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명호이나리출렁다리-청량산박물관-고산정
탐방일자: 2023. 10. 30일(월)
탐방코스: 명호이나리출렁다리- 봉화선유교-청량산박물관-소두들정류장-고산정
-농암종택-소두들정류장
탐방시간: 10시22분-16시1분(5시간39분)
동행 : 나 홀로
어제는 춘양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낙동강 탐방길에 나섰습니다. 이제껏 저는 당일로 원거리 지역의 탐방을 끝내고 귀가했다가 다시 찾아가 이어가곤 했습니다. 집 밖의 다른 곳에서 자는 것을 극력 피해온 제가 춘양에서 모텔을 잡아 하룻밤을 묵은 것은 산본 집에서 버스로 오가는 차비도 적지 아니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현지에서 하루 자고 일찍 탐방을 시작해 20km 가량 긴 길을 낙동강을 따라 걷는 것으로 여정을 잡았습니다.
제가 이번에 묵은 춘양은 10년 전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기차 타고 지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2013년 1월 흰 눈이 수북히 쌓인 통고산을 등산할 뜻에서 현동 시내에서 하룻밤을 잔적은 있지만 춘양은 저녁 늦게까지 서울 행 버스가 있어 바로 귀가하곤 했습니다.
‘억지 춘향’이 ‘억지 춘양’의 오기라는 것은 낙동정맥을 종주하며 춘양을 오갈 때 알았습니다.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 낭패를 당할 때 쓰는 ‘억지 춘양’은 제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억지춘향’으로 대신 써왔습니다. 춘향의 유명세에 밀려 시골의 소도시 춘양이 이름을 뺏겼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강들을 따라 걸은 전문답사가 신정일님은 그의 저서 『낙동강 역사문화탐사』에서 ‘억지 춘양’의 유래를 아래와 같이 서술했습니다.
“영주에서 춘양까지 철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시대에 경상북도 북부지방사람들을 강제 동원하여 놓기 시작한 철도는 그 이듬해에 봉화까지 뚫렸으나 해방 후 중단되었다. 1949년에 다시 춘양까지 잇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두 번씩이나 철길 공사가 중단되자 봉화지방에서는 억지로 춘양까지 철길을 놓으려고 들면 변란이 일어난다고 하여 ‘억지 춘양’이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다.”
춘양을 널리 알린 것은 ‘억지 춘양 ’만은 아닙니다. 춘양의 홍보대사는 억지로 춘양에 철길을 놓게 한 춘양목입니다. 신정일님은 “춘양목은 다른 지역의 육송과는 달리 곧게 자라는 데다 껍질이 얇고 결이 곱고 부드럽다. 또한 켠 뒤에는 크게 굽거나 트지 않으며, 켜면 그냥 하얗게 보이기 쉬운 다른 지역의 육송과는 달리 붉은 빛 또는 보라빛을 띠었다. 그리고 벌레가 안 먹고 썩지 않았으며 대패질을 해놓으면 자르르 윤기가 돌았다.”고 찬했습니다. 한옥을 짓는데 으뜸가는 목재로 친 춘양목이 춘양면에서 나거나 모여들었으니 춘양은 바로 춘양목의 집산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춘양역에 가면 야적된 춘양목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철로가 놓이기 전인 일제 때 춘양목의 운송을 맡은 것은 제가 따라 걷고 있는 낙동강이었습니다. 춘양면과 그 북쪽의 소천면, 그리고 강원도지역까지 분포한 춘양목은 뗏목을 만들어 낙동강에 띄웠다고 합니다. 이 뗏목은 봉화군의 소천면 석포리, 현동리, 임기리와 이번에 걸을 명호면을 지나 안동에서 건져졌으니, 이는 1949년 억지춘양 격으로 철로가 놓이기 전의 일입니다. 저는 뗏목이 흘러내려간 낙동강을 몇 십 년이 지나 홀로 걸어 뒤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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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터미널로 옮겨 오전 8시10분에 출발하는 군내버스로 명호리로 이동했습니다. 명호리에서 명호댐을 왕복해 낙동강의 7구간 탐방을 마치고 연이어 명호이나리출렁다리를 건너 명호이나리출렁다리-청량산박물관-고산정을 이어주는 8구간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10시22분 명호이나리출렁다리를 출발했습니다. 출렁다리 앞에 2층 건물의 번듯한 낙동강레포츠센터가 자리한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래프팅을 즐기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닌가 합니다. 강변에 세워진 ‘지방하천 낙동천 경상북도’의 표지판을 보고 이 하천이 낙동강의 본류인 것은 확실하지만, 국가하천이 아니고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지방하천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강물 한 가운데 위가 조금 드러난 큰 돌 위에 앉아 편히 쉬고 있는 백로 등 몇 종류의 새들을 보노라니 제 마음도 절로 평온해졌습니다. 어린 학생들한테서 인사를 받으며 명호초등학교를 지나 낙동강 우안길인 35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길가에 산수유로 보이는 나무 두 그루에 각각 흑적색과 담황색의 작은 열매가 촘촘하게 열려 있어 보기에 탐스러웠습니다. 왼쪽으로 영양과 재산으로 918번 도로가 갈리는 고계삼거리의 명호교를 지나 강 한가운데에서 살포시 머리를 내 보인 모래톱은 물기가 남은 듯 촉촉해 보였고, 살짝 물에 잠긴 넓은 모래밭은 그 은은하고 은근함이 참으로 고혹적이었습니다. 강 건너로 데크 길이 보이는 비나리정류장과 나무네숲캠핑장 입구를 차례로 지나자 저 만치 앞으로 출렁다리 봉화선유교가 보였습니다.
