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한강 따라 걷기

한강 따라 걷기6(발면동정류장-아우라지-오대천/골지천 합수점)

시인마뇽 2022. 6. 1. 03:20

*탐방구간 : 발면동정류장-아우라지-오대천/골지천 합수점

*탐방일자 : 2022. 5. 23()

*탐방코스: 발면동정류장-정선소수력발전소-아우라지-구절초공원

              -나전역-오대천/골지천합수점-나전1리 정류장

*탐방시간: 1031-1714(6시간43)

*동행      : 서울대 이규성, 이상훈, 원영환, 우명길 동문

 

  대학동문들과 함께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강원도정선의 아우라지를 들렀습니다. 아우라지는 한강의 제1지류인 송천이 본류인 골지천에 합류되는 합수점(合水點)으로 정선군여량면여량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번 아우라지 탐방은 2016년 여름에 노추산 등산을 마치고 들른 후 6년 만에 다시 찾은 것입니다.

 

  아우라지는 아우르다에서 연유된 지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아서 하나가 되게 하다라는 의미의 아우르다한데 모아서 합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어우르다와 뜻풀이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우라지에서 어우러지는 것은 두 개의 물줄기입니다. 두 물줄기가 모아져서 하나의 물줄기로 흐르는 합수점이 바로 아우라지이기에, 아우라지는 여기 정선 말고도 여러 곳 더 있습니다. 제가 다녀온 또 다른 아우라지는 영평천이 한탄강에 합류되는 경기도포천시창수면신흥리의 아우라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합수점은 북한강이 한강본류인 남한강에 합류 되는 경기도양평군의 양수리가 아닌가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합수점을 아우라지라 하지 않고 두물머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 중 가장 으뜸이 된다 해서 두물머리라고 이름 지은 것인지, 아니면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의 머리가 만나는 지점이라 해서 두물머리로 부르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두물머리아우라지못지않게 정감 가는 우리 고유의 이름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여기 정선의 아우라지가 널리 알려진 데는 이곳이 한양으로 목재를 운반하던 한강 최상류의 뗏목 터라는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입니다.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의 본류인 골지천이 대관령에서 발원한 한강의 제1지류 송천을 받아들여 수량(水量)을 늘리지 않았다면, 여기 아우라지에서 뗏목을 띄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송천을 양수, 골지천을 음수라 칭하여 여름 장마 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예상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옛말이 전해오고 있지만, 요즘처럼 가뭄이 심하면 양수도 음수도 모두 줄어들어 뗏목을 띄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여기 아우라지에서 한양으로 달랑 뗏목만 실어 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했다면 이곳 아우라지로 각지에서 뱃사공이 모여들 리 없었을 테고, 뱃사공의 아리랑 노래가 계속 전해졌을 리도 만무합니다. 아우라지가 정선아리랑가사의 유래지로 알려진 것은 뗏목과 다른 짐들을 실은 뗏목 배에 행상을 함께 태워 보내고 나서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네들의 간절한 염원도 같이 실어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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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평창역에서 정선까지는 이상훈교수 차로 이동했습니다. 