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낙동강 따라 걷기

낙동강 따라걷기17(광덕교-구담교-풍지교)

시인마뇽 2024. 4. 14. 01:57

탐방구간: 광덕교-구담교-풍지교

탐방일자: 2024. 4. 12()

탐방코스: 서안동농농협 주유소-광덕교-안동(3)하천관리사무소-구담교-신풍양수장

                 - 축동제1배수문-도화양수장-마전배수장-지안교-풍지교-마전2리정류장

탐방시간: 1020-1643(6시간23)

동행        : 나 홀로

 

 

 

  작년 10월 안동 땅에 발을 들인 후 총 10번을 낙동강 따라 걷기에 나서 이번에야 비로소 안동시를 벗어났습니다. 한 번 나서면 10Km에서 20Km 사이를 걸었으니 그간 제가 낙동강을 따라 안동 땅을 걸은 것은 줄잡아 150Km는 족히 될 것입니다. 낙동강이 구불구불 흐르는 감입곡류가 여러 곳 있는 데다 안동호의 호반길이 리아스식 해안처럼 들쭉날쭉해 낙동강을 따라 안동 땅을 통과하는 것이 제게는 꽤 먼 길이었습니다. 덕분에 낙동강의 감입곡류와 안동호가 빚어낸 명승지를 몇 곳 탐승하고, 유교 문화의 유적지 몇 곳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안동시를 벗어나 첫발을 들인 예천군은 그 면적이 662로 전국 국토 100,364의 약 0.66%이고, 인구는 2023년 말 기준 약 55천명으로 전국 인구 51,377천명의 0.11%에 불과한 아주 작은 지자체입니다. 예천군은 안동시처럼 낙동강이 가운데를 관통해 흐르는 것이 아니고 남쪽을 살짝 지나는 정도여서 앞으로 한두 번만 더 나서면 예천군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예천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예천 출신의 과 동기와 한 두 학기 화학실험을 같이해서였습니다. 그 후 제 머릿속에 예천을 각인시킨 인물은 양궁선수 김진호와 조선시대 문신 권문해입니다

 

  예천이 낳은 김진호선수는 아시아경기대회와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따내 당대 세계 최고의 여자양궁선수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84LA올림픽에서는 서향순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고 기대했던 김진호선수는 동메달을 따는데 그쳐,  저는 그떄 많이 아쉬워했었습니다. 김진호 선수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의 건립으로 그 이름이 후세에 오래오래 전해질 것입니다.

 

  조선 선조 때 대학자인 권문해  (權文海, 1534~1591) 는 본관이 예천(醴泉)으로 호는 초간(草澗)입니다. 퇴계 이황선생의 문하생으로 유성룡 및 김성일 등과 교유해온  권문해가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것은 1560년의 일입니다.  그 후 좌부승지 및 관찰사를 지내고 사간을 역임한 후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권문해는 예천으로 귀향해  1582년 정자 초간정을 지었고, 1589년에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해 펴냈습니다. 『대동운부군옥』은  우리 나라의 고금문적(古今文籍)을 널리 참고하여 단군시대로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지리·역사·인물·문학·식물·동물 등을 총망라하여 운별(韻別)로 분류한 일종의 백과사전입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책에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알려진 최치원전(崔致遠傳)이 실려 있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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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터미널에서 구담으로 가는 211번 버스를 타고 가다 풍천의 농협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나흘 전에 다녀간 풍천을 다시 찾아간 것은 17번째 낙동강 따라 걷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1020분에 풍천의 농협정류장을 출발해 10분 거리의 광덕교로 향했습니다.

 

  1029분 광덕교에 이르러 17번째 낙동강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광덕교를 건너다 중간에 잠시 멈춰 낙동강 우안에 자리한 풍산유씨 파산(巴山) 문중 소유의 정자 파산정(巴山亭)을 사진 찍었습니다. 다리 건너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낙동강 좌안의 풍천제에 올라서자 자전거전용도로가 일직선으로 펼쳐져 보기에도 시원했습니다. 전장 4.4Km의 풍천제는 구담교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어져 소실점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제방 왼쪽 아래 광덕교회를 지나 하천관리사무소에서 앞에 이르자 제 연배의 남자 한 분이 저를 반겨 맞았습니다. 풍천제 제방을 자전거로 달리곤 한다는 현지 주민인 이분에게 물어 강 건너 북쪽 먼발치로 아파트단지가 보이는 도시가 경북도청 단지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경북도청이 안동시와 예천군에 걸쳐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안동시와 예천군을 통합하자는 여론이 생긴 데는 경북도청의 위치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방 안쪽으로는 조팝나무들이 하얀 꽃을 활짝 피워 제방 길을 환히 밝혔고, 제방 밖 들판에는 밭 두둑들이 직선으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풍천제 제방길을 걷는 것이 단조롭지 않았습니다.