11시34분 봉화선유교에 다다랐습니다. 낙동강의 백용담 소(沼)위를 신선이 노닌다 하여 봉화선유교라는 이름을 얻은 출렁다리는 주변 풍광이 빼어나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이 다리를 건너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리 옆 소공원의 벤치에 앉아 햄버그를 들어 점심식사를 한 후 낙동강 우안의 에덴 길을 따라 걸으며 강 건너 세모꼴의 단애를 받쳐주는 진초록의 낙동강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에덴 길이 얼마 가지 않아 끊기는 것으로 잘못알고 도로변의 펜스를 넘어 35번도로를 따라 걸었는데, 우안의 에덴 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완만하게 휘어진 관창2교를 건너 얼마 후에 북곡보건진료소를 지나면서 규모가 하도 작아 과연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단풍이 절정인 강 건너 청량산을 바라보면서 기시감이 느껴진 것은 산중턱 곳곳에 허리를 두른 듯한 암벽들이 덕유산에서 멀지 않은 적상산의 바위 띠를 닮아서였습니다.
13시17분 청량산박물관을 들렀습니다. 명호이나리출렁다리에서 약9Km를 걸어 청량산 입구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청량산과 낙동강이 손잡고 빚어낸 승경들을 몇 번이고 멈춰 서서 완상했습니다. 청량산은 그동안 두 번을 찾아 올랐지만 만산홍엽의 가을철에 조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퇴계 이황선생께서는 이 산을 우리 집 산이라는 뜻에서 오가산(吾家山) 이라고 부르시면서 자주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청량산은 퇴계선생을 따르는 후학자들도 많이 찾아와 오른 산이기에 더욱 유명한 산들보다 더 많은 유산기(遊山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유산기가 조선의 사대부들이 창작한 것이어서 한문으로 쓰여져, 한문에 능하지 못한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맙게도 청량산박물관에서 청량산유산기들을 모아 번역하고 출판해 저도 청량산유산기를 읽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휴관을 해 문이 닫힌 청량산박물관은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고마워하는 마음만은 문 앞에 두고 갔습니다. 청량산 입구마을 마켓에서 맥주 1캔을 사든 후 낙동강을 따라 걸어, 이내 봉화군을 벗어나 안동시로 들어섰습니다. 줄긋기로 경계 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도로에 표지판을 내걸어 경계를 만들지만, 낙동강은 야단법석을 떨면서 그런 경계를 만들지 않고 오로지 쉬지 않고 흘렀습니다.
14시47분 이번 탐방의 끝점인 고산정에 도착했습니다. 안동시로 들어선 지 얼마 안되어 양삼교를 지나자 피암터널이 보였습니다. 한강을 따라 걸을 때 정선에서 몇 번 본 피암터널을 다시 보자 반가웠습니다. 피암터널을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낙동강은 고리천의 물을 받아들여 왼쪽으로 흐르고, 35번도로는 오른 쪽으로 꺾여 안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삼거리의 소두들정류장에서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16시10분에 청량산입구를 출발해 안동시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어, 책을 보며 기다릴까 아니면 고산정을 다녀올까로 잠시 고심했습니다. 다녀와도 시간이 될 것 같아 고산정으로 이어지는 왼쪽길로 들어섰습니다.내친 김에 2Km 남짓 떨어진 농암종택을 다녀오기로 마음먹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 시골마을을 지났습니다. 가송정류장을 지나 낙동강을 가로 지르는 세월교를 건넜습니다. 이 다리에서 6백m 가량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절애의 암벽과 낙동강이 함께 빚어낸 절경을 옆에 둔 고산정에 도착했습니다.
