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율곡습지공원-장파리-장남교(평화누리길 9코스)
*탐방일자:2019. 3. 2일(토)
*탐방코스:율곡습지공원-박석고개-장파리-자장리마을회관-장남교
*탐방시간:9시50분-17시30분(7시간40분)
*동행 :문산중학교 황규직/황홍기동문
역사소설 <<조선총독부>>를 지어 필명을 날렸던 소설가 유주현(柳周鉉, 1921-1982)선생의 의 단편소설 <臨津江(임진강)>은 아래와 같이 시작됩니다.
“강은 어느 강이나 숱한 전설과 사연을 삼긴 채 세월처럼 말없이 흐른다. 천년을 한 가지로 흐르면서 세월을 셈하는 것은 오로지 강물뿐이다. 사람들이 나릿한 정화(情話)와 처절한 슬픔과 열띤 의지를 흐름에 싣고 흘러 흘러 오랜 세월을 헤이게 되면 전하는 이야기가 유역에 쌓이고 그리고 흐트러진다. 이것이 전설이다. 풍토처럼 고유한 역사이기도 하다.”
임진강 역시 천년을 한 가지로 흐르면서 세월을 셈했을 테고, 그 셈한 것은 이야기가 되어 강 유역에 쌓였을 것입니다. 작가 유주현이 이렇게 쌓인 이야기를 풀어 <臨津江(임진강)>이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1962년의 일입니다. 휴전 직후 임진강 유역인 갈마을 사람들의 처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 <臨津江>의 무대가 되었던 이 강 유역을 이번에 문산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걸으면서 확인한 것은 이제는 이 소설의 내용 또한 전설 속으로 사라져 그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난에 좇긴 마을 사람이 미군보초의 총에 맞아 죽고 가족과 갈마을 사람들을 잘살게 하겠다고 주인공 덕환은 강도짓을 일삼는 등 어둡기 짝이 없는 임진강의 기억을 망각의 상자 속에 영원히 가두어 둘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발전 덕분일 것입니다.
오전 9시50분 율곡습지공원을 출발했습니다. 문산역에서 택시로 이동해 다다른 율곡습지공원의 누리길 게이트에서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은 후 9코스의 율곡로 탐방에 나섰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합류한 중학교 동창 황홍기군은 강 건너 진동에서 태어났으며, 법원읍과 문산읍에서 오래 살아 이쪽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어 기대되는 길동무입니다. 율곡습지공원을 출발해 92번국도 서쪽 옆으로 낸 시멘트도로를 따라 북진했습니다. 탐방시작 40분이 조금 지나 다다른 곳은 전진교 다리가 가까이보이는 카페 ‘강변살자’입니다. 3년 전 방송대 학우들과 이 카페를 들렀을 때는 봄비가 살포시 내려앉는 임진강의 그림같은 정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 좋았는데, 이번에는 미세먼지가 봄비를 대신해 그냥 지나쳤습니다. 강변의 데크 길과 전진교앞 사거리를 지나 파평면사무소로 이어지는 구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박석고개가 가까워지자 57년 전 고개 너머 늘노리에 사시는 큰 누님께 문산중학교 합격소식을 전하고자 이 고개를 혼자 넘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이번에 넘은 박석고개는 그 때의 찻길이 아니고 산속에 낸 고즈넉한 길이어서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걸으며 옛 추억을 되살리기에 딱 좋았습니다.
