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22. 3. 8일(화)
탐방지 : 경기도가평군소재 자라섬
동행 : 나 홀로
경기도 가평의 자라섬은 북한강 한가운데 자리한 하중도(河中島)입니다. 1986년 가평군지명위원회에서 자라목(늪산)을 바라보는 섬이라는 의미에서 자라섬으로 명명한 이 섬은 자라섬캠핑장이 들어선 서도, 축제와 공연의 상징인 중도, 꽃 테마공원과 야간 공원이 일품인 남도 등 3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납산 남쪽 끝 철교 밑에서 가평천을 받아들여 세를 불린 북한강이 이 섬을 넉넉하게 감싸고 있어 풍광이 수려한데다, 하중도 치고는 꽤 넓어 이 섬을 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을 힐링(healing)하기에 충분합니다. 2004년에 처음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과 2008년에 시작된 캠핑캐라바닝대회가 2019년까지 매년 가을 열린 것도 이 섬이 그만큼 산수가 빼어난데다 수많은 재즈애호객들을 수용할 만큼 넓어 가능했을 것입니다. 2020년 들어 코로나119의 발병으로 국제적인 축제는 중단되었지만, 그렇다고 자라섬을 둘러 싼 풍광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이 섬에서 쌓아온 숱한 재즈애호가들의 추억들이 지워진 것도 아니어서 언제라도 코로나119만 극복된다면 재즈페스티벌은 다시 열릴 것입니다.
제가 이 섬을 알게 된 것은 6년 전 강원대 인문대학원의 국문과에 입학해 춘천을 오가면서부터입니다. 4년 넘게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매번 아침과 저녁 시간에 이 섬을 지나느라 지금까지 한 번도 들르지 못했습니다. 지난 달 박사과정을 수료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을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두세 달에 한두 번은 지도교수님을 찾아뵙고 학위논문 작성에 관한 지도를 받느라 춘천캠퍼스를 다녀와야 합니다. 이번에 춘천을 갔다 온 것도 논문지도를 받기 위해서였는데, 일이 빨리 끝나 다른 때 보다 일찍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가평역이 가까워지자 이 참에 자라섬을 들러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어, 가평역에서 하차 했습니다. 가평역에서 1.5Km 가량 떨어진 자라섬까지는 몇 번이고 길을 물어 찾아가느라 20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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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 정각에 서도와 중도를 이어주는 자라차도교를 건너 중도에 들어서는 것으로써 자라섬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자라섬 입구의 서도에 자리한 이화원나비스토리는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이화원나비스토리는 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대식물과 한국형 식물이 조화롭게 자리 잡은 대규모 식물원과 야외 정원시설이 갖춰진 자연 생태 테마파크입니다. 자라차도교를 건너 중도에 들어서자 꽤 넓은 원형의 잔디 운동장이 보였습니다. 텅 빈 잔디 운동장을 바라보노라니,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여러 나라들의 젊은이들이 부르짖는 함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2004년 미국,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등 12개국의 30여 개 팀이 참가해 시작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2019년까지 매년 가을에 열렸는데, 이 페스티벌을 찾아와 함께 재즈를 즐긴 내외국인들이 10만 명을 넘었다 합니다.
운동장 동쪽으로 이어지는 제방 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잠시 멈춰 서서 북한강을 둘러보았습니다. 북쪽으로는 보납산과 가평천, 경강교와 가평교, 그리고 철교가 보였고, 강 건너 동쪽에는 산허리에 나 있는 차도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냉기 서린 강바람을 안고 제방 길을 홀로 걸으면서 35년 전에 결혼해 곁 지기로 23년을 같이 살다가 22년 전에 먼저 간 집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경기도 광주시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만나 한창 열애에 빠졌을 때는 학생들의 눈을 피해 데이트를 하느라 밤을 도와 한강의 제1지류인 경안천의 뚝방길을 자주 걸었습니다. 그때는 엄동설한에 제방 길을 걸어도 추운 줄 몰랐는데, 이번에 이미 봄이 시작된 3월의 강바람이 이토록 차갑게 느껴진 것은 꼭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곁 지기가 곁에 있었기에 추운 줄 몰랐고, 이번에는 저 혼자 걸어 더 추웠습니다.
