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31. 범허정 송광연 선생의 「삼한동기」 현장 답사기

시인마뇽 2023. 4. 28. 10:14

답사일자:  2023. 4. 20()

답사지   : 강원도 춘천시 삼학동 일대

답사코스: 용화산숲체원-이주선생생가마을-용연-법화사지-고탄령-배후령/수리봉갈림길

                 -652m/수리봉안부-삼화사지-남명선생부친묘지-구층대-구담-용화산숲체원

답사시간: 1024-1816(7시간52)

 

 

  이번에 답사한 춘천의 삼한계곡은 1686년 여름 범허정(泛虛亭) 송광연(宋光淵, 1638-1695)선생이 다녀온 곳으로 해발876m의 용화산에서 발원한 청정한 계곡입니다. 삼한계곡이 자리한 삼한동 일대는 맥국(貊國)의 도읍지가 들어선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범허정 선생은 「삼한동기 에서 “양통고개를 넘으면서 맥왕(貊王)의 옛 도읍지를 애도하고 용화산으로 들어갔다”라고 적었습니다. 맥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남아있지만, 아직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생이 말씀한 맥국의 도읍지를 뒷받침할 만한 유적이나 유물이 하루 빨리 발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삼한동 답사에 나섰습니다.

 

  송광연 선생은 1638(인조16) 서울에서 태어나 1666(현종7) 별시에 급제한 후 사헌부집의, 홍문관응교,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한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성품이 강개하고 벼슬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학문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분입니다. 1671년과 1673년 거듭해 부모상을 당하여 강릉의 학담에서 5년간 상복을 입고 은둔하면서 임영산수기오대산기를 남긴 선생이 삼한동 계곡을 탐방한 것은 춘천부사를 사직한 후의 일로, 그 자세한 여정은 선생의 삼한동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강원대에서 석·박사과정을 같이 수료한 한희민선생님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이번 삼한동 답사는 이주(李冑) 선생의 거주 마을, 용연, 법화사지, 삼한계곡의 삼한사지, 구층대와 구담폭포 등을 차례로 둘러보는 것으로 짜였습니다. 

 

  이번 답사의 첫 행선지는 범허정 선생의 지기인 출옹(朮翁) 이주선생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성리(?) 마을입니다. 사평천에 놓인 다리 성탄교에 도착해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사북면의 고성리마을과 그 뒤편의 산세를 일별했습니다. 이 마을 북쪽 뒤편으로 산줄기가 포진해 있고 좌우에 두 고봉이 자리한데다 조금 떨어진 남쪽 앞쪽으로 사평천이 흐르고 있어 누가 보아도 배산임수에 좌청룡우백호의 길지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성탄교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찾아간 곳은 사평천에 자리한 용연(龍淵)입니다. 바로 위에 카페 이와림이 들어선 용연은 사평천이 숨겨놓은 천혜의 연못으로 수심이 매우 깊어 우안의 암반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습니다. 산수를 좋아하고 직접 탐방하는 범허정 선생한테나 눈에 띌법한 용연을 출발해 다음 행선지인 법화사지로 향했습니다.

 

  용연에서 사평천을 따라 올라가 프라임캠핑장과 엘림수양관을 차례로 지나 국립용화산자연휴양림 사무소가 멀지 않은 하얀집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등산코스가 그려진 안내판을 사진 찍은 후 계곡을 건너 산 오름을 시작한 시각은 1024분이었습니다. 절골 계곡을 따라 걸어 용화산 폭포를 지난 다음 암자의 옛터로 보기에는 제법 넓어 보이는 은선암 터에 이르렀습니다. 하얀집을 출발한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나 계단식(?)으로 조성된 은선암터를 지나 법화사지에 이르렀습니다.