박석고개를 넘어 내려선 파평면사무소를 지나 약 1Km 거리의 늘노리를 앞에 둔 삼거리에 서 왼쪽으로 꺾어 장파리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늘노천 위 금파교를 건너 ‘장단매운탕’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눌노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오른 쪽으로 꺾어 만난 강변길은 임진강을 바로 옆에서 내려다보며 북진교 앞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로 중간에 데크 길도 지납니다. 강 건너 이번에 처음 동행한 황홍기 군이 태어난 강 건너 진동면은 원래 황해도의 장단군이었는데 종전 후 파주시에 편입된 곳으로 민간인의 자유로운 출입은 통제되고 있습니다. 강변길을 걸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임진강은 한강과 달리 강변이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배를 타고 한강에 들어가 바라본 양쪽 강변은 현대문명의 구축물인 시멘트로 된 강둑과 강변 도로, 그 건너 숲을 이룬 아파트들로 거의 다 차있지만, 임진강변은 이와 달리 야산과 풀숲, 그리고 모래와 자갈 등 자연의 구성물이 옛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강변 풍광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한강을 옛 한강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분들과 의견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이는 서울시민에 필요한 물을 공급해야하는 한강과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주고 나라를 지키는데 긴요한 임진강의 기능이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십 수 년 전 파리에서 배를 타고 세에느 강을 유람할 때 강 한가운데에서 지켜본 세에느강의 강변도 서울의 한강과 다르지 않아 시멘트 강둑과 고색창연해 보이는 옛 양식의 건물 등 문명의 구축물들이 빽빽이 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세에느 강이 한강보다 볼 만하다고 느낀 것은 오직 다리였습니다. 다리박물관(bridge musium)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꽤 많은 아름다운 다리들이 서로 다른 건축양식으로 세워져 있다는 것을 빼고는 한강이 세에느강에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한강에 비해 강폭이 갑갑하리만치 좁은 세에느 강에는 파리의 연인들에 회자되는 미라보다리가 있는데, 한강에는 왜 이런 다리가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시인 아포리네르가 명시 <미라보 다리>를 남기지 않았다면 이 강이 한강보다 자랑할 만한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한강에서 수중보를 들어내어 자연성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량있는 예술인들이 지혜를 모아 추억을 남길 만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싶었습니다.
일명 북진교로도 불리는 리비교 앞 사거리에서 잠시 저를 멈춰 세운 것은 길옆에 세워진 ‘장마루 장파1리’의 이정표였습니다. 장마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69년에 상영된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입니다. 여기 장마루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광고포스터는 본 기억이 선명하게 납니다. 당대 영화계를 풍미했던 신성일과 김지미 두 분이 주연으로 분한 이 영화의 제목이 아직도 제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파주 전방의 작은 마을의 이름이 영화제목으로 쓰였다는 것이 신기했고, 또 한 번도 보지 못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그 제목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리비교사거리에서 임진강과 헤어져 그 동쪽의 넓은 논 뜰을 지나면서 왜 우리 선조들이 강가로 모여 살았는가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나지막한 야산에 둘러싸여 포근하게 느껴지는 논길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다다른 자장리 마을사람들이 생계를 꾸려가는 데 어업도 한 몫 하고 있다고 한 것은 때를 기다리는 어구(漁具)를 보고나서입니다. 자장리 마을회관을 지나 1km 가까이를 순둥이 개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길 안내를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잠시 질펀한 흙길을 걸어 다시 만난 92번 국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3-4분가량 따라 걷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고갯마루에 세워진 쉼터의 의자에 걸터앉아 얼마간 쉰 후 황포돛대가 정박하는 두지나루로 내려갔습니다. 때마침 고량포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황포돛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이 배와 임진적벽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지나루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장남교를 건넜습니다. 파주와 연천을 이어주는 장남교에서 바라다본 임진적벽과 그 아래 임진강, 그리고 강변의 텐트촌이 빚어내는 저녁 풍경이 하도 여유롭게 보여 시간이 멈춰선 듯 했습니다. 다리 건너 연천 땅을 100m가량 걸어 다다른 10코스의 고랑포길 게이트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택시를 불러 적성읍내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번 4번째 임진강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파리의 세에느강이 아포리네르를 불러내어 <미라보다리>를 읊조리게 했듯이 이번에 눈 맞춤을 한 임진강도 모시고 싶은 시인이 분명 있음직 한데 그 분이 누구일지 영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임진강이 짧다고 해도 그 길이가 254Km에 이르는데 이 강을 찾아와 절창한 시인이 어찌 없으랴 싶었지만 제가 과문한 탓에 그런 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신 분이 우리 시(詩) “진달래 꽃”으로 널리 알려진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 1902-1934)선생입니다. 개화의 눈을 일찍 뜬 산자수명의 땅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생이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를 통해 머물고자 했던 강변은 여기 임진강변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선생께서 이 시에 담은 염원이 이상적인 공간인 아름다운 강변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다면 평화누리길로 명명된 여기 임진강변이야말로 선생께서 꿈꾸어온 그런 곳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소월선생의 짧은 시 <엄마야 누나야>를 이 글에 덧붙입니다.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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