제방 길은 남도로 건너가서도 이어졌습니다. 중도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들어선 남도의 볼거리는 단연 꽃 테마 공원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봄꽃조차 피지 않아 썰렁했습니다. 남도에서 제 눈을 끈 것은 남쪽 끝자리에 자리한 자라나루였습니다. 강 건너 남쪽의 남이섬을 오가는 관광선이 이 나루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가평군에서 세운 유 · 도선 이용객준수사항 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나루 가까이에 설치된 자라섬착지점은 아시아 최대의 짚와이어를 타고 와서 내리는 곳입니다. 지상 80m높이에서 시속 60 - 80Km(체감속도 100Km)의 속도로 운행되는 신종 레저시설의 짚 와이어(zip-wire)를 타면 하늘 길로 남이섬과 자라섬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자라나루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섬이 남이섬이라는 것은 그간 이 섬을 두 번 다녀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배용준님이 주연으로 분한 TV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남이섬을 조선시대에 정적들의 모함에 걸려 처벌된 남이장군의 유적지로 자리매김하지 않고, 밝고 건강한 동화나라로 포지셔닝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미나라공화국남이섬’으로 명명된 남이섬은 역사적 유적지가 산재하는 육지에 자리한 것이 아니고 배를 타고 건너가야 다다를 수 있는 독립된 섬이기 때문입니다.
강가의 자라정을 들러 북한강을 다시 본 후 서도 쪽으로 이동하는 중 서도와 중 · 남도 사이를 흐르는 강물 위에서 노니는 청둥오리(?) 몇 마리와 아직도 녹지 않은 얼음판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겨울새들을 사진 찍었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해 발걸음을 재촉해 남도를 둘러본 후 아치형의 작은 다리를 건너 중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름이라면 넝쿨들이 터널을 만들었을 ‘행복의 길’을 거쳐 은인자중하며 꽃샘추위가 완전히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철쭉들의 동산인 철쭉공원을 지났습니다. 강가에 끌어올려진 수난전문의용소방대의 구명보트는 카버가 씌워져 있어 겨울잠에서 깨어날 뜻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석양을 맞아 강 건너 아파트가 물속에 비치는 것을 보고 얼음판 밑으로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넓은 잔디구장이 자리한 서도로 건너가 카라반캠핑장을 들렀습니다. 캠핑장에 들어선 캠핑카들은 꽤 많았는데 캠핑을 하러 온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아 썰렁했습니다. 50여 년 전 한 겨울에 혼자서 덕유산을 오른 후 삼공리로 내려가 꽁꽁 얼은 논바닥에다 쳤던 A - 텐트에 비하면 카라반캠핑카는 가히 호텔이라 부를 만 한데, 평일이어서인지 텅텅 비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서도를 끝으로 2시간 가량의 자라도 탐방을 마치고, 가평역으로 이동해 상봉행 전절에 몸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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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은 나이든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자 찾는 섬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재즈페스티벌과 캠핑카라바닝대회는 젊은이들이 즐길 만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섬에서 젊은 열기를 느끼려면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는 탐방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연의 에너지는 겨울잠을 자는 겨울이 아니고 광합성이 활발히 일어나는 여름에 절정에 이를 것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이번처럼 대지가 미처 겨울잠을 깨지 않은 초봄에 혼자서 찾아올 일은 더욱 더 아닙니다. 강바람이 여전히 냉랭해서도 그렇지만,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오래 주시하다 보면 가슴속에 묻어둔 고독감이 고개를 들어서그렇습니다. 자라섬은 아무래도 한 여름에 다시 한 번 들러야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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