고산정 (孤山亭) 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의병장인 금난수(琴蘭秀, 1530-1604) 선생께서 명종19년(1594)에 지은 정자입니다. 퇴계 이황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수 차례 이 정자를 찾아와 한시를 지었습니다. 이황선생이 지은 한시가 벽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고 것을 나중에 알아 사진을 찍어오지 못했습니다. 이 정자는 온돌방이 들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잠시 들러 단애의 암벽들이 빚어낸 풍광을 즐기려 지은 것만은 아니고, 오래 묵으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수양을 쌓기 위해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강물이 넘쳐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연법석으로 축대를 높이 쌓은 후 정자를 지었을 것입니다.
16시1분 소두들정류장에 도착해 8구간 탐방을 마무리 했습니다. 서두르면 고산정에서 2km 가량 떨어진 농암종택도 둘러볼 수 있겠다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다리를 다시 건넌 후 낙동강 우안길을 따라 걸어 농암종택에 도착한 시각은 15시16분이었습니다.
농암종택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으로, 직계자손들이 650여 년간 대를 이어 살아왔다고 합니다. 농암종택은 2천여 평의 대지 위에 사랑,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체와 금구당, 명론당,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544년 주세붕선생께서 좌우로 서책이 차 있는 종택을 보고 거처가 비록 협소했으나 그 쇄락함이 신선이 사는 집과 같다고 말씀했다고 안내문은 적고 있습니다.
농암종택을 둘러보고 소둘레정류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정류장에서 20분가량 기다려 안동행버스에 오르르는 것으로써 이번 낙동강탐방을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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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탐방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 선생의 종택을 찾아가 선생을 만나 뵌 것입니다.
15-16세기 중 영남과 호남에서 시조를 키운 사람들은 그 지방의 사림파였습니다. 이들은 강호에서 노닐면서 마땅히 실현해야할 도리를 찾는 강호가도(江湖歌道)의 구현을 목표로 삼고 도학시조를 함께 지으며 가단(歌壇)을 형성했습니다. 선생은 조선 전기에 영남가단을 만들어 강호가도를 실천하고자 도학시조 창작을 개척한 분입니다.
선생은 영남사림 중 중앙정계에 처음 진출한 영남의 중심인물로, 경상감사와 형조참판 등의 고위직을 지냈습니다. 줄곧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으로 돌아갈 꿈을 품은 선생은 귀향을 하게 되자 다시 자연과 어울리며 그 기쁨을 시조로 노래했던 것입니다.
선생이 남긴 시조 3수 「효빈가」, 「농암가」와 「생일가」는 문집 『농암집』에 실려 있습니다. 3수의 시조 중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자기 마을 강가에 있는 귀먹바위에 다시 오른 즐거움을 노래한 「농암가」라고 생각합니다.
聾巖에 올라보니 老眼이 猶明이로다
人事가 변한들 山川이야 가실까
巖前의 某水某丘가 어제 본 듯하여라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는 저서 『한국문학통사』에서 이현보선생이 시조 「농암가」를 통해 “삶에는 두 국면이 있다는 것을 ‘인사’와 ‘산천’이라는 말로 나타냈다.”라고 평했습니다. 인사는 시간의 흐름을 쫓아 살아가는 이해상충의 영역이고, 산천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움직이지 않는 적연부동(寂然不動)의 경지라고 했습니다. 이현보선생이 「농암가」 한편으로 강호가도를 이끄는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산천을 찾는 것이 구도의 길임을 명확하게 했기 때문으로 조동일 교수는 풀이했습니다.
영남의 유학자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선생은 시조 「오륜가」를 지어 인륜도덕을 노래했고, 이황(李滉, 1501-1572) 선생은 「도산십이곡」을 지어 도학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호남가단을 이끈 송순(1493-1583) 선생은 이현보 선생보다 26년 연하입니다. 송순 선생도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의 산수에 묻혀 지내면서 시조를 창작해 호남의 가단을 끌어갔는데, 이는 이현보 선생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닌가 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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