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낙동강 따라 걷기

낙동강 따라 걷기15(옥수교-검암교-하리자전거길쉼터)

시인마뇽 2024. 4. 3. 00:06

*탐방구간: 옥수교-검암교-하리 세월교

*탐방일자: 2024. 3. 27()

*탐방코스: 안동시광역매립장-옥수교-안동시광역매립장-개곡보건지료소-검암교

                  -낙동강생태학습관-단호교-풍남교-하리자전거길쉼터-풍산장터

*탐방시간: 103_1639(6시간36)

*동행       : 나 홀로

 

 

  낙동강을 따라 걸으며 좀처럼 보기 힘든 도시의 이면(裏面)을 보았습니다. 안동시광역매립장에 야적된 폐기물들을 직접 보고 생각한 것은 폐기물매립장이야말로 도시를 도시답게 지탱해주는 시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도시가 폐기물 처리장을 갖추지 못한다면 적시에 폐기물을 처리할 수 없어 그 도시는 온통 각종 쓰레기로 가득 찰 것입니다. 도시가 배출하는 폐기물을 한곳에 모아 매립하는 쓰레기매립장을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설치하는 것은 매립장이 들어서면  그 지역 주민들의  생활의 질과 재산가치가 떨어질까 염려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주민들이 폐기물처리장의 설치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자기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하버드대학의 애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아테네 시장에서 논쟁을 벌일 때부터 도시는 혁신의 엔진 역할을 해왔음을 지적하면서, 도시가 가르쳐주는 교훈들을 우리가 얼마나 잘 배워 행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역설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교외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고밀도의 도시에서 모여 사는 것이 효율을 높이고 훨씬 친환경적이라는 애드워드 글레이저의 주장에 저는 생각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많은 도시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가 폐기물 처리일 것입니다. 도시가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한 곳에 모여 살게 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친환경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듯이, 도시가 배출하는 폐기물도 한곳에 모아 처리해야 처리효율도 높아지고 보다 환경을 잘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도시들이 폐기물처리장의 부지 선정에 애를 먹는 것은 님비현상 때문입니다. 다행히 안동에는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 낙동강이 3면을 휘돌아 흐르고 있는 야산들이 있어, 그런 한적한 곳에 폐기물매립장을 설치해 도시가 도시답게 돌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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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낙동강 따라 걷기는 안동시광역매립장에서 시작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걸으려면 안동시광역매립장을 통과해야 하는데, 과연 그리할 수 있는지를 잘 몰라 택시기사 몇 분들에게 여쭤보았습니다. 매립장을 걸어서 지날 수만 있다면 안동역에서 조금 떨어진 옥수교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낙동강의 좌안 길을 걸어 매립장을 통과한 다음 오른쪽 고개를 넘어 검암리로 내려가면 되는데, 아는 분이 없어 그리하지 못하고 안동역에서 택시를 타고 옥수교를 지나 매립장 후문으로 이동했습니다. 관계자외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을 보고 매립장을 통과하지 않고 온 길로 되돌아가 옥수교를 지난 다음 매립장 정문으로 빙돌아 가느라 옥수교에서 후문으로 가서 매립장을 통과해 정문으로 가는 것보다 1.5Km가량 더 걸었습니다.

 

  오전103분 안동시광역매립장을 출발했습니다. 안동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옥수교를 건너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매립장의 후문에 이르자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걸려 있었습니다. 마침 문이 열려있어 폐기물이 쌓여 있는 매립장까지 올라가서 하차했습니다. 각종 고형물의 폐기물이 야적된 매립장을 사진 찍은 후 후문으로 내려가 낙동강의 물흐름을 거슬러 좌안 길을 따라 북진했습니다. 꽤 넓어 보이는 보()에 이르자 수자원공사에서 세운 낙동강 하구둑부터 339Km’라는 문구가 적힌 폴이 눈에 띄었습니다. 얼마 후 송야천과 낙동강의 합류점을 지나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벗어나 옥수교를 사진 찍은 후 다시 돌아가 자전거 길로 낸 데크 길을 지났습니다. 옥수교에서 유일사에 조금 못 가서 다다른 삼거리까지 낙동강 좌안 길을 자전거길로 이어가면서 두 달 전에 걸었던 건너편 우안 길과 물오리 몇 마리가 유영하고 있는 그림 같은 낙동강을 완상했습니다. 삼거리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안동시광역매립장의 정문까지 일반도로 한편에 선을 그어 만든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는데 마침 쓰레기반입 시간이 아니어서 대형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1141분 안동시광역매립장의 정문을 지났습니다. 안동시생활폐기물처리시설 안내판이 붙어 있는 매립장 정문 앞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길을 따라올라 백호고개를 넘었습니다. 중앙선 철로를 밑으로 지나 길옆  정자에서 햄버그를 들면서 십 수분 쉬었습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는 춥다 싶었는데 그새 기온이 올라 봄기운이 역력했습니다. 낙동강우회자전거 길을 따라 내려가 검암리노인회관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이내 안동 마령동 기와 까치집에 다다랐습니다. 조선 중종 때 남평문씨가 종택으로 지은 이 집을 기와 까치집이라 부르는 까닭은 본래 까치집은 초가집인데 이 집은 기와집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붕은 기와를 덮고 합각 부분에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까치구멍을 낸 이 집은 정면 3, 측면 2, 중앙앞쪽 봉당과 그 뒤쪽에 마루가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경상북도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한옥은 단출하다 못해 단조로워 보였습니다.  개곡보건진료소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개곡교에 이르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미천이 보였습니다. 이 하천을 따라 북진하다가 낙동강과의 합류점을 얼마 앞둔 지점에 놓인 검암교에 이르렀습니다.