정선군의 여량면사무소에 차를 주차시킨 후 오전 1020분에 여량터미널을 출발하는 임계 행 버스를 타고가다 발면동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오전1031분 발면동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발면동잠수교를 건너 골지천 좌안길을 따라 걷고 싶었지만, 중간에 길이 끊겨 우안의 차도를 따라 북진했습니다. 10분 남짓 걸어 다다른 언덕배기의 전망대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흐르는 골지천의 감입곡류를 온전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전망대 언덕에서 서쪽으로 내려가 새치교 옆에 들어선 정선소수력발전소를 지났습니다. 수력발전에 필요한 물은 지난 번 탐방 때 사진 찍은 봉정리의 보에서 도수관을 설치해 끌어들이는 것 같은데, 오랜 가뭄으로 물 공급이 여의치 못해서인지 가동이 중단된 것 같습니다. 새치교를 건너자 골지천에 면해 서있는 우안(右岸)의 암벽은 30도 가량 기운 퇴적암층으로 주향(走向, Strike)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언덕에 자리한 곰바리정류장을 조금 지나 그늘진 길가에서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1253분 송천과 골지천의 합수점인 아우라지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골지천 좌안의 땡볕 길을 따라 걷던 중 강 건너 산에 자리한 규석광산을 보았습니다. 규암이 퇴적암의 일종인 사암의 변성암이라는 것을 동행한 원영환 친구한테서 설명 듣고 나자, 퇴적암이 발달한 정선 지역에 어째서 변성암인 규암의 규석광산이 같이 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여량천주교회를 지나 아우라지의 상징(?)인 그믐달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된 다리를 건餘松亭 정자에 올라 골지천과 송천의 합수점을 조망했습니다. 6년 전에 왔을 때와 다른 것은 뗏목을 띄울 수 없을 만큼 수량(水量)이 엄청 줄어든 것입니다. 6년 전에 보았던 유람선이 한 척도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뭄에 의해 일시적으로 물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아우라지교 인근의  정자를 들러 잠시 쉰 후 구절초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42번 도로로 올라가 시계반대방향으로 휘돌아 흐르는 골지천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도로 변에 세워진 옥갑사 안내판을 그냥 지나쳤는데, 이 절이 꽃무늬가 있는 벼룻돌이 많이 나는 곳임을 나중에 신정일님의 저서 한강역사문화탐사를 읽고 알았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정선에서 무늬석보다 더 유명한 돌은 쑥돌로 만든 정선맷돌이라고 합니다. 흔히들 음식을 빨리 먹는 사람을 보고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라고 말하는데, 정선에서는 그 말 대신에 압실맷돌 콩먹듯 한다고들 합니다. 이 압실맷돌이 바로 정선군북면고양리의 압실마을에서 생산되는 맷돌로 국내 최고의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1430분 골지천 우안의 숲속 쉼터에서 잠시 쉬어갔습니다. 옥갑사 입구를 지나 철교와 그 위에 새로 놓는 다리, 그 아래 잠수교 등 세 개의 다리가 골지천을 건너는 지점에 이르자 강물은 방향을 바꾸어 시계방향으로 굽이져 흘렀습니다. 골지천과 나란히 놓인 정선선의 철로를 내려다보면서 1960년대 초반 중학교를 다닐 때 철로를 따라 걸어 등교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다른 길보다 빨라 철로 길을 따라 걷기는 했습니다만, 일정간격으로 놓은 철목간의 거리가 제 보폭과 맞지 않아 평지 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사장을 지나 왼쪽 길로 내려가자 붉은 단풍나무들이 눈을 끄는 솔밭에 쉼터가 있어 십 수분 쉬어갔습니다. 북평면장열2리의 문화예술마을 가드루를 지나 다시 올라선 42번 도로를 따라 걸어 알록달록한 색상의 북평초등학교 앞에 이르렀습니다. 

