수압을 높여서 수돗물을 공급하는 가압장을 이곳에 설치한 것은 2009년 강원도 전역이 극심한 가뭄을 겪은 후라고 합니다. 강수관측소를 겸하고 있는 사미가압장을 지나 주변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 한 것은 어인일이지 산에서 나무들을 몽땅 베어내 민둥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을 베어내도록 허가를 내준 행정당국이 그 산 입구에 산사태 취약지역 안내판을 세운 뜻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길가의 폐교된 미릉초교 하사미분교의 굳게 닫힌 교문을 보고 세월 따라 변해가는 현장이다 싶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345분 오른 쪽으로 예수원 길이 갈리는 외나무골교 앞 정자에서 잠시 쉬어갔습니다. 9년 전 가을에 고교동문들과 함께 덕항산을 오르느라 이 다리를 건넌 적이 있습니다.

 

  “오전1053분 하사미교(외나무골교의 오기임)를 건넜습니다. 대절 버스에서 하차해 산행채비를 마친 후 비포장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20분 남짓 걸어 예수원 앞에 이르렀습니다. 들머리를 바로 찾지 못해 10분가량 까먹은 후 예수원에서 구시부령방향으로 7-8분가량 올라가 1129분 길 왼쪽의 나무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이 길은 덕항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제일 빠른 길로 1시간20분밖에 걸리지 않아, 언제고 이 길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오르고자 합니다.

 

  골지천과 나란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35번도로를 따라 북진을 계속하다 하사미 교회에서 방향을 바꾸어 북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무사교를 건너 하사미마을회관 앞 정류장에 이르러 태백의 명승지인 구문소(求門沼)를 홍보하는 사진과 소개 글을 보았습니다.

 

  "태백시 동점동에 위치. 15천만년에서 3억년전 사이에 형성된 곳.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는 기이한 형상 때문에 '뚜루애'라고 부른다

 

  지도를 찾아본 즉, 구문소는 황지천이 철암천과 합류하는 하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황지천은 동굴이 뚫리기 전에는 동굴의 남서쪽을 크게 휘돌아 곡류하였다고 합니다. 구문소는 오랜 세월 침식을 겪으면서 굴이 뚫려 바로 철암천과 합류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낙동강의 지류인 황지천에 위치해, 낙동강을 따라 걸을 때 짬을 내 들러볼 생각입니다.

 

  산마늘 밭 옆에 층리로 보이는 바위가 눈에 띄어 사진을 찍고 나서 지구과학을 전공한 원영환동문에게 층리와 절리가 어떻게 다른지 물었습니다. 전공이 서로 다른 친구들과 같이 여행하면, 궁금한 것 대부분은 그때그때 물어 확인할 수 있어 좋습니다. 내친 김에 구조곡과  강이 생성면에서 어떻게 다른 지도 물어보았습니다. 한강은 침식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추가령구조곡은 지각변동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라는 답을 듣고 나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433분 오른쪽으로 귀네미골 길이 갈리는 귀네미골 정류장에 이르렀습니다. 정감 가는 귀네미골 이름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영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와 2005109일자 백두대간 종주기를 보고 대단위 고랭지채소재배단지가 들어선 큰재 아랫마을이 귀네미골 마을임을 확인했습니다.

 

  “1259분 고랭지채소밭에 발을 들인 후 채소밭을 관통하기도 하고 밭길 옆으로 난 산길을 지나면서 50분 가까이 채소밭 일원을 걸었습니다. (중략) 광동댐 건설로 이곳으로 이주해온 농민들이 산을 일구어 밭을 개간하느라 힘들었겠다 싶었던 것은 아직도 밭에는 돌이 많이 남아 있어 옛날처럼 쟁기로 밭을 갈다가는 보습께나 잡아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하사미교를 건너 시계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진행해 조탄마을에 이르자 골지천의 수량이 많아졌고 물 색깔이 녹색으로 바뀐 것은 그 아래 자리한 광동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숙암2교를 건너 삼척시에 발을 들여서부터는 35번 도로는 나지막한 고개 너머로 이어졌습니다. 숙암삼거리에서 두타산 댓재로 이어지는 오른 쪽 길을 버리고 삼척시로 향하는 왼쪽 35번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왼쪽의 광동호와 주변 풍경을 사진 찍느라 바빴습니다. 광동호가 북쪽 끝자리에 숨겨놓은  해발904m의 지각산은 그 뾰족한 자태가 한국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용문산의 백운봉에 못지않았는데, 아직도 하얀 눈이 봉우리를 덮고 있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광동호의 수면이 녹색을 띠어 혹시 녹조가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상훈 교수가 녹조는 수온이 섭씨 15도 이상이라야 발생한다면서 녹조가 아니라고 말해주어 안심했습니다.

 

  1988년에 준공된 광동댐은 총저수량이 13백만톤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소양강댐의 29억톤에 비한다면 0.45%에 불과합니다. 웬만한 저수지보다도 규모가 작은 이 댐이 태백시, 삼척시, 정선군과 영월군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한다하니 놀랍습니다.

 

  이 댐 바로 아래 광동리에 삼척시하장면의 행정복지센터, 파출소와 우체국 등 공공건물이 들어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안전한 곳에 시가지를 조성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댐 바로 아래 공공건물이 들어선 것은 이 댐의 안전성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05년 백두대간 종주 때 하루 산행을 마친 댓재에서 삼척행 버스를 타고 가다, 이곳 하장정류장에서 하차하여 태백행 버스로 갈아탄 일이 있었습니다. 겨우 17년 전의 일인데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1658분 하장중·고교 앞에서 2구간 탐방을 마쳤습니다. 하장시가지에서 0.9Km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홀로 들어선 이 학교는 운동장 옆에 외지의 선생님들이 머무르도록 숙소로 지은 것 같은 부속건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택시를 불러 태백역까지 가는데 37천원이 들은 것은 행정구역이 달라 할증료가 부과되어서였습니다. 인근 음식점에서 감자탕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1923분에 태백역을 출발하는 청량리행 열차에 오르는 것으로써 하루 여정을 모두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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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도 상당부분은 기억에 의존해 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매 순간을 기록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중요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골라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런 자료들을 기초로 관련 상황을 기억해내어 작성하는 후기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일정부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랑할 만한 것은 드러내고 부끄러운 것은 숨기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에 후기가 사실과 조금 어긋난다고 크게 책할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을 실기(實記)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포로생활을 기록한 포로실기(捕虜實記)에서 사실의 왜곡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이 최고의 가치로 인식된 조선사회에서는 적군에 붙잡혀 포로로 살다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자체가 불충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포로로 잡혀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대부들은 일본에서 포로로 잡혀 생활하는 중에 불충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알리고자 포로실기를 작성하고 자신을 변명하는 소를 올리곤 했습니다. 기억들을 재구해 포로실기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해 어느 정도 유리한 기억은 드러내고 불리한 기억은 숨겼다는 것을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기록이 기억보다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이 항상 참일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쓰는 산행기나 탐방기에는 굳이 드러내거나 숨길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포로실기처럼 자기보호를 위해 기억을 유리한 쪽으로 재구할 이유가 별로 없어서입니다. 그보다 사실을 잘못 알고 기록한 것이 자주 눈에 띄어 나중에 바로 잡곤 했습니다. 기록이라고 다 믿을 것은 못되지만, 굳이 숨길 것이 별로 없는 여행기는 그래도 믿을 만 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