 

  1256분 검암교를 건넜습니다. 검암교를 건너면서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미천의 물흐름을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촉촉이 젖어 있는 모래톱, 천변의 갈대, 그리고 모래사장과 어우러져 미천이 빚어낸 천변 풍경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고즈넉해 보여 도시의 천변 풍경과는 크게 대비되었습니다. 검암교를 건너 풍산대교를 밑으로 지나자 천애의 절벽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의 물흐름이 먼 곳까지 조망되고 그 너머로 우뚝 솟은 학가산의 위용도 눈에 들어 와 고갯마루에 오르는 동안 몇 번이고 멈춰서서 카메라에 옮겨 담곤 했습니다. 시간이 넉넉지 못해 고갯마루에 올라 낙동강 우안의 낙암정(洛巖亭)을 먼발치서 내려다만 보고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경북문화재 자료 제194호로 지정된 낙암정은 조선조 문종 때 문신인 배환(裵桓, 1379~ 미상)이 건립한 팔작지붕의 정자로 천애의 절벽 위에 서 있어 낙동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졌습니다. 고갯마루에서 오른쪽으로 연결된 데크길은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같은데 이 또한 시간이 없어 올라가 보지 못하고 바로 낙동강생태학습관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1354분 낙동강생태학습관을 지나 낙동강 좌안의 단호제 제방길로 올라섰습니다. 강 건너 중수천과의 합류점에서 완만하게 휘어진 제방길은 낙동강자전거길이 틀림없는데 4Km를 걸어 단호교를 건널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방 길에서 오른쪽 아래 천변길로 바꿔 걷다가 다시 제방길로 올라선 것은 아직은 길가의 벗꽃이 개화되지 않아 같은 길을 걷는 것이 너무 단조로워서였습니다. 버드나무 등 수변의 나무들에서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 제방의 벚꽃만 만개한다면 수일 내로 이 길도 활력이 넘칠 것 같습니다.  제방이 끝나는 곳에서 잠시 벤치에 앉아 커피를 꺼내 마시면서 가슴이 뿌듯했던 것은 두 달 만에 나선 낙동강이 여전히 저를 반겨 맞는다 싶어서였습니다.

 

  1510분 단호교를 건넜습니다. 단호교를 건너 마애마을로 들어서면 마애석조비로자니불좌상과 산수정 등을 볼 수 있는데 그리했다가 1630분에 하회마을을 출발하는 안동행 버스를 풍산읍내에서 탈 수 있을지 잘 몰라 보다 거리가 짧은 버스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이 길 왼쪽의 마애솔숲공원을 들러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자 도산면 원천리에서 보았던  칼선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남교에 이르러 낙동강과 헤어지고 오른 쪽으로 꺾어 풍산천을 거슬러 둑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리교를 조금 못 가서 풍산천에 놓인 세월교를 건너 풍산천 우안의 둑에 올라서자 낙동강 하구둑 295Km/안동댐 8.6Km’의 표지목이 세워져 있었는데, '안동댐 8.6Km'는 오기임이 분명합니다. 

 

  1639분 풍산장터에 도착해 15번째 낙동강 따라 걷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세월교를 건너 올라선 풍산천 우안의 둑의 하리자전거길쉼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풍산시내로 향해 걷다가 산보 중인 현지 주민을 만나 풍산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았습니다. 정년퇴직 후 혼자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 살고 있다는 이 분에게 물어 북쪽으로 보이는 높은 산이 학가산임을 확인했습니다. 18년전 가을에 고교동창들과 같이 들러 한우 고기를 맛있게 먹었던 풍산장터를 둘러보고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내 도착한 버스로 안동터미널로 가서 1817분에 안동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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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가 쏟아내는 생활폐기물이 고형물일 경우는 매립장에 묻어도 액체가 용출되지 않아 인근의 강을 오염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동시가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는 야산에 매립장을 건설한 것은 이 매립장에 반입되는 폐기물들이 고체상태의 고형물이어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쓰레기소각장이나 매립장이 처리할 수 없는 것은 생활하수나 공장페수 같은 액체상태의 페기물(?)일 것입니다. 도시에서 배출하는 생활하수나 공장폐수를 강이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현대의 도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이 관리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류가 처음 물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7천년 경에 하수도를 만들고 5천년 경에 상수도를 만들었습니다. 2천년 경에 수로를 만들어 원하는 곳으로 물을 끌어 올리고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얻고 숯을 이용해 정수를 시작했다고 박석순님은 저서 수질관리학 원론에 적기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물관리는 19세기 후반에 와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물관리 기술이 발전하고 법과 제도가 갖추어져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형물을 매립하는 매립장도 한계가 있듯이 생활하수나 공장폐수가 유입되는 강물도 정화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물 사용 급증과 기후변화로 물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강에 대한 관리가 더욱 강화되고 물 낭비를 막아야  앞으로도 필요한 물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