 

  1540분 나전역을 들렀습니다. 북평초등학교을  지나자,  행복한 삶과 죽음 배움터라는 부제를 단 정선 웰다잉(Well - dying) 문화연구소와 부설 아우라지 문학관의 이색적인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왼쪽 아래로 내려가 정선선 철로를 건넌 후 나전역의 역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표 파는 곳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에 분위기 있는 카페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1969년 준공된 나전역은 나전광업소의 폐광으로 1993년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기도 했습니다. 2015년 정선아리랑열차가 운행되었다고 적혀 있는 안내판에는 현재 운행여부를 알려주는 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달 62일부터 관광열차 정선아리랑열차(A-train)을 알리는 기사가 524일자 서울신문에 난 것으로 보아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외관이 깔끔한 이 역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모래시계등 여러 편의 영화가 촬영되었다는 것은 안내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1714분 나전1리 정류장에서 6번째 한강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나전역을 빠져나와 북평버스종합터미널 옆 편의점에서 콜라와 아이스케이크를 사들어 갈증을 달랜 후, 다시 골지천변으로 다가갔습니다. 북평교를 건너고 나전중학교 교문을 지나서 남평둔치 꽃길로 들어섰습니다.

 

  남서쪽으로 곧바르게 이어지는 꽃길을 따라 걷던 중 양승준 시인의 시 넥타이가 눈에 들어와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나는 너를 묶었지만/내가 네게 묶이는, 결국/내가 나를 묶는 모순을 배우면서부터/나는 어른이 되었다로 비교적 전문(全文)이 짧은 이 시를 읽고서 떠올린 것은 50대 후반 들어 넥타이를 다시 매지 않게 되었을 때의 불안감이었습니다. 시인이 얘기하듯이 넥타이는 어른의 상징입니다. 더 이상 넥타이를 매지 못하게 되자  해방감보다 불안감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은 사회에서 어른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싶어서였습니다. 

 

  골지천 위 남평대교와 오대천 위 나전교를 차례로 건너면서 골지천과 오대천이 합류하는 '오대천/골지천합수점'을 사진찍었습니다. 이 합수점에서 합류되는 두 하천 중 골지천이 오대천보다 더 길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1913년의 일입니다만, 한강의 발원지가 공식적으로 오대산의 우통수에서 태백산의 검룡소로  바뀐 것은 1986년에 이르러서입니다. 

 

  나전1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여량면사무소로 이동해,  이상훈 교수차를 타고 평창으로 가는 길에 오대천변의 청심대(淸心臺) 정자를 들렀습니다. 평창의 대화에서 저녁을 든 후 평창역으로 이동해 209분 차 서울행 KTX에 오르는 것으로써 여섯 번째 한강탐방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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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의 아우라지가 아우른 것은 골지천과 송천의 한강 물만이 아닙니다.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마음도 같이 아울렀기에 여기 아우라지가 <정선아리랑>의 유래지로 알려졌을 것입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로 시작되는 정선아리랑은 호남의 <진도아리랑> 및 경남의 <밀양아리랑>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의 하나로 꼽힙니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이른바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멀리 소련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경기도의 경기아리랑은 누군가가 창의적으로 윤색했다하여 신민요아리랑으로 분류됩니다이러한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재창조되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민요입니다. 아리랑은 사대부 문인이나 전문작가 같은 특정 계층만의 노래가 아니고 불특정다수의 민중들이 생산, 전파, 향유한다는 점에서 주로 사대부들이 즐겨 부른 시조나 가사와는 많이 다릅니다.

 

  박민일님은 저서 한국아리랑문학 연구에서 아리랑은 한민족이 지닌 모든 것을 챙겨서 부른 민족문학이라면서 모든 것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정서와 사유, 역사와 현실, 자연과 문화, 고향의 꿈 등이 포용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아리랑을 시대의 빛과 그림자가 투영된 시대문학이요, 당대의 현실과 역사인식 및 행위가 굴절 없이 반영된 거울 같은 역사문학이라면서 아리랑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아리랑의 본격적인 연구는 1926년 나운규가 아리랑을 영화로 제작해 상영하고 몇 해 지난 후인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리랑의 기원에 대한 학설만도 낙랑에서 남하하는 교통로의 관문인 자비령의 이름, 아라의 전음에서 유래되었다는 역사학자 이병도의 학설 등 20개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 중 어떤 학설이 유력한 것인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리랑의 어원이나 역사에 등장한 시대 등 아리랑의 역사적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리랑의 주제와 사상은 무엇인지, 아리랑은 어떻게 전파되고 변이해 왔는지, 아리랑이 지닌 정신사와 그 역학적 문제는 무엇인지, 아리랑이 문학적으로, 또 음악적으로 어떠한 본질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박민일의 한국아리랑문학 연구에서 다루어졌 습니다.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가수그룹 BTS가 부르는 아리랑은 지금까지의 어떤 아리랑보다 리듬이 경쾌해,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민족의 한이 어린 아리랑을 이렇게도 경쾌하게 부를 수 있는 역량 있는 BTS를 여기 아우라지로 초빙해 아리랑 공연을 할 수 있다면 아우라지가 살아날 수 있겠다 싶은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