 

  법화사지에 이르러 축대와 돌계단, 주춧돌, 기왓장 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자 비로소 이 터가 법화사의 폐사지였다는 믿음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명소와 유적을 둘러보았지만, 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동행한 분들이 유물들을 직접 만져보고 세밀히 관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답사의 참모습이 이런 것이다 싶었습니다. 주위에 이 절에 관한 안내문이 전혀 없어 법화사가 이 깊은 산속에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법화사에서 조금 떨어진 계곡 바로 옆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한 후 동행한 한분은 하산하고, 한선생이 앞장 서 나머지 두 분과 함께 삼한계곡으로 향했습니다.

 

  법화사지를 출발해 고탄령에 이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데다 길이 분명하게 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오름 길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용화산 정상에서 배후령으로 내려가는 길에 730m봉과 778m봉 사이에 자리한 깊숙한 안부인 고탄령에 도착해 오른 쪽으로 꺾어 북동쪽으로 수불무산이 갈리는 778m봉에 올라섰습니다. 이번 탐방 길에 오르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778m봉을 넘어 내려선 사여령에 이르자 남서쪽으로 제법 넓은 길이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하얀집에 이르게 됩니다. 사여령을 지나 올라선 764.6m봉을 오른 쪽으로 에돌아 남쪽의 수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652.1m봉을 지나 만난 첫 번째의 깊숙한 안부에서 삼한동 계곡을 향해 동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완만한 데다 한선생이 앞에서 길을 내주어 비교적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웬만큼 내려가자 춘천국유원관리소장 명의의 발산2리 송이경작반 송이채취 금지구역을 알리는 노란 표지기가 걸려 있어 이제야 비로소 제 길로 들어섰다 싶어 안도했습니다.

 

  남옥선생 부친의 묘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가 폐사지인 삼한사지에 다다랐습니다. 일행들은 이미 다녀갔던 곳이어서 바로 폐사지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돌로 쌓은 축대(?)가 남아 있는 삼화사의 절터는  법화사지보다 훨씬 좁아 보였습니다. 범허정 선생이 삼한동기에 언급한 용화산의 폐사지는 법화사지, 대곡사지와 삼한사지 등 세 곳입니다. 

 

  삼한사지에서 국립춘천숲체원에 이르는 계곡길은 앞서 힘든 길을 내려와서인지 평지 길처럼 편안했습니다. 게곡 상류에 자리한 구층대(九層臺)와 반석(盤石), 그리고 그 아래 구담(臼潭)는 삼한동이 자랑하는 최고의 비경으로, 선생께서는 삼한동기에서 다음과 같이 상찬했습니다.

 

  “구층대에 오르니 폭포는 청평사의 구송정과, 반석은 청평사의 서천과, 그리고 바위 봉우리는 청평의 부용봉과 비슷했으나, 구층대는 청평산에 없는 것이었다. 바위 위의 꽃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며 녹음은 새로 피어났고 계곡물은 맑고 얕아 술잔을 띄우며 놀기에 좋았다.”

 

  산악기상관측장비가 설치된 관측소(?)를 지나 국림춘천숲체원의 주자장에 이른 시각은 1816분으로, 이번 답사를 위해 산행한 시간은 점심시간을 제외한다 해도 7시간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동행한 부부 두 분은 그 분들 차로 먼저 떠났고, 저는 한선생님 차를 타고 춘천역으로 이동해 상봉행 전철에 오르는 것으로써 이번 답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

 

 

  범허정 선생의 산수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법화사지를 찾아 오르는 것도 쉽지 않았을 3백여 년 전에 법화사에서 산을 넘어 삼한동계곡을 찾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선생께서 삼한계곡으로 넘어간 길이 이번 답사한 법화사지-고탄령-사여령-764.5m-652.1m- 안부-삼한사지-구층대 코스였다면 같은 코스를 마음 졸이며 힘들게 걸은 저는 세인들이 선생을 조선의 등산가로 모신다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범허정 선생이 오른 산은 용화사만이 아닙니다. 해발1,500m를 넘는 고산인 오대산을 오르고 유산기도 남겼습니다. 선생의 오대산 유산기는 강원대 bk사업단 동아리 모임에서 원문을 강독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이 남긴 유산기의 문학적 향취는 원문강독을 통해서 느껴보고자 합니다.

 

 

<답사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