 

  1228분 구담교를 건넜습니다. 구담교를 1-2m 앞에 둔 강변 정자에서 점심을 들면서 낙동강에 설치된 보()와 어도(魚道)를 완상했습니다. 가운데가 볼록한 반원 모양을 한 양쪽 보와 그 가운데에 자리한 직선의 어도가 잘 대비되었습니다. 구담교를 건너면서 이제껏 함께해온 낙동강을 카메라에 옮겨 담고 나자 이 강이 더욱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다리 건너 오른편 구담마을의 명소인 구담사나 사북정 등을 들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왼편으로 돌아 신풍제로 올라선 것은 이번 탐방의 목적지인 풍지교에 이르려면 앞으로도 13Km는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담성당 입구를 지나 들어선 신풍제는 이번에 제가 걸은 두 번째 제방 길입니다. 길이 곧게 난 풍천제와 달리 신풍제는 둥그런 곡선 모양을 하고 있어 단조로움은 덜 했지만, 그새 기온이 올라 시멘트로 포장된 제방길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제방길 가로수가 벚나무 같은데 어인 일인지 아직도 꽃이 피지 않아 나무 그늘이 생긴 곳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몇 곳의 배수통문을 지나 제방 끝머리의 신풍1양수장에 이르기까지 낙동강 하상에 들어선 꽤 넓은 부지가 연초록의 버드나무들로 채워져 우안의 제방길과 달리 낙동강은  봄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1438분 도화양수장에 이르렀습니다. 신풍1양수장을 거쳐 신풍제 제방길은 끝나는 지점에서 커브 길을 돌아 세 번째 제방인 축동제에 발을 들였습니다. 곧게 직선으로 둑을 쌓은 축동제 자전거길은 얼마간 곧게 뻗어 나가다 오른쪽으로 휘어 이어졌습니다. 낙동강 우안의 축동제 바깥 들판에는 네모반듯하게 조성된 과수원 배밭도 있고 감자밭(?)도 보였습니다. 축동제1배수문을 지나 도화양수장에 다다라 낙동강을 뒤돌아보자 낙동강  양안 제방 간의 폭이 상당히 넓어 여기저기에 모래톱도 보였고 버드나무(?) 숲들이 꽤 넓게 자리하고 있어  낙동강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된다싶었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여기 도화양수장의 총 양수량은 초당 2m3(시간당 7,200)이고 수혜면적은 무려 565.7ha(171만평)라고 합니다. 나지막한 구릉 아래 설치된 데크 길이 끝나자 강변 길이 이어졌습니다. 이 길을 따라 진행하면서 경찰차가 보여 이 촌구석에 웬 경찰차인가 했는데 젊은 한 사람이 제게 다가와 누구 아니냐고 물어 왔습니다. 이 젊은이는 범인을 쫓는 형사로 이내 경찰차를 타고 돌아가고 저는 그 길을 따라 걸어 이번 탐방 마지막 제방인 지보제 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622분 예천군 지보면과 의성군 다인면을 이어주는 풍지교에서 17번째 탐방을 마쳤습니다. 낙동강 우안의 지보제 둑길을 걷는 중 유독 제 눈을 끈 것은 지보제  바깥쪽 들판에 쌓여 있는 모래더미입니다. 높게 쌓인 모래더미들은 하나 같이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또 풀들이 자란 흔적도 보였습니다. 어떤 모래더미는 울타리를 치우고 위를 헐어 덤프트럭으로 실어나르고 있었습니다. 병산서원을 지나면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모래톱과 모래밭이 많이 보였는데 들판에 쌓아둔 모래 더미들은 강 가운데 모래톱과 강가의 모래밭을 준설해 옮겨 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들판의 모래들은 십 수년 전 4대강 개발 때 준설해 쌓아둔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천배수장을 거쳐 다다른 지안교를 밑으로 지나 바로 옆 풍지교에서 낙동강 탐방을 마쳤습니다.  인근 마전2리 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겨 반 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예천으로 향했습니다. 내성천을 지나 예천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 19시에 서울로 출발하는 고속버스에 오르는 것으로써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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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낙동강 탐방하며 걸은 길은 거의 다가 제방 길입니다. 풍천제, 신풍제, 축동제와 지보제 등 4개의 제방 길을 이어 걸으며 제가 본 강물관리시설은 제방, 보, 양수장과 배수통문입니다. 옛날에는 집중호우로 제방이 터져 농경지와 가옥들이 침수되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4대강 개발 사업후 이들 강의  제방은 그 위에  자전거길을 내도 좋을 만큼 튼튼하게 축조되어 안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낙동강의 제방 길을 걸으며 만나 본 보들은 하나 같이 규모가 작아  농경지로 이어지는 수로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것들이지만,  앞으로 만나 볼 상주보 등 8개의 낙동강 보들은  4대강 개발 때 설치한 것으로 바다로  흘려 버리는 강물을 잡아두어 필요할 때 쓰고, 발전을 하는데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제방마다 설치된 양수장과 배수통문도 강물을 관리하는데 꼭 필요한 설비입니다. 가물 때는 강물을 양수해 제방 너머 논밭에 공급하고, 홍수 때는 논밭을 뒤덮은 물들을 제방 너머 강으로 퍼내야 하는데,  양수장과 배수통문이 바로 그런 일을 해내는 시설들입니다.  강과 제방에 설치된 물관리 시설들을 보고 강물의 양적관리는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물의 양적 관리만큼 중요한 또 하나는 질적 관리입니다. 최근 몇 년간 강줄기를 따라 걸으며 제가 직접 본 질적 관리 설비는 국가비점오염물질측정소와 비점오염저감시설입니다. 금강을 따라 걸으며 관찰한 비점오염저감시설은 외부에서 유입된 비점오염물질의 정화를 위해 침강지, 깊은 습지, 지표흐름 습지, 생태여과지, 물억새단지 등이 조성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설들은 비점오염물질이 유입-침강지-깊은 습지-지표흐름습지-생태여과지-방류의 과정을 거쳐 정화될 수 있도록 조성된 것입니다.

 

  관계 당국의 노력으로 강물의  양적 관리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데, 질적 관리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명백한 사례가 녹조가 매년 여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질적 관리 또한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찾는다면 충분히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탐방사진>